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99화 (99/176)

#099

아니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랬어.”

“박 부장이 그렇게 나대다가 결국 등에 칼 맞을 거로 생각했어. 결국, 이렇게 되었네. 그래도 사람 일은 잘 모르잖아. 힘내 봐.”

“어제 회식 자리에서 한 이사가 자네 열나게 씹더라, 진짜 큰일 났어.”

“자네 실력은 잘 알지만 그래도 한 이사가 있는데, 적당히 빠질 수도 있었잖아. 회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한 거 다들 알아.”

“......그만 해라.”

박희관 부장은 결국 자칫하면 회사에서 퇴출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직접 윤석민 PD를 찾아갔다. 투자 문제 때문에 드라마 제작사 레드 스튜디오 황인수 사장도 같이 불렀다.

하지만 윤석민 PD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도대체 중앙지검 김정환 부장검사와는 어떻게 아는 겁니까?”

“네?”

“후유, 말도 마십시오. 원래 배효진 캐스팅을 갑자기 반대한 것이 저희 국장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민호군이 미래 증권에 50억 투자한다는 말과 동시에 어디론가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김정환 검사가 저희 국장님에게 업체에 받은 뇌물 관련해서 참고인 출석을 요구했지 뭡니까. 겁먹은 국장님이 당장 저에게 전화했고, 다음 날에 검찰에 나가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아, 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이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닙니다. 조민호군이 달랑 전화 한 통화만 했는데, 중앙지검이 사전 검토도 없이 움직였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설사 고소해도 사전에 확인하는 것만으로 한 달은 족히 걸리고, 다시 몇 가지 검토를 더 거쳐야 하므로 시일이 더 걸린다.

제보를 받아서 사전 정보가 있다고 해도 대통령이 아닌 다음에야 현직 중앙지검 부장검사가 저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일 리가 없었다.

윤석민 PD도 긴장한 듯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래요. 저희 국장님이 제작사에서 돈을 좀 받았는데, 그걸 제보를 받은 담당 검사가 넌지시 말했습니다. 저희 국장님은 이틀 동안 충격을 받아서 끙끙 앓다가 겨우 방송국에 출근하자마자 저를 찾아서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전 그렇게 그분이 패닉에 빠진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담당 검사가 이 뇌물 받은 부분을 알고 있다고 한 것이다.

국장은 뇌물이 1억이 넘으면 가중 처벌을 받기 때문에 감방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공포에 들들 떨었다.

더 황당한 것은 기소한 것이 아니라 참고인 조사만 했다.

겁(?)만 준 것이다.

뒤늦게 이 일이 조민호의 전화 한 통만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까지 듣고 나서는 박희관 부장도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는 모르는 사실입니다만......”

“그게 말이 됩니까. 50억 투자 말 나오기가 무섭게 조민호군이 전화하자 그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민호군이 아니라 그쪽 회사에서 손을 쓰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됩니다!”

윤석민 PD도 이번 일 관련해서 국장 의견에 찬성한 것은 아니지만, 권력을 휘두르는 조민호가 솔직히 무서웠다.

그 내막을 잘 모르는 박희관 부장은 상리에 맞지 않은 일이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그 전화를 한 것이 조민호 씨였습니까?”

“물론이죠. 저도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그 카리스마에 50억이란 거금을 그냥 용돈처럼 툭 던지고, 전화 한 통화로 검찰을 움직이지 않습니까. 얼마나 황당하던지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후유.”

영문을 알 수 없는 박희관 부장도 일단 그 이야기는 패스하고, 드라마 문제부터 더 따졌다.

“그 이야기는 제가 다시 확인 후에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배효진씨를 여주로 가실 겁니까? 다른 차선책은 없습니까?”

“그건 조민호씨도 동의했습니다. 저도 신인 위험성을 잘 알지만 배효진씨만큼 여자 주인공과 일치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연기력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 문제는 조민호씨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유럽의 서정적인 풍경으로 부족한 연기력을 채울 생각인데, 서도연이나, 필립 헤니, 이소혜 같이 쟁쟁한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렇게까지 팬층이 두터운 것도 아니라서 초반 흥행에 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예리한 지적에 윤석민 PD도 당황했지만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박희관 부장은 윤석민 PD가 너무 과거의 영광에 집착한다는 것을 깨닫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는 무조건 실패야. 도대체 이런 드라마를 대상으로 고객에게 어떻게 투자 제안을 하란 말인가? 일단 조민호군을 만나서 이야기해봐야겠어.’

