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72화 (72/176)

#072

인천 송도에 착공되는 오성 바이오 공장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진행된다. 이번 제1 공장 착공만 해도 2만2,000㎡ 부지에 조성된다.

당장은 위탁생산이 주이지만 혈관염 계통 환자에게 치료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신약 바스클린 생산을 위한 설비도 겸했다.

그 의미는 그만큼 오성 바이오 내부에서는 이 신약 바스클린 성공을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성 바이오 설립 전에 이미 이 신약 개발이 진행되지 않고서는 이 빠른 전개가 말이 되지 않았다.

김미애도 다른 동료와 함께 하루 먼저 이곳 송도에 도착했다.

착공식 행사는 내일이지만 그녀는 사전에 미리 답사할 생각이었다.

다른 동료는 불만이 많았지만 백병국 문화부장에게 이미 주의를 받아서인지 조심스럽게 눈치만 봤다. 그들은 솔직히 김미애가 왜 좌천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그들 관심을 무시한 채 내일 행사를 준비한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오성 바이오 직원 행동을 힐끗 살피면서 차량 안에서 망원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 찍었다.

건설 공장 개요에 대한 홍보 문구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테이프 커팅을 위한 준비물 역시 사전 예행연습으로 진행되었다.

귀빈이 삽질할 수 있는 삽부터 시작해서 사진 찍을 수 있도록 배경 무대도 준비되었다.

새 현장 개설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건설 인부부터 시작해서 오성 그룹 직원 역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어? 저 사람은?’

착공 설비를 돌아보는 이십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그 무리 중심에 그들을 이끄는 한 남자는 눈부신 미녀를 옆에 낀 채로 부지를 돌아보았다.

뒷짐을 한 채 카리스마를 뿜어 내는데, 무리의 리더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났다.

딱히 뭔가 행동하는 것은 아닌데, 망원 카메라 렌즈를 꽉 채웠다.

김미애 기자도 두 번째 본 사람이지만 굳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변을 지배하는 그 모습에 입을 딱 벌린 채 경탄했다.

‘와아, 포스 봐라, 끝내주네.’

한국대에서 봤을 때만 해도 저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무리와 함께하자 자연스럽게 그 위세를 느꼈다. 흔히 말하는 카메라 빨 나온다는 한국 최고 배우 아니 세계적인 배우를 넘어서는 면모였다.

그녀 역시 여기자라는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 억척스럽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았지만 저런 위세를 보이는 인사는 당장 기억나지 않았다.

‘십대 그룹 회장 정도일까? 아냐 그들은 저렇게 자연스럽지 않아. 도대체 정체가 뭐지?’

하지만 다른 동료 기자들은 오히려 미녀에 훅해서 날뛰었다.

“조용 좀 해!”

“끝내준다!”

그들은 김미애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혀를 내두른 김미애는 구박하기는 보다는 오히려 다시 그 의문의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가만 저 사람들이 전부 다 임원진이라면, 저들이 왜 저 남자 눈치를 보는 거야?’

가장 황당한 것은 저 남자 옆에서 비서 코스프레를 하는 김지수였다. 그 당당하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해맑은 미소를 한 채 그저 저 남자에게 고개만 숙였다.

‘김지수 재는 또 왜 저래?’

입가에 미소가 활짝 핀 김지수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오성 채용 비리 이후에 오성 그룹 분위기는 겉으로 봤을 때는 어떻게 돌아가는 다들 의문을 가질 정도로 썩 좋지가 않았다.

검찰의 압수 수색은 담당 판사 제보(?)에 힘입어서 가까스로 잘 넘어갔다.

과거라면 검찰 내부 오성 장학생 인맥을 통해서 사전에 알아서 느긋하게 조처를 해야 할 일이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오성 비서실 인원을 총동원해서 본사 내부 조직 감사에 착수했고, 여러 종류의 비리를 적발했다.

결국 이 때문에 오성 그룹 본사, 그리고 밑에 오성 계열사 전체 임원들은 다들 벌벌 떨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실적이 나쁜 경영진 대부분은 물갈이될 판인데, 자칫하면 오성 관련 계열사로 이직하기는커녕 쇠고랑을 찰 수도 있었다.

오성 전자 신사업팀 부사장 최태한 역시 살벌한 사내 분위기 때문에 초조했다.

그는 심호흡까지 한 채 조심스럽게 김건중 회장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따라 자신을 안내하는 경호원 모습에도 숨이 막혔다.

김건중 회장은 서재 안에서 이학중 비서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채명식 그놈이 현재 태국에 있다고?”

