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착잡한 배경석 교수는 솔직히 최근 와서 지쳤다. 벌써 몇 년 동안에 노력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막상 임상 시험에 들어가기 위해서 걸리는 장애 때문에 힘이 나지 않았다.
그 하나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은 최소 10년 이상이 더 걸린다.
김건중 회장이 과연 그때까지 기다려 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김지수도 뒤늦게 내막을 알자 눈빛이 바뀌었다.
때마침 조민호가 불과 이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밖으로 나타났다.
배경석 교수는 슬쩍 부담스러운 이야기에서 화제를 돌렸다.
“치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 병원에서 무엇을 도와드리면......”
조민호는 손을 들어서 그의 입을 막았다.
“끝났습니다.”
“네? 뭐가요? 설마......”
“배경석 교수님이라고 하셨죠? 실력이 제법이더군요. 하지만 그 제대엽 줄기세포 치료 방식은 부작용이 있으니, 앞으로 환자에게 적용하지 마세요.”
상상도 못한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잠깐만요. 저, 정말 환자를 치료하신 겁니까?”
“네. 아,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의뢰는 두 번 다시 안 받을 겁니다. 이 병원에서 사용한 치료법은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기 바랍니다. 계속 이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국 송장 몇 사람 치우고, 쇠고랑 찰 겁니다.”
조민호는 딱 이 말을 끝으로 조용히 병원에서 나가버렸다.
“......”
최영준 차장은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다가 다급하게 병실로 뛰어가는 배경석 교수와 멀어지는 조민호를 보다가 결국 배경석 교수 뒤를 선택했다.
‘민호군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 해주지 않을 것이 뻔해. 정말 간경화증 환자를 치료한 것일까? 아니 줄기세포 치료법은 아직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잖아. 정말 이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상태가 최악인 간경화증 환자를 이렇게 빨리 치료할 수가 있어?’
의문이 끝도 없이 쏟아났다. 조민호가 이전 다른 환자를 치료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줄기 세포 치료 방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배경석 교수도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영문을 몰랐다.
김지수 역시 조민호를 배웅해주고 나서는 두 사람과는 달리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한 채 다시 병실에 뛰어들어갔다.
이미 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원 스텝 십여 명이 다들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불과 어제만 해도 죽어가던 환자가 멀쩡한 모습에 숨길 수 없는 경악성을 터트렸다.
한린 병원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난리가 났다.
“이럴 수가!”
“박사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맙소사 진짜 치료가 되었잖아?!”
***
이번 치료는 조민호 자신이 한 것이라기보다는 바스클린과 배경석 교수의 제대엽 줄기 세포를 최대한 이용했다.
엄밀히 말해서 배경석 교수의 제대엽 줄기 세포라는 놀라운 치료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문제가 있다면 변형된 혼원기 덕분에 치료가 된 경우라서 일반인은 정확히 어떤 작용을 했고, 그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배경석 교수가 아무리 다시 환자를 재검사하고, 확인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치료한 거야?!”
최영준 차장 역시 놀랍다는 것을 알았지만, 전문가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대단한 건가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실제로 제대혈 줄기세포 이식을 통해서 간경화증이 어떻게 치료되었는지 복잡한 용어를 사용해서 다 일일이 설명했다.
결론만 얘길 하면 이 방식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난치성 질환 치료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최영준 차장은 미리 연락해서 기자 두 사람을 불러 녹음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쉬운 부분만 이해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흥분을 가라앉힌 배경석 교수는 뒤늦게 조민호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 지압사란 분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게 말하기 좀 곤란합니다. 정식 자격증이 있는 분이 아니라서......”
“내가 지금 그따위 의사 자격증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합니까?!”
그도 피식 웃으면서 사실을 말해주었다.
“알죠. 그런데 제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아무리 물어봐도 답을 안 해줍니다.”
“하지만 지금 이 결과를 보세요. 간경화증 관련 혈액 검사 수치가 벌써 35% 가까이 낮아졌습니다. 이대로 이주일만 지나도 환자는 정상 상태에 도달합니다. 간경화증 상태가 나빠져서 한 달이면 사망할지는 모르는 환자였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최영준 차장은 이미 조민호 옆에서 꾸준히 지켜봤기에 조민호가 떠나면서 마지막에 한 경고를 한 귀로 흘러 듣지 않았다.
