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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전생자-88화 (88/176)

#088

아무리 시진팡이 떠오르는 권력 실세라고 해도 이 신비한 광경에 벌떡 일어나서 통로에서 기다리고 있는 조민호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조민호 역시 일시적인 변덕 때문에 한 치료였지만 생각보다는 더 탁월한 결과에 만족했다.

“토마스 일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아, 네? 네, 가, 감사합니다.”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시진팡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민호를 호출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조민호가 보여준 능력은 그의 상상을 가볍게 넘었다.

한 가닥 기대하면서 조민호를 딸 시중신에게 안내했다.

‘저, 정말 치료할 수 있을까?’

조민호는 가자미눈을 한 채 시진팡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그의 뒤를 따라서 시중신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두칭리 수준까지 만들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겠지. 시진팡에 대해서는 한 번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

십 대 후반에 귀엽게 생긴 소녀 시중신은 낯선 타인을 보자 후다닥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조민호는 자연스럽게 걸음으로 그녀의 동선 앞 위치에 가서 그녀 손을 잡았다.

김미애 기자에게 사용했던 혼원기 수법을 다시 사용했다.

낮선 이의 손길에 당황한 시중신은 난동을 부리려고 버둥거렸지만, 곧 축 늘어졌다.

“......”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시진팡은 신기한 조민호 몸놀림에 멍하니 쳐다보았다. 직접 눈으로 뚫어지게 봐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쭉 걷기만 했는데, 시중신은 그의 간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핏 보면 간단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조민호가 삼류 무사 시절에 만든 혼원보를 사용한 것이다.

시중신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그 혼원보 흐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지만 그 속에서는 이정제동(以靜制動)과 후발제인(後發制人)의 무학의 이치가 담겨있었다.

조민호는 의도적으로 큰 동작을 통해서 시진팡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굳이 더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신중신 맥을 잡았다.

그런데 곧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이 없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발달장애 의학 자료를 이미 살폈던 그는 한 가지를 짐작했다.

‘발달장애는 장애지, 병은 아니니까.’

기존에 치료한 모든 환자는 정상적인 선천지기 흐름에서 약간씩 벗어나 있어서 그 뒤틀린 부분을 잡아서 교정했다.

그런데 발달장애는 기존의 병과는 달리 장애다.

조민호는 다른 대안이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진 채 시중신의 선천지기 흐름을 샅샅이 찾았다.

여전히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자기 능력 밖의 환자가 생길 것이라 예상했었다.

‘좀 빠르군.’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조민호의 표정은 단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인내한 채 묵묵히 기경팔맥을 차분하게 뒤졌다.

시중신은 팔과, 다리를 구부린 채 계속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억지로 손을 뻗으면서 조금씩 조민호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에 선천지기 변화가 있었지만, 너무 작았다.

‘차라리 병이라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시진팡도 눈치가 빨라서 굳어 있는 조민호 얼굴을 보자 혹시라도 작은 도움이 될까 싶어서 지금까지 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부분은 조민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기 선생님, 혹시 먹는 약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보여주세요.”

그는 다급하게 침실에 가서 약통을 가져와서 내밀었다.

“메틸페니데이트라.”

발달장애를 치료하는 복용약 중의 하나인 메틸페니데이트로 중추신경계를 자극해서 집중력을 높이는 약물이었다.

뇌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도파민과, 교감신경계를 자극해서 집중력을 증가시킨다.

자폐아를 비롯한 주의력결핍 과잉 행동장애 환자에 흔히 사용한다. 장애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조민호는 의학 지식이 얕아서 무슨 용도인지는 몰랐지만 이용할 방법을 바로 생각했다.

“지금 하나 더 먹어도 괜찮겠죠?”

“늘 먹는 겁니다.”

곧 바로 시중신에게 약을 섭취시켰다.

옆에서 지켜보는 조민호는 여전히 진맥을 한 채 선천지기 변화를 살폈다.

‘변화하는구나.’

신경흥분제의 일종인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하고 나자 선천지기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사실 발달 장애 아동에게 신경흥분제 효과는 거의 없다고 알려졌지만, 자폐아 환자에게는 이 메틸페니데이트가 꽤 효과가 있었다.

