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76화 (76/176)

#076

앨리엇은 얼핏 한국 활동이 그냥 조용한 것처럼 보였다.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진행 중인 소송이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국에 도피한 박상철 과장이 죽기 직전에 남겨 둔 자료 일부 때문이었다.

이 자료는 과거 박상철 과장이 일을 진행하면서 남겨둔 자료였다.

결국 앨리엇 임원은 무더기로 소환되어서 조사를 받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환당한 이들 반응이었다.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FBI 수사관은 실로 황당했다. 더욱이 대규모 변호사 군단이 나서는 상황이라서 자기 뜻대로 수사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증권에 넘긴 상하이 빌딩 매각과 관련해서 후환을 염려한 장청리 부장이 슬쩍 다른 채널 통해서 FBI에 중국 앨리엇 투자와 관련해서 앤디가 한 불법을 제보했다.

앤디는 중국에서 발 빠르게 철수했지만, 미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탈세를 비롯한 무려 5가지 협의로 FBI에 체포되었다.

앤디를 비롯한 중국 지사 앨리엇 직원이 체포되면서 정체된 앨리엇 수사 분위기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바뀌었다.

바로 청부 살인 혐의 때문이다.

앤디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그 일이 일어난 곳이 중국이었다.

FBI조차 자기 영역을 벗어난 중국 내의 일까지 재조사할 수는 없었다.

이 와중에 한국 검찰청과 비슷한 외압이 FBI에 가해졌다.

사건 자체가 중국. 미국의 잠재적인 적대 국가다. 굳이 그 중국을 이용하려한 앤디를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FBI가 그런 어설픈 국익 논리에 휩쓸리지 않은 채 원칙대로 수사했다.

결국 앨리엇 본사는 결국 하루하루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한국 사무실을 담당했던 토마스는 그저 눈치만 살폈다.

박상철 과장이 토마스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토마스가 가능하면 박상철 과장에게 지시하면서도 용의주도하게 불법적인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그었다.

덕분에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는 없어서 혹시라도 이 사태를 돌릴 수 있는 괜찮은 대박 아이템을 살피기만 했다.

‘오성 바이오 신약이라 아쉽네.’

아마 이 사태가 터지기 전이었다면 벌써 오성 그룹 쪽에 손을 썼을 것이다.

‘오성 물산 지분 매입 중단된 것도 아쉽고.’

이미 앨리엇은 오성 그룹 지배 구조와 관련이 있는 오성 물산 주식을 계속 노려서 매입했다.

비상장 회사인 오성 물산 지분을 매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일과 관련해서 이쪽저쪽에 로비한 이도 박상철 과장이었다.

‘능력이 있는 친구였는데, 설마 그렇게 어이없이 가버리다니.’

이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앨리엇 지분이 있는 에르메스 펀드 토니가 직접 그를 찾았다.

“오성 물산 작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이 얼마인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대로 그냥 방치하면 손실이 막대합니다!”

오성 물산 지분 매입은 비상장 종목을 사들이는 것도 있지만 오성 그룹 지배 구조와 관련이 있어서 특히 오성 그룹 시선을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 매입 과정도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 지저분한 일 처리를 한 사람이 바로 박상철 과장이었다.

‘짜증스럽군.’

에르메스 토니 대표이사도 앨리엇 상황을 CNN 뉴스를 통해서 매일 확인을 하는 터라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쪽 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 계획은 내년 초까지가 데드라인입니다. 이대로 계속 자금을 묶어 둘 수는 없습니다.”

“한 번 상부에 문의해보겠습니다만 저도 확실히 대답은 못 드립니다.”

“요즘 한국에서 오성 바이오 김지수 사태를 보면서도 그대로 둘 겁니까. 지금 오성 그룹에서 오성 지배 구조에 손을 대기 위해서 오성 바이오를 키우는 겁니다.”

그 자신도 오성 물산, 오성 바이오에 대한 탐욕을 떨치지 못했다.

“알았으니, 그만 좀 하십시오.”

영국계 투자 펀드인 에르메스 토니 대표이사 역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한 걸음 물러났다.

“당신들이 이대로 있다면 나 혼자라도 작업할 겁니다.”

“바로 연락드리죠.”

***

토마스도 토니에 관한 이야기를 상부에 보고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지금 다른 회사 일을 고려할 만큼 앨리엇 본사가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박상철 과장 죽음이 부른 여파는 그들조차 사전에 손을 쓰지 못했다.