“혹시 제대혈 줄기세포 효과와 비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하지만 이미 간경화증 환자가 다시 빠르게 치료된 것에 고무된 몇몇 전문의는 기존 진료기록부를 비교하면서 환호를 내질렀다.
“맙소사 성공했어! 교수님, 저희 치료법이 됩니다. 부작용이 사라졌습니다!”
다급하게 진료 차트를 받아서 기존 간경화증 환자가 회복될 때와 비교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식 초기에 환자가 회복되어 갈 때와 똑같았다.
다른 치료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연구해온 딱 그 방식이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최영준 차장을 붙잡고 어떻게 된 것인지 계속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최영준 차장은 안타까워하는 배경석 교수에게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민호군이 이미 말했지 않습니까. 부작용을 해결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아마 그 문제를 해결해서 치료한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 무슨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무려 5년에 걸친 연구였다.
따로 독립한 것도 김건중 회장의 권유를 받아서 이 줄기세포만 팠다. 줄기 세포 권위자라면 전 세계를 누비면서 직접 찾아가서 배웠다.
그렇게 해서 겨우 실마리를 찾았지만 결국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벼랑 끝으로 미끄러졌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 탈출구를 이제 발견했다.
그는 벼랑 끝에 선 사람처럼 마른 침을 삼켰다.
“가, 가만 정말 저희가 이용한 치료법을 이용했다는 말입니까. 지압으로 그게 가능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말입니까?”
“후유, 민호군이 가면서 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하면 지금 저희 방식은 안 된다는 말입니까.”
“답답하시네요. 시간을 줄 테니, 천천히 검토해보세요. 아마 이대로 계속 시험하시다가 정말 사망자를 만들면 고소당할 겁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이제 방법을 찾았습니다. 분명히 해결책이 있을 겁니다.”
최영준 차장은 계속해서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배경석 교수를 밀어냈다.
“저도 좀 바쁩니다. 제가 소송 부분만 따로 빼고, 적당히 각색해서 기사 내겠습니다. 최종 원고는 제가 보낼 테니, 확인도 좀 해주시고요.”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제발 그 지압사란 분에게 다시 연락 좀 해주십시오!”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는 조민호가 얼마나 까칠한지 잘 알기에 슬쩍 병원을 떠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뒤늦게 깨어난 간경화증 환자와 그 가족들이 난리를 쳤다. 특히 보호자는 배경석 교수를 고소해서 감방에 보내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쳤다가 지금은 오히려 무릎까지 끊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제대혈 줄기세포 이식을 고민하는 다른 환자는 뒤늦게 배경석 교수를 붙잡은 채 애걸복걸했다.
배경석 교수는 이미 조민호가 마지막에 한 말을 되새기면서 그들 부탁을 거절했다.
최영준 차장은 이미 제대혈 줄기세포와 관련된 내용을 이미 다 파악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들 사정을 보면서 혀를 찼다.
‘민호군이 좀 자세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설마 힐링 마법같은 황당한 방식은 아니겠지?’
***
김건중 회장도 이미 줄기 세포 치료제가 약사법 소정 의약품이라는 것을 알았고, 임상 시험 계획을 받아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
굳이 배경석 교수를 묵인한 것은 이것저것 다 고려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몰랐다.
배경석 교수는 불법적으로 허위 광고를 내서 환자 지원을 받아서 이 치료법을 시험한 것 역시 그의 암묵적인 압력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안정적인 줄기 세포 치료법을 찾으라는 의도였다.
신약 바스클린 투약 역시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설사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간접적으로 병원에 투자를 지원한 터라 김건중 회장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이런 밑그림을 그렸지만, 솔직히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으음.”
아직도 잘 믿기지 않은 얼굴을 한 채 최일수 환자 병의 증세 자료를 살폈다.
배경석 교수는 계속해서 조민호 타령만 한 채 김건중 회장에게 매달렸다.
