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69화 (69/176)

#069

호의적인 임서이조차 자기를 빼고 이 중요한 결정을 혼자 내린 것에 화나서 남편 조수현을 압박했다.

“당신 그게 무슨 소리야? 사외이사라니.”

동갑이라서 조민호와 편하게 지내는 차남 조정국조차 세상에 무심한 듯 대화에 끼지 않다가 이번에는 발끈했다.

“아버지, 설마 회사에서 말 돌던 오성 바이오 지분 관련된 것을 민호에게 다 맡긴다는 말이세요?”

이제 은근히 조민호를 인정하는 막내딸 조지연 역시 평소와는 달랐다.

아무리 서로 마음을 풀었다고 해도 재산 문제가 표면 위에 떠오르자 다들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곧 신약 바스클린 임상 1상이 곧 시작된다는 소문 때문에 의약 업계에서도 오성 바이오에 관한 관심이 무성했다.

조수현은 자기 의도대로 풀려가는 분위기에 오히려 기회가 왔다고 확신하자 한 사람씩 가족들 눈을 보면서 손가락을 하나둘 세웠다.

“일단 오해를 풀기 위해서 몇 가지 말하마. 첫째 오성 바이오는 오성 그룹 측에서 요청한 것이라서 그쪽 이야기를 따라야 한다. 둘째로 민호의 사외이사 추천도 오성 바이오 측에서 원한 거다.”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에 다들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셋째는 김건중 회장이 오성 바이오 일을 직접 챙긴다. 내가 비록 투자하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김건중 회장 입김을 무시할 수는 없다.”

뒤늦게 오성 바이오 이야기를 들은 조철영도 황당해서 소리쳤다.

“맙소사 지금 오성 그룹 김건중 회장을 말하는 거야? 아니 그분이 왜 이제 대학 3학년인 민호를 찍어서 사외이사로 추천해?”

의문이 주렁주렁 피어올랐다.

이미 자기 예상대로 풀려가는 분위기에 조수현이 피식 웃었다.

“궁금하면 김건중 회장에게 직접 확인해 봐. 나도 잘 모르니까.”

기회가 왔다가 판단하자 조민호도 어깨를 으쓱했다.

“큰아버지의 이번 중국 상하이 투자도 그 돈 출처가 오성이잖아요. 이번 투자로 큰 이득을 봤으니, 특혜를 베푸는 거죠.”

그 혜택을 조민호가 왜 보냐는 불만으로 가득한 임서이는 힐끗 아들 조정국을 잠깐 쳐다보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저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보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도 꼭 아직 대학교 3학년인 민호가 오성 바이오 사외이사가 될 이유는 없잖아?”

돈 이야기가 나오자 임서이 반응도 사뭇 달라졌다.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조차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조수현 회장은 이미 한 번 앓아야 할 홍역이라고 생각해서 일축했다.

“당신도 민호 덕 봤잖아. 민호가 환자 보는 눈이 대단하다는 거. 그것 때문에 김건중 회장도 민호를 높이 본 거야.”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오히려 반박했다.

“그런 사실을 김건중 회장이 어떻게 알아요?!”

“오성 의료원이 오성 그룹 거라는 알면서 그래. 당신도 그쪽에서 치료받았잖아. 아마 최영준 차장의 아내 치료 정보가 그런 식으로 들어갔을 거야.”

“그렇구나.”

뒤늦게 늑간동맥 때문에 생긴 일을 떠올린 임서이도 뒤늦게 한숨을 내쉬면서 힐끗 복잡한 시선으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자신을 치료해준 조민호. 그렇다고 해도 오성 바이오의 사외이사가 가지는 그 강력한 힘. 장남이 이 자리에 없는 이상 차라리 차남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 그녀 마음이었다.

그 내적 갈등이 일어나자 그녀 머릿속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미안해요.”

뒤늦게 다들 한 마디씩 사과했다.

조철영 역시 조민호 능력을 떠올렸다.

“민호 네 능력이 확실히 바이오 쪽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아들을 의심하다니. 채용 비리 뉴스 때문에 나도 예민했다.”

그제야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그들 역시 대부분은 지난 늑간동맥 일을 잊고 있었는데, 막상 다시 그 일을 떠올리자 새삼 조민호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의료 분야는 민호가 더 적합해.’

자연스럽게 오성 그룹 특채 자리에 나간 것도 다들 수긍했다.