조민호는 선천지기가 뒤틀린 변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흐름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선천지기가 안정화되는 패턴을 발견했고, 하나씩 기억했다.

이제 대충 치료에 대한 방향성을 잡자 옆에서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진팡을 느꼈다.

“거실에 가서 잠깐 계세요.”

“네? 하, 하지만 제가 도움이......”

“이제 도움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나가 계시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저기 다른 분도 모두 밖으로 내보내 주세요.”

시진팡도 이제 조민호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때문에 쉽게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눈치를 계속 보기만 했다.

“나가세요!”

“아, 네.”

움찔 놀란 그는 신비로운 치료술을 볼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신기할 정도로 얌전해진 딸 시중신을 쳐다본 후에 방을 나갔다.

하지만 조민호 감각은 날카로웠다.

“문 닫으세요!”

“넵!”

시진팡은 조민호의 차가운 눈빛을 보자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다.

***

수소음경맥은 가슴에서 시작해서 소장을 따라서 전신으로 흘러간다.

이 경맥은 주로 혈관계를 비롯한 뇌에도 일부 영향을 준다.

조민호가 신경흥분제를 통해서 발견한 것은 극천을 비롯한 소해, 영도 몇 가지 혈이다. 이 혈 자리는 마치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그 과정에서 선천지기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났는데,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서 그 폭발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선천지기 변화는 누구라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이것을 유발한 약리 작용은 암호화된 코드처럼 복잡했다.

눈을 감은 조민호는 선천지기 변화에 몰입해서 12가지 기운을 조절해서 특성에 맞는 혼원기를 조심스럽게 조합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 퍼즐은 길이 조절과 옆으로 다른 한 차원을 더해서 마치 3D 유전자 구조처럼 복합적인 형태를 이루었다.

수백 개의 퍼즐 조각이 자아를 가진 생명체처럼 움직이면서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갔다.

조민호는 120만 정신 스탯 덕분에 크게 정신력을 소모하지는 않았지만, 인내를 발휘해서 계속 확인을 거듭했다.

무한에 가까운 정신 스탯이 마치 슈퍼 컴퓨터처럼 연산 능력을 올려주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시중신형 혼원기 모델은 이전 다른 환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자기 손 위에 떠오른 최종 시중신 혼원기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이게 도대체 뭐야?’

3D 형태로 되어 있는 복잡한 구조는 이리저리 얽혀 있었는데, 마치 복잡한 화학 물질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신진대사 일부를 복사해서 가져와서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에 당황했다.

‘별의별 일을 다 겪네.’

하지만 역시 전생의 경험 덕분에 쉽게 혼란한 감정을 다스렸다.

무림에서 홀로 무학을 집대성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물론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지만 볼수록 정말 놀라워. 여기에도 기본적인 구조와 이치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순간 조민호는 지난 환자를 치료할 때 만든 혼원기 구조를 하나씩 떠올렸다.

아쉽게 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머리를 쥐어짜서 천천히 그 시중신 혼원기를 단순하게 암기했다.

그는 시중신 혼원기를 사용해서 극천, 소해, 영도를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지압했다.

혼원기 시침이 경락을 파고들자 신기한 변화가 일어났다.

단순히 선천지기가 안정되는 수준을 벗어나서 높았던 수위가 점점 가라앉았다.

그다음 변화는 경맥을 따라서 전신으로 천천히 퍼져 나갔다.

특히 중추신경계를 따라서 이동하면서 조금씩 경맥에 변화를 주었다. 일그러진 경맥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물결치듯이 일어난 변화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속도가 올라갔다.

“......이상한데.”

조민호조차 처음에는 작은 시내 같은 변화가, 큰 강을 만나서, 다시 대해로 통하는 과정을 느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마의에게 배울 때도 이런 현상은 경험한 적이 없었다.

작업을 잠깐 멈출까 했지만, 곧 시중신 선천지기 뒤틀림이 천천히 가라앉자 지켜만 봤다.

그 변화는 시간이 갈수록 가속이 붙었다.