“김주옥 변호사가 사전에 빼돌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쥐새끼 같은 놈. 채명식 그놈은 도대체 왜 돈을 받은 건가?”

“숨겨둔 정부가 있는데, 이번에 애를 가져서 돈이 많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것을 메꾸려고 지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서 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왜 이제야 안 거야?”

“아무래도 이용식 처장 같은 경우를 전담한터라 감사에서도 벗어났습니다.”

“끄응.”

김건중 회장도 뒤늦게 채명식 과장이 낙하산 형태 인사를 주로 담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일반 직원은 괜히 잘못되면 나중에 문제 될까 아예 이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설사 내부 감사라고 해도 위의 눈치를 봐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채용 비리라고 해도 겉으로는 돈이 오가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성 비서실에서도 불법적인 부분은 철저하게 관리했다.

위에서 오더가 서로 오가도 이게 딱히 채용 부탁을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아니라, 모호한 말만 사용해서 정황 증거만 남는다.

녹취록이 있지 않고서야 실제로 조사해서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는 뒤늦게 오성 인사팀이 압수 수색당한 것을 떠올렸다.

“가만 그러면 김정환 검사 그 새끼는 왜 그렇게 난리를 친 거야?”

“이용식 처장을 압박하는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래도 심문 중에 채용 비리에 연루된 아들을 협박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물론 최종 목표인 법원을 압박해서 영장 기각에 대한 대응책......”

즉 수사 자체는 이용식 처장이 목적이 아니라, 법원 판사에 대한 압력이다. 그것을 수사 통해서 암묵적으로 협박했다. 계속 이렇게 나오면 너희 부패 판사에게 칼을 들이밀겠다는 경고였다.

두 사람은 미묘한 검찰청과, 법원 갈등에 재수 없게 자기들이 엮였다는 결론에 조민호 꼼수는 아니라고 확신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서재로 들어와서 굳은 안색으로 대기한 최태한 부사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1년 만인가?”

“네. 회장님.”

“아들 결혼식은 잘 치루었나?”

“회장님이 배려해준 덕분입니다.”

최태한 부사장은 식은땀마저 흘리면서 조심스럽게 두 사람 눈치를 살폈다.

화가 많이 난 김건중 회장이 짜증 냈다.

“그렇게 긴장 마. 나쁜 일 때문에 자네를 부른 것은 아니니까.”

이학준 비서실장이 이미 준비해둔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바로 오성 바이오의 인적 현황과, 곧 착공을 시작할 공장, 심지어 오성 바이오 본사에 대한 것까지 잘 나와 있었다.

심지어 지분 구조만 봐도 오성 전자, 오성 물산, 오성 생명을 비롯한 다른 오성 핵심 계열사가 모두 50%를 가지고 있었다.

미래 증권이 무려 20% 지분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좀 이상했다. 특이한 의문의 차명 투자자 이름은 딱 봐도 정치 쪽 냄새가 났다.

‘이대로라면 유통 주식 비율이 25%에 불과하잖아.’

이학준 비서실장이 슬쩍 한 마디 덧붙였다.

“지분 비율은 앞으로 상장 전까지는 더 변경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도 후계 구도와 관련된 오성 그룹 일가와, 인허가와 연관되는 외부 인사, 심지어 외부 투자자에 대한 복잡 미묘한 문제를 느끼자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앞으로 말이 많겠구나.’

자본금 1,000억으로 시작하지만 제1 공장 신축에만 벌써 1,000억을 추가로 사용했고, 추가로 제2, 3 공장까지 합치면 무려 2,500억을 더 투자한다. 오성 그룹이 최근 진행한 가장 큰 국내 투자였다.

“오성 화학 실적도 나쁘지 않았고, 전략기획실에서 구조 조정 성과도 괜찮았어. 자네는 보는 안목이 참 마음에 들어.”

“가, 감사합니다.”

최태한 부사장은 그제야 안도했다.

김건중 회장 역시 하버드 대학 출신으로 미국 제약 회사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최태한 부사장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좋은 미국을 마다하고, 오성 그룹에 투신한 최고의 인재였다.

지금까지는 이곳저곳 계열사를 돌려서 경험을 충분히 쌓도록 했고, 이제는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해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오성 바이오를 한 번 맡아보지 않겠나?”

“하겠습니다.”

대답은 바로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성 바이오가 진행 중인 신약 바스클린에 대해서 이미 검토했던 사람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태한 부사장도 솔직히 이 신약을 검토하면서도 경악했다.

