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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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곧바로 앨리엇 본사에 이 안건을 보고하지 못했다.
앤디가 FBI에 잡혀간 후에 재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앨리엇 본사를 비롯한 계열사 곳곳은 FBI의 추가 압수 수색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럭저럭 꾸려갔다.
문제는 앨리엇이 약해진 모습을 보이자 소송이 이어진 것이다.
과거 그들이 사용한 수법 때문에 재산상에 피해를 본 이들이 연합 전선을 구축해서 공격했다.
토마스는 이 분위기 속에서도 인내를 가진 채 임원진에게 보고했다.
처음에는 당면한 일 때문에 부정적이던 그들도 뒤늦게 한국 제약 업계를 조사한 끝에 랙산이나, VGA 제약 동향을 파악했다.
그들 머리 위로는 미사일 폭격이 이어졌지만, 마음을 살짝 바뀌었다.
‘혈관염 치료제라면 그 시장 규모가 최소한 수십 조 단위야.’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오성 바이오다.
그들은 토마스를 믿기보다는 오성 그룹 김건중 회장을 더 믿었다. 이미 오성 그룹 지분 매입 작업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20배는 너무 많아. 1,000억 정도로 낮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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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도 앨리엇의 1,000억 제안을 들고 나서는 고민했다. 원칙적으로 좀 더 반대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좀 애매했다.
보통 임상 1상 정도는 어지간하면 통과될 것이라 봤었다.
아닌 경우가 뜻밖에 많았다.
그런데 바스클린 역시 이 예외적인 경우에 속할 수 있다고 봤다.
신약 바스클린의 치료 모델은 바로 치료가 끝난 후에 재발이 난 리핑 혼원기를 바탕으로 한다.
이 논리라면 신약 바스클린 역시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굳이 먼저 나서서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1상에서 실패할지도 몰라.’
이제 곧 있으면 임상 1상에 들어간다. 아마 언론도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이다.
안 그래도 김지수 사태 때문에 오성 바이오 관심은 더욱 커져 있어서 만약 부작용 문제가 터지면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흘러갈 것이다.
모르기는 몰라도 한국 언론은 미친 듯이 오성 바이오에 관한 반대급부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한 편으로 본다면 오성 그룹 김건중 회장을 압박할 수단이었다.
조민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만약 이런 사태가 없었다고 해도 내가 다른 수단을 만들어야 했을지도 몰라.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어. 결국, 문제는 역시 타이밍이야.’
자칫 협상을 질질 끄는 중에 임상 1상 실험이 진행되어서 폭탄이 터지면 이 좋을 기회가 그냥 물 건너가고 만다.
이 일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앨리엇이 돈이 많다고 해도 무려 750억 손실을 보고 난다면 다른 지역은 몰라도 한국 사무소에는 타격이 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상장 전 종목이라서 피해를 보는 개미도 없었다.
‘이 정도면 워밍업으로 좋겠지?’
조민호는 결국 이런저런 고민 끝에 조수현 회장에게 투자 원금 250억을 더해서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타결 보라고 협상 가이드 라인을 전했다.
“1,250억으로 하자고 해서 그쪽에서 콜하면 바로 매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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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 주식 거래는 아무래도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아직 그 주식 가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자본금과 회사 자산이다.
현재까지 2,000억 정도가 투자된 상황에서 이게 기준이 된다.
그런 회사 지분 10%가 5,000억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조수현 회장도 잘 알고, 토마스 역시 누구보다 잘 알았다.
둘은 결국 한쪽에서는 가격을 올리고, 다른 한 쪽에서 매입가를 낮추는 협상에 들어갔다.
조수현 회장은 이미 조민호에게 날짜, 최저 매입가를 들었기 때문에 이 일을 마냥 여유롭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정말 1상에서 부작용이 생길까?’
토마스는 오히려 조수현 회장 모습에서 실 소유자가 얼마나 절박한 처지인지 깨달고는 오히려 시간을 더 끌었다.
앨리엇 입장에서는 이 오성 바이오 주식이 괜찮은 매물이기는 하지만 그들 내부 사정도 평소와 같지는 않았다.
