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00화 (100/176)

#100

조민호도 자기 일에 열정적인 박희관 부장을 굳이 나무랄 생각이 없었다. 배효진 연기력 치료법을 모른다면 저런 반응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아직 재벌 3세라는 것을 간과해서 저런다고 해도 대놓고 상급자에게 바른 소리 하는 그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드라마 펀딩도 잘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잘 지켜보세요. 불안하면 차라리 피아노 협주곡 제작에 문제가 없도록 더 세세하게 신경 쓰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중앙지검에 전화해서 KBC 국장에게......”

차마 그도 뒷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말을 흐렸다.

조민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알아서 해달라고 했을 뿐이지, 압력 넣은 것은 아니잖아. 심지어 중앙지검에는 전화한 적도 없고.’

“아뇨.”

“역시 그렇죠? 그런데 왜 윤석민 PD가 조민호씨가 전화해서 압력 넣었다고 하는 걸까요?”

“우연이 겹쳐서겠죠.”

“흠.”

그는 석연치 않은 구석으로 조민호를 요리조리 살폈지만, 곧 떨쳐버리고 말았다.

조민호는 일전에는 바이드 투자 때문에 간과했던 어깨를 푹 숙인 채 돌아서는 박희관 부장 선천지기를 살피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오염도 5%에, 잠재 선천지기 67라면 제법 괜찮아. 하긴 저 정도라면 미래 증권에 언제라도 사표 던지고 그만둘 수도 있겠어.’

***

민경기 과장은 지난 조민호 사태 이후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턱 막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압수수색도 받아 보았고, 심지어 참고인 조사까지 받았다.

특히 이용식 처장과 관련된 채용 비리가 강기창 경감 게이트로 진화되자 숨조차 쉬지 못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잘리지 않았지만, 오성 바이오 쪽으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이제 조민호란 이름만 들어도 경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마침 두 사람 입사 직원서 관련된 내용을 보고받았다.

처음에는 왜 이 두 사람을 따로 추려서 보고 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민호와 관련이 있는 박진민과 김영탁이었다.

다급하게 최진석 인사부장에게 달려가서 보고했다.

“헉?!”

이번 사태 때문에 회사에서 퇴출 직전에 구사일생 부활한 최진석 인사부장도 화들짝 놀라서 민경기 과장과 같이 홍석우 이사를 직접 찾아갔다.

홍석우 이사는 두 사람보다 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서류 전형 통과시키고, 실무 면접자에게 따로 만나서 자초지종을 말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서류 전형은 따로 관리되어서 바로 처리가 되었다.

***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응?”

박진민은 오늘도 입사 지원서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가 강의 시간 때문에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다가 이메일 안내를 보고 반사적으로 눌렀는데, 그 결과에 고개를 갸웃했다.

스펨인가 싶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야 오성 그룹 인사팀에서 보낸 이메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경악했다.

이 믿을 수 없는 일에 호들갑을 떨다가 곧바로 학교로 갔다.

김영탁 역시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

두 사람은 이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전율하다가 곧 조민호를 찾아다녔다.

조민호는 마침 강의실에 먼저 와서 또 ‘발달장애’와 관련된 다양한 의학 서적을 열심히 독파 중이었다.

“민호야, 우, 우리 오성 그룹 서류 전형 통과했다!”

“응? 축하해.”

조민호조차 사실 친구를 위해서 오성 쪽에 한마디 해둘까 하다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된 걸까?’

“크흑, 민호야, 정말 고맙다.”

“딱히 내가 한 일은 없어.”

“아니 그러면 오성 인사팀 쪽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야?”

“이번에 찾아온 박희관 부장 일 처리한다고 정신없어서 깜빡했다.”

“뭐?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너희 힘으로 합격한 거야. 축하한다. 최종 합격한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 이차 면접이나 잘 준비해. 거기에 삼차 최종 면접도 또 있잖아.”

“그, 그렇지.”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배효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할까?’

