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83화 (83/176)

#083

***

주식을 이용해서 작전하고, 돈을 버는 이들은 애초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이 일 자체가 돈을 벌기 쉽기 때문이다.

유오현 이사도 비슷한 경우인데, 김정현 사장이 구속되었을 때 조용히 숨었다가 몇 개월 전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몇몇 지인 통해서 밸류 펀드를 만들었고, 이 자금을 이용해서 시엔스라는 교육용 교재 만드는 회사를 인수했다.

하지만 겁이 많은 그도 강기창 경감이 구속되었다는 말에 회사 자산을 반쯤 포기한 채 지방 안가에 숨었다.

다행히 강기창 경감 수사는 역시 예상한 대로 탄력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에 법무부의 검찰 인사로 형사 3부 강기창 경감 담당 한양석 검사는 임기가 다 끝나서 수원지검으로 승진해서 떠나버렸다.

후임으로 이 일을 책임진 장민석 부장검사는 이상할 정도로 수사를 질질 끌었다.

‘그 양반 백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럴 줄 알았다.’

유오현 이사도 김정현을 구속한 김정환 검사 분위기만 살폈다. 좌천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 결국 부장 검사로 승진했다.

‘이상하네. 이런 꼴통을 승진시킬 리가 없는데, 법무부와 검찰이 딜이라도 한 건가? 이러면 진짜 조심해야겠어.’

단순히 조심만 하지 않았고, 강기창 경감 손발이 되었던 인간에게 확인해보았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최근 검찰과 법무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검찰을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로 달려갔고, 법무부는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서 막았다.

문제는 바로 이 정권을 지지하는 민심인데, 아직은 현 정권 쪽에 기울었다.

심지어 수백 명의 시위자가 검찰의 직권 남용을 비판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렇다고 둘 사이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서 휴전 상태였다.

‘아, 불안하네.’

이미 지인 통해서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받았지만, 도저히 지방에 내려가서 살 수가 없었다. 다행히 김정현 사장이 자신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 강기창 경감이 중간에 손을 쓰지 않았다면 그 역시 감방에 갔을 것이다.

유오현 이사는 이런저런 일로 심사가 복잡할 때 마침 자신의 물주 중에 한 사람으로 영국계 에르메스 펀드에서 일하는 토니를 통해서 토마스를 소개받았다.

별생각 없이 만났지만 정작 내막을 듣고 나서는 곧 인상부터 찡그렸다.

“1,450억에 사들인 오성 바이오 지분 10%를 매각해달라는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 난리가 났는데, 사들일 사람이 있겠습니까?”

룸 한쪽에서 나오는 TV 뉴스에 여전히 오성 바이오 부작용 뉴스가 계속해서 나왔다. 특히 전문가 몇 사람을 불러 열심히 오성 바이오의 무모한 투자를 맹비난했다.

오성 바이오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씹는 것을 봐서는 오성 그룹 측에 광고를 더 달라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토마스는 슬쩍 자신이 앨리엇 한국지사를 책임지고 있다고 운을 넌지시 떴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해준다면 앞으로 우리 앨리엇과 돈독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앨리엇이라.”

이 바닥이 그렇지만 역시 인맥이 최고다. 앨리엇이라면 정말 괜찮은 물주였다. 오히려 에르메스 펀드보다 훨씬 나았다.

“해보겠습니다. 다만 지분 가격은 생각보다 많이 낮아질 겁니다.”

지금 가격도 충격적이었는데, 여기서 더 낮아진다는 소리에 토마스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제 겨우 이성을 찾았지만 다시 심장이 폭발할 정도로 분노를 느꼈다. 당장 이 사태를 유발한 조수현 회장을 이 자리에서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심호흡을 통해서 안정을 찾았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감수하겠습니다.”

“손해가 엄청날......,크흠, 알겠습니다.”

유오현 이사도 충혈되어서 터질 것 같은 토마스 눈빛에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유명한 다국적 투기 세력이 제대로 사기 당했군.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오성 바이오 같은 회사에서 작전을 벌였을 리는 없을 테고, 단순히 재수가 없었던 걸까?’

***

유오현 이사는 꽤 능력이 있는 주식 브로커였기 때문에 물주를 꽤 많이 알았다. 자신이 아는 모든 라인을 총동원해서 오성 바이오 지분 매각을 넌지시 소문냈다.

