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94화 (94/176)

#094

“많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 설득해보았지만, 사모님이 결사반대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발달장애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해보세요.”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종광훈 차장 검사를 배려하는 것도 있지만, 실상은 발달장애 환자를 더 치료해서 시중신 혼원기의 특성을 더 파악하고 싶었다.

“대신 문제가 없도록 해주세요. 이왕이면 지금 하는 수사에 도움이 줄 사람이면 더 좋습니다.”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

종광호 차장 검사 처의 지압 치료 반대는 여전히 심해서 좀 더 지켜보기로 한 조민호도 처음에는 유명환 과장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했다.

대신 권력이 있는 곳에 여자가 꼬인다고만 확신해서 최근 새로 경호 회사를 설립한 최영민 케이원 사장에게 이 자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조사하는 시간은 불과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최영민 사장이 직접 조민호를 한국대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서 자료를 내놓았다.

유명환 과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일반 공무원이었고, 동료 사이에서도 리더쉽을 발휘해서 주도하는 스타일이었다.

평범한 가족도 있고, 외부에도 별다른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여러 기업에서 차와 오피스텔을 뇌물을 받았다. 여기서 다양한 여자를 만났다.

놀라운 사실은 YS 엔터거나 다른 자잘한 중대형 기획사 소속인 여자를 만났다.

배효진은 어떻게 보면 그런 연예 기획사 연예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민호도 그저 유명환 과장이 자기 기호에 맞는 신인 배효진을 가지고 놀려고 했을 거라는 예측과는 달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좀 이상하네요.”

이주 만에 만난 최영민 사장은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명확한 지시를 내렸다면 중국에도 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홀로 중국으로 가버려서 당황했다.

결국 그 대안으로 아는 지인 통해서 중국에서 조민호 행적을 확인했고, 시진팡 딸 발달장애까지 치료한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중국 공안 실무자들이 조민호를 무슨 보스처럼 대하는 사진까지 봤다.

오죽하면 그 지인도 도대체 조민호가 누구냐고 계속 물었겠는가.

‘그 친구도 믿을만하니, 국정원 내에 정보가 아직은 흘러가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장담 못해. 정말 장혁 말처럼 무서운 인물일까?’

“최 사장님?”

“아, 죄송합니다.”

뒤늦게 정신 차린 최영민 사장은 표정을 완전히 바꾸었다.

“갑자기 왜 이 자를 조사하시는 겁니까?”

“권력에는 여자가 꼬이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그 권력이 정부 쪽이어도 상관이 없겠습니까?”

“대답이 좀 이상하군요. 설마 이 자가 정부 쪽에 숨은 실력자라도 되는 겁니까?”

“공무원 신분이니 명확한 한계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다양한 정부 일을 합니다. 그래서 주시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도 잠깐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정부가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그 과정에서 예산을 책정하고, 그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유명환 과장이 바로 그 중에 은행 관련 통합 실무를 담당합니다. 그러니 유관 부서에서도 유명환 과장에 무슨 일이 생기면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뇌물 받아도 말입니까?”

“실제로 뇌물 받아서 내사를 받았는데, 오히려 감사한 조사관이 다 직위해제 되어서 쫓겨났습니다.”

“대단하네요.”

“은행 쪽 인사까지 담당한다는 소리가 있어서 어지간한 은행 지점장조차 눈치를 봅니다.”

파도 파도 나오는 이야기는 의혹 수준을 가볍게 넘어갔다.

하지만 무림에서 권력 다툼을 익힌 경험한 조민호는 심드렁했다.

“결국 권력 실무 실세란 말이군요.”

“네.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손 떼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만약 꼭 이 자를 손대려면 제대로 하셔야 합니다.”

“흥미롭네요.”

최영민 사장도 양손을 흔들면서 부인했다.

“간혹 살다 보면, 넘지 말아야 선이 있습니다. 이 자가 그 경계선입니다. 특히 이 자와 관련이 있는 이들이 움직인 겁니다.”

조민호는 피식 웃었다.

“결국 제대로 짚었다는 얘기군요.”

역시 예상했던 조민호는 여기서 끝낼 눈치가 아니었다.

“후유, 알겠습니다.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이 자를 지켜만 봐주세요.”

“네.”