뒤늦게 부랴부랴 증거도 인멸하고, FBI에 압력 넣었다.

문제는 미국 언론이 사냥개처럼 앨리엇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앨리엇 피해자 고소 내용을 집중 파헤치면서 그들의 악행이 점점 드러났다.

그러니 로비를 받은 미국 정치인조차 한 걸음 물러나서 압력 넣었다.

토마스는 결국 입맛을 다시면서 지켜봤다.

그런데 토니 대표 이사가 한 가지 다급한 소식을 전했다.

“제가 아는 지인 통해서 들은 내용인데, 미래 그룹 조수현 회장이 갑자기 오성 바이오 지분 일부를 매각하려고 이곳저곳을 알아보나 봅니다.”

“?”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이 어려운 시기에도 박상철 과장이 한국 내에 작업하면서 깔아놓은 한국 브로커 통해서 확인했다.

‘정말이잖아?’

이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어설픈 벤처 기업 제약 회사라면 차라리 주가 조작하는 게 훨씬 났다.

그런데 오성 그룹에게도 제약 회사는 앞으로 캐쉬 카우나 마찬가지다. 하물며 향후 오성 그룹 지배 구조와 관련이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토마스는 박상철 과장을 통해서 한국에서 한 로비 리스트를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한국 검찰이 아직 우리 앨리엇을 수사한다는 내용은 없었으니,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을 거야. 아니 그놈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어.’

***

토마스도 처음에 위에 이 사실을 보고할까 하다가 회의실에서 매일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모습에 박상철 과장 뒷정리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홀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과거 500억 투자 진행과 관련해서 이미 안면이 있던 조수현 회장을 서울 오성 호텔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요즘 미국에도 회장님의 투자 실력 소문이 들려옵니다.”

“하하하, 운이 좋았습니다.”

조수현 회장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마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의심하지 않았다. 넌지시 오성 바이오 이야기, 그리고 그 지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조수현 회장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결국 영국인 펀드 투자자 통해서 그 정보를 얻었다고 말해주었다.

조수현 회장은 최근 중국, 미국에 대한 투자 영역을 넓히면서 유럽 쪽을 조사하면서 영국 투자자 에르메스 펀드와도 잘 알았다.

“아, 토니 대표이사님 말씀이군요.”

“저희가 영국에 투자할 때 많이 도와주던 분입니다.”

과거였다면 조수현 회장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근 박상철 과장 조사를 파고들면서 생각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았다.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하구나.’

그렇다고 직접 내색할 정도로 초짜는 아니었다.

“아, 안 그래도 요즘 지분 사들일 투자자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저희 고객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자금이 필요합니다.”

토마스도 평소였다면 그 잘 나갈 오성 바이오 지분을 뜬금없이 판다는 말에 의심을 품겠지만 지금 그의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번 박상철 죽음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다.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른다. 아니 최악에 희생양이 되어서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절박했다.

“물량은 어느 정도입니까?”

“500만주입니다.”

1,000만주 매입 가격이 대략 500억 정도였다. 그 기준으로 보면 250억이다.

당연히 그 정도 정보를 이미 얻었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매각 대금은 얼마 정도로 생각 중입니까?”

“5,000억입니다.”

“?”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깐 넋을 놓았다.

비상장 회사의 주식 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회사는 코스피와는 달리 매출이나 이익 정보가 공시되지 않았다. 매출액, 심지어 영업이익 같은 정보가 드러나지 않아서 기업 가치를 알기 어렵다.

아무리 오성 그룹 계열사라고 해도 이제 2,000억을 투자한 계열사 10% 지분이 5,000억이면 너무 막 나간 금액이다.

넋이 나간 토마스는 겨우 진정했다.

“하, 아,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조수현 회장은 그저 괜찮은 물건을 파는 상인처럼 묵묵히 입을 열었다.

“최근 렉스바이오라는 회사 투자사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한다는 이야기 들었을 겁니다.”

렉스바이오는 미국 바이오 벤처 캐피털에서 투자했는데, 3년 후에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이 회사는 임상 2상이 끝난 신물질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고, 올해 임상 1상을 완료한 후에 임상 2상에 들어가는 항암신약도 보유했다.

항암신약 TX-101은 난소암, 신장암, 위암에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 미국 FDA를 통한 사전 정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렉스바이오 투자자인 랙산은 한국의 제약 회사도 그 지분을 가지고 있다. 거미줄처럼 물고 물리는 지분 구조만 봐도 신약에 대한 인간의 기대 심리가 얼마나 큰지 잘 드러난다.