불행히도 입질은 영 좋지가 않았다.

이보다는 오히려 엉뚱한 놈을 만났다.

“유 이사, 자네도 오성 바이오 지분을 매각하는 거야?”

“무슨 소리입니까?”

“말도 마. 아주 오성 바이오 지분 때문에 난리가 났어. 개나 소나 다 판다고 물건을 던지는 바람에 가격이 아주 박살 났어.”

안 좋은 소리였다. 뒤늦게 아는 지인 통해서 누군가 오성 바이오 지분을 장외시장에 계속 내놓아서 지금 시장에 나온 물량은 모두 10% 지분 물량이나 되었다.

‘가만 그러면 총 20%잖아?’

물건은 팔 사람은 많고, 살 사람은 별로 없게 되면 가격은 내려간다.

오성 바이오 장외 가격은 그 바닥을 모르게 계속해서 떨어져서 결국 액면가 5,000원을 뚫어버린 채 4,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아니 바닥이라고 생각한 가격도 견디지 못한 채 수직으로 내려앉아서 결국 2,500원까지 폭락했다. 불과 얼마 전에 착공한 오성 바이오 제1 공장 건립이 중지되었기 때문이었다.

‘1,450억에 매입한 주가가 고작 125억이야?’

그런데 주가 조작 전문가인 그도 이 오성 바이오 주식에 손이 가지 않았다.

‘250억이면 오성 바이오 지분 20%를 매입할 수 있는데.....’

감이 좀 알쏭달쏭했다.

아직도 뉴스에서 오성 바이오 신약 바스클린 부작용에 관한 기사와 더불어서 신약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나왔다.

웃기는 사실은 그 뉴스에서 언급한 사람이 정작 신약 바스클린 환자가 아니라 다른 신약 부작용으로 머리가 두 배쯤 퉁퉁 부어 있었다.

심지어 간경화증 환자에게 사용해서 사망이 아니라, 완치되었다는 가짜 뉴스도 나왔다.

‘이 기레기 새끼들, 하지만 역시 아니다.’

유오현 이사는 결국 토마스에게 지금 상황을 다 털어놓았고, 가격을 최대한 낮추어서라도 팔라는 답변을 들었다.

어렵게 지분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오자 다급해서 곧바로 토마스에게 확인한 후에 결국 10% 지분을 100억에 다 넘겼다.

‘왜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간혹 이 업계에 있다 보면 안면이 있는 지인이라서 그냥 그런가 넘겼다. 어차피 누군가의 대리인이니, 물주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 모르겠다.’

***

“지분 20%에 250억이라, 아쉽네요.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200억대까지 나올 텐데.”

툴툴거리는 조민호도 이번 일 때문에 번거로운 일을 몇 가지 했지만, 꽤 만족했다.

박상철 과장 추적 이후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성과 하나 없었는데, 드디어 과실 하나를 챙겼다. 당장 놈을 잡아서 족칠 수도 있지만 고작 꼬리 하나로 이 일을 끝낼 수 없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단순히 놈을 고문한다고 해서 답을 쉽게 찾을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무림 시절에 다급하게 처리하다가 배후까지 제대로 박멸 못해서 칼침 한 방을 제대로 맞은 경험도 있었다.

‘이런 놈들이 항상 두더지 굴을 여러 개 만들어 두니까.’

“나머지 10%가 아쉽네요.”

“손해를 봤다고 해도 여전히 들고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어.”

조수현 회장도 20% 지분 매입 서류를 보는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정말 바스클린 부작용을 없앨 방법이 있는 거야?”

“이미 오성 바이오 측에 자료를 넘겼습니다.”

“벌써?”

사실 최근 간경화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확인까지 해서 문제점을 쉽게 찾았다. 오성 바이오 연구진 역시 밤을 새우면서 매달리는 분위기라서 힌트만 줘도 금방 알아챘다.

“제가 보는 눈이 정말 좋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액면가 기준으로 쳐도 500억 주식을 250억에 사들였다는 소리구나. 1,200억 수익은 또 별도잖아. 가만 오성 바이오 지분 가치를 감안하면, 휴우, 엄청나구나. 너 차라리 우리 회사 들어와서 한 번 제대로 배워봐라. 진짜 세계 최고의 투자자다!”

