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신약 부작용이 무슨 핸드폰과 같은 전자 제품 개발도 아닌데,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될 리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신문 구석에 달랑 3줄로 처리해서 간단히 나온 기사다.
설마 해서 한국 신문사를 이 잡듯이 다 뒤져 봤지만, 기사로 나온 것은 불과 5개 듣보잡 신문에 불과했고, 그것도 기사 내용이 요약되어 있었다.
‘이상하네.’
박희관 부장은 혹시나 해서 사내망으로 오성 바이오 투자 이력을 확인하고 난 후에 비로써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헐, 오성 바이오 지분을 30%나 사들였다고? 아니 언제?’
누가 보면 미래 증권과 오성 바이오가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보였다.
새삼 오성 바이오의 교묘한 술수에 한숨을 내쉬다가 뒤늦게야 오성 바이오 관련 또 다른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언론에서 한창 오르내렸던 김건중 회장 막내딸 김지수가 중아일보를 포함한 몇몇 메인 언론사를 상대로 인터뷰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미모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바뀌었는지 내용이 없는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전신 성형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지, 정말 몸을 뜯어고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인터뷰를 어떻게 하면 늘여쓸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중아일보 기사는 특히 그 정도가 심했는데, 아예 1면 전체를 도배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기사 인터뷰가 뜻밖에 여자들의 시선을 끌면서 한동안 이슈 몰이를 시작했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여자 심리를 교묘하게 부추겼다.
이 기사는 결국 한국 언론사 전체가 받아쓰기할 정도였다.
많은 시민은 신약 바스클린 임상 부작용이 해결된 기사에 무지막지하게 태클 걸었다.
하지만 그 이슈는 뜨거운 성형 열풍에 휩싸여서 가루가 되어버렸다.
박희관 부장은 곧 얼마 전에 조민호의 황당한 바이드 투자 대박 때문에 자괴감을 느껴서 큰 충격을 받아서 휴가를 갔다가 복귀하자마자 전형적인 오성 물타기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딱 이 시점에 사내에서 드라마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자신이 과거 드라마 투자와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자신이 물망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하기위해서 오히려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사내에서 이리저리 적임자를 검색해도 마땅한 사람은 없었다.
결국 조수현 회장에게 찍힌 박희관 부장이 그 대상이 되어버렸다.
‘빌어먹을.’
이미 바이드 대박 드라마 덕분에 투자 자신감을 잃을 터라 이 일에 대해서 심하게 반발하지 않았다.
위에서 지시받은 대로 드라마 투자를 조사해보았는데, 이미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투자 결정이 났다는 어이없는 소식도 들었다.
‘뭔 놈의 회사가 이따위야?’
더 황당한 것은 드라마 투자 결정이 내부적으로 다 났는데, 정작 후속 조치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역시 샐러리맨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비관적인 보고서를 통해서 제대로 엿 먹이려고 했다.
실제로 피아노 협주곡은 한때는 전설적인 윤석민 PD 작품이다. 지난 과거의 명품 드라마 전설을 재현시킬 기폭제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설적인 PD는 개뿔.’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안 좋았는데, 여주인공 말이 나오던 조유리 계약이 출연료 협상 불화로 불발되었다.
황당한 일은 그 여배우 다음 후보가 처음 들어보는 배효진이었다.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서 직접 배효진이 출연한 논스톱 5를 봤다.
‘어처구니가 없군.’
엉터리 캐스팅 때문에 대본을 보기 정말 싫었지만 억지로 다 읽고 나서는 한 숨을 내쉬었다.
결국 ‘투자 철회!’라는 결론을 내린 후에 해외 투자를 총괄하는 한혁승 이사에게 직접 가서 보고를 올렸다.
“아, 이건 회장님에게 직접 올리게.”
“네? 그게 무슨......”
“그걸 나에게 물으면 어떻게 하나?”
“하지만 한 이사님이 제 직속 상급자지 않습니까?”
“난 생각이 좀 달라. 과연 자네가 내 지시를 따르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워.”
한혁승 이사도 최근 바이드 투자와 관련해서 자신이 한 일을 뒤늦게 알아서인지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그가 미국에 출장을 가 있는 동안에 천둥벌거숭이 박희관 부장이 아부를 떨었다고 오해했다.