조수현 회장은 바로 그런 점을 감안해서 타협점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금액은 1,450억이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최하 2,500억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정말 부작용이 생기는 거 맞아?”
조민호는 오히려 계약서에 만족했다.
“네. 더욱이 아직 오성 바이오 지분을 이용한 오성 그룹 지배 구조 변화도 없습니다. 심지어 완전한 신약 라이센스도 없습니다. 복제약이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려면 최하가 5년은 지나야 합니다.”
“너무 아쉽다.”
“가장 큰 문제는 굳이 큰아버지가 앨리엇을 너무 자극해도 안 됩니다. 그게 차라리 그들 시선에서 피할 길입니다.”
“으음, 알겠다.”
그는 이 일이 결국 오성 그룹과 앨리엇 갈등을 부추길 것이라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자기 턱밑에 칼을 겨눈 상대를 과연 김건중 회장이 용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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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어지간한 일에는 표정이 없는 김건중 회장 안색이 단단히 굳었다.
“조수현 회장이 10% 지분을 앨리엇에 넘겼다고?”
이학준 비서실장도 살짝 긴장한 채 대답하면서도 아직 영문을 잘 몰랐다.
“네. 사전에 조수현 회장에게 통보를 받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너무 빨리 결정나는 바람에 끼어들고 말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김건중 회장 역시 얼떨떨했다.
“설마 신약 바스클린이 임상 1상에서 실패할 거로 생각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안색은 평소와는 달랐다.
“직접 이야기해봤어?”
“갑자기 중국에 출장을 가버려서 전화상으로만 통화했습니다.”
두 사람은 혼란스러웠다. 딱 봐도 조수현 회장이 오성 바이오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과, 그럼에도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그 안건이 확실치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건중 회장도 아마 다른 사업이었다면 믿지 않았을 내용이라는 것을 어림짐작했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일을 대비해서 지분을 넘긴 것이지만 답답하군.’
“나머지 10% 지분은?”
“그것은 변화 없습니다.”
“이상하군. 가만 1,450억이라고 했어?”
“그렇습니다. 250억 사들인 지분을 그 가격에 넘겼습니다.”
“결국 1,200억은 번 셈인가?”
“네.”
두 사람은 묘한 표정을 한 채 고개를 갸웃했다.
비록 차익은 컸다.
하지만 오성 바이오가 본궤도에 오르고, 앞으로 코스피 상장 2년 후에 기업 가치가 폭주한 후에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할 바가 아니다.
김건중 회장은 결국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임상 1상 들어가기 전에 철저하게 더 확인해 봐. 뭔가 있지 않고야 이 일은 도저히 설명이 안 돼.”
“알겠습니다.”
그리고.
“앨리엇이 지금까지 우리 오성 그룹 지분 매입 현황부터 시작해서 다시 검토해봐. 그 지분을 돌려받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해.”
“네.”
아니 구체적으로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앨리엇 한국 사무소에서 진행한 일을 다시 분석해서 직접적인 타격을 줘. 필요하다면 검찰이던, FBI던 다 이용하란 말이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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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도 최영준 차장 통해서 오성 바이오가 부산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보다는 1,200억 차익이 아니라 앨리엇을 등쳐먹을 것에 희희낙락했다.
최영준 차장은 지분을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는 조민호 행동을 걱정했다.
“진짜 괜찮겠나?”
“다 잘 될 겁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냐. 김건중 회장도 이번 일 때문에 자네를 의심할 수도 있어.”
“우리가 언제 서로 믿는 관계였습니까?”
“지수도 있지 않은가.”
“누가 보면 두 사람이 서로 사귄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게......”
눈치를 본 최영준 차장도 차마 김지수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것까지 말하지 못했다. 요즘 주말만 되면 김지수가 집으로 찾아와서 그에게 이런저런 푸념을 털어놓았다.
아니 김지수는 거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내 정연희를 설득했다.
그렇지도 않아도 조민호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정연희도 두 사람이 잘 어울릴 것이라 봐서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민호는 남녀 밀당에 대해서는 초짜보다 못했다.
“남의 개인사를 함부로 끼어들지 마시죠.”
