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89화 (89/176)

#089

***

저장성 닝보는 개항 이후로 많은 외국이 들어와 정착했다.

거리와 주택은 중국식과는 다른데, 오히려 유럽 건물 양식을 많이 따랐다.

중국 전통 양식 속에 이국적인 풍경이 같이 서로 섞여서 보통 중국 도심과는 많이 다르다.

밤이 되면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서 이국적인 거리를 연출한다.

조민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딱히 관광 때문이 아니었다.

‘없네.’

찾고자 했던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천 년이 넘는 아득한 세월이 지났으니, 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무림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잊지 못하는 기억 한 가지가 있다. 당시 자신에 대적하는 무림맹의 배신자 척효명 때문에 크게 다쳐서 도망치던 시절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 담명이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조민호는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나서 당시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무림맹 인물을 전원 다 몰살시켰다.

‘으음, 나 완전히 미친놈이었나?’

지난 아픈 기억을 일단 지웠다.

결국 지난 일을 포기했다.

그보다는 저녁에 현실의 박진민이 전화해서 한 부탁 내용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김나리 행사가 있다고?’

조민호는 힐끗 부담스러운 공안 백여 명이 길거리를 통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짓을 또 하네.’

두칭리도 지역 공안이 시진팡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나댄다는 것을 조민호에게 보고했지만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따가운 주변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이 정도 숫자는 무림 시절에는 늘 지켜보던 수천 명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얼굴에 철판을 깐 채 저장성 닝보시 야그얼 체육관으로 향했다.

축하 공연을 꼭 찍어달라고 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대리 출석(?)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들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축하공연장 앞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이 행사를 준비한 강종훈 대표가 중국 공안을 상대로 욕설까지 퍼부었다.

“이 새끼들아,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달라는 돈을 다 줬어. 그런데 행사 직전에 갑자기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해? 우리 회사 문 닫으라는 소리야?!”

담당 공안은 묵묵히 침묵한 채 별다른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뒤에 서 있는 다른 공안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졌다.

아니 반복적인 멘트만 반복했다.

“안전 조치가 미비하고, 안전 요원이 너무 작습니다. 만약 행사 중에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행사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종훈 대표도 이판사판이다. 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재정이 좋지 않은 라인 엔터의 손실이 너무 컸다.

“야아, 나 죽여, 이 개새끼들아, 김나리가 한중 홍보 대사인 거 몰라. 너희 새끼들이 의도적으로 한류 막으려고 그러는 거 내가 모를 것 같냐?!”

밀고 당기는 갈등이 이어지다가 결국 사고가 터져버렸다.

라인 엔터 직원 중의 한 명이 공안과 주먹다짐을 일으켰다.

분노한 공안은 때는 이때다 싶은지 대놓고 무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라인 엔터 직원을 패면서 심지어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공연을 보러 나온 중국 시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찍기 시작했다.

조민호 주변의 공안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있던 김원준 과장과 양봉석 대리는 곧바로 카메라를 꺼내서 사건 현장을 찍었다.

둘 사이 싸움이 격화될수록 그들은 한 편으로 걱정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갑자기 얻은 특종에 쾌재를 불렀다.

“......재들은 또 뭐야?”

조민호는 힐끗 두칭리를 쳐다보았고, 두칭리는 자연스럽게 장멘호를 쳐다보았다.

이미 시진팡이 조민호에게 보인 행동 때문에 반쯤 패닉에 빠져 있던 장멘호가 다급하게 이리저리 전화와 함께 움직였다.

이미 이들을 따라다니는 지역 공안 책임자 역시 창백한 안색을 한 채 뛰어갔다.

전화가 몇 번 이어졌다.

두칭리는 그 최종 보고를 받았지만, 그 내용은 아예 말하지 않은 채 눈치 빠르게 질문했다.

“어떻게 할까요?”

조민호는 무림에서 이런 일을 늘 경험했기에 구질구질하게 지시하지 않았다.

“없던 걸로 해.”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가 몇 번 오고 갔다. 그리고 피 흘리는 공안까지 나와서 라인 엔터 직원을 모두 강제 구인하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추었다.