***

발달장애 약물치료는 43년 이후부터 시작해서 몇 번의 큰 변화를 거쳤다. 기본적인 핵심 증상은 역시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다.

반복적이면서 제한된 행동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여기에 따라서 다양한 약물치료 요법도 나왔다.

소아의 과민성 치료제로는 리스페리돈과 아리피프라졸을 사용한다. 올란자핀이나 퀘티아핀 역시 빼놓기 어렵다.

올란자핀은 다양한 수용체를 가져서 높은 결합력을 가지고 있다.

조민호는 혼원기를 이용해서 이와 관련된 분자 구조를 모델링해서 직접 확인해보았다.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상의 테스트를 진행하다가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접었다.

‘아쉽네.’

이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자폐 환자의 혈액에서 세로토닌 수치가 증가한 현상이다.

발달장애 환자의 혈액 수치 연구에서 세로토닌 수용체 유전자 과발현 현상이 나타났다.

시중신 혼원기에도 이 수용체 유전자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다양한 약물 분자를 통해서 특성 혼원기 훈련까지 시도해보았지만 정작 이게 환자에게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 알 수가 없었다.

조민호는 이 연구를 통해서 특성 혼원기 조합에 점점 더 익숙해질 수가 있었고, 선천지기 동기화 과정도 이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여기에 향정신성 약물에 관한 연구까지 더해서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갔다.

박진민은 이제 아예 숨김없이 그대로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조민호를 발견했다.

“너 결국 의대로 전과하는 거야?”

“아니.”

“하긴 요즘 같아서는 나도 의대 가고 싶다. 이 빌어먹을 세상은 취업하는 것만으로도 하늘의 별 따기인 줄 모르겠다.”

툴툴거리는 그의 옆에 같이 앉은 김영탁은 시원한 냉커피를 조민호 책 위에 떡하니 놓았다.

“마셔.”

“잘 먹으마.”

조민호는 달콤한 커피 맛을 즐기면서 힐끗 자신을 쳐다보는 두 사람 모습에 쓰게 웃었다.

“미리 말하는데, 배효진씨랑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번 드라마 관련 투자 제안 때문에 그쪽 기획사와 잠깐 이야기를 한 것뿐이야.”

“가만 그러면 너 미래 증권에서 결국 일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으음, 그냥 투자 컨설턴트 역할일 뿐이야. 왜 명의 빌려주고 하는 것 말이야. 명색이 재벌 3세잖아?”

“그렇구나.”

“그래.”

“공적인 일이라면 말하기 곤란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너무 지나쳤다.”

“흠.”

조민호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두 사람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입사 지원 때문에 그래?”

“다들 비슷하잖아. 요즘은 정말 죽고 싶다.”

의기소침한 두 사람은 참담한 표정을 한 채 책상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그러지 말고 정 답답하면 오성 전자 측에 한 번 내 봐. 혹시 아냐? 하늘이 도와서 서류 전형이 통과할지 모르잖아.”

“현일 물산이라는 듣보잡 중견 기업에 원서 냈는데도 다 떨어졌다. 오성 그룹이 만에 하나라도 될 리가 없잖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때마침 땀범벅인 박희관 부장이 물리학과 재학생 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서 그들 앞으로 달려와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조민호는 회사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네, 일전에 회사에서 봤는데, 이번에는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전 미래 증권 해외 1팀 팀장 박희관 부장입니다.”

“아, 네.”

‘결국 미래 증권에 입사하는 구나!’란 의미가 담긴 따가운 두 사람 시선에 혀를 차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었다.

“전 미래 증권과는 전혀 무관한데, 왜 제가 회사 직원인 것처럼 말합니까?”

“아, 그거야 그렇지만 드라마 펀딩 문제 때문에 당장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역시 제가 미래 증권에 다니지 않는 것은 잘 아시는군요.”

“......그거야 맞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피아노 협주곡 제작 관련해서......”

