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93화 (93/176)

#093

***

“민호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

요즘 들어서 밑에 후배들이 특히 조민호에게 관심을 보였다.

최근 조수현 회장의 조카라는 이야기가 학과 내에 완전히 퍼지면서 생긴 변화였다. 돈 많은 재벌가 선배에게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했다.

조민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학과 세미나 시간에 박진민을 보자 김나리 라이브 동영상 파일을 주었다.

이주 만에 본 조민호는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 고맙다.”

박진민은 노트북에 김나리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그 화질에 반해서 조민호를 다시 쳐다보았다.

“왜 그래?”

강의 노트를 펼치는 김영탁 역시 혀를 내둘렀다.

“너 대단하다는 것을 이제 정말 실감해서 그래. 이전에 한 이야기도 전부 진실이라면 솔직히 충격적이다. 이학준 비서실장 이야기는 아직도 잘 믿기지 않다만.”

세 사람은 대학 입학 때부터 시작해서 같이 어울려 다녔다.

다들 집안이 경제적으로 비슷했다.

갑자기 조민호만 재벌 3세로 등극 해서 그저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조민호 행적을 잘 보면 일반적인 재벌 3세 행동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갑질도 안하고, 딱히 돈 있다는 티도 내지 않았다. 심지어 주변에 굉장한 영향력을 펼치면서도 단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조민호 말도 그랬다.

“별것 아냐.”

단순한 한 마디였지만 두 사람은 말의 무게를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느꼈다. 특히 TV 방송을 통해서 VIP 좌석을 혼자 차지한 채 황제 노릇 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라면 우리 대학 전체가 시끄럽도록 자랑할 텐데, 진짜 단 한마디도 안 하네. 방송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 아냐. 대단하다.’

“내가 다른 애들까지 동원해서 돌아가면서 대리 출석한다고 고생 많이 했다.”

“그건 고맙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다른 선물은 또 없냐?”

“어, 없다.”

“그래.”

두 사람은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신기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바뀐 게 하나도 없어.’

곧 세미나 강의가 진행되었지만 크게 관심을 둔 이는 과반수가 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취업 지원서를 작성한다고 바빴고, 다른 이들은 토익 공부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지난 학기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학과 분위기가 썰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민호는 다른 수강생과는 달리 강의에 푹 빠졌다.

세미나 내용은 분자 모델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화학 결합과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 위치를 기하학적인 형태로 만든 모형이다.

주로 결합 형태를 설명한다. 고체 물리학에서도 주로 다루었는데, 이번 세미나에서는 구체적인 예시를 하고 설명했다.

과거 고등 수학에서 가끔 언급되었다.

조민호도 당시는 그냥 수학적인 공식에만 매달려서 간과했다.

중국에서 깨달음을 얻은 지금은 좀 다른 관점에서 강의를 들었다.

‘가만 혹시 시중신 혼원기가 메틸페니데이트 분자 구조와 비슷하거나, 관련이 있지 않을까?’

옆에서 칭얼되는 박진민이 사용하는 노트북을 빼앗아서 메틸페니데이트 분자 모델을 확인했다.

‘비슷해!’

두 가지 모형은 똑같지는 않았다.

단조로운 형태가 메틸페니데이트 구조였다면 좀 더 풍부하면서도 폭넓은 세세한 변화가 들어간 것이 바로 시중신 혼원기였다.

‘이거였구나.’

메틸페니데이트는 실제로 자폐아에게 효과가 있었고, 이 덕분에 치료 과정에서 선천지기 변화가 일부 나타났다.

혼원기는 바로 이 특성을 그대로 베끼고, 거기에 시중신 특성을 합치면서 독특한 모형으로 거듭났다.

조민호는 다급하게 다른 혼원기도 이전 환자 특성과 비교해서 살폈다.

불행히도 다른 혼원기는 그 자신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것이라서 똑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하나는 달랐다.

‘바스클린이구나.’

뒤늦게 바스클린의 부작용에 해당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찾아냈다. 이전에는 그저 감으로만 느꼈던 특성을 발견했다.

‘하, 어이가 없네.’

모든 현상에는 우연은 없었다.

톱니바퀴처럼 엮여 있는 현상은 원인과 결과처럼 영향을 주었다.