“회장님, 제발 그분을 다시 보게 해주십시오. 절대로 이대로 이 연구를 끝낼 수 없습니다. 제대혈 줄기 세포가 성공하면 산업 혁명 못지않은 의료 혁명이 일어납니다. 수억 명의 환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줄 기회입니다!”
그가 모를 수가 없는 내용이라서 오히려 짜증 냈다.
“알아.”
“도와주시는 겁니까?”
“조민호가 이미 얘길 했잖아. 다시 동물 실험부터 하라고. 더 환자 생기면 안 도와준다고 했고, 시체 처리나 준비하라고 경고했다면서? 그러니 포기해.”
“하, 하지만 회장님, 정말 이 치료법의 의미를 모른다는 말입니까?”
안 그래도 이 간경화증 환자 완치 자료를 보면서 머리가 아픈 김건중 회장은 결국 버럭 소리쳤다.
“닥쳐!”
“네?”
“이 실장, 이 친구 좀 밖으로 내 보내.”
서재 앞에 대기해 있던 경호원 한 명이 결국 ‘회장님, 절대로 이 일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라고 읍소하는 배경석 교수를 질질 끌고 나갔다.
이학중 비서실장 역시 혀를 내두르면서도 김건중 회장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지금 결과만 봐서는 제대혈 줄기 세포 치료법을 이용한 것 같아.”
“저도 자문해봤지만 현재 의학 기술로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이학준 비서실장마저 자기에게 의문을 토로하자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겠지. 이봐, 이 실장, 지금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자네가 그 이유를 먼저 찾아야지.”
“죄송합니다.”
“쯧.”
그도 환자 치료 현황만 읽다가 결국 소파 한쪽에 집어 던졌다.
“조민호 그 친구가 신약 바스클린 부작용을 다 공개하라고 했지?”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정말 이대로 진행하실 겁니까?”
김건중 회장은 이미 환자 예후를 읽으면서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잖아. 그 10% 지분을 앨리엇에 넘긴 것도 이것 때문일 것 같아. 또 다른 부작용이나 그 대안도 조민호 그놈은 짐작할 거야. 하, 이거 우리가 놈 뒤통수 쳤다면 제대로 박살 났겠어. 만만치 않은 놈이네.”
“설마 부작용을 터트려서 주주에게 타격을 줄 생각이란 말입니까?”
“그게 맞잖아. 솔직히 괜찮은 방법이잖아. 우리도 그 쓰레기에게 벌써 20%나 뜯겼어. 그놈들 반응을 한 번 지켜보자고.”
신약 허가와 관련해서 생각보다는 이쪽저쪽에서 욕심낸 이들이 많았다. 원칙대로라면 인허가 관련해서 임상 1상 시험 들어가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겠지만, 로비 덕분에 그 과정을 대폭 줄였다.
조민호 능력을 몰랐다면 김건중 회장 역시 오성 바이오 계열사 미래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조민호 그놈도 참 웃겨. 본인 능력을 전혀 생각 안 하나 봐. 이렇게 뻔한 수작을 부리다니.”
이학준 비서실장도 자신의 전공 분야가 나오자 미소 지었다.
“그러면 아예 오성 바이오 신사업을 접을 수 있다는 뉘앙스까지 덧붙이겠습니다.”
“그래.”
‘앨리엇 그놈들 반응이 궁금하군.’
***
오성 바이오 기자 회견은 갑작스러웠다.
[......신약 바스클린에 대한 임상 시험에서 대략 백 명의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대부분 환자는 가벼운 질환이지만 이 중에 네 명 환자는 중증 부작용이 일어났습니다.]
오성 바이오 최태한 사장을 비롯한 나머지 임원진이 모두 나와서 심각한 얼굴로 이번 신약 1상 시험에서 일어난 일을 다 털어놓았다.
“?!”
뜬금없는 소식에 몰려온 기자들은 다들 사진을 찍으면서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신약 바스클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꽤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미국 제약 업계에서는 벌써 수작 부린다는 소문도 났다.
그런데 임상 2상 시험도 아니고, 고작 임상 1상 시험에서 부작용이 났다는 말에 다들 큰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