***

발달장애성 언어 장애 요인은 청각 장애, 뇌성 마비, 자폐증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가 있다.

각 요인에 따라서 다시 세분되어 들어가는데, 딱히 한 가지 요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더욱이 어느 정도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경우라면 치료는 더 어렵다.

조민호 역시 배효진 경우가 속하는 영역을 검토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혼원기라면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났다.

가능하면 빨리 배효진을 만나서 직접 치료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는 결국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영준 차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최영준 차장은 역시 기자 출신답게 배효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심지어 김지수 치료에 대한 것을 말하면서도 지금 그녀의 변화 원인도 설명해주었다.

배효진은 얼마 전에 중아일보 기자 인터뷰까지 한 터라 최영준 차장 말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지압으로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조민호가 했던 말도 있지만, 주변에서 계속 자기 연기력에 대한 노골적인 이야기를 참지 못했다.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에서 최고라는 오성 의료원을 찾아갔다.

요즘 오성 바이오 일 때문에 정신이 없던 윤현종 과장은 환자가 배효진이라는 것에 우선 놀랐지만 자기 스스로 언어 장애인지 검사하고 싶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거 몰래 카메라는 아니겠죠?”

동생 문제 때문에 뒤늦게야 자신도 언어 장애가 있는지 미칠 듯이 궁금한 배효진은 초조한 얼굴로 답했다.

“선생님, 꼭 한번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흠.”

윤현종 과장도 몇 번 설득하려다가 문득 최근 뜸한 의문의 환자 사건을 떠올리면서 설마 이 일도 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국소뇌혈나 뇌혈관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SPEC(뇌 단일광자단층촬영)을 사용해서 정밀 검사해보았다.

이 장비 자체가 뇌혈류를 확인해서 수술이 필요한지, 아니면 수술 효과가 어떤지를 검사하는 용도였다.

자신도 좀 오버가 아닌가 싶었는데, 검사 결과는 좋지가 않았다.

정상적인 성인과 비교해서 대략 10% 정도 수치 차이를 보였다. 개인 오차 범위를 고려해도 그 범위가 넓어 보였다.

하지만 딱히 정상적인 생활하는데,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뇌혈류 자체가 좀 작기는 하지만 뇌혈관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치매나, 뇌종양과 같은 증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어 장애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거야......”

윤현종 과장도 딱히 확답 내리지 못했다. 이 분야 연구는 여전히 전 세계 많은 의학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정밀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이 일만을 전담할 여유도 되지 않고요.”

“감사합니다.”

뒤늦게야 조민호와 최영준 차장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배효진은 꾸벅 감사 인사만 한 후에 오성 의료원을 후다닥 나가버렸다.

“저기.....”

입맛을 다시던 윤현종 과장은 힐끗 SPECT 자료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정상적인 성인 촬영 결과와 살짝 비켜나서 연구 대상으로 이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

조민호는 유명환 과장 주변에 큰 그물을 쳐 놓고 신중하게 지켜봤다. 정확히는 최영민 사장에게 감시를 시켜놓았다.

이제는 배효진을 통해서 자극까지 해 놓았다. 그 주변에 엮이는 인물만 확인하면 되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인내력이 대단한 놈이군.’

권력을 쥐었다면 마땅히 휘둘러야 하는데, 딱히 티 내지 않았다.

이보다는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업체 상대로 소소한 뇌물을 받아 챙겼다.

그 와중에 연예인 기획사 연습생이라는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연습생 역시 자신이 원한 바를 노려서 같이 즐겼다.

강제로 강간하는 그런 영화와 같은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새삼 이전에 거짓말했던 피해 클럽 여자들을 떠올렸다.

‘강제가 아니라 이해관계 때문에 스스로 몸을 판다는 말일까?’

조민호도 이 일이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다고 생각하자 유명환 과장을 자극하기 위해서 배효진의 언어 장애를 더 연구했다.

결국 강의가 끝나면 따로 과 도서관에서 이쪽만 팠다.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한 박진민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민호야, 정말 고맙다.”

