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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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딸에 대한 선입견이 사실 존재한다. 김지수는 한국 최고 기업이라는 오성 그룹 막내딸인 점을 고려하면 일반 재벌가와는 또 차원이 다르다.
김미애는 다행히 재벌가 선입견이 아닌 현실적인 면모를 잘 알았는데, 평소에도 명품 치장하지 않고 지내는 그녀 모습을 알았다.
대신 최근 조사 과정에서 어떤 일을 할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호한 면도 파악했다.
오늘 그녀 뒤를 쫓을 때만 해도 소탈한 면모를 보인 마음이 푸근한 미인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얼음 마녀 같았다.
한국대 공터 한 곳으로 조용히 끌고 온 김지수는 서상희 경호부장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이일보 김미애 기자님, 지금 저에게 싸움을 거는 겁니까?”
김미애는 단호한 그녀 말에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면서 고민했다. 상대는 재벌가 중에서도 초재벌가에 속하는 오성 그룹 김건중 회장의 막내딸 김지수다.
걸리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대면한 이상 이 자리에서 고집 피울 수 없었다. 만약 김건중 회장 귀에 이 일이 들어간다면 사망 선고를 받은 거나 진배없다.
“무슨 말씀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 최근 한국대 정성근 이사장의 비리 때문에 이 대학을 조사 중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저를 찍었죠? 제가 이 학교 대학생 같아요?”
체크 블라우스는 퍼프한 느낌이 있었고, 유행을 타지 않은 디자인은 고급스러웠으면, 무게감이 있어서 품위가 있었다.
명품 재질을 사용한 것치고는 그렇게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다.
뭐랄까.
사치라기보다 오히려 명품에 대한 안목이 대단한 것을 잘 보여주었다.
생머리가 바람결에 휘날리자 그 모습이 마치 지상에 강림한 여신 같았다. 대학생이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직장 여성 모습이었다.
‘더럽게 예쁘네.’
하지만 그녀는 뒤늦게 기자 직감상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오성 막내딸이 저렇게 미인이었나? 이건 숫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도 이상해 보이지 않잖아. 그 정도라면 말이 나왔을 거잖아. 가만 이럴 리가 없을 텐데......’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아침이랑, 지금이랑 분위기가 극과 극이네. 무슨 놈의 얼굴이 저렇게 차갑게 바뀌냐? 아, 그 남자 때문이었나. 참 그 남자는 누구였지?’
그녀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갔다.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알았어요. 조심하겠습니다. 앞으로 절대로 지수씨 근처에도 안 갈게요. 그 정도면 되나요?”
“그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남자분 말인가요?”
“역시 기자답게 꼼수 부리네요. 쓸데없이 말 돌리지 마세요. 저도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미애씨 하나 정도는 언론계에서 묻어버릴 수 있습니다!”
표독한 어투에 김미애도 움찔했다. 굳이 저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이학준 비서실장에게 간단하게 언급만 해도 충분했다.
김지수 말투는 조용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괜히 저나, 그분에게 관심 두지 말아주세요. 그러면 지금 일도 없던 걸로 해드리죠. 그리고 미애씨에게 생긴 안 좋은 일도 해결해 드리죠.”
“설마 다시 본사로 발령내주겠다는 말인가요?”
“저 그 정도 할 수 있는 힘은 있어요.”
김미애는 이미 김지수가 자신이 지방으로 좌천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그 짧은 시간에 파악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역시 오성인가?’
“흠.”
잠깐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요. 대신 몇 가지 질문만 대답해주면 절대로 따라다니지 않을게요.”
김지수는 역시 다른 재벌가 사람과는 달리 타협점을 찾았다고 판단하자 평소 모습으로 돌아갔다.
“제가 해줄 수 있는 대답만 가능해요.”
“지수씨 미모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저도 길거리에서 봤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거에요.”
그녀도 잠깐 멈칫했지만, 조민호와의 일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전신성형했어요.”
김미애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유심히 그녀 얼굴과, 몸매에 칼을 댔는지 살폈지만 찾지 못했다. 내심 다시 조사해봐야지 독백하면서 다시 질문했다.