조민호는 이제까지 그 퍼즐이 맞추어질 때 일어나는 반응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미있군.’

노트북을 빼앗긴 박진민은 툴툴거리면서 김영탁 노트북을 같이 보면서 강의에 관한 관심을 끈 채 다른 취업이나, 돈과 관련된 기사를 살폈다.

“와아, 하루 만에 3,500억 차익을 번 투자자가 있다니, 이거 실화야? 민호야, 너도 이것 봐라. 너희 큰아버지가 미래 투자 회장이잖아. 혹시 아는 것 없냐?”

“......없다.”

“에이, 아는 것 있구나! 한 번 썰 좀 풀어 봐. 우리같은 서민도 좀 들어보자.”

의문의 투자자는 미국 나스닥에서 바이드 상장 첫날에 수천억을 벌었고, 덕분에 바이드 주가 폭락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주가 조작이라는 의혹 기사였다.

미국 증권 위원회 관료도 인터뷰에서 바이드 주가를 주시하는 중이고, 필요하다면 조사하겠다고 답변했다.

조민호는 힐끗 기사를 확인한 후에도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박진민은 마치 절벽과 같은 벼랑 끝 장세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알았다. 모른다면 어쩔 수 없지.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투자의 신이나 마찬가지야. 단 하루에 어떻게 수천 억을 버냐. 코스닥도 저렇게는 못하겠다.”

“그러게 말이다.”

조민호도 찜찜한 표정으로 기사를 다시 정독한 후에 피식 웃고 말았다.

‘별일이야 있겠어.’

***

분자 모델은 양자 역학적인 접근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현대 물리학을 잘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조민호도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막상 뒤늦게 특성 혼원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자 마음이 급해서 세미나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강의실 입구 앞에서 담배를 문 채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라인 엔터의 강종훈 대표였다.

한국대 물리학과라면 알려주기는 했지만, 설마 자신을 직접 찾아올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뭡니까?”

“잠깐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관심 없습니다.”

박진만과 김영탁은 이제 조민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또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마침 그 광경을 보고 쪼르르 달려왔다.

강종훈 대표는 눈치 빠르게 자기 명함을 내보이면서 조민호 친구에게 보여주었다.

박진민이 바로 반응했다.

“설마 김나리 소속사입니까?”

라인 엔터는 작년까지만 해도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었는데, 김나리 대박 이후에 조금씩 그 명성을 떨쳐나갔다.

최근 새로운 배우를 영입하면서 그 규모를 키워갔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회사 확장 때문에 회사 재정이 휘청였고, 중국 공연 취소 때문에 벼랑 끝으로 추락할 뻔했다.

특히 공안 폭력을 당하고 나서 권력 필요성을 피부로 절감했다.

강종훈 대표도 힘든 역경이 있었지만 이렇게 이제 알아봐 주는 사람을 보자 기뻐서 라인 엔터에 대한 홍보성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조민호가 바로 끼어들었다.

“할 이야기가 뭡니까?”

굳이 이런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지만 조민호 표정 봐서 도저히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배효진 양이 위험합니다.”

조민호도 앞뒤 다 자른 말에 이상야릇하게 쳐다보았다. 무림에서도 별의별 귀계를 다 경험해봤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신선하군.’

하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배효진 팬인 김영탁이 바로 반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 효진씨가 위험하다니요?”

안 그래도 감정이 쌓인 강종훈 대표는 보란 듯이 까칠한 조민호보다는 김영탁을 상대로 폭로했다.

“우리 연예사에 압력 넣는 놈들이 있습니다. 그놈들이 배효진 캐스팅을 계속 막고 있어요. 이번 논스톱5 끝나고 나면 당분간은 손가락만 빨아야 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감히 우리 배효진을 건드리다니요. 절대로 안 됩니다......가만 그런데 민호에게 도와 달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아, 그렇구나.”

이전이라면 황당한 제안이지만 뭔가 있는 조민호라는 것을 깨닫자 금방 수긍하면서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겉으로는 썩은 감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조민호는 상대 태도에 거절했다.

그런데 문득 부인하려다가 압박을 넣는 자가 있다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안 그래도 토마스가 후보에서 빠지면서 박상철 과장 인맥을 추적할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박상철 과장과 연결되는 강기창 경감 권력 게이트를 떠올렸다.

