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70화 (70/176)

#070

***

김정환 검사가 다른 검사에 비해서 능력이 살짝 높은 종영돈 부장검사를 따르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기 때문이다.

서울 중앙지검 내의 수사 역시 그 혼자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종영돈 부장검사가 꼭 필요했다.

그는 때문에 단순히 전화 확인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요즘 의학 전공 서적에 심취한 조민호를 직접 찾아갔다.

마침 조민호를 찾았던 박진민과, 김영탁은 김정환 검사를 보기가 무섭게 줄행랑을 놓았다.

조민호도 처음에는 굳이 이렇게 찾아온 것을 질책하려다가 그의 말을 듣자 침묵했다.

“채용 비리로 수사 중인 이용식 처장 수사도 방해를 받는다는 말입니까?”

“제가 추정하는 것은 강기창 경감 때문입니다.”

“확신하는 것 같네요.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김정환 검사는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조민호에게 보여주었다.

사진 안에는 세 사람이 바에서 유쾌하게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제일 우측에 있는 친구가 강기창 경감이고, 가운데 사람이 이용식 법원행정처장이며, 마지막 한 사람은 김정현 이사입니다.”

“?”

조민호 눈도 동그랗게 변했다.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착잡한 표정을 한 김정환 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친구가 큐비스를 설립해서 로이스 펀드를 만든 자입니다. 물론 아직도 그자가 자금 조달을 어떻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계속 설명을 요구했다.

“그 로이스 펀드 자금 중에 일부가 두선 건설을 통해서 대홍실업에도 흘러갔고, 한국대 이사장 정성근 이사는 직접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로이스 펀드 외형과는 달리 그 내부 자금 흐름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두선 건설은 비자금 용도가 주였고, 정성근 이사는 빌딩과 같은 또 다른 형태의 투자였다.

“이미 조사했다면 금융 계좌도 확인했을 것 아닙니까?”

“금융 계좌 영장이 기각되어서 못했습니다.”

김정환 검사조차 불과 일주일 전에 지난 수사 내역을 살피다가 이 사건을 결국 찾았고, 그 실마리 일부를 겨우 풀었다.

김정환 검사와 대면하는 계기가 된 대홍실업 압수 수색을 떠올린 조민호도 떨떠름한 얼굴로 기가 막혀서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 사진은 어떻게 구한 거죠?”

김정환 검사도 어깨를 으쓱했다.

“이 사진은 큐비스 자금 50억 횡령 때문에 구속된 김정현 이사 수사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이 사건 역시 꽤 외압을 많이 받았습니다만 드러난 증거가 명확해서 구속했습니다.”

“결국 외압 때문에 강기창 경감이나, 이용식 처장은 수사하지 못했나요?”

“다른 이유도 있지만, 한직으로 발령 나서 수사 자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가물가물했는데, 지금에서야 그때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결국 로이스 펀드에 뭔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생각보다는 그 펀드 규모가 크고, 광범위합니다. 단순한 대기업 비자금 정도가 아닙니다. 정치인도 연루된 권력형 범죄입니다. 이런 수사를 저 혼자 할 수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조민호 자신의 귀찮은 일을 대행해주는 김정환 검사다.

“아, 종영돈 부장검사 부탁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환자 치료하는 일인데, 딱히 그런 말씀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정말 뇌 장애와 관련이 있는 발달장애도 치료할 수 있습니까?”

“지금부터 확인해봐야죠.”

“아, 네, 꼭 부탁합니다.”

“네.”

그는 자신이 직접 이 배후를 추적했을 경우를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특히 과감하게 자신이 손을 썼다고 가정할 때 현 정권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 반격해올 것이다.

그 대응까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했다.

‘내가 정말 사람을 잘 골랐어. 직접 그놈들 배후를 추적했다면 고생도 고생이지만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았을 거야.’

***

“발달장애라......”

앨리엇 사냥에만 관심 있는 조민호도 마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기는 했지만, 현대 의학처럼 복잡한 모든 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을 다 습득하지 않았다.

전생 의술과, 현대 의학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기존 환자는 그럭저럭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했지만, 앞으로 계속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도서관에 가서 직접 발달장애에 대한 것을 조사했다.