현재 주가는 무려 17,000원 정도다.

다만 이 기업은 풍부한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신기술 하나만으로 버틴다.

“오성 바이오는 이미 인적 자원, 자본, 기술, 심지어 영업망까지 준비된 회사입니다. 복제약 생산을 통한 기본 매출만 해도 매출액 조 단위는 넘어갑니다.”

“잘 압니다. 그래도 아직 회사 설립 잉크도 채 마르기 전 회사인데, 20배를 부르는 것은 좀 과합니다.”

“전 고객님을 위해서 충분히 배려한 가격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가격은 더 올라갑니다. 오성 그룹 측에서는 50%지분 일부를 차명으로 돌려서 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덤덤하면서도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토마스는 얼굴에 감정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내심 속이 탔다.

“워낙에 큰 거래라서 본사 쪽과 검토해봐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네.”

그도 자기는 아쉬울 것 없다는 식으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은 좀 달랐다.

‘먹혔나?’

***

조민호도 조수현 회장에게서 앨리엇 직원을 만난 것과 제안에 대해서 들었다.

물론 애초에 5,0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돈보다는 앨리엇을 자극할 의도였지만 너무 빠른 앨리엇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요.”

“넌 놀라지도 않냐. 비록 상대가 놀라기는 했지만, 무려 5,000억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제안했다.”

“그런 계약이 될 리가 없잖아요. 어차피 저쪽에서 몇 번 딜을 하겠죠.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큰아버지에게 관심을 둔다는 거죠.”

“네 말은 앨리엇 쪽에서 날 감시라도 한다는 소리야?”

“그렇게 봐야죠. 검찰청 아는 지인 통해서 확인한 건데, 강기창 경감 핸드폰에서 박상철 과장 문자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아는 지인은 정확히 김정환 검사다. 원래는 다른 팀 수사 내용까지 알 수는 없지만, 강기창 경감과 이용석 처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수현 회장도 검찰청 내부 수사 내용까지 파악하고 있는 조민호 말에 흠칫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요즘처럼 검찰청 내부 군기가 서 있는 상황에서 그 내부 수사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

다만 내심 혀를 차면서도 내색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게 나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이야?”

“박상철 과장과 강기창 경감, 그리고 그 토니란 자와 같이 만났다는 문자 메시지가 있습니다.”

“설마 박상철 과장이 로비한 사람 중에 하나가 강기창 경감이란 소리고, 그 자가 토니에게서도 로비를 받았다는 소리야?”

“정확히는 이번에 만난 그 토마스란 자도 연루되어 있겠죠.”

“으음.”

조수현 회장 안색도 이전과는 사뭇 달리 딱딱하게 굳어갔다.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 밝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아직 권력 쪽에 선을 넣은 적은 없다.”

“정확히는 박상철 과장이 그랬겠죠. 아마 그래서 큰아버지에게는 권력자의 손길이 안 갔을 수도 있습니다.”

“하.”

그도 약간 충격을 받고 나서는 지난 일을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제법 있었다.

다른 기업과는 달리 한창 잘 나가는 미래 그룹에 외압은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박상철 과장이 강기창 경감 통해서 족쇄를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강기창 경감이 소속된 민정 수석실을 떠올렸다.

“서, 설마 민정 수석실에서 우리 미래 그룹을 지켜봤다는 소리야?”

“전 괜찮은 대상이라고 봅니다. 이번 상하이 빌딩 매입도 그렇고, 제 차명 재산 처리한 것만 봐도 능력 있습니다. 그쪽에서 군침을 흘릴만하죠.”

그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하게 변해갔다.

“하면 네가 퍽치기당한 것도 결국 내가 원인이었다는 소리야?”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그건 외할아버지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아직 실종된 것인지, 아니면 뭔가 두려워서 잠수탄 것인지도 모르잖아요.”

조수현 회장도 잠깐 침묵했다가 가까스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너무 위험한 일 아니냐?”

“그래서 더 진실을 파헤쳐야죠. 안 그러면 반드시 큰아버지도 노릴 겁니다. 대신에 앞으로 경호원도 더 늘리고, 신중하게 알아보셔야 할 겁니다.”

“아, 알았다.”

그는 겨우 진정한 후에야 여전히 안색 하나 바뀌지 않는 조민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조민호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이 녀석이 정말 내가 아는 그 민호가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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