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그럴듯한 추론이 나왔다.
“혈관염 치료는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스테로이드 제제를 사용해서 용량을 줄여나갑니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면역억제제도 같이 병합해서 투여합니다.”
이 치료 과정이 바스클린 신약 작용과 비슷하다가 가정하면 부작용 역시 비슷하게 나온다.
그녀가 실제 전문의를 통해서 환자 부작용을 살폈다.
결과는 정확히 일치했다.
백명국 문화부장도 워낙에 큰일이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침팬지 같은 동물 실험은 이미 끝났잖아?”
“기간이 너무 짧아서 제대로 실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호오.”
실제로 혈관염 종류나 활성 정도는 개인별로 다 다르다.
“혈관염 치료제가 그래서 만들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제약 회사가 그런 점을 몰랐다면 말이 안 됩니다.”
“결국 오성 그룹에서 김지수를 띄우기 위해서 무리수를 뒀다?”
“네!”
“흠.”
백명국 문화부장은 살짝 고민했다. 덩치가 너무 컸다. 이 기사가 터진다면 김건중 회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이미 한 번 구박을 한 아버지 백상기 편집국장에게 전화했다.
“접니다.”
***
백상기 편집국장은 다른 형제보다 동이일보 후계자로서 나름 앞서나갔고, 최근에 와서 조금씩 자리를 굳혀갔다.
민감한 시기인 탓에 신약 바스클린 임상 1상 부작용 데이터가 그 핵심인 기사 초안을 보자 바로 결정하지 않았다.
지난 김지수 기사와는 달리 이 기사는 오성 바이오를 엿 먹인다.
이 신약 부작용 문제 때문에 지금도 길길이 날뛰고 있을지 모르는 김건중 회장이 열 받아서 자신에게 당장 오성 그룹 광고를 전면 중지해서 보복할 것이다.
‘아깝지만.’
자칫 잘못 먹었다가 배탈 정도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즘 검찰청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조심하자.’
이번 기사는 아쉽지만 접기로 했다.
김미애 기자도 뒤늦게 지시를 받고 나서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확실히 동이 일보같은 곳에서도 터트리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이렇게 귀한 소재를 그냥 묵힐 수만은 없었다.
아는 인맥을 최대한 다시 살펴보았고, 그중에 적임자 한 사람을 찾아냈다.
‘아, 최호 선배가 있었구나.’
***
최호 기자는 과거 동이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큰 특종을 터트리면서 일약 하이라이트를 받았다.
불행히도 백상기 편집국장에 찍히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다른 언론사로 이직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최호 기자는 그 어떤 외부 압력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최근 스포츠 뉴스란 작은 미디어 회사에 편집국장으로 입사했다.
안 그래도 뭔가 크게 터트릴 건수를 찾는 중이었는데, 김미애 기자에게서 오성 바이오 1상 임상 부작용 자료를 받았다.
최호 기자는 역시 반골답게 상대를 따지고 않고 사실 확인에 더 집중했다.
‘오성 그룹이라, 재미있네.’
결국 독단적으로 이 조민호 제보 기사를 완벽하게 각색하고, 빠짐이 없도록 다 집어넣어서 이 기사를 터트렸다.
처음에는 다들 이 기사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루에 쏟아지는 기사가 너무 많아서 묻혀버렸다.
문제는 부작용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 중에는 제법 상태가 나쁜 환자가 있었다.
그 한 사람이 폭로하자, 그다음 폭로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눈치만 보던 짜리시 언론이 가장 먼저 이 기사를 물었다.
신약 바스클린 부작용 기사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이미 부작용 때문에 발칵 뒤집힌 오성 그룹 본사에서 이 기사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한 유명 연예인의 유부녀 성 추문 기사를 중아일보를 통해서 대대적으로 터트렸다.
연예인 스캔들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 기사에 휩쓸려서 이 기사는 뜨지 못했다.
후속 기사는 최근 갈등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검찰청과 법무부 혈전을 폭로했다. 최근 법무부가 검찰청 내의 특수 조직에 대한 축소안을 내놓으면서 갈등이 더 심해졌다.
‘대단하네.’