“아, 알겠네. 하지만 이번 지분 매각이 잘못되면 상황이 복잡해져. 만에 하나라도 1상 시험이 성공하고, 거기에 2상 시험까지 통과되면, 오성 바이오 기업 가치는 천정을 정할 수 없어.”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후유, 알겠네.”
뒤늦게 조민호의 놀라운 치유 능력을 떠올린 최영준 차장도 혀를 내둘렀다.
사실 그도 미처 간과한 부분이 있는데, 조민호는 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1,000억이던, 5,000억이던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진행한 일도 따지고 보면 돈이 아니라, 앨리엇을 본격적으로 엿 먹일 목적이었다. 자기 뒤통수를 친 놈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었다.
조민호는 굳이 자기 내심을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걱정되면, 앨리엇 한국 지사나 잘 지켜보세요.”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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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450억 자산이면 앞으로 돈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참 은행 빚이 있었군.’
중아 홀딩스 5% 지분으로 1,000억과 심지어 이 지분 이용해서 구입한 상하이 빌딩을 이용해서 추가로 은행에서 500억 대출을 받았다.
모두 합쳐서 1,500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다 거품이었다.
그 빚을 이번 거래 한 방에 다 해결했다.
‘좀 더 부를 걸 그랬나?’
상하이 빌딩 임대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은행 이자는 그럭저럭 문제가 안 된다.
조민호가 딱히 돈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아니지만 빚은 영 꺼림칙했다.
‘이제 임상 1상 부작용을 부풀려서 앨리엇이 매입한 저 지분을 토해내게 하는 것이 중요해. 정체불명의 차명 투자자 역시 같이 흔들어보자. 김건중 회장도 지분을 매각할까? 아니면 오성 바이오 사업을 축소할까?’
조용히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일이지만 재미는 나쁘지 않았다.
‘심심하지 않아서 좋네.’
결국 남은 일은 한 가지다.
바로 그 자신의 수련이다.
전생이라면 동굴 폐인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방학 중에도 아침 9시에 도서관을 찾아서 부작용 테마를 팠다.
조민호도 처음에는 이 신약 부작용 주제에 대해서 잘 몰랐다.
막상 그 분야를 파헤치면서 깊이 들어가자 생각보다는 그 범위가 넓었다.
‘매년 신약 부작용 때문에 10만명이 사망한다니.’
결국 신약 바스클린 개발 자료를 꺼내서 해당하는 분석지표를 일일이 확인했다.
이 지표 자체는 오성 의료원 개발진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지만, 그 결과 자체가 그렇지는 않았다.
조민호는 그 지표 중에서 리핑 혼원기 부작용에 해당되는 부분을 따로 골라냈다.
그다음은 과거 그가 이미 사전에 표시해둔 부분까지 다 정리했다.
각 데이터 표준이 의미하는 기준을 토대로 해서 리핑 혼원기를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줘야 할 지에 대해서 파악했다.
‘1mm 리핑 혼원기 변화도 생각보다는 그 차이가 크구나.’
12가지 혼원기 특성이 다 달라지면 나올 수 있는 경우는 무한에 가깝다.
조민호조차 이 복잡한 변화가 이루는 인체의 소우주를 사색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규칙성이 있어?’
이상한 일이었다.
리핑 혼원기에 변화를 주면 변화가 되는 노드와 에지가 생겨난다.
그 분기점에 따라서 분석지표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오성 의료원 연구진 능력이 탁월해서인지 그 연구 기록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했다.
얼핏 보통 사람이 봐서는 암호북처럼 보인다.
아니 실제로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이 일부이기는 하지만 컴퓨터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어디까지나 제한된 부분이었다.
그 결과조차 아직 제대로 의미를 모르거나, 아니면 대부분 그냥 간과하고 넘어갔다.
조민호는 그 변화가 리핑 혼원기 작업할 때 사용한 흐름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알고리즘은 조민호조차 마의에게서 배운 적이 없는 내용이었다.
‘하긴 당시 과학 기술로는 이 본질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어.’
조민호는 이 새로운 이론에 푹 빠져서 보고 또 보았다. 이제까지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저 막연하게만 여겼던 그 기준에서 정교한 규칙성을 조금씩 발견했다.
‘이게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