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연간 110억 달러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기자들 분위기는 마치 대형 폭탄에 테러당한 것처럼 어수선했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이들은 역시 오성 그룹에 반감이 있는 대형 언론사였다.
그들은 이 기사를 일면 탑으로 내보냈다.
[오성 바이오가 개발 중인 신약 바스클린 신약 부작용 100건 발생!]
[오성 바이오 기술 특례 상장 물 건너가나?!]
동이일보는 슬그머니 묻어가는 척하면서 뒤늦게 이 기사를 터트렸다.
[오성 바이오 고작 임상 1상에서 참패하다!]
최영준 차장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적당히 묻어가는 기사로 대신했다.
난리가 났다.
이제 오성 그룹의 미래 먹거리라고 자부하던 그 오성 바이오 날개가 와드득 꺾여 버렸다.
특히 김지수 효과가 여기에 더해졌다.
이제까지 김지수를 추앙하던 이들은 여전히 김지수가 관련 없다고 떠들었다.
반대로 오성 그룹에 반감을 품은 이들은 맹렬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들 갈등은 생각보다 맹렬하게 격화되었고, 오성 그룹에서 뒤늦게 손쓰려고 했을 때는 이미 그들 손에서 벗어났다.
한국 모든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리한 오성 바이오의 신약 개발 사태를 맹비난했다.
심지어 정치권 역시 김건중 회장을 싸잡아서 욕설을 퍼부었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오성 바이오 사태를 씹으면서 불길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김건중 회장이 의도적으로 이 상황을 내버려뒀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불과 몇 달 전에 그렇게 말 나오던 오성 X파일도 쑥 들어갔다.
그 와중에 오성 그룹이 제약 사업에서 철수할 거라는 찌라시가 결국 돌았다.
특히 토마스는 한국 앨리엇 사무소에서 이 황당한 사태에 패닉에 빠진 채 멍하니 뉴스만 쳐다보았다.
‘아니 임상 1상 부작용으로 접는다니, 이런 개 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보통 2상, 임상 3상이 가장 큰 벽이다.
그 통곡의 장벽을 넘지 못해서 실패한다.
그런데 그 3상도 아니고, 아니 고작 2상을 가보지도 못했다.
오성 바이오는 1상이라는 장애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무려 1,450억을 투자했는데, 자칫하면 그 주식 가치도 250억 아래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의 휴대폰은 불이라도 난 것처럼 계속해서 징징 울렸다.
다른 직원은 토마스 눈치를 보면서 계속 압박했다.
“미국 본사에서 당장 전화를 달라고 합니다!”
“알았어.”
그도 오성 바이오 지분 10% 매입을 했을 때만 해도 희희낙락했는데, 막상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성이잖아. 분명히 해결책을 찾을 거야. 씨발 새끼, 여기서 포기하면 다 죽여 버리겠어!’
“지사장님, 지금 본사에서 난리입니다!”
“알았다고 하잖아!”
버럭 소리친 그였지만 차마 불이 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대안이 필요해. 방법을 찾아야 해. 분명히 대안이 있을 거야. 일단 조수현 회장을 만나서 확인부터 해보자.’
***
조민호 역시 예상을 벗어난 여론 분위기에 혀를 내두르다가 결국 조수현 회장을 만났다.
“앨리엇은 어때요?”
“예상대로 연락을 받았다.”
“잘 되었네요. 만나면......, 아, 이번에는 저도 같이 보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회사 일에 엮으려고 했던 조수현 회장은 기꺼이 허락했다.
“좋다.”
만남 장소는 조수현 회장실이었다.
토마스는 얼마나 급했는지 조민호가 누구인지 묻지도 않은 채 소리부터 질렀다.
“혹시 회장님은 바스클린 부작용을 사전에 알고 계셨습니까?!”
“허, 아니 오성 바이오 측에서도 모르는 사실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오히려 목소리가 냉랭했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는 토마스는 정신을 차렸다.