그런데 강기창 경감 수사는 살아 있는 권력 때문에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다른 돌파구가 필요했다.

‘박상철 과장이 로비했다면 여자를 빼놓기 어려울 거야. 어떤 형태로든지 연관이 있어. 그렇다면 그 시작점으로 라인 엔터로 삼으면 어떨까?’

우선 확인이 필요했다.

“그자가 누구입니까?”

“그게......”

“말하기 싫으면 관두세요.”

그는 화들짝 놀라서 조민호 팔을 붙잡고 한쪽으로 끌고 가서 귀에 속삭였다.

“재정경재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 유명환 과장입니다.”

“다시 연락하죠.”

이미 충분한 용건을 말했다고 생각해서 눈치 빠른 강종훈 대표는 일단 물러나기로 하면서도 조민호 두 손을 잡고 계속 간절히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꾸벅 숙이는 강종훈 대표 모습에 혀를 내두르면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이미 그가 중앙지검 현직 검사와 소통하면서 한국대를 풍비박산 낸 것을 새삼 떠올렸다.

‘진짜 장난 아니다.’

***

조민호는 여자 연예인과 권력 사이에 일어나는 비슷한 일을 무림에서 많이 경험했다. 특히 권력 가진 이들은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여자에 신경 많이 썼다.

다만 현대에서 어떤 식으로 관계가 이루어지는지는 전혀 모르는 분야라서 최영준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보았다.

“은행제도가가 은행 관련한 부서로 꽤 영향력이 있네. 따라서 그 정도 권력이라면 얼마든지 연예 기획사에 압력 넣을 수도 있어. 특히 라인 엔터처럼 신생 업체는 밟아버리면 바로 도산할 거야.”

이번에는 최근 승진한 김정환 부장검사에게 추가로 유명환 과장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굳이 시간을 두고 문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김정환 부장검사는 이미 유명환 과장을 잘 알았다.

“품위 위반으로 제보가 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관할 지청에서 외압이 너무 강해서 기초 수사만 하고 있습니다.”

조민호도 자기 추론이 맞았고, 박상철 과장을 추적할 또 다른 실마리를 찾았다는 사실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이상할 정도로 빨리 대답하시네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제보 중에 유명환 과장이 강기창 경감과 어울렸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직은 이 부분을 파기 부담스러워서 보류해두었습니다.”

“이미 이런저런 제보가 많이 들어올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말입니까?”

“네.”

“가만 혹시 강기창 경감이 유명환 과장의 뒤를 봐주었다는 말입니까?”

“비슷합니다. 업체에서 뇌물 받았는데, 경찰 수사가 진행 중에 중단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지금 무영 그룹 수사와는 방향이 다릅니다. 수사를 확대하기에는 저희 사정도 안 좋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법무부 인사 때문입니까?”

“네. 총장님이 일부 타협해서 저를 포함한 핵심 수사 멤버는 자리를 지켰습니다만 아닌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쉽네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요즘도 계속 비리가 터져 나와서 여론이 점점 나빠지는 중입니다. 틈이 생기면......”

“믿겠습니다.”

“혹시 급한 일이면 종영돈 부장검사님이 그쪽 관할을 책임지는 동부지검 차장 검사로 영전하셨으니, 한 번 부탁해볼까요?”

그냥 가볍게 하는 말이지만 그 의미는 그렇지가 않았다. 차장 검사 라인에서 집중적으로 파헤치면 무영 그룹 이상의 분란이 터져 나온다.

“지금은 그냥 두세요.”

조민호는 새삼 대화 중에 살아있는 권력의 반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종광훈 부장검사를 교묘하게 영전시키면서 수사에서 손을 떼고, 김정환 부장검사와도 연결을 끊어버렸다.

그나마 김정환 부장검사가 승진하면서 균형추를 맞추었지만, 이것 역시 꽤 적지 않은 파열음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하긴 양주민 검찰총장도 게이트 뿌리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고 밀어붙였을 테고, 드러난 정황을 보고 지금 당황했겠어. 지금쯤이면 플랜을 다시 짜고 있겠군.’

그렇다면 앞날을 위해서 한 가지 보험을 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종광훈 차장 검사 아들 발달장애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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