모두 30% 지분으로 오성 그룹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제법 괜찮죠?”

이제 30% 지분에, 무려 1,200억이라는 현금 총알까지 챙긴 조민호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기쁜가 보구나.”

“저도 사람입니다. 그놈들 잡아서 주리를 털고 싶지만 수천 개의 쥐구멍 속에 있어서 손쓸 방법이 있습니까. 일단 시작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난 좀 걱정이다. 앨리엇 지분도 문제지만 그 20% 지분 주인이 나중에 우리를 보복할지도 몰라.”

“브로커 통해서 증거를 다 지웠고, 새로운 페이퍼 컴퍼니 만들어서 지분을 쪼개서 관리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건 몰라. 그자들이 얼마나 집요한 자들인데, 쉽게 포기할까?”

“아, 걱정하지 마세요. 그놈들도 딱 보니, 냄새가 좀 납니다. 제가 아는 분을 통해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테니. 그보다 앨리엇 지분 판 놈들 뒷조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기 있다.”

조민호는 서류에서 이번 일과 관련된 유오현 이사를 비롯한 몇 사람의 프로필을 확인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김정현 사장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네요.”

“유오현 이사랑 친구인데, 그 바닥에서 꽤 유명한 자다. 큐비스를 설립한 친구인데, 결국 횡령으로 구속되었어.”

그는 김정환 검사가 사진을 보여주면서 했던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아, 그 사람이었군요.”

“어?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런 게 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서 자세하게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는 곧 깊은 상념에 잠겼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손해를 본 토마스 그자부터 파야겠어.’

***

조민호는 곧 바로 최영준 차장을 만나서 토마스에 대한 조사부터 부탁했다.

이 의뢰를 받은 최영민 팀장은 오랜만에 팀을 동원해서 토마스를 철저하게 마크했다.

토마스는 급한대로 주식을 매각했지만, 무려 1,350억 가까운 손실을 봤기 때문에 대안을 찾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앨리엇 본사 상황이 좋지 않은데, 이 정도 손실은 가볍지 않았다.

처음에는 앨리엇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이 투자 회사에 있으면서 얻을 수 있는 고급 정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실제로 과거 이 정보를 이용해서 재미를 자주 봤다.

‘문제는 중국인데......’

갈등은 별로 길지 않았다.

일단 중국에 가서 직접 투자 결과를 확인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본사에는 중국 투자와 관련해서 급한 일이 있다고 일방적인 메시지만 보낸 후에 바로 중국 저장성으로 떠났다.

최영민 팀장도 오랜 만에 맡은 일이라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갑자기 중국행을 결정해버리자 최영준 차장에게 먼저 연락했다.

조민호는 최영준 차장 통해서 토마스가 분노해서 사무실을 박살냈다는 소식에 피식 웃었지만 예상 밖의 중국행 이야기를 듣자 의아했다.

“아니 그 작자가 왜 중국에 간 거죠?”

“앨리엇 투자는 전 세계에 걸쳐서 이루어져. 중국 역시 상하이만이 아니라, 다른 저장성도 충분히 그 대상에 들어가.”

“두더지 굴 규모가 제법 크네요.”

“단순히 큰 정도가 아냐. 저장성은 중국에서도 무섭게 발전하는 곳이니까. 특히 IT 분야 쪽은 가볍게 볼 수는 없어.”

“IT라......”

물리학과 전공으로 수학과 물리 쪽만 판 조민호로써는 잘 모르는 분야다.

‘차라리 부동산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혹시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장성 쪽은 잘 몰라. 필요하다면 인력을 그쪽으로 돌려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냥 두세요. 그 일은 고민 좀 하죠. IT 사업 문제도 있으니, 제 큰아버지에게 한 번 조언을 구해봐야겠어요.”

***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조민호도 큰아버지 집을 찾았다.

아버지와 동생이 잘 지내나 꼭 확인하고 싶어서다.

‘다행히 별일은 없군.’

아버지 조철영 얼굴은 활짝 피어올랐다.

최근 상하이 빌딩 성공 때문에 미래 증권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성취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생 역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덕분에 살이 좀 올랐다.

지난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 사태를 경험한 임서이는 이전과는 달리 유난히 호들갑을 떨었다. 뒤늦게 조수현에게서 조민호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조정국은 심통이 났지만 크게 반발하지 않았고, 조지연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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