사실 중국에서 공안을 때리면 무조건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 책임자는 새파랗게 질린 어조로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멈춰!!”

“?”

유혈 난투극이 될뻔한 사고는 마치 잔잔한 바다처럼 변해버렸다.

지켜보는 중국인은 다들 공안의 공포를 잘 알기에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시무시한 공안이 갑자기 한국 라인 엔터를 상대로 넙죽 허리를 숙이는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지어 구급 대원까지 출동해서 다친 사람을 치료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행사 허가가 갑자기 떨어졌다는 이야기 나온 것이었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공안에게 그 사이에 한 대 맞아서 눈이 퉁퉁 부은 강종훈 대표는 울어야 할지, 아니면 웃어야 할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공안은 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참가하기로 했던 장백지를 비롯한 다른 분들도 곧 도착할 겁니다. 그러니 공연을 굳이 연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저희 공안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미친 겁니까?”

“서로 오해가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도 담당 공안이 당황해서 힐끗 주변을 살피는 모습을 보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따위로 하면 내가....., 후유, 알겠습니다.”

‘뭐가 좀 이상하군.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네.’

***

양봉석 대리는 조금 전에 주변 공안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봤기에 힐끗 김원중 과장을 쳐다보면서 질문했다.

“......대박 특종이기는 한데, 좀 많이 이상해요.”

김원준 과장은 양봉석 대리보다는 조민호와 가까이 있었기에 전화 통화부터 대화까지 다 들어서 더 충격을 받았다.

단 한마디 말로 지역 공안부터 시작해서 인허가와 관련되는 기관에 압력 넣었다.

‘중국 관전총국이 전화 한 통화 한다고 저렇게 인허가를 마음대로 바꿀 수도 있나? 설사 한국 대통령이라도 저렇게는 못해. 세상에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연줄이라도 있는 건가?’

멍하니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공안의 일사불란한 행동을 보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민호는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삭 무시한 채 공연장 VVIP 좌석에 앉았다. 오늘 공연을 위해서 무려 1만 명의 관객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텅텅 비어서 한쪽 경호를 위한 공안과 어리벙벙해서 영문을 잘 모르는 기자 두 명(?)뿐이었다.

원래는 이 자리에 참석하기로 했던 이들 대다수는 공안의 허가가 나오지 않는 것을 사전에 알고 불참한 것이었다.

그 넓은 VVIP 좌석에 혼자 덜렁 앉아 있으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심지어 VVIP 좌석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기자석에 앉아 있던 기자 몇 사람이 김원중 과장을 알아보고 전화했다.

“김 과장, 자네가 왜 거기서 나와?!”

“아, 나중에 이야기할게.”

전화를 바로 끊었지만 계속되는 전화 알람에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짜증나네.’

조민호는 그런 주변 상황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느긋하게 앉아서 관람을 즐겼다.

물론 두칭리 지시를 받은 카메라를 좀 아는 공안 몇 사람이 대형 카메라로 공연을 촬영했다. 아니 거의 중계 수준이었다.

무대는 한창 미국에서 초청받은 가수조차 나와서 이번 행사를 도왔다.

아시아 태평양 뮤직어워드는 중국 내 라디오 방송 차트 결과에 따라서 진행되는 시상식이다. 김나리는 중국에서만 무려 150만장을 판매해서 이번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김나리로서는 이제 곧 한국 드라마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니, 마지막 고별 무대인 셈이었다.

조민호는 태어나서 처음 이런 라이브 공연장을 와본 터라 만족했다.

‘흠, 재미있네?’

***

박진민은 최근 지원한 입사 지원 결과를 받고는 한 숨을 내쉬웠다.

취업난이 심하다는 것을 익히 알았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야 더 절감했다.

입학 새내기가 대학 입학 때문에 행사다 뭐다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지난 시간을 후회했다.

“영탁아, 그냥 민호 제안을 들을 것을 그랬어. 솔직히 백이 좀 있으면 어때, 오성 같은 기업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 말을 믿어?”