“투자 규모가 작아서 아예 드라마 펀드를 새로 만들겠다고 생각해. 이름뿐인 기존 부서를 통폐합할 수도 있어.”
눈치 빠른 박희관 부장은 지난 바이드 안건에 대해서 변명했다.
“그 일은 애초에 회장님 조카인 조민호군이 주도해서 임시로 진행한 일입니다. 이사님은 당시 미국 출장 가셔서 제가 대신 그 자리를......”
“알아. 그러니 알아서 잘 해봐!”
“이사님......”
“자네가 혼자 알아서 다 판단하고, 회장님에게 직접 항의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굳이 내 밑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자네 마음대로 하는데 말이야.”
애초에 박희관 부장은 뛰어난 능력 때문에 한혁승 이사와 충돌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이 빌미가 되어서 두 사람 사이가 폭발해버렸다.
“나 일 바쁘니, 당장 나가 봐.”
“네.”
‘찍혔네.’
***
드라마 펀딩은 미래 증권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펀딩 중의 하나다. 요즘 한창 영화 펀드 통해서 대박인 영화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래 증권이 아직 영화 분야 펀딩 쪽으로 경험이 많지 않았다.
엔터 관련 산업에 투자 관련 부서가 있기는 했지만, 사전 정지 작업 목적이었다.
미래 가치는 달라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투자에 비해서 수익성도 크지 않다.
실제로 이 일에 관여한 임직원은 성과도 없이 죽도록 고생 중이다.
박희관 부장은 뒤늦게 자책하면서 이사와 사장을 뛰어넘어서 직접 회장실에 들어갔지만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이보다는 한혁승 이사 갈등을 더 신경 썼다.
‘역시 너무 나댔나?’
다른 사람이 당시 바이드 지분에 대해서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조수현 회장이 직접 하는 일이라서 입을 다물었다.
유독 자신만이 혼자 나서서 회사 내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어지간한 대기업이었다면 저기 외딴곳으로 좌천되었을지 모른다. 그나마 미래 증권 분위기가 기존 대기업과는 달라서 잘 넘어갔다.
그런데 조수현 회장은 딱히 그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보고서를 살폈다.
김재상 비서실장 역시 조수현 회장이 넘긴 보고서 파일을 쭉 한 번 살피고는 조용히 덮었다.
두 사람 다 이미 기획실 통해서 따로 사전 보고를 받아서인지 회장 책상 위에는 또 다른 기획안이 이미 굴러다녔다.
“자네 말은 이 ‘피아노 협주곡’이란 드라마는 가능성이 없다는 소리인가?”
“과거 성공에 집착해서 최근 드라마 추세를 잘 몰랐기에 나온 것이 이 드라마입니다. 윤석민 PD의 서정적인고, 스타일적인 영상 실력을 바탕으로 해서 신인의 신선함을 잘 엮으려고 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전작의 계절연작 애청자를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릅니다.”
“멋진 풍경은 드라마 시청자에게도 잘 먹히지 않을까?”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배효진 연기력이 드라마 자체를 살리지 못합니다. 특히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능력이 떨어져서 오히려 드라마를 망칠 겁니다.”
조수현 회장 표정이 슬쩍 바뀌었다.
“윤석민 PD가 그 정도를 생각 못할까? 배효진의 여성스러움을 복합적으로 잘 이끌어내서 오히려 그 반대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로 성공하려면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를 섭외해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국 여배우 중에 이 드라마와 잘 맞는 이는 손으로 꼽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다수는 이미 촬영 중입니다.”
자꾸 같은 논쟁이 계속되자 박희관 부장은 숨김없이 그대로 드라마 성공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 드라마 펀딩에 참여하는 고객은 별로 없을 겁니다. 대부분 VIP 고객은 특히 중국 부동산에 딱 찍어서 요청하지 않습니까?”
“고객에게 설득해서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게 펀드 관리자가 아닐까? 중국 부동산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일이 정말 많아. 자네도 중국 공산당이 얼마나 제멋대로 인지 잘 알지 않는가?”
“하지만 이미 상하이 투자 통해서 회장님은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주었지 않습니까?”