조민호도 유명환 과장을 납치해서 조용히 처리할까란 극단적인 방법을 떠올렸다가 곧 토마스 사건을 기억했다.

아직 이 유명환 과장이 박상철 과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강기창 경감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납치해서 협박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배후가 더 궁금하군. 박상철 과장은 권력에 줄을 대려고 이런 자들에게 로비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걸까?’

***

이미 감으로 박상철 과장 일이 심상치 않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서서히 드러나는 유명환 과장 일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방법으로 단순히 여자를 많이 만나는 이를 처벌할 수는 없다.

조민호는 새삼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자 이런 기획 쪽으로 재주가 많은 최영준 차장을 만나서 상의해보았다.

“으음.”

잠깐의 침묵.

최영준 차장도 평소와는 달리 안색이 굳었는데, 이미 최영민 사장에게 유명환 과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중하란 충고도 포함한다.

“나도 굳이 유명환 과장을 직접 건드리는 것을 반대해. 아마 잘은 몰라도 이 자와 관련이 있는 이들이 다 뛰어나올 거니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 안되면 좀 번거롭지만......”

말은 단호하지만 실상 유명환 과장 일이 복잡한 경우라면 고문해서 얻는 정보 자체에 한계가 존재한다. 단편적인 정보는 조민호가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평소와는 달리 섬뜩한 눈빛을 번쩍이는 조민호를 보자 최영준 차장도 마른 침을 삼켰다.

“그래도 건드리고 싶다면, 우리 언론사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인데, 과정을 밟아서 하나씩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계속 말해보세요.”

“벌집이 무서운 것은 벌떼 수천 마리가 한 번에 몰려서잖아. 하지만 벌떼 수십 마리는 그다지 위험 요소가 아니지.”

“그거 흥미롭네요.”

“일단 여자를 오피스텔에서 만나는 것은 문제가 안 돼. 하지만 여자를 만나서 오피스텔에서 강간했다는 이야기가 달라. 그것도 개인적인 범죄라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

“강제가 있을 수 있다. 확실히 그런 경우도 존재하겠군요.”

최영준 차장도 자기 말을 잘 알아듣는 조민호에 혀를 내둘렀다.

“만약 기사화된다면 어떨까?”

“특히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다면 다른 애들도 몸 사리겠군요.”

“그렇지. 특히 여론에 민감한 경찰이나 검찰 쪽은 아예 물러서 버려. 중간 라인을 통해서 손을 쓰겠지만, 그 정도는 처리가 가능해.”

한국대 조사 과정을 떠올리면서 방긋 미소 지었다.

“그 과정을 반복해서 사건을 점점 더 키우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것도 여론이 점점 격화되어 갈 때는 권력 배후도 손쓰기 어려워. 벌집은 결국 침묵할 수밖에 없을 거고, 그때쯤이면 문제없어.”

하지만 조민호는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누군가 알아야 하겠군요.”

“중요한 점은 최영민 사장조차 밝혀내지 못했으니, 그만큼 신중하게 일 처리할 거야. 아니면 뭔가 더 심각한 비밀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유명환 과장 가까운 곳에서 확인해야 할 거야.”

“그렇지요. 아무래도 이 일은 제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아요.”

최영준 차장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민호가 뜻밖에 배효진을 은근히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고는 혀를 찼다.

‘역시 그럴 것 같더라. 어지간한 여자는 쳐다도 보지 않았어. 배효진 스타일을 좋아하나 보네.’

조민호는 이상야릇한 최영준 차장 눈빛에서 오해한 것을 알았지만,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

연예 기획사는 연예인의 연예 활동을 도와주는 회사다. IMF 전만 해도 산업화하지 않았고, 그저 개인 사무소 위주였다.

IMF 이후에 서서히 상장회사를 중심으로 해서 체계화되었다.

라인 엔터도 이런 연예 기획사 성장 흐름에 편승해서 탄생했다.

이들은 보통 단편영화나, 독립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 경력 유망주를 주로 스카우트했다.

결과는 좋지가 않았다.

결국 차악으로 기획사 내부에 연기 트레이닝 부서를 만들었다.

뮤직비디오로 인기를 얻은 배효진은 이 트레이닝 과정에서 절치부심 노력했다. 연기력을 쉽게 키우지는 못했다.