이 발달장애는 전반적인 장애 문제인데, 대부분이 유전성에서 기인한 신경발달장애다.

병리학적으로도 소뇌 장애와 연관되는데, 세포 수의 변화나, 세포 밀도, 심지어 신경원 크기와도 관련된다.

아직은 이 발달장애와 관련된 특정한 유전자에 대해서 밝혀진 것도 없다.

결국 현대 의학에서도 이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 사회학적인 부분에서 접근한다.

‘뇌가 커진다라.’

조민호는 발달장애 서적과, 논문을 살피면서 다양한 원인을 살폈는데, 영역을 확장하다 보니 곧 한 가지 벽을 마주했다.

번역이 아니라 순수하게 영어로만 되어 있는 자료였다.

그의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너무 복잡한 의학 논문이나, 원서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젠장.’

조민호는 결국 번역 아르바이트를 구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도서관에 숨어 있는 그를 마침 찾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김지수였다.

“민호씨, 여기 있었군요.”

“아, 오랜만입니다.”

방학 중에도 한국대 도서관을 찾은 수십 명의 남자가 김지수를 뒤에서 몰래 훔쳐봤다. 그들은 연예인이 울고 갈 그녀의 수려한 미모에 단 한 치도 눈을 돌리지 못했다.

하지만 김지수는 그런 분위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성 바이오 사외이사 관련해서 서명해주셔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조민호도 최영준이 알아서 해주겠다고 한 말을 떠올리면서 서류를 한 번 훅 읽어보고는 그냥 다 일괄 사인해버렸다.

김지수는 긴 머리를 뒤로 살짝 넘기면서 조민호가 책상 위에 쌓아둔 의학 서적을 살피다가 그 내용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어머, 의서도 공부하세요?”

“그냥 참고삼아서 봅니다.”

그녀 눈은 존경으로 가득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이건 따로 번역한 건가 봐요.”

“영어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힐끗 번역한 부분을 살피다가 해맑게 웃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제가 미국에도 있어서 영어는 제법 해요.”

“그래요?”

“네. 번역은 제가 정말 잘해요.”

조민호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번역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번거로워서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제가 표시해둔 것만 해주세요.”

“넵.”

옆자리에 앉아서 번역 삼매경에 빠져드는 김지수를 힐끗 쳐다보다가 곧 그녀 주변의 선천지기 변화를 느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예뻐진 것도 있지만 선천지기 잠재력이 늘어난 것 같아.’

확인하려면 직접 피부 접촉을 통해서 신체 이곳 저곳을 만져야 했는데, 그냥 깔끔하게 접었다.

대부분의 시선 주인공은 취업과 같이 절박한 마음에 도서관을 찾은 이들은 조민호를 살기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질투인가?’

***

발달장애 환자 중에 자폐증 환자의 뇌 현상에 대한 보고는 꽤 많다.

이 뇌 용적 변화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신경발생이나, 신경교, 신경연접, 신경원 이동 발생이 그 하나이다.

김지수가 번역한 논문들은 바로 이런 가설과, 학회에 보고된 논문이 그 주였다.

“소뇌의 컬킨제 셀 감소도 그렇지만, 신경교 과다 생성이 없다는 의미는 소뇌 발달 초기에 이상 소견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흠.”

조민호는 원서가 아니라, 묵묵히 한글로 번역된 자료를 보고는 있었지만, 그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대신 느낀 것은 풋풋한 김지수의 체향이다.

묵묵히 번역에만 집중한 그녀 모습은 특히 매력적이었다.

도서관 내의 따가운 시선은 점점 증가하는 것도 그 이유였다.

그도 어지간하면 참을까 하다가 결국 어느 정도 번역 작업 확인을 끝나자 김지수를 데리고, 구경꾼의 나직한 한숨을 뒤로 한 채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

발달장애에 관한 연구는 확실히 복잡하고, 광범위했다.

변연계의 이상이 그 하나고, 뇌간의 이상 역시 그다음이다.

신피질의 이상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데, 피질 이형성 문제도 있었다.

조민호는 특히 신경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 자료를 명확하게 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번역문 때문에 대략 발달장애가 뭔지는 알아냈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씀만 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흠.”

그는 힐끗 살짝 부끄러워서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김지수 모습에 갸웃했다.