임서이를 비롯한 다른 이들 역시 갑작스러운 오성 바이오 지분과, 사외이사 자리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을 자책했다.

티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조철영조차 조수현 도움에 빌붙어서 있었다.

아무리 서로 한가족이라고 해도 그 사이에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제는 조민호 덕분에 균형추가 조금씩 바뀌었다.

작은 변화라고 해도 그 의미는 컸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조민호만큼은 이 기묘한 분위기 변화에 혀를 내둘렀다. 그 자신이 가끔 먼저 하려고 했던 일이었다.

조수현은 단순히 가족이라서 배려해주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설사 가족도 다른 고객과 차별대우하지 않았다.

그는 전생에서도 저렇게 공명정대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돈 앞에서 사리가 저렇게 분명한 사람은 흔치가 않았다.

‘확실히 큰아버지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

조민호 영향력은 검찰청, 가족을 넘어서서 조금씩 주변에 넓혀갔다.

겉으로는 잘 티가 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현상이 두드러졌다.

임서이 같은 경우에는 개인이라서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검찰청은 좀 달랐다. 검찰청 내에 정확한 내막을 잘 모르는 이들은 다들 이 기묘한 변화에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참고인 조사 때문에 조민호를 본 검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들 대다수는 여전히 조민호와, 양주민 검찰총장과 관계를 몰라서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그들은 심지어 다른 사법기관과 대놓고 정면에서 대립하는 양상에 불안했다.

양주민 검찰총장이 비록 자기 수족을 대검찰청에 깔아놓기는 했지만 다른 쪽과 연결이 된 몇몇 검사들은 상황이 달랐다.

종영돈 부장검사는 김정환 검사도, 양주민 검찰총장 두 사람의 큰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변화를 따랐다.

그는 김정환 검사 행보를 옆에서 주의하여 살펴보았다.

오늘도 김정환 검사는 물론 요즘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이용식 법원행정처장 때문에 고생했다.

“자꾸 이러시면 서로 힘들다는 것을 잘 알면서 이러십니까?”

“......”

그는 먼저 채용 비리보다는 오히려 형량이 더 높은 뇌물죄를 걸고넘어졌다.

“이미 강기창 수첩에 선배님이 금품 로비한 금액과, 날짜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 장소 CCTV를 확인 중입니다.”

“......”

이용식 법원행정처장의 법률 대리인 김주옥 변호사는 피식 웃었다.

“어이구, 우리 후배님, 무섭다. 이제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 협박하는 거야? 아니 생각을 해봐요. 수첩에 이름이 있다고 다 죄가 있는 겁니까. 강기창 경감이 실수로 이름 적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용식 처장님을 소환한 것도 채용 비리 때문 아닙니까?”

김정환 검사가 의도적으로 형사 3부 쪽에서 진행하는 강기창 경감 수사를 부추겨서 상대를 압박하려고 했었는데, 깔끔하게 포기했다.

“좋습니다.”

“채용 비리도 아직 확실히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뇌물 받은......”

“오성 인사팀에 있었다고 한 채모씨 말인가. 그 친구 지금 국내에 없습니다.”

전 오성 인사팀 채명식 과장을 빼돌린 것은 오성 그룹이 아니라, 바로 김주옥 변호사다. 그는 이 사건을 수임하기가 무섭게 손을 쓴 것이다.

“곧 국내로 소환될 겁니다.”

“언제 소환될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요? 결국, 전부 카더라 이야기뿐입니다. 그리고 뇌물 받았다고 하는데, 증거는 있습니까?”

“그건 금융계좌에 대한 압수 수색이......”

“그거 영장 기각되었다면서? 하, 우리 후배님 요즘 많이 컸습니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는 것만 가지고 지금 압박하는 겁니까?”

김주옥 변호사는 금융계좌 압수 수색 영장이 계속 기각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말했고, 심지어 채용 비리 관련해서 돈 받은 채명식 역시 국내로 송환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 듯 말했다.

“으음.”

그도 석연치 않은 김주옥 변호사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김정환 검사도 지긋지긋하게 계속되는 법원의 수사 방해 행위에 내심 치를 떨었다. 압수 수색 영장을 내면 거의 다 기각이다. 설사 영장이 허락되는 경우라고 해도 수사 연속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요즘 심사가 복잡한 종영돈 부장검사가 오히려 김정환 검사를 따로 불러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

법원의 영장 기각은 특히 김정환 검사를 비롯한 몇 사람에게 심했다. 그런데 이용식 소환 이후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후유, 저도 이렇게 노골적인 수사 방해는 처음 받아 봅니다.”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고 해도 법원과, 심지어 법무부, 아니 요즘은 중앙지검 내의 간섭까지 받자 수사를 쉽게 할 수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사정이 최근 언론 보도에도 나가지 않았다.