자기 동생 때문에 처절하게 노력하지만, 결과는 그렇지가 못했다.

결국 라인 엔터에서는 배효진을 내세우려면 그녀의 연기력이 아니라 기획할 수밖에 없는데, 이 기회력이 취약했다.

재정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 라인 엔터 강종훈 대표는 이번에 뜬 김나리가 갑질을 일삼아도 그냥 받아주면서 절치부심 머리를 굴렸다.

아는 선배랑 술자리에서 푸념 삼아서 이야기했는데, 그 이후에 유명환 과장 스폰 제안을 받았다.

유명환 과장 제안을 굳이 거절한 이유는 그와 관련해서 도는 좋지 않은 소문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곳 중에 그자와 연루되어서 망해버린 기획사만 해도 두 곳이야.’

두려움에 휩싸인 강종훈 대표는 조민호가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자 소속사 연예인부터 시작해서 연습생까지 전부 다 불러 모았다.

불편한 김나리는 조민호가 별 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일단 패스했다.

고작 단역이나 단편영화에만 출연한 라인 엔터 소속사 연예인은 어리둥절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아는 배효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효진아, 무슨 일이래?”

“주현 언니, 나도 몰라.”

“너 표정 봐서는 뭐 아는 눈치잖아?”

“아니라니까.”

배효진이 그나마 연기 트레이닝 과정에서 알고 지내는 김주현이기에 대답해주기는 했지만, 머릿속은 너무 복잡했다.

최근 강종훈 대표와 알고 지낸다는 이상한 작자에게 아버지 사업 때문에 생긴 빚을 갚아주겠다는 노골적이면서 소름 끼치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빚만이 아니라 여동생 병까지 돌봐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내용은 놀랍게도 배진주를 유명한 미국 병원에 보내서 완치시키겠다는 거다.

배효진도 어이가 없었지만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보고는 심각하게 번민했다. 완치는 어렵다고 해도 증상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눈 딱 감고 한 번 해주고 나서 지금은 도망간 아빠 빚도 갚고, 동생도 치료하며, 심지어 좋은 배역도 얻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녀도 이제 뮤직 비디오 반짝스타를 벗어나 드라마에도 출연해서 제법 명성을 얻고 나서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 어떤 기획사나 방송국에서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창백한 배효진을 쳐다본 김주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 괜찮아?”

“아, 네, 언니.”

“배역은 너무 걱정하지 마.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너처럼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어서 알려지면 그다음은 정말 쉬워.”

“네.”

배효진은 차마 자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서 가슴이 답답했다.

김주현이 라인 엔터 로비에 쭉 늘어서 있는 연예사 동료를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그래도 너무 한다!”

몸매가 숨김없이 그대로 다 드러나는 흰색 원피스를 한 이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특히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났다.

오가는 남자 소속사 연습생은 마른 침을 삼킨 채 지나가다가 1층 안을 빙빙 돌았다.

이 황당한 행사를 만든 강종훈 대표는 따가운 눈총을 삭 무시한 채 제일 앞에 대기했다.

자존심을 모두 내던진 그 모습에 배효진은 화보다는 오히려 ‘대표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이해했다.

노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시원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 라인 엔터 바로 앞 도로에 멈추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조민호가 키를 기다리고 있는 경비원에게 던지면서 느긋한 걸음으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많지 않은 라인 엔터 여자 연습생은 뒤늦게 강종훈 대표가 후다닥 뛰어가서 구십 도로 허리 숙이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놀라운 것은 남자 태도다.

당연한 인사를 받는 것처럼 턱만 까딱한 조민호는 딱히 상대 행동을 말리거나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양쪽으로 쫙 늘어서 있는 여자 연예인 모습을 힐끗 살피면서도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런 접대가 당연하다는 듯이 천천히 걸어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외부에 알려진다면 난리가 날 이런 대접이 조금이라도 어색하거나, 불편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왜 이렇게 번잡한 준비를 했는지 한 마디 정도는 해야 할 조민호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연스럽기만 했다.

신기한 사실은 처음에는 그렇게 분노하던 라인 엔터 연예인도 수치심을 느끼거나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들은 결국 자신의 이런 속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의아한 표정으로 조민호를 다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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