“잠깐만요. 지금 중요한 것은 제가 미래 증권과도 무관한데, 왜 계속해서 자꾸 그쪽 일을 이야기하려는 겁니까?”

“......저기 조민호씨, 갑자기 왜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그쪽 일이라면 관심 없습니다. 큰아버지에게 분명히 전해주세요.”

“?”

박희관 부장은 결국 당황했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영문을 잘 몰랐다.

다행이라면 박진민과 김영탁은 조민호가 확실히 미래 증권에 입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확신했다.

“민호야, 네 진정은 알았으니, 그 정도로 하자.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거나 들어야지. 너무 일방적이다.”

“흠.”

박희관 부장은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자 잽싸게 입을 열었다.

“피아노 협주곡 투자는 재고해주십시오. 배효진씨 연기력 때문에 무조건 망합니다. 제가 그 드라마 펀딩 담당자로서 도저히 이 일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전 투자 결정권자가 아닙니다.”

“장난 아닙니다. 이 일은 정말 회사에 큰 손실을 입힐 수도 있습니다.”

대화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졌다.

“?”

두 사람은 도대체 조민호가 왜 저러는지 이해를 했지만, 중간에 말을 자꾸 잘라서 도대체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민호도 결국 일축했다.

“배효진씨 연기력은 곧 나아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아니 어떻게 말입니까?”

“방법이 있어요.”

“아니 연기력이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갑자기 바뀔 수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대립이 심해지자 박진민은 마치 두 사람 입을 쫓는 것처럼 이리저리 목을 돌리면서 입을 점점 벌리고 말았다.

더욱 더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민호가 보다 못해서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두 사람에게 조언했다.

“오성 그룹에 한 번 원서를 내 봐.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쪽은 저랑 따로 이야기 좀 합시다.”

두 사람이 휑하니 도서관을 나가버리자 박진민은 새삼 조민호 영향력을 절감했다. 그리고 이번 조민호 말도 간과하지 않았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김영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한 번 시도는 해보자.”

“그래, 결심했어!”

***

조민호는 도서관 근처 벤치에서 박희관 부장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박희관 부장이 자기 보직과는 다른 드라마 펀딩 책임자가 되었다는 것도 들었다.

제삼자가 아니라 이제 자기 밥그릇이 될 드라마 펀딩 때문에 박희관 부장은 흥분해서 쉽게 조민호 주장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기 생업이 걸려 있어서인지 박희관 부장은 그 어떤 설득 해도 소용이 없었다.

조민호는 그 절박함 속에서 자신이 던진 폭탄 때문에 한 사람의 샐러리맨 인생이 크게 뒤흔들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유명환 과장 잡으려고 막 밀어붙이다가 뒤늦게 현실로 돌아왔다.

‘고작 그 50억 한 마디 때문에 이 사람이 영향을 받았다니.’

“으음, 좋습니다. 박 부장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죠. 만약 대본 리딩 전에 배효진씨 연기력이 바뀌지 않으면 투자를 철회하죠.”

“어떤 방법으로 말입니까?”

배효진에게 언어 장애가 있다는 것도, 지압을 통해서 그 장애 문제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쉽게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알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그쪽도 참 집요하시네요. 어차피 이 일은 제가 책임질 일인데, 왜 그렇게 난리입니까?”

“하, 정말 답답합니다. 이번 펀딩이 실패하면 결국 저 역시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 이사 같은 양반이 그냥 절 둘 것 같습니까?!”

솔직히 회사 일에 대한 경험이 없는 조민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략 조직 내의 알력 문제라는 것을 알아챘다.

“모든 일은 잘될 겁니다.”

“......지금 저랑 싸우자는 겁니까?”

앞뒤 꽉 막힌 박희관 부장 태도에 조민호는 결국 태도를 바꾸었다.

“제가 미래 증권 조수현 회장님 조카입니다. 설마 그걸 알고도 이러시는 겁니까?”

“아, 그게......”

너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던 박희관 부장도 뒤늦게 꼬리를 말았다. 뒤늦게야 한혁승 이사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없는 이가 조민호였다.

아니 조민호의 그 황당한 투자 대박을 다시 떠올리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 일이 너무 황당하게 진행되다 보니, 참을 수가 없어서 너무 나섰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