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90화 (90/176)

#090

다시 한 번 꾸벅 고개를 숙이는 두칭리.

이미 어깨 경맥을 통해서 남아 있는 자기 선천지기가 두칭리 몸에서 잘 적응한 것을 확인한 조민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딱히 세뇌라기보다는 매혹 마법에 가깝다. 인간의 신체 변화를 거의 주지 않으면서 호감을 주는 방법이다. 그러기에 정신 스탯이 일정 수준 이상인 시진팡 같은 인물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면 저 마법은 깨져버린다.

‘하지만 힘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앞으로 중국 일은 이 친구에게 모두 맡기면 되겠어.’

다만 경험적으로 두칭리 모습에서 뭔가 찜찜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지금 시대는 화성 탐사까지 여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

두칭리는 멍하니 조민호가 탄 한국행 비행기가 떠나는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심사는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문득 자신과 뜻을 같이한 동지 모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과거에는 자기 능력으로 도저히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실패에 대한 자괴감 때문에 한창 잘 나가던 그는 삐뚤어졌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이미 자기 몸에서 치밀어 오르는 강력한 힘을 새삼 느끼면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그 누구라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달랑 자기 머리에 손만 접촉하고 난 후에 변화를 크게 느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기 몸이 달라지는 것을 더 체험했다.

사실 조민호가 누구인지 이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조민호는 자신의 생명조차 다 바치고 싶은 살아 있는 신(神)이었다.

힐끗 입술을 달싹이는 장멘호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모두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전해라.”

“네? 아, 알겠습니다.”

장멘호는 계속 갈등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두칭리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그 분은......”

“닥쳐라. 네놈이 함부로 입에 담을 분이 아니다!”

찔끔한 장멘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가볍게 질책받기만 했는데, 온몸의 솜털이 치솟았다. 자신이 아는 그 두칭리가 절대 아니었다. 불과 일 년 전에는 이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두칭리 변화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오금을 쩌릿하게 만드는 조민호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자신은 조민호에게 찍혔다.

‘빌어먹을.’

***

모든 항공사는 노쇼가 매출과 관련이 있어서 많이 신경 쓴다. 예약해놓고도 아무런 통보도 없이 공항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 때문에 항공사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VIP 고객이다.

해외 업체 미팅 때문에 외국을 나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노쇼를 해버린다.

이게 일반 좌석과 비교해서 2배 가까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나타난다.

그런데 오늘 VIP 좌석은 아주 텅텅 비었다.

강종훈 대표는 가까스로 이번 행사를 무사히 성공한 덕분에 숨을 돌렸지만, 이 괴상한 노쇼 현상에 영문을 몰랐다.

“이달 들어서 내가 마가 낀 건가?”

다른 스텝은 일반 좌석에 앉았지만 홀로 VIP 좌석을 차지한 김나리는 툴툴거렸다.

“강 대표님도 이젠 제법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보기와는 달리 김나리의 더러운 성격을 고려해서 부드럽게 말했다.

“아, 그거. 나도 잘 몰라.”

“어? 대표님이 손을 안 썼다면 공안이 왜 그렇게 순순히 물러난 거에요?”

“나도 몰라.”

“참 왜 그렇게 적당히 대충하세요. 공안에게 직접 상세하게 확인해봐야죠. 매사에 그런 식으로 줏대가 없으니, 방송사 PD들도 우리 소속사 연예인을 호구 취급하잖아요.”

어지간한 대표라면 자기를 무시하는 말에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새가슴인 강종훈 대표는 까칠한 김나리 말투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 성격에 늘 저래 왔다. 괜히 말대꾸하면, 또 왜 행사가 갑자기 취소될 뻔했니, 아니면 중국에 그렇게 인맥이 없니 식으로 공격했을 것이다.

이보다 이성을 차린 후라 새삼 공안 갈등 사태를 떠올리면서 다시 한 숨을 내쉬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

김나리나 자신은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해도 일반 스텝은 좀 다르다. 미친 공산당 공안이 본보기로 직원 몇 사람을 체포해서 감옥에 넣어버릴 수도 있었다.

최악의 사태를 떠올리던 그를 깨운 것은 김나리다.