“한두 건은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그 규모가 늘어나면 과연 지금처럼 나올까? 난 아니라고 봐. 부담스러운 요구는 늘어날 거야. 만약 그 제안을 거절하면 언제라도 등 뒤에 칼을 꼽아. 지금처럼 여유가 있을 때 회사 미래를 위해서 드라마 투자와 같은 분야도 개척해야 해!”
“흠.”
박희관 부장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더 반박하지 않았다. 애초에 중국 투자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투자를 늘리자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조수현 회장은 그제야 씩 미소 짓더니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사실 이 투자는 민호 녀석이 갑자기 밀어붙이는 거야. 그래도 자네는 계속해서 이 보고서대로 주장할 건가?”
“민호라면......설마 조민호군을 말하는 겁니까?”
“어.”
“그게 무슨......”
이 드라마 투자는 무조건 파산이라고 주장하려던 박희관 부장도 말꼬리를 흐렸다. 당당하면서도 세상 전체와 싸울 듯한 조민호 모습을 뒤늦게 떠올렸다.
아직도 조민호의 바이드 투자의 대박 투자 때문에 자신의 투자 능력을 불신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주 때문에 힘듭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 화려한 생명력을 보여야 하는데, 배효진 연기력으로 안 됩니다. 설사 조유리라고 해도 부정적입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 수준의 배우를 캐스팅해도......”
“투자는 이미 결정 났네.”
“지금이라도 투자 철회하면 됩니다.”
“이미 50억을 송금했어.”
“아니 이제 검토하고 있는데, 벌써 송금했다는 말입니까?”
“어.”
“설마 다른 투자자 펀딩을 받아서 이미 투자한 돈을 대체하려는 겁니까?”
“뭐 고객 마음이잖아.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을 통해서 기존 고객에게 다양한 요리를 내놓는 것이 중요할 테니까. 지금은 투자한 고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 거야.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지켜보다가 대박 치면 우리 회사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거니까.”
“만약 드라마가 실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점은 자네가 고객에게 사전에 충분히 주의를 시키고, 심지어 계약서에도 드라마 투자 실패에 관한 책임에 대해서는 그 권리범위를 명확히 해야지.”
“과연 투자할 사람이 있을까요?”
“요는 투자를 받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제안한다는 것이 중요해. 만약 바이드처럼 또 드라마가 대박을 쳐봐. 그때는 고객도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까? 우리 회사 투자 능력에 대한 신뢰는 반대로 급증할 거야.”
“글쎄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하시니, 회장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습니다.’란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어때?”
“하지만 전 이미 미국 투자......”
“그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이번 바이드 건 때문에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에서 주의할 인물로 찍혀서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 할 거야.”
박희관 부장도 화들짝 놀랐다.
“설마 조사가 들어오는 겁니까?”
“아니 비공식적으로 한혁승 이사가 참고인 조사를 받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어. 다만 앞으로는 좀 자중해달라는 소리는 들었어.”
“불법은 아닐 텐데요?”
“그렇다고 IPO 첫날부터 그런 식으로 계속 분탕질을 치면 다른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나?”
“그렇다면.....해보겠습니다.”
조수현 회장은 박희관 부장 이야기를 전혀 들지 않은 사람처럼 계속 자기주장만 늘어놓았다.
“만약 드라마 펀딩이 의외로 호응이 좋으면 기존 인력을 따로 빼서 이번 프로젝트 전담팀을 만들어서 꾸려 봐.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마. 오히려 자네에게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최소한 민호 녀석의 안목을 한 번 믿어 봐.”
‘도대체 보고서를 왜 올리라고 한 거야?’
“......알겠습니다.”
그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더는 자기 의견을 접고 말았다. 지금 조수현 회장의 태도를 봐서는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리라는 것을 느꼈다.
‘제길 괜한 짓을 했어. 이제는 꼼짝없이 조민호 그 양반만 믿어야 하는 건가?’
***
이미 결정이 난 일이라서 박희관 부장은 우선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했다. 과거 드라마 투자 관련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미 한혁승 이사와는 벌써 틀어졌다고 생각하자 이 일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드라마를 잘 모르는 다른 동료조차 오히려 격려의 시선으로 생뚱맞은 드라마 펀딩을 진행하는 박희관 부장을 위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