그 과정에서 미처 느끼지 못한 세밀한 선천지기 변화를 알아챘다.

아직은 완전하게 자신이 다를 수는 없지만 느꼈다는 것이 중요했다.

조민호 입가에 숨길 수 없는 깨달음의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군.’

이제까지는 주먹구구식으로 한 치료법. 어쩌면 이를 이용해서 자기만의 독특한 혼원기 사용법을 고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원 치유법이라고 해둘까?’

시간이 갈수록 치료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면서 시중신의 눈빛도 점점 뚜렷해져 갔다.

전생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에 절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정말 신비하구나.’

***

발달 장애 환자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작 더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발달 장애 치료 과정에서 흔히 안내하는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이 한 종류다.

손가락으로 지적하기, 상자 안에 물건 집어넣기, 리듬에 맞추어서 소리내기, 혼자 있을 때는 계속 같은 운율을 반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발달 이정표는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부모는 마지막 미련을 놓칠 수 없어서 매달린다.

중국 내에서 떠오르는 권력자 시진팡 역시 중국 전역에 전문가를 불러서 아내를 도와서 다양한 치료 방법을 해보았다.

일부는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가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소모적인 삽질이 계속될수록 심신은 피폐해졌다.

두 사람 사이도 서서히 금 갔다.

우울증에 걸린 펑리이안는 자살시도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 지난 아픔을 떠올린 시진팡은 거실에서 조민호가 나올 때까지 마지막 기도까지 했다.

마침 어리둥절한 펑리이안이 깨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은 맑고 깨끗해서 평소 우울증 걸린 환자와는 달랐다.

그녀는 오히려 시진팡을 위로하면서 시중신 방으로 가려고 했다.

시진팡이 다급하게 붙잡았지만, 아내는 의아한 얼굴로 그냥 문을 열었다.

그런데.

거실에는 늘 도움 없이 제대로 걷지도 못한 딸 시중신이 문 앞에서 그녀를 보고 소리쳤다.

“엉마!”

뒤틀린 발음이지만 꽤 명확했다. 심지어 비틀거리면서도 당당하게 뛰어가서 펑리이안 가슴에 푹 안겼다.

“?!”

그녀는 경악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의사표현능력도 떨어진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집안에서 움직일 때도 갖은 사고를 다 내서 한때는 묶어 두었다.

“중, 중신아?”

“엉마, 엄마, 나 이상히게 말이 잘 니와, 에이 씨, 엄마랑 말하는게 틀리덩.”

조금씩 뒤틀린 발음이기는 하지만 반복할수록 점점 바로 잡혔다. 말도 행동도 다소 어색하지만, 그녀 스스로 잘못되었다고 느껴서 답답한 듯 보였다.

“!!”

그녀 뒤에 서 있던 시진팡 역시 경악한 채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펑리이안은 기쁨의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딸 시중신을 꼭 안아주었다.

“중, 중신아, 흑흑흑, 우리 딸, 다시 한번 안아 보자.”

“아아앙.”

시중신도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행동과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감정 변화 기복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약물 처방까지 받았다. 그렇게 많은 약을 사용해서 치료했을 때도 저런 변화는 없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시진팡도 가끔 조민호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허황해서 헛소리하는 이들을 질책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서, 선생님, 가, 감사합니다.”

조민호 손을 잡은 채 머리가 땅에 다를 정도로 고개 숙였다.

그녀 역시 시중신을 안은 채 조민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조민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치료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살아 있는 의선(醫仙)을 대하듯이 조민호에게 고개 숙였다.

“흠, 돈 받고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않으셔도 됩니다.”

굳이 신파극을 펼치는 가족 분위기에 부담스러워서 슬그머니 문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그런 조민호 뒤를 따라서 저택 입구까지 배웅해주었다.

뒤늦게 따라나선 이들은 다들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한창 무섭게 중국 권력 실세로 꼽히는 시진팡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민호는 열렬한 환호를 받으면서 떠나는 중에도 시진팡 모습을 힐끗 살폈다.

‘뭐 앞으로 잘 지낼 수 있겠어.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하자. 그보다는 이런 식으로 자꾸 고위층과 엮이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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