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존재감. 그 압도적인 기세가 딱히 티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라인 엔터 1층을 완전히 압도했다.
딱히 선천지기를 사용해서라기보다는 무림에서 절대자로서 군림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기세였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연예인답게 저게 소위 말하는 카메라 존재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오히려 조민호 정체를 파악하기 바빴다.
이 상황을 연출한 강종훈 대표조차 뒤늦게 조민호의 존재감을 깨달았다.
“혹시 연기를 해보셨습니까?”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늘어서 있는 라인 엔터 소속 연예인은 살폈다.
“연기의 연자도 모르니, 그런 소리를 마세요. 그런데 왜들 저러고 있어요?”
“아, 일단 우리 소속사 연예인과 안면이라도 익힐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런가요?”
무림에서 늘 이보다 백배 더 한 접대를 받아봐서 이 정도는 하품이 나오는 조민호는 심드렁한 얼굴로 힐끗 여자 연예인은 한 번 쭉 흩었다.
대부분의 잠재 선천지기는 기준 미달이었는데, 한 사람은 달랐다. 바로 제일 끝에 서 있는 배효진이었다.
‘호오, 이것 봐라.’
그의 시선을 접한 여자 연예인은 이해하기 힘든 위압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
‘저 사람이었어?’
강종훈 대표에게 멋진 남자라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렸지만, 조민호를 직접 보고 나서야 배효진은 오히려 허언이 아니라 과소평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미남도 아니고, 그렇게 튀지도 않는데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탁월했다.
시선을 돌릴 때면 그 기백이 증폭되어서 주변을 압도했다.
오죽하면 라인 엔터 여자 연예인 전부가 반쯤 넋이 나가 버렸겠나.
‘타고난 스타 자질이야.’
배효진은 자신을 병풍이라고 조롱하던 시청자 반응을 떠올리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도대체 누굴까?’
***
강종훈 대표실은 뜻밖에 소박하면서도 단아했는데, 특별히 사치로 보이는 미술품과 같은 예술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조민호는 대표실 한쪽을 차지한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앉으면서 한쪽에 기립해 있는 강종훈 대표를 힐끗 쳐다보았다.
“도대체 저의 뭘 보고 그렇게 저자세입니까?”
“하하하, 제가 이 바닥을 구르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민호씨같은 분은 애초에 다른 사람과는 격이 달라서 표가 확 납니다.”
아부를 늘어놓으면서도 힐끗 직원이 가져와서 보여준 조민호 워킹 동영상(?)을 보았다. 이 바닥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처음 보는 씬스틸러였다.
‘외모 때문이 아니라 개성 자체가 엄청나서 그래. 도대체 왜 이렇게 미친 존재감을 보이는 걸까? 아무리 살펴도 연기 경험은 없어 보이는데......’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만을 지배하던 절대자의 품격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단순히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영상에 푹 빠져 있던 강종훈 대표는 진지한 얼굴로 다시 조민호에게 제안했다.
“진짜 연기해볼 생각 없습니까? 제 경험상 이 정도 카메라 테스트 결과라면 무조건 한국 최고 배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큰아버지 일 도와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들어서 강종훈 대표 입을 막았다.
“그 유명환 과장 말인데, 혹시 직접 이곳을 찾아왔습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간혹 촬영장을 찾기는 하지만 멀리 떨어진 채 효진이 연기만 보고 돌아갔습니다. 저도 고작 세 번 만났을 뿐입니다.”
유명환 과장은 스폰 제의까지 할 정도면 꽤 몸이 달아 있을 텐데, 여자를 탐하는 권력자 면모를 아예 보이지 않았다.
“조심성이 많은 놈이군요.”
착잡한 강종훈 대표는 갑자기 라인 엔터가 어려워진 이유를 털어놓았다.
“후유, 말도 마십시오. 겉으로는 티내지 않지만, 오히려 주변을 통해서 별의별 압력을 다 넣습니다. 최근 주거래 은행에서 추가 대출 거절도 그 작자 때문이고, 은행 담당자도 제발 이해해달라고 통사정했습니다.”