최호 기자의 눈은 오히려 더 활활 타올랐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
조민호는 계속 신약 바스클린 부작용에 대해서 살폈기 때문에 처음에는 김미애 기자의 무반응에 실망했지만, 곧 최호 기자가 쓴 기사를 발견했다. 딱 자신이 김미애에게 제보했던 기사와 같은 내용이었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성 그룹 눈치를 봤다고 판단했다.
‘역시 오성이 손을 쓴 건가?’
그로서는 이미 검찰청과 법무부 갈등이 심해지는 것을 봤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딱히 오성 그룹에 무슨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앨리엇 때문에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결국 최영준 차장에게 도움을 청할까 싶어서 연락했다.
그런데 최영준 차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직접 찾아왔다.
“큰일 났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후에 전공 분야에 푹 빠져 있던 조민호는 이 방문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최호 기자 기사를 통해서 어림짐작했다.
“신약 바스클린 부작용 때문입니까?”
“어? 그걸 어떻게 알았나?”
“하하하, 제가 이미 예견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이 사경에 처할 정도는 아니었지 않나?”
조민호도 리핑 혼원기를 떠올리면서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바스클린 복용한 후에 간경화증이 악화된 환자가 나왔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임상 1상 시험에서 왜 그런 환자를 상대로 시험합니까?”
“그게 간경화증 치료 중에 혈관염 증상이 나타나서 기존 치료제를 사용해도 먹히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사용했나 봐.”
“하, 미친 것 아닙니까?”
“밑에 담당의가 아직 레지 1년차라써 실수한 거라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아.”
최영준 차장도 오성 바이오 내부 정보를 통해서 얻은 이야기다. 김건중 회장이 이 부작용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하자 최영준 차장에게 넌지시 그 정보를 흘려서 조민호 귀에 들어가도록 손을 썼다.
아직 오성 바이오 지분을 가진 조민호라면 적극 나설 것으로 생각했다.
오성 바이오 지분 구조를 잘 아는 최영준 차장은 조민호를 걱정해서라도 자신이 얻은 정보를 다 털어놓았다.
“간경화증 환자에게 제대혈 줄기 세포 이식해서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에 성공했어. 그런데 지난주에 부작용이 발생하자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를 완치시키려고 무리수를 뒀나 봐.”
제대혈 줄기세포는 다른 사람의 제대혈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다.
출산 시 폐기되는 제대혈에서 얻은 치료제라써 윤리적인 문제에서 벗어난다.
대신에 제대혈 줄기 세포 치료제는 자신의 세포가 아닌 터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가 있었다.
조민호는 혀를 찼다.
“과욕이군요.”
“그래.”
“결국 의료 사고인데, 그게 문제가 됩니까?”
“자칫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어. 비록 직접적인 바스클린 문제가 아닌 제대혈 줄기 세포 이식 실패지만 상황에 따라서 문제가 될 수 있어. 기사를 신약 바스클린 탓으로 악의적으로 쓰면 오성 바이오가 받는 타격이 엄청날 거야!”
“그건 곤란하군요.”
조민호는 뒤늦게야 만약 이 의료 사고가 커져서 자칫 임상 시험 중에 사망한 일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곤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작용 이슈가 터져서 앨리잇이 지분을 토하는 것이지, 사람이 사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이 좀 꼬이네.’
말 못한 사정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수련을 위해서도 다양한 환자를 접하고 싶었다. 이런 기회라면 그 자신이 더 원하던 것이었다.
“그 환자는 어디 있죠?”
“한린 병원에 있네.”
조민호는 그렇다고 무료로 이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공짜는 아닌 것 아시죠? 가능하면 환자가 입원한 병실만이라도 다 치워서 괜히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됩니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물론이네. 그런데 간경화증 환자도 지압으로 치료할 수 있는가?”
굳이 질병이 뭔지 몰라도 그 자신의 혼원기라면 치료 시간과 혼원기 소모가 달라질 뿐이다. 치료 못 할 환자는 없다.
“당연합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향후 오성 바이오 측에서 신약 바스클린 관련 부작용에 대해서 기자 회견을 통해서 다 공개를 하세요.”
