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78화 (78/176)

#078

당연히 너무 방만해서 코드 의미 전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알아본 것은 리핑 재발 때문에 손을 쓴 부분이다.

조민호는 이 짧은 실마리를 이용해서 계속 거꾸로 타고 올라갔다.

그 끝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머지 부분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작용 환자를 더 경험해야 하나?’

***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이용식 법원행정처장이 뜻밖에도 구속적부심을 청구해서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김정환 검사는 드디어 무영 그룹 본사에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하지만 무영 그룹은 무려 여섯 명의 변호사를 동원해서 수사와 관련이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일일이 태클 걸었다.

이 압수 수색은 무려 15시간이나 계속되어서 뉴스에도 나왔다.

조민호도 혀를 내두른 채 이 황당한 압수 수색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기생하는 대기업 수사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자신이 끼어들 일이라 아니라서 겨울 방학 내내 도서관에 털어 박혀서 부작용 분석 작업에 빠졌다.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비슷한 패턴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했다.

이전에는 그저 방만하다고 할 정도와는 달리 경험적으로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한다는 정도까지는 조금씩 이해했다.

역시 이론은 한계가 명확히 존재했다.

그도 아쉬워하면서도 바스클린 임상 1상 시험 결과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겨울 방학이 끝났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4학년 1학기였다.

하지만 새로 입학한 새내기에는 새로운 출발점이나 마찬가지다.

한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면서 대학 분위기는 활기에 넘쳤다.

한국대는 지난 아픔 때문인지 뜻밖에 대학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는데, 바로 올해가 마지막인 이들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취업난이 더욱 심해지면서 일자리를 찾아서 움직이는 이들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조민호 역시 상반된 대학 분위기에 혀를 차면서 고체 물리학2를 수강했다.

취업을 걱정하는 몇몇 안면이 있는 이들은 토익을 붙잡고 끙끙 앓았고, 다른 몇 몇은 채용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고심했다.

박진민과 김영탁 역시 지난 학기와는 달리 안색이 심각했다.

다만 두 사람은 한 가지를 떠올리고는 조민호 양쪽에서 잡아 일으켰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갑자기 왜 그......”

이제는 대부분 언론에서도 잠잠한 김지수 기사가 난 신문을 앞에 내놓았다.

박진민은 직접 커피까지 뽑아서 조민호 앞에 대령한 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번 썰 좀 풀어봐라.”

“뭘?”

“신문 기사 보면서도 몰라. 이렇게 핫한 여자 친구가 생겼는데, 놀랍지도 않아?”

두 사람은 잔뜩 흥분했다. 이미 그들은 사전에 김지수를 알았지만, 이전까지는 김지수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뒤늦게야 마치 가볍게 알고 지낸 친구가 세계적인 톱스타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언제 적 이야기하는 거야?”

“취업 준비로 우울한 우리 기분 좀 풀어주라. 대리 만족도 하고 싶다.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여자 친구 아니다.”

이전이라면 삐딱하게 나갔을 박진민이지만 면접 사태를 경험한 후에 조민호를 인정했다.

“그러면 현재 섬타는 중이야?”

“아냐.”

“너도 재벌 3세잖아. 약간 처진다고 해도 아쉬운 것은 없어. 난 두 사람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진담이다.”

이제 조민호와 김지수 관계를 애인 사이로 믿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저 남자 신데렐라가 된 조민호가 부러울 뿐이다. 과거 대학 1, 2학년 때는 같이 공사장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부대낀 관계였기 때문이다.

“늘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자고 일어나니, 재벌 3세가 되었고, 그 다음 날이 되니 오성 그룹 막내딸 미래 남자 친구가 되었잖아. 솔직히 부럽다. 나는 꿈에서도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했어.”

조민호도 상대가 부드럽게 나오자 혀를 찼다.

“난 오히려 불편해.”

“그렇지. 나도 내 여친이 재벌 막내딸이면 왕비처럼 대우했을 거다. 그 기분 이해한다.”

“그래서 더 싫다.”

두 사람은 힐끗 조민호 얼굴을 살피면서 이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엉뚱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에 집요하게 두 사람 에피소드를 죽으라고 파기 시작했다.

