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최영준 차장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조용히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진 조민호는 발달장애에 대한 연구만 집중했다.
나름 이 일이 재미가 쏠쏠했다.
김지수가 다시 그를 찾아와서 오성 바이오 제1공장 준공식과 새로 임명된 이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래도 그분들과 안면은 익혀야 해요.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감독하는 자리인데, 최소한 누구를 감독하는지 전혀 모르면 이상하잖아요.”
“바지 사외이사가 꼭 그런 것까지 해야 합니까?”
“한 번 얼굴 보고 나면 다음에는 굳이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성 그룹 직원이라서가 아니라 뛰어난 인재와 인사할 기회입니다.”
그도 여전히 거절하려다가 문득 괜찮은 오성 핵심 인재를 볼 수 있는 소리에 마음을 바꾸었다.
“귀찮지만......, 좋습니다. 아, 다만 준공식 날짜에 기자들이 떼로 몰려올 텐데, 그런 장소는 제가 사양하고 싶습니다. 그 전날, 참 오늘이군요. 지금 좋다면 가겠습니다.”
그녀는 부랴부랴 최태한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조민호 사정을 돌려서 물어보았고, 김건중 회장에게 직접 주의를 들은 최태한 사장은 무조건 긍정했다.
“일정은 저희 측에서 맞추겠습니다.”
조민호는 결국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세웠고, 그녀 뒤를 따랐다.
***
오성 바이오 착공식 준비에 바쁜 그곳에는 이미 건설 중장비가 움직였고, 수백 명의 건설자가 정신없이 작업 중이었다.
특히 내일 있을 착공식 행사 때문에 이것저것 잡다한 작업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오성 바이오 임원진이 바로 그 앞에서 검은색 정장 중대처럼 조민호를 기다렸다.
잔뜩 긴장한 그들 모습은 마치 대대장 군대 사열을 준비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들은 처음에 김지수를 먼저 알아보자 화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김지수 옆에 자리한 이는 따뜻함과 단정함이 돋보이는 무지 디자인 셔츠와 트렌디한 청바지를 입은 조민호였다.
조민호는 경영진, 수행원, 심지어 공사장 책임자까지 합쳐서 모두 오십 명을 앞에 두고도 무덤덤했다. 해수욕을 즐기러 온 사람처럼 검은색 선글라스까지 한 채 건설 현장을 쭉 돌아보았다.
“반갑습니다.”
뒷짐까지 한 채 마치 자신이 주인이라도 된 양 너무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결코 오만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입은 옷을 늘 걸친 사람처럼 자연스럽기만 했다.
흥취에 빠진 조민우 역시 긴장을 풀어놓았다. 그 덕분에 피어오른 120만 정신 스탯을 기반으로 한 기세는 구름처럼 피어올라서 그들 정신을 사정없이 찍어 눌렀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인 이들은 젊은 놈이 건방지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하지만 세상 풍파에 닳은 임원진은 다들 조민호와 김지수를 교대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김지수 아가씨와 사귀는 남자였다니.’
오성 그룹 김건중 회장의 김지수.
오성 그룹 직원은 모를 수가 있지만, 경영진은 사진을 달달 외우고 있다. 그만큼 김건중 회장이 보석처럼 아끼는 존재였다.
아니 그 점을 떠나서 이미 김건중 회장에게 상속받은 지분만 놓고 봐도 어지간한 오성 계열사 임원을 당장 옷을 벗겨버린다.
직급이 낮다고 해도 그 직급을 그대로 믿는 임원진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전화 한 통 받고 심지어 지방에서 이곳으로 급하게 오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던 임원은 도착하기가 무섭게 그저 눈동자만 굴렸다.
더 심각한 것은 김지수 태도다.
이미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때도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니 이 정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남자를 마음대로 부린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 딱 데릴사위였다.
지금 그녀는 당연한 것처럼 조민호 비서로 그의 수발을 들었다.
결국 모인 이들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완전히 남자에게 푹 빠졌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김건중 회장이 저런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기에 저런 대우를 받는 것일까?’
***
착공 현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불필요한 인원을 빼고 남은 이십 명의 경영진은 거의 동시에 조민호를 조심스럽게 따르면서 계속 눈치를 봤다.