조민호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불쑥 질문했다.
“만약 배효진에게 남자가 생기면 그냥 있지 않겠군요.”
“일전에 효진에게 관심 보인 놈이 있었는데, 불과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지 뭡니까.”
“호오, 질투심이 많은 놈이군요.”
사무실 노크와 동시에 배효진이 슬그머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서 인사했다.
강종훈 대표가 두 사람 눈치를 보면서 힐끗 고개를 숙이는 배효진 얼굴을 살폈다.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든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는 또 왜 이래?’
심지어 얼굴마저 살짝 붉힌 채 힐끗힐끗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조민호는 평소와는 달리 살짝 상기된 얼굴을 배효진을 쳐다보았다. 서문소혜의 모습이 바로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감정을 가볍게 털어 버렸다.
이보다는 배효진 몸의 선천지기 분포를 살피면서 눈을 반짝였다.
‘잠재 선천지기가 138이라,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 한 편으로 아쉽네. 선천지기 오염도가 적어도 70%이상은 넘어가.’
실효 잠재 선천지기는 고작 41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민호는 문득 이상한 점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배효진에게 다가가서 불쑥 손을 내밀었다.
“네?”
“손 한 번 내밀어 봐요.”
사실 처음 보는 자리에서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지만 배효진은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손을 내밀었다.
조민호는 그 손을 잡아서 맥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자폐증 같은데......’
시중신 경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녀 경우에 발달장애를 앓고 있었고, 그중에 큰 증상을 차지하는 부분이 자폐증이었다.
사실 발달장애 자체가 여러 가지 증상이 있는데, 환자마다 장애 정도에 따라서 다 다르다. 시중신 경우에는 특히 자폐증이 심한 경우다.
그렇다면 겉으로 멀쩡한 배효진 경우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혹시 집안에 발달장애를 앓는 환자가 있습니까?”
배효진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반문했다.
“네? 그, 그걸 어떻게?”
조민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 맞죠? 부모님이 고령에 출산해서 나이 차이도 꽤 나죠?”
두려운 눈으로 잽싸게 손을 떼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마, 맞아요. 설마 제 뒷조사를 한 건가요?”
그는 피식 웃으면서 다시 소파에 풀썩 앉은 채 자기 앞에 나온 주스를 홀짝이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발달장애 중에 특히 자폐증 경우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고령 출산과 같은 분만 방식이 직간접으로 큰 영향을 준다.
배효진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잠재 선천지기 덕분에 발달장애 자체는 넘어갔지만, 유전적인 질환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동생 경우는 아예 발달장애가 심한 경우다.
‘그것 때문에 잠재 선천지기가 오염되어서 제대로 능력을 꽃피우지 못한 경우야. 선천지기 특성 자체는 꽤 좋은데......’
귀신에 홀린 듯한 두 사람의 따가운 눈총에도 오히려 반문했다.
“가만 연기자라고 했으니, 연기가 형편없어서 욕 많이 듣죠?”
이번에는 강종훈 대표가 눈빛을 반짝였다.
“혹시 기사 통해서 아신 것 같은데, 효진이 정말 노력 많이 합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어려울 겁니다.”
“네?”
“흠.”
조민호는 순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치료비 1억은 지금 당장 이들에게는 먹힐 것 같지가 않아서 융통성을 발휘했다.
“뭐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죠.”
원래는 다른 대안을 사용하려고 했었지만, 배효진 재능을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계획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오염된 잠재 선천지기가 치료 후에 개선된다면 연기력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 꼭 알고 싶었다.
순수한 잠재 선천지기 흡수는 보상(?)이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계획이 떠올랐다.
솔직히 최영민 사장 통해서 지시를 내려도 되지만 굳이 번거롭게 나선 것은 이제 힘과 자본도 두둑하게 생겼으니, 또 박상철 과장 같은 시행착오를 피하기 위함이다.
“좋습니다. 이렇게 하죠. 혹시 매니저도 있죠?”
“그렇기는 합니다만......”