아무리 오성이라고 해도 당장 임상 2상까지는 무난해 보이는 신약이 그냥 마른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에 믿을 수가 없었다.

역시 과거 경력이 제약 쪽이라서 그런지 대화가 쉽게 풀리는 것을 확신한 김건중 회장은 이학준 비서실장과 잠깐 눈빛을 마주했다.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혹시 조민호란 이름을 들어봤나?”

“네? 잘 모르겠습니다.”

어리둥절한 최태한 부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김건중 회장도 어디까지 정보를 공개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단편적인 이야기만 털어놓았다.

“오성 바이오 사외이사 중에 한 명으로 선임될 거야. 그런데 그 친구가 뭐랄까.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지압 치료 능력이 있어.”

“네?”

눈이 동그랗게 변한 최태한 부사장은 설마 김건중 회장이 자신에게 농담하나 싶어서 이학준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설명하기 힘든 묘한 표정을 한 채 한 숨을 내쉬었다.

“사실입니다. 자세한 내막까지 이 자리에 밝히지 못하지만, 신약 바스클린을 고안한 사람입니다. 신약 특허권도 그가 주인입니다. 회장님 말씀은 앞으로 조민호 이사를 상대할 때는 조심하란 뜻입니다.”

정말 긴장하고 이 자리에 나왔는데, 뜬금없는 지압 치료사 이야기를 듣다니.

그리고 바스클린 특허권 주인이란 말에 입을 딱 벌렸다.

미국 유명 제약사에서 있어서 봐서 신약 개발이 얼마나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지 잘 아는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제가 두 분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진심입니까?”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친구는 유니크해. 자네를 굳이 이렇게 부른 이유는 최소한 앞으로 오성 바이오 사장이 될 자네만큼은 그 진실을 알아야 하니까. 다른 경영진에게도 알아서 적당히 주의를 줘.”

“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김건중 회장 목소리가 바로 올라갔다.

“지금 내가 자네 이해시키기 위해서 여기 불렀다고 생각하나?!”

너무 황당한 소리에 당황했던 최태한 부사장도 뒤늦게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닙니다.”

“어차피 자네는 싫든 좋든 조민호 그 친구 비밀에 대해서 알게 되겠지만 대신 앞으로 그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하란 말이네.”

“네.”

‘진심이잖아?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최태한 부사장도 뒤늦게 두 사람 분위기를 보면서 조민호 이름을 몇 번이나 되새겼다.

“거기 보고서 보면 필요한 정보가 일부 있지만, 최소한 자네는 조민호 그 친구를 알아야 해. 그리고 송도 제1 공장 착공식에 그 친구도 불러.”

“알겠습니다.”

의문은 여전히 많았지만 망설이던 그는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김건중 회장은 영 마음에 안 든 얼굴이었다.

“저 친구가 잘하겠지?”

이학준 비서실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걱정 마십시오. 신사업에 대한 안목 하나만큼은 최고입니다. 그 정도 식견을 가진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조민호를 알아볼 사람입니다. 이미 주의까지 받았으니, 알아서 잘할 겁니다.”

“그래.”

***

오성 바이오 설립이 진행된 이후에 내부 세팅은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역시 가장 늦어진 것은 각 요직 내정 문제다.

최태한 부사장이 사장으로 내정되면서 빠르게 나머지 일이 진행되었다.

법인 가등기를 시작으로 이사회까지 진행된 후에 공식 출범했다.

최태한 사장은 임시 이사회 자리에서 기라성같은 민한승 전무나, 고호성 이사, 김정욱 전무를 상대로 조민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당연히 다들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김건중 회장 지시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면서도 다른 쪽으로 의심했다.

“혹시 회장님의 숨겨둔 아들이......”

차마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제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최태한 사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회장님 서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회장님이나, 비서실장이 따로 관리하는 우리 오성 그룹의 S급 VIP란 게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그분을 보게 되면, 조심하란 뜻입니다.”

혹시라도 문제 일으켜서 걸리면 회사에서 바로 퇴출당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

새로운 신약 돌풍이라는 로또를 기대하고 이번 오성 바이오 호에 탑승한 새로운 경영진은 다들 서로 쳐다보면서 물음표만 떠올렸다.

여기서 그냥 덮자니 이상했고, 파자니 괜히 찍힐 것 같아서였다.

최태한 사장 역시 그들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아, 이번 제1 공장 착공식에 오실 겁니다. 그때 얼굴이라도 익혀서 문제없도록 해두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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