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두칭리가 마침 조민호에게 다가와서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가자.”
***
최근 중국 내의 중국 4세대 지도부는 애초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류엔둥이 상하이 당서기로 취임하면서 천량위가 밀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시진팡 역시 이런 중국 권력 흐름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비록 태자당 내에서 떠오르는 권력 실세라서 더 조심했다.
이번 후야오방 90주년 탄생 기념식 행사에서도 빠질 수 없었다.
하지만 행사 중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 때문에 다급하게 양해를 구하고 나서 빠져나갔다.
시진팡은 자기 권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모든 수단을 써 봤지만, 난치병 발달장애를 앓는 딸 시중신을 치료하지 못했다.
결국 아는 라인을 총동원해서 의문의 지압사와 관련이 있는 조수현 회장을 알아냈고, 그에게 그 지압사를 요청했다.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상대는 완고할 정도로 거절했다.
절박한 시진팡은 조수현 회장이 하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계속 협박했다.
결국 지난주에 지압사가 중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침 급한 기념식 행사 때문에 자기 사람을 보내서 일정을 연기시켰다.
‘정말 지압으로 발달장애를 치료할 수 있을까?’
중국 고대에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다지 믿지 않았다.
막 도착한 저택 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저택을 관리하는 몇 사람은 한쪽에 서서 안절부절못했다.
딸 시중신은 거실 구석에서 웅크린 채 조용히 울고 있었다.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다급하게 방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집사 다이상이 난감한 얼굴로 욕실 앞에 서 있는 것을 봤다.
시진팡은 뒤늦게 욕실 안에서 흐느끼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흑흑흑.”
목 놓아서 울기만 하는 아내.
시진팡은 아내를 겨우 다독거려서 일단 침실에 데려다 놓은 후에, 시중신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맞아서 피멍이 들어 있는 얼굴.
혼자서 알 수도 없는 소리를 계속 반복했다.
아내가 때렸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지만, 난장판이 된 집안을 돌아보자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자폐증 증상이 심해질 때면 말을 안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강제로 말리는 중에 감정이 격해지면 참다 못해서 때렸다.
이런 일이 벌써 몇 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일이다.
직접 딸을 보살피는 아내는 시중신에 대한 사랑과 애증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딸 얼굴에 묻은 것을 닦아내고 나서 자기 방에 눕혔다. 다급하다는 연락에 이곳까지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쌓인 피로와 정신적인 고통이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갔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양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시체처럼 눈을 감았다.
다급하게 나간 시진팡을 걱정한 보시라이 상무부장이 전화했다.
-괜찮습니까?
-네.
-시중신 때문입니까?
-나중에 얘기하겠습니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저도 그 지압사 소문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류엔둥이 한국을 방문한 것도 사실이고, 리핑의 혈관염이 완치된 것도 맞습니다. 그 지압사에게 한 번 부탁해보세요. 계속 그러다가 사모님하고 사이가 벌어지면 어쩔 생각입니까. 그분도 진짜 힘들어합니다.
은근히 자기 가정사에 관여하는 보시라이 상무부장이 부담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시진팡은 곧 전화를 끊었지만, 다시 지압사를 떠올렸다. 합리적인 사람으로 도저히 지압 치료를 믿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결국 침실에 있는 아내를 다독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지압사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약간의 과장도 섞었다.
“이미 많은 사람을 치료했다고 하니, 한 번 당신도 믿어 봐.”
아내는 물론 믿지 않았다.
그런데 우울증까지 겪고 있는 펑리이안은 과거와는 달랐다. 황폐한 심신 때문에 지금 당장 굿판을 벌이고 싶었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그래.”
솔직히 개인적으로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시기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사이가 나빠져서 또다시 이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민호에게 연락해!”
***
발달 장애 환자는 다른 장애와는 달리 자기 관리 능력이 떨어진다.
결국 이들을 돌보는 부모나 가족은 정신적으로 크게 힘들어한다.
우울증이나 양육 스트레스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가족 삶 자체를 유지할 수가 없다.
가족을 치료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돈을 쓴다. 맹목적인 굿판이다.
이 과정에서 치료 효과가 없게 되면 가족은 그야말로 해체 수준을 밟는다.
어느 정도 발달장애 폐해를 잘 아는 조민호는 어떤 식으로 치료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예상한 초호화 저택과는 다른 건물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다른 권력자와는 다른가?’
얼마든지 친인척을 통해서 차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만 해도 토마스에게 바이드 지분 10%를 천이백만 달러에 얻었으니, 공안을 비롯한 자기 세력을 이용한다면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을 수 있어.’
저택 크기는 큰아버지 저택과 비슷했다. 그래도 고아하고, 운치가 있는 정원 모습은 한국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문득 무림에서 삶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꿈같이 느껴지지만, 분명히 사실이었다.
다행히 마중 나온 이들이 있었다.
집사 다이상이 모두 십여 명의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뒤를 따르는 이들 중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지만, 따로 신체를 검사한다든지, 압력을 넣는다든지 하지 않았다.
조민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주먹이 최고야.’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 이십 명까지 합치면 삼십 명이다.
무려 삼십 명의 호위를 받은 채 느긋하게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늘 있는 일인 양 자연스러워서 집사 다이상조차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이미 다른 채널 통해서 조민호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 줄 보고받았다.
쓸데없이 조민호를 자극할 행동은 아예 하지 않았다.
조민호는 물론 치료비 1억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집사 다이상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현금 1억이 든 가방으로 내놓았고, 두칭리가 잽싸게 나서서 그 돈을 챙겼다.
그리고.