“잘 되었네요. 제가 임시 매니저로 같이 합류하죠. 아, 계속 따라다닐 수는 없고, 그 유명환 과장이란 인간이 나타나면 전화해 주세요.”
“유명환 과장이 다음 주 ‘피아노 협주곡’ 이라는 드라마 오디션에 온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그날이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제 말 듣기 싫으면 전 여기서 손 뗍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가보죠.”
벌떡 일어난 조민호는 그들 의문에 대한 답도 해주지 않은 채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당황했다가 뒤늦게 이성을 차린 배효진은 멍하니 사라지는 조민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강종훈 대표를 쳐다보았다.
“대표님, 도대체 저분 정체가 뭐에요?”
“아, 말했잖아. 조수현 회장 친조카고, 중국 공안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그러면 제 동생이 아픈 것도 사전에 말했어요?”
사실을 말하면 괜히 분란을 일으킬 것 같아서 거짓말했다.
“그거야......어, 맞아. 내가 말했어.”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버럭 소리를 지른 강종훈 대표도 자기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하지만 배효진은 뭔가 더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뭔가 좀 이상해. 가만 날 보고 한 말은 또 무슨 뜻이고, 왜 내 연기에 대해서 아예 노력해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한 걸까.’
***
조민호도 시중신 발달장애를 치료하기는 했지만, 논리적으로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시중신 혼원기는 메틸페니데이트 구조를 토대로 해서 특히 자폐성 발달장애에 효과가 컸지만 선천지기가 동기화되는 과정에서 좀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시중신 혼원기 분자 구조는 메틸페니데이트를 토대로 만들어져서 완전히 같지가 않았다.
‘결국 해결책 일부만 찾았다는 이야기구나.’
시중신 혼원기는 때문에 자폐성 발달장애에만 제한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발달장애의 유전적인 소인도 엄밀히 말해서 FMR1 유전자나 RECP2 유전자 이상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형태가 결합하여서 일어난다.
결국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시중신 혼원기와 배효진 특성을 서로 결합시킨 새로운 특성을 지닌 혼원기를 검토했다.
하지만 머리로만 하는 이 작업은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직접 만져 봐야 되나?’
조민호는 순간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는데, 정말 여자에 대한 흑심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는 지인 통해서 사전에 충분한 소통을 한 환자와는 달리 일반 환자를 상대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이런 방식이 환자가 몰리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막상 지금은 배효진 동생도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굳이 먼저 나서서 환자를 설득하기 귀찮아서 고민 중인 종영돈 차장검사의 처가 완강히 반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오히려 다양한 발달장애 현상을 더 확인하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관련 의학 서적을 빌려서 좀 더 검토했다.
시중신 혼원기를 만들어서 한 번 경험한 후라서 이해보다는 번역하는데, 월등히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정도로 의학 논문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호오, 이건 뜻밖의 소득이군.’
박진민은 취업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겨울 방학이 아니라 학기 중에도 의학 서적을 잔뜩 들고 공부하는 이 조민호 기행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넌 취업 걱정은 전혀 안 되나 보다.”
이미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란 것을 떠올리자 곧 말을 바꾸었다.
“난 회사 다닐 생각이......으음, 귀찮게 하지 마.”
“왜 그렇게 의학 서적을 열심히 봐? 난 도통 이해가 안 간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은 강의를 듣는 동기나 심지어 후배 역시 물끄러미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책상 앞에 놓인 책만 보면 완전히 의대생 그 이상이었다.
“취미다.”
물론 최근 조민호 명성이 워낙에 자자해서인지 반문하거나 구박하는 이는 없었다.
호기심이 많은 박진민은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조민호 옆에 달라붙었다.
“지수씨랑 요즘 어떻게 되어가?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거야?”
“그녀는 아마 지금 바스클린 1상 임상 진행 사항과 2상 임상 시험 준비 때문에 정신없을 거다.”
“아, 참 그 일 때문에 난리가 났지. 아예 사업 접는다는 소리가 있던데, 아닌가 보네. 그래서 요즘 안 보이는구나. 아쉽네.”
다른 꿍꿍이가 뻔히 보이는 모습에 조민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