“어, 저 사람은 뭐에요?”

강종훈 대표도 힐끗 김나리가 가리킨 것을 쳐다보았는데, 이 넓은 VIP 좌석 전체를 차지한 일행 세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고 넋이 나가 있는 사람 마냥 어리벙벙했다.

‘가만 저 사람은.....김원준 과장이잖아?’

반가운 마음에 한창 평기자 시절에 알고 지낸 김원준 과장에게 다가가서 인사부터 했다.

김원준 과장은 난감한 얼굴로 일단 인사했다.

옆에 같이 간 양봉석 대리 역시 과거에 스치면서 본 적이 있었다.

조민호는 물론 처음이었다.

뒤늦게 김원준 과장과 양봉석 대리가 행사 VIP 좌석에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고, 조민호가 홀로 황제 같았던 그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조심스럽게 공대했다.

“안녕하세요. 전 라인 엔터 강종훈 대표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딱 그를 보는 순간에 두칭리가 같은 일행이라고 생각해서 손을 썼다는 것을 알아챘다.

“......조민호입니다.”

그는 슬쩍 한 가지를 확인했다.

“어, 설마 한국 분이었습니까. 행사장 VIP 좌석에 앉아 계시던데, 하면 혹시 중국에 그 행사 허가와 관련된 친인척이라도 있습니까?”

다짜고짜 남의 가정사부터 질문하는 무례한 강종훈 대표 행동에 인상을 찡그렸다. 다만 한 가지 때문에 내색하지 않았다.

‘굉장히 특이하네.’

잠재 선천지기는 대략 45 정도에, 오염도는 대략 25%나 되었다. 신기한 사실은 이 오염된 기운이 계속 들락날락 거렸다.

말하고, 행동할 때면 계속 그 수치가 실시간으로 변했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연예가 직종 특성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김나리도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참지 못하고 슬쩍 다가와서 인사했다.

조민호도 살짝 놀라서 그녀 선천지기를 묘하게 살폈다.

‘67정도라면 굉장히 높은데, 오염도가 무려 57%를 넘다니.’

잠재 선천지기가 67이라면 실로 엄청난 수치지만 오염도가 57%가 넘으니, 실효 잠재 선천지기는 38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도 겉으로만 드러나는 수치 67을 고려하면 어지간한 대기업 수장 못지않았다.

강종훈 대표는 이상하게 침묵한 조민호 행동 때문에 자신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깨닫고는 정중하게 다시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워낙에 중국에 와서 충격적인 모습을 봐서 제가 너무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조민호는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전 조용히 있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 고위층에 인맥이 없어서 물러날 수밖에 없던 강종훈 대표는 이대로 순순히 포기하지 않았다.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아예 대놓고 슬그머니 조민호 옆자리에 앉았다.

“요즘 중국 애들이 우리 한국 연예인 인기가 올라가서 계속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중국에서 철수하는 연예사도 많습니다. 솔직히 중국에 라인만 있다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는데......”

‘날보고 어쩌라고?’

못마땅한 조민호 시선에 단순히 말로 끝내지 않았는데, 수첩에서 라인 소속 연기자, 특히 여자 사진을 쭉 보여주면서 조민호를 유혹했다.

조민호는 가소로운 표정으로 무시하려고 했지만 배효진 사진을 보자 멈칫했다.

‘......설마 서문소혜?’

서문소혜는 조민호도 아직 쉽게 잊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한창 이류 시절에 만나서 알게 된 조민호의 첫사랑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깊은 관계를 맺었다.

안타까운 것은 한창 조민호가 다른 세력과 대립할 때 서문소혜가 납치된 것이었다. 그 세력은 뜻밖에도 구파일방이었다.

물론 구파일방도 굳이 서문소혜를 이용해서 인질극을 벌일 생각은 아니었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상황을 오해하고 스스로 자결해버렸다.

조민호는 그 때 처음으로 분노했고, 절세무학 절대혼원신공을 구파일방을 향해서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구파일방 반 이상은 초토화되었고, 그나마 이 일에 반쯤 떨어져 있던 소림사는 중재자로 간섭하려고 했었지만, 장경각이 불타는 참사를 경험했다.