저택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진팡의 얼굴은 정신적으로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방부제를 바른 시체와 비슷했다.
힘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시진팡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조민호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감돌았다.
시진팡은 조민호를 처음 볼 때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서운 기세를 느꼈다.
이마에는 벌써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과거 야인으로 지내던 자신을 복귀시킨 덩샤오핑 부총리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그와도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마치 홀로 끝도 없이 솟은 아득한 봉우리를 보는 듯한 충격에 시진팡은 손에 땀이 가득 차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딱히 조민호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않았음에도 알아본 것이다.
조민호 역시 시진팡의 선천지기 잠재력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으음, 240정도는 넘어가는 것 같은데, 믿을 수가 없구나!’
그 자신이 아는 가장 높은 선천지기 잠재력 수치는 오성 바이오 사장 최태한으로 65였다.
그 수치의 무려 4배였다.
일반 성인과 비교하면 무려 24배다.
이 수치가 위로 올라갈 때는 얼마나 올리기 어렵다는 것은 그 스스로 잘 알았다.
‘중국에 인간이 워낙에 많아서 그런가?’
수억의 인간 앞에서 여러 가지 사회 활동을 하면서 그들 선천지기를 흡수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줘야 가능한 일이다.
시진팡은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죽여 버릴까?’
조민호는 문득 앞으로 후환이 될 것 같은 인간을 보자 가슴 속에서 살심이 떠올랐지만, 곧 스스로 혀를 차고 말았다.
‘내가 주화입마라도 빠졌나?’
그래도 정말 걱정스러웠다.
최태한 사장 기준으로 잡고 본다면 이 시진팡이라는 인물은 아마 앞으로 중국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결국 그가 이끄는 중국 힘은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고, 한국 역시 그 영향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었다.
이런저런 미래 일 때문에 심사가 복잡했지만, 다행히 곧 사라졌다.
조민호는 슬쩍 시진팡에게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다.
시진팡은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잠깐 손을 잡았다.
만약을 위해서 혼원기로 수작을 시도해보았지만 혼원기는 바로 튕겨버렸다.
‘정확히는 248이구나. 이 정도면 정신 스탯도 248을 넘어. 수련도 하지 않은 인간이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니.’
결국 기운을 조절해서 그저 선천지기를 동기화해서 호감을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쉽네. 여기서 더 나가면 뇌세포가 파괴되어서 부작용이 일어나겠어.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다. 이런 사람을 보게 되다니.’
시진팡은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 마냥 꼼짝하지 못했다.
조민호는 방긋 미소 지으면서 손을 놓아주었다.
“높은 명성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환자 치료하러 왔다가 보호자를 살해하는 일이 생길 것 같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환자를 보고 싶습니다.”
시진팡도 원래는 조민호를 상대로 몇 가지 실험하려고 했었지만, 감히 그런 시도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바로 조민호를 안내해주었다.
뒤에서 눈치만 보던 이들은 시진팡 손짓에 그저 따를 뿐이었다.
곧이어서 나타난 펑리이안은 조민호 나이가 너무 어려서 시진팡에게 한 소리 하려다가 고개를 내젓는 얼굴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시진팡이 저렇게 심각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조민호 뒤를 따랐다.
조민호는 무심하게 걸어가다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는 펑리이안에게 다가갔다.
펑리이안은 슬쩍 한걸음 물러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조민호는 앞으로 유대 관계를 위해서 서비스해주기로 했다. 번거롭게 설득해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간단히 결과를 보여주는 쪽으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황폐한 선천지기를 봤다. 저대로 둔다면 오염된 기운이 뇌 쪽으로 파고들어서 정신 질환을 앓을 수 있었다.
말없이 그녀 앞으로 다가가면서 그녀 맥을 향해서 내밀었다.
펑리이안은 어어할 틈도 없이 자기 손목이 잡히자 화들짝 놀랐다.
딸 시중신에 대한 근심 때문에 몇 년 동안 심화가 쌓였다.
그 과정에서 생긴 노폐물이 선천지기 흐름을 막아버려서 이미 위험 수위를 가볍게 넘어갔다.
조민호는 주변의 의아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의 어깨 바로 뒤편에 부분, 백호, 고황혈을 지그시 눌렀다.
그저 단순하게 뻗은 동작이지만 펑리이안은 막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마술과도 같은 동작에 멍하니 쳐다보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녀가 당황해서 막 반사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다.
그토록 무겁게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녀는 이제까지 자기 마음을 괴롭힌 고통이 갑자기 사라지자 마치 달콤한 벌꿀을 음미하는 사람처럼 절로 눈을 감았다.
천근만근처럼 쏟아지는 잠에 견디지 못한 그녀는 눈을 감아 버렸다.
조민호는 쓰러지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부축하면서 경악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집사 다이상에게 눈짓했다.
“뭐합니까?”
“아, 아닙니다.”
황당한 일에 놀란 시진팡 역시 다급하게 쓰러진 펑리이안을 따라서 침실로 가서 그녀 상태를 직접 확인해보았다.
밝게 미소를 짓은 채 아기처럼 잠들어 있는 그 모습은 5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럴 수가.’
자신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손끝으로 어깨를 가볍게 만진 것만으로 아내를 괴롭힌 정신 장애가 순식간에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부분혈이 보통 정신 피로와 관련되는데, 혼원기가 뒤틀린 선천지기를 바로잡으면서 동시에 족태양방광경 혈 자리 전체를 자극해서 잠에 빠트렸다.
혈도를 사용하는 것과도 차원이 다른 수법이었다. 조민호 전생의 무림 고수라도 이런 점혈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