오성 바이오 내부에서도 몰랐던 사건인데, 제3자가 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참, 이분은......”
“제 조카입니다.”
“그렇군요.”
토마스는 힐끗 조민호 이모저모를 살폈지만, 곧 흔히 말하는 재벌 3세라는 깨닫고는 관심을 끊은 채 오히려 조수현 회장에게 채근하듯이 닦달했다.
조민호는 깜짝 놀라서 토마스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마기 잠재력이 꽤 높네.’
대략 마기 스탯 수치는 10정도다. 보통 사람은 오염된 선천지기를 가지는 것에 비하면 아주 특별한 경우에 속했다.
너무 특이한 경우라서 그는 침묵한 채 묵묵히 그의 마기 변화를 살폈다.
선천지기 잠재력 역시 적지 않게 오염되어 있었다. 마기와 오염된 기는 마치 서로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기복을 일으켰다. 특히 조수현 회장의 지분 매각을 의심할 때 특히 심했다.
거기에 감정이 요동치거나, 분노가 타오를 때 같이 더 심하게 흔들렸다.
조민호는 그 모습이 익숙하다고 느끼자 곧 전생의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저랬던가? 아니 비교조차 하기 힘들군.’
이성을 잃은 채 광인처럼 날뛰든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득 사람이 같이 있을 때면 기운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의 지인 중에는 박상철 과장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화에 불쑥 끼어들면서 슬쩍 혼원기를 끌어올려서 마기에 반대되는 특성을 목소리에 담았다.
“손해를 봐서 화가 난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성 바이오가 그렇게 큰 사고를 칠지 당시 누구도 몰랐습니다. 사전 정보를 미리 알아서 사기를 쳤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이미 내부적으로 따로 주식 정보를 얻어서 결정한 것 아닙니까?”
“그게 좀......”
토마스은 이상할 정도로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단아한 목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
“그쪽 인맥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사기 쳤다는 증거가 나오면 그 때 가서 따져야 하고요.”
“그렇죠.”
이상할 정도로 쉽게 수긍하는 토마스는 본인 자신도 잘 이해를 못 했다.
조민호는 자기 목소리에 선천지기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혼원기를 좀 더 목소리에 담았다.
비록 작은 양이지만 그 목소리는 평소에도 기복이 심한 마기 잠재력 스탯도 뒤흔들어버렸다. 일반 성인이라면 일어나기 힘든 반응이었다.
‘특성이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비슷하면 영향을 주겠지.’
“당장 사람이 없다면 이미 알고 지내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아, 토니라고 있습니다.”
‘예상대로군.’
혼원기로 변조된 목소리를 사용해서 임기응변으로 사용한 방법이지만 뜻밖에 요긴하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했다.
“그 토니란 분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죠. 아, 맞습니다. 제가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는 건지, 참 민망합니다.”
역시 마기 스탯이 얼마나 사람을 쉽게 흔드는 지 다시 확인한 조민호는 방긋 미소 지었다.
“그러면 볼일은 끝난 것 같습니다?”
“아, 그렇죠.”
토마스는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조수현 회장은 신기한 눈빛으로 조민호를 힐끗 쳐다보았다.
“어떻게 한 거야?”
“옆에서 본대로 설득한 겁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분노하던 사람이잖아.”
“사람 마음은 늘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박상철 과장하고도 무슨 연관이 있는 사람인데, 내부 소식통이 있겠죠. 흥분해서 잊었다가 뒤늦게 알자 마음을 바꾼 겁니다.”
“글쎄다.”
조수현 회장은 이미 조민호에게서 이상한 일을 많이 경험한 터라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잘 될 것 같으냐?”
“이성을 회복했으니, 자기가 아는 인맥을 찾아갈 겁니다. 박상철 과장과 연관된 인물입니다. 그자들 정체를 곧 알겠죠.”
‘찾을 놈들을 박멸해야죠.’란 말은 굳이 조수현 회장에게 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생소한 토마스 마기 잠재력 스탯을 떠올렸다.