마치 모든 언론이 법원의 협박이라도 받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이용식 처장이 포토 라인에 설 때만 해도 당장 감옥에 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요즘 다시 떠돌기 시작한 연예인 섹스 파티에 이은 마약 복용 사건 때문에 묻혀버린 것이다.

종영돈 부장검사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외부 압박이 모든 인맥을 통해서 다 들어오고 있어. 변순기 1차장님 외가에서 이번에 착공하기로 한 공장 인허가가 늦어지는 것도 그 하나야.”

단순히 한 사람만이 아니라, 검찰 쪽과 관련된 모든 인맥을 통해서 총체적인 압박이 지속해서 늘어났다.

김정환 검사 역시 과거 많은 외압을 받았지만, 이번 정권 같은 경우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왜 이용식 처장을 저렇게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걸까요?”

“내가 듣기로는 강기창 경감이 키야. 이용식 처장도 그 리스트랑 관련이 있잖아. 경찰 수사 담당자 말로는 그 수첩에 대한 것도 암묵적으로 묻어버린 거야.”

“그러면 그 강기창 리스트가 어떻게 저희에게 넘어온 걸까요?”

그도 이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경찰 중에도 양심 있는 친구가 있었겠지.”

결국 이 사태를 주도한 이는 강기창 리스트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와 관련이 있는 이용식 처장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기를 원했다.

보통 검사라면 절망했을 상황에서도 김정환 검사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얼굴을 한 채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난 두선 비자금처럼 끝내지 않을 겁니다.”

“자신 있구나.”

“물론이죠.”

“숨겨둔 한 수가 있나 본데, 김주옥 선배가 누구인지 잘 알잖아. 검찰에 있을 때만 해도 최고의 검사 중에 하나야. 방심하지 마. 이번 사건에 할당된 변호사 숫자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는 소리가 있어.”

김정환 검사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거 좋네요. 제가 이번에는 쓴맛을 제대로 보여줄 겁니다. 반드시 잡아넣겠습니다!”

종영돈 부장검사도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피식 웃었다.

“하긴 자네가 언제 쉬운 환경에서 수사한 것은 아니니까. 이번에는 든든한 백업도 있으니, 해볼 만한 싸움이겠지.”

말을 하는 종영돈 부장검사 얼굴에는 생각보다는 어둠이 가득했다.

김정환 검사도 평소와는 다른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이번 일 때문은 아냐. 아니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해야 하나.”

“광훈이 때문입니까?”

“하아, 그래. 거기에 처남도 최근 은행 독촉에 시달리고 있어. 원래는 은행이 대출금 상환을 연기해주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거야. 돈 문제는 어떻게 도와준다고 해도 광훈 때문에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

김정환 검사도 이미 가끔 이상한 종영돈 부장검사 눈빛을 봤기에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만 제 말대로 그분에게 치료받아보세요.”

“정말 효과가 있을까?”

“양 총장님 치료 경과를 보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게 내가 직접 치료 과정을 보지도 않았고, 워낙에 말들이 많아서 말이야.”

양주민 검찰총장 치료받은 것 역시 대검찰청 내에서도 말들이 무성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양한 가짜 뉴스 진원지가 오성 의료원이었다. 이쪽에서 별의별 소리를 다 해서 도대체 어떻게 치료된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직도 의심하십니까?”

“그렇게 말하지 좀 마. 솔직히 지압으로 신경발달학적 발달장애를 어떻게 치료 하냐. 너도 이성이 있으면 절대로 수긍 못해!”

다소 격정에 가득한 어조였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비슷한 소리 한다.

“그러면 제가 한 번 물어보죠.”

그는 실제로 조민호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해보았다.

조민호 역시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확인해보겠다는 말만 했다.

“......흠.”

“내 말 맞지? 지압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해!”

“일단 확인해보고 전화 주겠다고 했으니, 섣부른 결론은 내리지 마세요.”

“어려울 거야.”

하지만 이제까지 계속 의심만 하던 종영돈 부장검사 말 속에는 숨길 수 없는 미련이 남아 있었다.

‘정말 광훈이 치료만 된다면, 내 영혼이라도 받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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