“제가 알기로 지병이 있는 걸로 알아요. 그런데 지금 얼굴만 봐서는 저보다 더 건강해요. 혹시 그 병이 완치된 건가요?”
“미국 텍사스 휴스턴 엔더슨 병원에 있는 세계적인 명의에게 치료받아서 회복되었어요. 이 정도면 대답이 되겠죠?”
이것도 이상했지만, 굳이 더 묻는다고 대답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아,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아까 그 남자분 말인데요. 그분은......”
“그 대답은 해줄 수가 없어요. 저도 충분한 호의를 베풀었으니, 약속 꼭 지켜주기 바래요.”
“......”
‘역시 뭔가 있어.’
그녀는 조용히 경호원 호위를 받아서 떠나는 김지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치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그녀 미모는 도서관 앞을 지나가는 모든 남녀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단순히 미인이라서가 아니라, 품격 자체가 달랐다.
마치 여신처럼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 기묘한 분위기는 도저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자인 내가 봐도 질릴 정도로 예쁘네. 아무리 요즘 한국 성형 수준이 발달했다고 해도 얼굴에 칼자락 하나 보이지 않는데, 저렇게 사람을 바꿀 수도 있나?’
그녀는 잠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역시 조용히 확인해봐야겠어.’
***
조민호는 김지수와 헤어진 이후에 발달장애에 다시 집중했다.
그도 이전과는 달리 이 발달장애를 더 고민하는 것은 신경섬유종증을 치료하면서 얻은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치료한 모든 질병을 잘 보면 완치가 되었지만, 엄밀히 말해서 완전히 치료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실제로 홀로 한국을 찾은 리핑 경우에 맥관염이 다시 일부 재발했다. 그 예후가 이전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해도 중요한 것은 다시 재발했다는 것이다.
바로 면역 체계 이상 때문이다.
맥관염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맥관염이 아닌데, 그녀의 면역 체계 이상과 연관된 부분 때문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조민호는 리핑용 혼원기를 수정해서 간단하게 치료했지만, 그 유전 인자 밑바닥을 전부 다 확인할 수는 없었다.
‘호오, 이것 봐라.’
그는 오히려 장애가 나타난 것이 즐겁기만 했다. 이 난관을 극복한다면 분명히 이전과는 한 단계 더 올라선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같이 오지 못한 류엔둥 때문에 홀로 한국을 찾은 리핑은 치료가 끝난 후에 바로 한국을 떠났다.
조민호는 덕분에 곧 다음 환자와 관련된 발달장애에 대한 것도 좀 더 근원적으로 살펴서 그 경우의 수를 하나씩 다 확인하기 시작했다.
최영준 차장이 의학에 푹 빠져 있는 조민호를 마침 또 찾아왔다.
“이제 의학을 제대로 파는 건가?”
“겸사 겸사죠.”
“설마 겨울 방학 동안 홀로 도서관에만 박혀 있을 건가?”
그는 이것이 무학 경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자기만의 독특한 수련이라는 것을 말할 수가 없어서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일 때문이에요?”
“그게 김미애 기자 때문에 그래.”
그다음에 나온 이야기는 최영준 차장이 조민호를 만난 김미애 기자에게 의도적으로 손을 쓴 부분이다.
조민호는 오히려 잘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확실하게 손 쓰셔야 했습니다. 어설프게 손대면 항상 후환이 남는 법입니다.”
“섬뜩한 말이야.”
“그냥 말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김미애 기자가 또 뭐가 문제......, 흠, 확실히 근심거리군요.”
“지수 말로는 일단 다시 본사로 복귀시켰으면 하더라. 나도 그럴 생각인데, 이 일은 자네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복귀하고 나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최영준 차장은 힐끗 조민호 앞에 잔뜩 놓여 있는 전문 의학 서적과, 한글 번역본을 힐끗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나도 몰라.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제 다른 기자도 슬슬 냄새를 맡을 거야.”
“진짜 문제네요.”
“그러면 그 친구 다시 복귀시키라고 할 테니, 앞으로 자네도 행동 조심해야 할 거야. 내일 당장에 자네 얼굴이 신문 일면을 대문짝만 하게 장식할지 모르니까.”