“아, 그래.”

“배효진씨와는 잘 되어가?”

“아무런 관계 아냐.”

“그래. 하지만 사전에 알아야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니, 미리 말해주라.”

“연예인과 우리랑 사는 세상이 전혀 다르니, 신경 꺼라.”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다. 영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늘 있는 거야.”

두 사람은 배효진 이야기를 하면서 별의별 망상을 다 털어놓았다.

조민호도 따가운 주변 시선을 의식하자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검은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한 사람이 두리번거렸다.

“효진씨?”

“아, 여기 있었군요.”

후다닥 달려온 배효진은 뒤늦게 두 친구를 확인하자 고개를 숙였다.

“반가워요.”

“헉, 배, 배효진씨?!”

두 사람은 조민호가 부러워서 이런저런 푸념을 털어놓았지만, 설마 그녀가 다시 조민호를 찾아올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조민호는 그런 두 사람이 못 마땅한지 배효진을 데리고 밖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두 사람도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열심히 쫓아갔다.

불행히도 건물 앞에 주차해 있던 애마에 조민호가 오르기가 무섭게 한 손을 흔들면서 총알같이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아!”

하지만 곧 두 사람은 조민호와 배효진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떠올리면서 서로 쳐다보았다.

“설마 두 사람이 사귀는 거야?!”

***

한국대에서 불과 5km 정도만 가면 국도로 빠져나간다.

배효진은 차에 타기가 무섭게 최영준 차장 제안과 오성 의료원 가서 진료받은 결과를 전부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뒤늦게야 조민호가 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믿기 시작했다. 사실 최영준 차장이 슬쩍 보여준 기존 환자 예후를 봤기에 더 확신했다.

조민호는 애마를 운전하면서도 힐끗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배효진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라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누가 보면 새색시라고 생각하겠군.’

고민은 뜻밖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겨났다. 본인 입으로 치료를 받아보겠다고 한 것은 좋았는데, 그 이후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단순히 환자라고만 생각한 조민호는 결국 도롯가에 차를 주차했다.

“지압은 단순히 치료를 위한 목적입니다.”

“......알아요.”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오른 배효진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서 조민호를 훔쳐보았다.

뒤늦게 조민호도 달랑 두 사람만 있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최영준 차장을 만나 봤을 테니, 그분도 이곳으로 부르죠.”

“아, 안 돼요!”

“하면 어디 조용한 곳에 가야 하는데, 달랑 두 사람만 괜찮겠어요?”

“......네.”

이전에는 전혀 생각도 못 한 난관을 느낀 조민호는 혀를 찼다. 문제는 지금 하는 치료가 남녀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만약 모텔에 달랑 둘만 투숙한다면 별반 차이가 없었다.

조민호는 결국 고민 끝에 다시 차를 집 방향으로 돌렸다.

“제집에 가서 치료합시다.”

“......네.”

***

차명으로 번 돈은 직접 사용할 수가 없어서 수중에 쥔 돈은 얼마 없지만 최근 환자를 통해서 꽤 돈을 번 조민호는 이번에는 대출까지 받아서 10억짜리 단독 주택으로 이사했다.

이전 집과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주변 집과는 거리가 있어서 시선을 끌지 않았다.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더 넓은 정원을 포함한 70평의 집이다.

분당 도심에서 벗어난 곳이라서 주변을 오가는 차량도 그렇게 없었다.

조민호는 애마를 주차하기가 무섭게 배효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효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조민호 뒤를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가다가 거실에 놓인 물건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 이게 다 뭐죠?”

“아, 돈입니다.”

만원권 다발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현금 뭉치가 거실 한구석을 가득 채웠다. 자금 출처 때문에 은행에 입금할 수가 없어서 내버려뒀다.

배효진은 조민호 사정을 몰라서 패닉에 빠져서 멍하니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조민호는 혀를 차면서 한 사람당 치료비로 지금까지 1억씩 받아 왔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아, 원래 이쪽 계통으로 유명한 분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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