“나중에 하자.”

조민호는 매달리는 두 친구 모습에 혀를 차면서 새삼 언론의 영향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앞으로 계속 자신이 치료한 환자 수가 늘어난다. 환자 성향을 확인하지만, 환자 지인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봤다.

문득 김지수에게도 타격이 될 부작용 사태를 떠올렸다.

‘최영준 차장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손을 쓰기는 해야겠어. 그런데 부작용 사태가 터지면 어떻게 될까?’

***

장연주도 오성 그룹 2차 면접을 볼 때만 해도 과연 오성 그룹에 입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했다.

더욱이 오성 채용 비리가 터지고 난 다음이라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기뻐서 며칠 동안 친구와 같이 파티했다.

아직 계열사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오성 전자로 생각했다.

그녀는 취업 때문에 즐거웠지만 당장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다.

장연주는 결국 박사 과정 휴학계를 먼저 냈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다.

마침 학과 게시판에서 오성 바이오 임상 1상 시험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혼자 이 일을 하기는 그래서 결국 아는 지인과 같이 이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아르바이트 금액도 괜찮고, 임상 1상 시험에서 부작용이 없다고 확신했다.

시험 첫날은 괜찮았다.

둘째 날 역시 특이 사항이 없었다.

임상 1상 아르바이트도, 테스트를 진행하는 연구원도 미소 지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갑자기 설사하기 시작하더니, 구토가 심해졌다. 설마 임신했나 싶어서 테스트기로 확인해보았지만 아니었다.

친구 중에는 피부에 붉은빛이 나거나, 심지어 두드러기가 생겼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했다.

이 사실은 곧 오성 의료원 오재호 박사에게도 알려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모르겠습니다.”

다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전임상 동물시험을 거쳐서 임상 허가를 통과했다. 따라서 크게 문제가 없어야 한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부작용이나, 최대 약내성, 약동력학까지 다 고려했다.

“당장 시험을 중단해.”

“하지만 그 원인을 파악하려면 좀 더 두고 보는 것이 어떨까요?”

“미친 것 아냐. 과거 프랑스에서 임상 1상 시험할 때 사고 나서 10명이 중환자실로 이송되고, 2명이나 뇌사 상태에 빠진 거 몰라?!”

침팬지 시험을 추가로 더해서 안정성이 다 확인된 신약진통제 임상 1상 시험이었다. 그런데 사람 몸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아, 알겠습니다.”

그들은 부랴부랴 하던 모든 임상 1상 시험을 중단하고 말았다.

***

장연주도 임상 1상 시험에 참가했지만 의외로 이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이들은 많았다.

한국대 지원자는 아르바이트 소요 자체도 많았을 뿐 아니라, 그 아르바이트 비 자체가 2.5배나 되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오성 바이오 측에서 조민호가 다니는 한국대라는 것을 감안해서 아르바이트 숫자를 더 늘렸다.

그 대상에는 뜻밖에도 박진민이나 김영탁 역시 있었다.

“아, 죽겠다.”

두 사람은 눈물마저 글썽이면서 책상 위에 얼굴을 박은 채 축 늘어졌다.

조민호는 또 귀찮게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혀를 찼다.

“하필이면 왜 임상 시험에 참가한 거야?”

“돈을 많이 주잖아.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경쟁률이 10:1로 장난 아니었어. 우린 그 살벌한 경쟁을 뚫은 사람이라고.”

“위험하다는 거 몰랐어?”

“오성 그룹의 오성 바이오에서 하는 일이잖아. 그래서 믿은 거야.”

불행히도 임상 1상에서 위험한 일이 생긴 경우는 찾아보면 적지 않다. 임상약을 복용해서 머리가 부풀어 오르거나, 류머티스 관절염 약을 복용해서 장기가 손상되는 일도 있다.

“너희 아직 세상 무서운 것을 모르는구나. 우울증약을 복용해서 사망하는 예도 종종 있었다.”

“설마?”

“도서관 가서 자료 찾아봐. 다 나오니까. 모든 약은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어.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임상시험이니까. 그 정도는 알고 아르바이트했어야지.”

“진작 알려주지.”

‘하지만 아르바이트 비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거부하기 어려웠어.’