“흠.”
‘심각하네.’
다른 것은 어떻게 손을 쓸 수 있지만, 언론만큼은 골치가 아픈 조민호는 문득 김정환 검사의 지속적인 수사 보고를 떠올리면서 내심 툴툴거렸다.
‘언론계 쪽에도 멀티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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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는 이미 이번 기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과연 김지수가 정말 자신이 한 말을 지킬지 궁금해서 지켜봤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서울 본사로 발령 났다.
그녀는 익숙한 서울 공해 냄새를 맡으면서 동이일보 본사에 당당히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귀환에 동료 기자들은 축하하면서도 영문을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도 모르죠.”
“좌천된 것도 뜬금없었지만, 이렇게 돌아온 것은 더 황당해. 혹시 사내 후계 권력 싸움에 끼어들어서 그런 거야?”
“아니라니까요.”
그녀도 딱 한 마디로 부인했지만 다들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갑자기 지방으로 갔다가, 뜬금없이 서울로 다시 돌아온 것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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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는 묵묵히 자기 짐을 다시 세팅하면서 기다렸는데, 역시 위에서 호출 전화가 왔다. 그녀를 호출한 사람은 동이 일보 로열가에 속하는 백병국 문화부장이었다.
“김미애라고?”
“네.”
백병국은 곧 일어나서 따스한 인삼차를 꺼내서 그녀에게 대접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얼떨떨한 김미애는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인삼차를 마셨다.
“꿀과, 우유를 적당히 넣어서 먹기 좋을 거야. 잘 달인 인삼차이니, 가능하면 남기지 마.”
“아, 네.”
잠깐 인삼차를 마시던 백병국 문화부장은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중아일보의 최영준 차장이라고 알아?”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이상하네. 그 친구가 직접 자네를 딱 찍어서 부탁하더라.”
“그거 이상하네요.”
그는 살무사처럼 감정이 없는 시선으로 그녀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김미애는 움찔 몸을 떨면서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최근 오성 그룹에서 오성 바이오를 설립하고, 인적 구성까지 완료했어.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사회 개최와 동시에 출범한 것은 좋았는데, 복제약도 아닌 바스클린 새로운 신약 1상 임상을 시작한다는 거야. 신약 개발이 무슨 핸드폰 개발처럼 진행한다는데, 이게 말이 돼?”
“......많이 이상하네요.”
“그렇지? 그런데 최 차장 이 새끼는 벌써 이주일 전에 단독 특집 기사로 이 특종을 내보냈다는 거야. 한국 언론사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는데, 그놈만 안 거야. 너무 하잖아!”
그녀는 본능적으로 김지수와, 그 의문의 남자를 떠올렸지만, 곧 지워버렸다.
“우리 김미애 기자는 혹시 이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것 없어? 그렇지 않고야 최 차장 그 잡놈이 딱 자네를 찍어서 특혜를 줄 이유가 없잖아.”
“잘 모릅니다.”
“아,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자네를 지방에 좌천시킨 것도 그놈이었어. 그 새끼가 날 협박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그런데 다시 복귀시키라네. 정말 이상하다. 그치?”
거머리같은 시선이 그녀 몸 이곳저곳을 헤집었다.
김미애는 모멸감에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좋아.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앞으로 그럴 거라고 생각 안 해. 그 죽일 놈의 최영준이가 주목하는 김미애라면 말이야. 대신 특종 하나만 물고 오면, 대리 승진뿐만 아니라, 내 라인으로 인정해주지.”
“아, 알겠습니다.”
그녀도 당황할 정도로 놀라운 제안이었다. 비록 성질이 더럽기는 하지만 명색이 동이 일보 로열 혈통이기 때문이다.
“좋아. 원하는 거 있으면 말만 해. 최영준 그 새끼가 협박하면 내가 다 막아주지. 내 말은 그놈이 숨기는 것을 찾아봐. 분명히 뭔가 있어!”
“네.”
“이건 오성 바이오 제 1공장 착공 날짜와, 장소야. 그곳부터 시작해.”
“알겠습니다.”
‘일단 지수씨랑 한 약속은 지켰으니, 우선 바이오부터 다시 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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