“난 왠지 민호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

“오성 그룹 이학준 비서실장과 잘 알고 지낸다는 말하는 거야?”

“오성 그룹 막내딸과 알고 지내는 게 더 비상식적이다.”

“하긴.”

박진민은 괜히 조민호에 심술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중국 저장성에서 잘 지낸다는 소리에 화가 나서 김나리 라이브 공연을 좀 찍어서 달라고 요청했다.

김나리 팬인 것도 사실이지만 좀 골려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차라리 졸업을 연기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진 채 오늘은 구내식당이 아니라, 대학 근처 식당을 찾았다.

마침 TV 연예계 방송에서 아시아 태평양 뮤직어워드를 방송했다.

김나리가 참가한 행사 때문에 방송 내용이 나왔는데, 카메라가 돌아가다가 마침 텅 빈 VVIP를 홀로 독차지하고 있는 한 사람을 잠깐 비추었다.

“커, 컥억.”

박진민은 먹던 라면을 내뱉으면서 기침했고, 그것은 사레가 걸린 김영탁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혼자 그 넓은 VVIP 좌석을 다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조민호라는 것을 금방 알아봤다.

“아니 민호 저놈이 왜 저기 나와?!”

연예가 중계에서 입담을 나누던 패널도 신기한 듯 화면을 독차지하는 한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주로 중국 고위 관료가 아닌가 의심했다.

아니 나이가 어리니, 중국 고위층 자제라고 어림짐작했다.

원거리에서 찍은 터라 화면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조민호를 모르는 사람을 누구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박진민은 바로 조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진짜 방송 카메라에 조민호가 전화를 받았다.

[미, 민호야, 너, 너 지금 어디야?]

[네 부탁 들어주러 공연장에 와 있다. 여기 뜻밖에 볼만하다. 난 잘 모르는 가수가 대부분이지만 노래는 나름 괜찮아.]

[너, 너였어? 지, 진짜 너야?]

[뭔 소리야? 공연은 확실히 찍어서 가지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 그래.]

박진민은 전화를 끊자 화면 속의 인물 역시 전화를 주머니에 넣는 것을 봤다.

무려 1만이 넘는 관객은 통로 계단까지 빼곡하게 채운 채 응원했다.

그런데 조민호는 냉커피를 비롯한 온갖 수발을 다 받은 채 그 넓은 VVIP 좌석을 마치 황제라도 되는 양 혼자 독차지했다.

패널 조차 황당한 이 광경에 공연보다 저게 더 궁금해서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존나 멋있다.”

***

저장성 항저우 국제공항은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하지만 조민호가 서 있는 곳은 고위층만이 지나가는 곳이라서 오히려 한가했다.

김원준 과장과 양봉석 대리는 이제 더 놀라지도 않았다.

조민호는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카메라 느낌에 혀를 내둘렀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럴 거라고 예상했다.

‘시진팡이라는 인물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주시 대상이야. 그런 사람 주변에 얼쩡거려서 주목을 받았으니, 당연하겠지.’

다만 두칭리가 뭔가 망설이는 표정을 보자 그냥 넘기지 않았다.

“할 말이 있어?”

“서문탁 스승님이 선생님을 잠깐 뵙자고 연락해왔습니다.”

살짝 고심하던 조민호는 곧 서문 성씨를 떠올렸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서문이라 흔치 않은 성씨인데, 그 친구의 후손일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너도 굳이 나에게 얽매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분도 선생님을 꼭 뵙고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다.”

두칭리는 냉정한 조민호 말에 크게 실망했다.

물끄러미 두칭리를 바라보던 조민호는 힐끗 공항을 오가는 비행기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세상일은 누구 한 사람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인과의 그물을 빠져나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벗어나지 못해. 내가 만약 내 의지대로 세상일에 간섭하게 되면 큰 변화가 일어날 거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무림 시절에 별생각 없이 끼어들어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봤다가 피를 본 경험이 많은 조민호는 ‘정확히는 내가 귀찮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조민호는 두칭리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거려주었다.

“이미 너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과한 욕심은 너 자신을 망가트리고, 네 스승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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