[......이 공장에서는 복제약을 시작으로 해서 다양한 신약을 양산할 예정입니다. 추가적인 플랜드 건설 역시 곧 연이어서 착공됩니다. 신약 연구를 위한 연구소는 임시로 오성 의료원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음.”
하지만 조민호는 이미 전생에서 이런 일이 숨 쉬듯이 자연스럽기에 그저 고개만 까딱했다.
그 오만은 김건중 회장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딱히 이 태도를 흠잡을 수는 없었다.
이 부분 역시 조민호를 주시하는 임원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사람을 부려본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저게 단순히 배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최태식 사장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만 이런 점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다.
‘정말 이상하네. 미국에서 따로 경영을 배우기라도 한 건가? 프로필에 큰아버지가 조수현이라고 나와 있지만 이해가 잘 안 되네.’
아무리 재벌 3세라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저런 존재감은 자신이 직접 수많은 사람을 부리는 관록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저 멋진 남자로만 조민호를 바라본 김지수 역시 깜짝 놀라서 감동한 눈길로 조민호를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조민호 역시 전생 경험 때문에 겉으로만 내색하지 않았다.
‘......놀랍군.’
한 사람씩 소개를 시작했다.
일전에 봤던 김정욱 이사는 이번에 전무로 진급했는데, 선천지기 잠재력이 여전히 33이었다.
오성 종합 기술원 연구원 출신인 고호성 이사는 선천지기 잠재력이 43 정도 되었다.
미국 노스웨서턴대 분자유전학을 전공한 민한승 전무는 무려 이 수치가 45나 되었다.
가장 정점은 역시 오성화학, 오성 전략기획실, 오성 비서실, 오성 전자 신사업팀 부사장을 두루 거친 최태한 사장은 선천지기 잠재력 수치가 50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65나 되었다.
사람을 많이 다루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높을수록 선천지기 잠재력 수치는 계속 올라갔다.
유연진 팀에서 봤던 그 선천지기 교류 현상은 모든 사회에서도 다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저 수치는 곧 다양한 선천지기 속성이 있다는 의미다.
조민호도 그들의 희귀한 선천지기 특성을 확인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다.
새삼 자신의 가정이 생각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 선천지기 색깔을 살피면서 입맛(?)을 다셨다.
‘결국 전생에서는 후천지기 수치가, 현대에서는 선천지기 잠재력 수치가 다르구나. 이것이 두 세계의 차이일 것 같군.’
그리고 느낀 다른 한 가지.
‘선천지기 잠재력이 50을 넘겼다는 것은 세계적인 인재라고 봐야 해. 정말 오성 그룹에는 인재가 많구나.’
물론 시간이 갈수록 더 놀란 것은 역시 조민호를 처음 접한 이들이다.
이미 한 번 만나봤던 김정욱 전무도 여전히 놀라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은 더했다.
그들이 암묵적인 테스트로 은근한 압력을 넣었지만 그걸 조민호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았다. 그 여유만만한 조민호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아무리 아가씨가 사귀는 남자라고 해도 저럴 수가 있는 건가?’
그나마 오성 비서실 통해서 일부 정보를 얻은 최태한 사장 역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자연스러운 조민호 행동에 당황했다.
사전에 익히 조민호 관련 정보 일부를 알았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은 예상조차 못 했다.
조민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서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어미를 쫓는 새끼 오리처럼 졸졸 조민호 뒤를 따랐다.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자 조민호는 지금 자신이 전생의 절대자 코스프레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흠흠, 여기 공장 부지가 참 큽니다. 알다시피 제 큰아버지가 오성 바이오에 투자한 조수현 회장님입니다. 그 덕분에 호가호위합니다. 하하하.”
푼수처럼 웃어봤지만.
“......”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다들 침묵한 채 그저 조민호만 쳐다보았다.
분위기는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
고작 미래 증권 배후를 믿고 저렇게 자신에 압력을 집어넣는다니.
호가호위가 아니라 그냥 맹호, 아니 그 이상의 괴물을 보는 시선이었다.
조민호는 민망한 듯 김지수에게 툴툴거렸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도대체 뭐라고 한 겁니까? 제가 영 민망합니다.”
상황을 모르기는 김지수 역시 다르지 않았지만, 그저 웃기만 했다.