이상하게 저 자세다.

박진민에게 최근 들은 연애 잔소리에 의하면 내숭인가 싶었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그는 이보다 다른 구경꾼과는 조금 다른 집요한 시선에 힐끗 도서관 맞은 편 쪽으로 나 있는 소로 쪽을 쳐다보았다. 순수한 선천지기 때문에 미묘한 변화를 금방 알아채고는 걸음을 옮겼다.

‘카메라인가?’

김지수는 그런 조민호 뒤를 쪼르르 달려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지수를 살피던 서상희 경호부장은 다른 경호원을 데리고 난감한 얼굴을 한 채 인상을 찡그렸다.

***

동이 일보 김미애 기자는 유연진 완치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집요한 성격 때문에 뜻밖에 오성 의료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그런데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오성 의료원 인원이 중심이 된 오성 바이오가 설립되었다.

두 사건은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연진 치료 비밀이 신약 사업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유연진 예후와 관련된 자료를 얻었다.

그 결과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결과였다.

마치 치료 중간 과정이 삭제된 것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찾았어.’

김미애 기자는 취재한 이 내용을 딱 보고했하기가 무섭게 오히려 본사에서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녀는 실로 황당했지만, 오히려 특종에 대해서 확신했는데, 도대체 어떤 놈이 이 지시를 내렸는지 바로 확인했다.

중아일보의 최영준 차장이 그 배후라는 것을 확인하자 이를 갈았다.

그녀는 보복을 다짐하면서 최영준 차장을 다시 재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뜻밖에 최영준 아내와, 김지수 완치된 사실을 확인했다.

‘대박이다!’

왜 최영준 차장이 자신에게 압력을 가했는지 그 이유를 파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마음이 살짝 바뀌었다. 이제는 고만고만한 최영준 아내보다 화제성이 더 큰 김지수에 집중했다.

딱 보복 상대로 안성맞춤이다.

그녀는 유연진 완치 비밀을 보류한 채 우선 김지수 취재에 더 매달렸다. 오늘도 별생각 없이 그녀를 미행했는데, 뜻밖의 현장을 발견했다.

‘어, 남자가 있어? 와아, 좋겠다. 완전히 남자 신데렐라잖아!’

원래 기사 방향과는 좀 달랐지만, 꽤 매력적인 소재였다.

오성 그룹 막내딸이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관심 둘 소재였다. 그녀는 특히 원래 결혼까지 하기로 했던 남자와 헤어진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최영준 차장에 대한 보복으로 이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 김미애는 망원 카메라를 죽으라고 깨가 쏟아지는 두 사람 모습을 사진 찍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점점 카메라를 향해서 다가왔다.

‘어?’

조민호는 상대가 기자라는 것을 발견하자 혀를 차면서 큰아버지 조수현이 언론을 비롯한 주변 시선을 끌기 시작할 것이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면서 망원 카메라를 빼앗다.

‘벌써 기자가 꼬이나?’

“아, 안돼!”

“그쪽은 초상권이란 것도 모릅니까?”

“당장 내놔!”

악착같이 달려들려다가 뒤에 서 있는 김지수 안색이 차갑게 변하는 것을 보자 몸을 움찔 떨었다.

뒤쪽에서는 벌써 긴장한 김지수 경호원이 우르르 다가왔다.

조민호는 카메라에서 SD 메모리를 꺼내서 김지수에게 던져주었다.

“도대체 뭡니까?”

“제가 묻고 싶네요. 그쪽은 김지수씨의 숨겨둔 연인입니까?”

그도 반박하려다가 상대가 기자라고 생각하자 멈칫했다. 그 자신이 그 어떤 말을 해도 괜한 정보를 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초롱초롱한 김미애 눈빛. 실로 뜨거운 취재 욕으로 불타올랐다.

새삼 피곤해진 조민호는 이 기자가 자기 때문이 아니라, 김지수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죄, 죄송해요.”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끼어들 일이 아니니,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네.”

시무룩한 그녀.

이제 좀 오붓한 시간을 보낼까 싶었는데, 다 망해버렸다.

김미애도 힐끗 사라지는 조민호 모습을 보다가 뒤늦게 마주한 상대가 오성 그룹 막내딸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긴장했다.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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