두 사람은 속으로 툴툴거렸지만 차마 내색하지는 않았다.

조민호도 옆에서 징징거리는 두 사람이 귀찮아서 위로하는 척하면서 맥을 한 번 확인했다.

굳이 고민하고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리핑용 혼원기를 연구하면서도 머릿속에 그린 청사진 일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구나.’

리핑용 혼원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약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

리핑에게 나타난 부작용은 따지고 보면 그 특성값의 미묘한 차이 때문인데, 그런 부분은 일반인에게는 맞지 않았다.

부작용의 근원이었다.

‘지나친 약력은 오히려 독이 되는구나.’

과도한 약력이 오히려 면역 기능을 저해했다.

조민호는 겨울 방학 내내 수련한 그 감을 토대로 해서 리핑용 혼원기를 살짝 바꾸었다. 12가지를 교묘하게 섞었다.

권태감과 피로감으로 고통받던 박진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시원하다?”

관절통과 식욕 불량으로 지친 김영탁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두 사람은 갑자기 고통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했다. 다른 약(?)을 먹어도 회복되지 않은 증상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조민호는 그런 두 사람을 모른 척했다.

“꾀병이냐?”

“아냐, 정말 아팠어.”

“지금도?”

“지금은 괜찮은데......”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갸웃하면서 몸을 살피다가 화들짝 놀랐다.

“진짜 다 나았어!”

피식 웃었다.

“이제 가서 일 봐. 난 지금 보는 책이나 더 볼 생각이다.”

두 사람은 몸이 괜찮다고 확신하자 뒤늦게 조민호가 보는 의서를 살폈다.

“너 진짜 의대 편입할 생각이야?”

“아니 개인적인 호기심이라고 해두자.”

“기본기가 있어야 볼 수 있는 것 아냐?”

“여기 번역본 가지고 비교해서 보면 그럭저럭 볼만하더라.”

“그래.”

두 사람은 신기한 눈으로 조민호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제 졸업반이 전공과목도 아닌 의학 서적을 공부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연예인과 재벌 3세를 걱정하는 게 가장 멍청한 일이겠지.’

***

조민호도 의대생이 아니라서 전공의처럼 의학을 깊이 파지 않았다.

최소한 기본적인 의학을 이해하는 정도로만 파고들었다.

특히 두 친구를 치료하면서 신약 바스클린에 포함된 부작용에 대해서도 파악했다.

‘신기하네, 고작 이렇게 사소한 변화가 면역 체계에 영향을 준다니.’

조민호는 느긋하게 어디에 손을 쓰야 할지를 조사했지만 굳이 이 사실을 오성 바이오 측에는 따로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

아니 그는 굳이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섰다. 오성 그룹 행태를 봐서는 이 부작용을 덮으려고 할 것이다. 보안을 위해서 최영준 차장보다는 김미애 기자에게 익명으로 제보했다.

‘잘 할까?’

***

오성 그룹에서 갑자기 기자 회견을 한 오성 바이오는 김지수 때문에 뜨거운 감자였다.

이 감자의 핵이 바로 신약 바스클린이었다. 지난주에 이 신약 바스클린 임상 1상이 진행되었다는 기자 회견이 나간 후로 다시 한동안 시끌시끌했다.

김미애 기자 역시 본사로 복귀와 동시에 김지수 이슈를 터트리면서 일약 주목을 받았다. 이 뜨거운 흥분을 쉽게 가라앉힐 수가 없었는데, 마침 제보 하나를 확인했다.

굳이 그 내용을 믿기보다는 직접 두 발로 뛰어서 한국대 두 사람을 우선 확인했다.

실패였다.

‘아, 씨.’

가짜 제보가 아닌가 실망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추가로 확인했다.

‘사실이야.’

아직 오성 바이오 내부에서는 쉬쉬하고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를 받은 한국대 재학생은 여러 가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약 바스클린이 어지간한 신약이라면 다 통과되는 임상 1상에 실패한 것이다.

그녀는 친한 의사 친구와 같이 신약 임상에 참가한 아르바이트생을 일일이 확인했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 것과는 달리 고통 받는 숫자는 생각보다는 점점 더 늘어났다.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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