아직 정식으로 사귄 것은 아니지만 자기 남자가 존경받는 모습에 뿌듯했다.
“쯧.”
그런데 갑자기 선천지기를 자극하는 지진 같은 미묘한 감각을 느꼈다.
‘좀만 참자. 얼굴마담만 해도 연봉이 최소 10억 이상이라고 했잖아. 가만 이거......,또 카메라야?’
힐끗 한 쪽을 쳐다보고 난 후에는 이번에는 다른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그들과 헤어졌다.
김지수는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착공식 행사 때문에 남아야 했다.
***
김미애 기자는 차량 안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동행한 다른 이들 역시 김지수를 죽으라고 같이 촬영했다. 가능하면 조민호가 보이지 않는 장면을 골라서 찍었다.
차창 앞에서 누군가 노크를 하자 김미애 기자는 흠칫 놀랐다.
“어? 당신은 그 의문의 남자?”
졸지에 X맨이 된 조민호는 차량 문을 열고 나온 김지애를 보조해주는 척하면서 눈동자 수직선상에 있는 앞머리 두임읍혈을 툭 쳤다.
족소양담경의 혈 자리 중에 하나이자 의식 상실에도 영향을 준다.
비비 꼬인 혼원기가 스며들기가 무섭게 의식을 잃어버렸다.
차에 있던 다른 기자들은 어어하는 순간에 운전석 안으로 들어온 조민호 손길이 두임읍혈과 소통하는 족소양담경의 다른 혈자리 견정과을 툭툭 쳤다.
전혀 예상도 못 한 동작에 어어하는 순간에 곧 기절해버렸다.
견정를 통해서 흘러들어간 혼원기가 두임읍혈을 비슷하게 자극한 결과였다.
혼혈과는 다른 혈이지만 혼원기를 사용해서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
조민호는 꽤 만족스러운 점혈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동작 같지만 설사 무학의 이해가 화경을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그는 잠깐 기절한 김미애 기자를 보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아직 언론계에 멀티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다.
고민은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문득 지금껏 연구한 발달장애 치료 방법 중의 하나를 생각해냈다.
‘안 그래도 자폐증의 정신 불안 현상을 줄이는 최면 치료 때문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마침 괜찮은 임상 실험체로 안성맞춤이네.’
딱히 위험한 인체 실험은 아니었다.
발달장애 치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선천지기 반응이다.
자율신경계와, 체내 호르몬 변화가 선천지기와 관계 역시 중요했다.
조민호도 물론 환자를 꽤 치료해서 그 선천지기 변화 기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자기만의 기준을 잡지 못했다.
족소양담결 혈자리에 해당하는 청회는 불면증에 영향을 주고, 곡빈은 중풍과 관련이 있는데, 두규음은 신경성 병 치료에 이용된다.
이 경혈에 혼원기를 자극하면서 조심스럽게 김미애를 렘수면 상태로 만들었다.
다음에는 혼원기를 사용해서 그녀 경혈을 동기화시켰다.
혼원기가 매개가 되면서 두 사람의 기운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앞으로 당신은 조민호에 대한 관심을 끊는다. 조민호는 운 좋은 재벌 3세에 불과하다. 조민호는 무능한 친구이다. 조민호는 큰아버지 조수현 덕분에 사외이사 자리를 차지한 운 좋은 친구다.]
잠재의식을 통한 각인 작업이다.
발달장애를 연구하면서 같이 본 심리 불안정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가 최면요법.
조민호는 그 방식을 이들을 통해서 직접 실험하기 시작했다.
역시 문제가 일어났다.
경맥 전체가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자율 신경계는 역시 정상 상태를 조금씩 벗어났다.
‘응? 이거 왜 이래?’
결국 메시지 숫자를 줄였다.
[앞으로 당신은 조민호에 관한 관심을 끊는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제야 경혈이 안정화되었다.
조민호는 결국 네 개 메시지를 나누어서 하나씩 작업했다.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혼원기를 사용해서 계속 그녀 의식을 자극했다.
경맥 속의 진동은 계속 메아리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이 바로 뇌에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새겼다.
물론 최면 요법 치료에서 이미 이런 변화를 이미 예측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만족했다.
‘결국 선천지기 치료에서 나타나는 매혹 현상도 그저 운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