“그건......휴우, 알겠네.”
***
김건중 회장도 뒤늦게 바스클린 부작용에 대해서 보고받았고, 비밀리에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하지만 사경에 처한 환자가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급한 불을 꺼야 한다고 판단하자 조민호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었다.
이 사실은 곧 한린 병원장 배경석 교수에게도 전해졌다.
과거 오성 의료원 원장을 지냈고, 독립하고 나서도 오성 의료원과 꾸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제대혈 줄기 세포 이식에 대해서 꾸준하게 연구했다.
이 연구는 유전병 치료에 관심이 많은 김건중 회장에게서 직접 자금 지원을 받아서 진행했다.
최근 이식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세계 최초로 간경화증 환자를 치료했다는 점에서 언론을 통해서 홍보했다.
제대혈 줄기 세포를 이용해서 치료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병에도 응용할 수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터진 것은 이제 치료가 잘 끝나간다고 생각한 환자다.
간경화증 치료를 위해서 처방을 하면 혈관증 증상이 발생했고, 더 심해졌다.
면역 기전에 이상이 생겼다.
이게 제대혈 줄기 세포 이상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간경화증 자체가 문제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거의 수년에 걸친 모든 노력이 공염불이 될 상황이었다.
배경석 교수도 당황했지만, 그 밑에 스탭 역시 패닉에 빠졌다.
결국 급한대로 혈관염을 치료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는데, 상황은 오히려 더한층 나빠졌다.
그 다음부터는 이게 혈관염을 먼저 치료해야 할지, 아니면 간경화증에 집중해야할지, 그것도 아니면 제대혈 줄기 세포 부작용에 파야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결국 환자가 더 나빠지기 전에 바스클린을 사용해버렸다.
그런데 처음에는 오히려 효과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안 좋은 현상이 나타났는데, 간경화증이 더 빠른 속도로 나빠졌다.
결국 김건중 회장에게도 보고했는데, 예상 밖의 지시를 들었다.
그는 영문을 잘 몰랐지만, 김건중 회장 지시받은 대로 치료비 1억을 약속한 장소로 보내면서도 한숨만 내쉬었다.
‘회장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모르겠어. 지압사라니.’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최영준 차장과 동행한 조민호였다.
조민호는 간경화증에 대한 의학 자료를 꼼꼼하게 살피는 중이었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아, 최 차장, 소식 들었네. 안 사람이 건강해졌다면서?”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이 분은?”
그는 자신을 의심하는 배경석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압사입니다.”
최영준 차장이 대신 나섰다.
“여기는 아무래도 병원입니다. 혹시라도 문제의 소지를 남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
의사가 아닌 사람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다만 조민호가 하는 것은 겉으로 봐서는 지압이라서 문제 자체는 안 되지만 괜히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환자나 안내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배경석 교수는 이미 사람을 비워둔 병원 통로를 따라서 안내해주면서도 자료를 살피는 조민호를 힐끗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설마 간경화증에 대한 책은 아니겠죠?”
“맞습니다. 간경화증은 저도 처음이라서요.”
“농담이시죠?”
“진담입니다만?”
“......이게 어떻게 된 건지?”
크게 당황한 배경석 교수는 역시 난감한 최영준 차장을 쳐다보았다.
최영준 차장이라고 해서 조민호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조민호가 결국 혀를 찼다.
“지압이란 게 꼭 병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산은 산이듯이 지압은 지압일 뿐입니다.”
“하면 그 자료는 왜 보는 겁니까?”
“그 병이 뭔지 전혀 모르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현대 의학에 심취해서 최소한 뭔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그게 나중에 저만의 의학, 아니 지압학을 집대성할 때 도움이 되니까요.”
“......지압학, 네. 그게......”
대화할수록 영문을 알 수 없는 배경석 교수는 창백한 눈으로 최영준 차장을 쳐다보았다.
최영준 차장은 결국 김건중 회장 이름까지 걸고 넘어갔다.
“이번 일은 결국 배 교수님 스탭이 실수한 것입니다. 그러니 김건중 회장님 말씀도 있으니, 그냥 지켜만 보십시오.”
“후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