구파일방 속가방파도 그 전쟁 과정에서 과반수가 무너졌다.

‘많이도 죽였구나.’

그의 독특한 무학이 처음으로 무림사에 나타났다. 굳이 중국에 가서 담명을 찾으려고 한 이유가 바로 서문소혜의 흔적 때문이다.

서문소혜는 죽었지만, 그녀 사후 서문세가를 알게 모르게 도와준 이가 바로 담명이었다.

하지만 담명의 흔적이 이미 사라졌다.

조민호는 두 사람의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서문탁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찾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잊어야지.’

하지만 서문소혜와 완전 판박이 배효진 모습에서 차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감정은 잠시일 뿐이다.

강종훈 대표는 그 변화만으로도 쾌재를 부르면서 배효진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 소속사 배우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루키입니다. 170이 넘는 키에, 완벽한 몸매를 자랑합니다. 살아있는 여신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뒤를 받쳐주는 이가 없다는 거죠. 그러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입니다. 심지어 어떤 새끼는 성접대까지 요구하는 놈까지 있는데 제가 아주......”

침이 튀어나올 정도로 떠들던 강종훈 대표는 갑자기 조민호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변하자 움찔 몸을 떨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 소름 끼치는 눈빛은 악몽에서도 보고 싶지 않았다.

‘존나 무섭네.’

꼬리를 마는 강종훈 대표 행동에 조민호는 힐끗 그를 쳐다보면서 무시하려다가 문득 박상철 과장 연결 고리를 떠올렸다.

돈과 권력을 좇는 놈들이라면 여자를 노릴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지금은 먼저 중국에서 얻은 깨달음을 확인해야 했다.

“거기 일반인이 방문해도 되는 겁니까?”

“무, 물론입니다. 조민호씨라면 언제라도 대환영입니다.”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종훈 대표는 딱히 지금 조민호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조민호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고 도박한 것이었다.

‘이건 대박이야. 틀림없어!’

***

강종훈 대표의 생각과는 달리 조민호는 쉽게 여자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중국 방문 이후에 깨달음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가장 첫 번째는 역시 바이드 지분 10% 처리에 관한 것이다.

이 지분 10%를 정말 얻은 것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조수현 회장은 직접 조민호 집을 방문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큰아버지 변호사 이야기 그대로입니다. 천이백만 달러에 지분 계약한 겁니다. 아 제가 아니라 중국 쪽 아는 지인이 처리했습니다. 전 다시 그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그건 큰아버지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민호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넌 정말 이 지분이 고작 천이백만 달러 가치라고만 생각 하냐?”

“상장하면 가치가 좀 다르겠죠.”

“바이드 나스닥 상장이 다음 주라는 것은 알고 하는 소리야. 현재 공모가만 해도 27달러야.”

“그래 봐야......”

“25달러 기준으로 보면 지분 10% 가치는 대략 1억 달러가 넘어.”

“......1억 달러라면 좀 많네요.”

“그게 다가 아냐. 적어도 2배 이상 오를 것이라는 의견이 파다해.”

“그러면 2억 달러군요. 혹시 문제가 되나요?”

조수현 회장도 넥타이를 풀면서 풀썩 거실 소파에 앉아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금 당장은 괜찮아. 그런데 토마스에게 일어난 일이 알려진다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토마스 문제요?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무슨 소리야?”

“제가 알기로 마약 먹다가 공안에 잡혔으니, 무조건 사형입니다. 토마스가 미치지 않고서야 미국 정부에 이 일을 폭로하지 않을 겁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마약이라니. 아니 그 일을 네가 어떻게 알아?”

공안을 이용해서 토마스를 납치, 공갈, 협박, 심지어 고문까지 했다는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흠. 뭐 그런 게 있습니다. 복잡한 이야기라서 나중에 해드리죠.”

“좋다.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바이드 창업자 리엔홍은 이야기가 달라. 자칫하면 중국과 미국 두 나라의 분쟁이 될 거야.”

“리엔홍 역시 그 일에서 잘 빠져나갔지만 아마 이 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겁니다. 떠들어대다가는 조용히 중국 공안에 끌려가서 매장되겠죠.”

‘확실히 독재하려면 중국 공안이 매력적이야.’

“으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