‘현대인이 마기를 사용할 방법이 없어서 그 수치 자체는 의미는 없어. 다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러야 저렇게 되는 걸까?’
***
토니는 작년부터 작업해온 일을 드디어 진행하면서 잔뜩 긴장했다.
역시 이번 일에 같이 하기로 한 앨리엇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화가 났다.
‘이 작업도 자기들이 먼저 제안한 놈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오성 물산 지분은 덩치가 만만치 않아서 혼자 작업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마침 토마스 연락을 받자 당장 서울에 자주 가는 바에서 만났다.
“오성 물산 M&A 인수합병을 이용한 작전이 이제 시작될 겁니다. 약속한 시점에서 연기되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아직 넋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이성을 차린 토마스는 조수현 회장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영문을 몰라서 어리벙벙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토니를 보자 정신을 차렸다.
“잠시만요. 다른 일 때문입니다.”
“아니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오성 물산 지분도 800만주 가까이 되는데, 그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다는 말입니까?”
“후유. 잠깐만요.”
토마스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다가 적당하게 둘러댔다.
“오성 바이오 소문은 아시죠?”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주 박살 났더군요. 김건중 회장은 이미 회사 정리 절차에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만약 내막도 모르고 지분을 사들였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토니 헤르메스 대표이사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흠칫했다.
“가만 설마 그쪽에서는 오성 바이오 지분을 사들인 겁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런.”
눈치 빠른 토니도 그제야 피식 웃으면서 초조한 토마스 얼굴을 살폈다.
토마스도 새삼 자신의 손발이 되어준 박상철 과장을 떠올렸다.
‘그놈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한국 쪽 인맥은 다 사라졌으니.’
만약을 위해서 박상철 과장이 다루는 쪽 일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아서 FBI 수사 대상에서 피했지만, 그가 한 불법적인 업무를 제대로 몰랐다.
토니는 위스키 한 잔을 입술에 살짝 축이면서 툴툴거렸다.
“몇 %입니까?”
“10%입니다.”
“혹시 산 값이?”
토마스도 속이 쓰렸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어서 털어놓았다.
“1,450억입니다.”
“완전히 사기 아닙니까?”
하는 일 자체가 주식 차액을 노리거나, 아니면 선물을 전문으로 하는 토마스 입장에서는 거꾸로 사기당했다는 말에 속이 뒤집혔다.
“......설마 오성 그룹에서 그런 실수를 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애초에 오성 그룹은 전자 회사가 핵심이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합니다. 그런 회사가 제약 회사 쪽으로 욕심낸 것 자체가 자멸을 부른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분 매각 때문에 도움을 좀 부탁합니다.”
“브로커 말이군요.”
“이왕이면 실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제가 알기로 그쪽에서 전문 인력이 있지 않습니까?”
“박상철 과장이란 친구가 그 일을 했는데, 안 좋은 일로 갑자기 죽어버렸습니다.”
브로커는 불법적인 일 처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이들이 잡히면, 공범으로 엮여서 쇠고랑 찰 수도 있다.
따라서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꼬리 자르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그 인력이 많을 것 같지만, 보안 때문에 그 숫자는 작을 수밖에 없다. 특히 큰일과 관련되면 더 줄어든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 토니는 결국 혀를 차면서 수첩에서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유오현이란 친구인데, 실력이 괜찮습니다.”
“어떤 친구입니까?”
“혹시 큐비스란 회사 들어봤습니까?”
“구속된 김정현 사장이 설립한 회사 말입니까?”
“네. 그 회사에서 총괄 실무를 담당했던 친구입니다. 믿기에는 좀 그렇지만 이곳저곳에 인맥이 많은 친구입니다.”
“고맙습니다.”
“뭐 어차피 동업자 아닙니까. 그러면 오성 물산 작업은 어떻게 할 겁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하긴 이 일이 급하겠군요. 그러면 저도 계획을 연기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