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선천지기 잠재력은 보통 일반 성인 10을 기준으로 한계에 도달한 이가 대략 20정도다. 30을 넘었다는 이야기는 이들과도 격이 다른 인물이었다.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을 인물일수록 더 높은 선천지기 잠재력이 있을 것으로 추측은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젊은 친구 내 말 안 들리나?”
그도 피식 웃으면서 유심히 김정욱 이사를 세심하게 살폈다.
자신을 무시하는 조민호 행동에 화마저 난 김정욱 이사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질책하려고 하다가 멈칫 멈추었다.
조민호 주변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기묘한 기세 때문이었다.
선천지기 잠재력 33, 정신 스탯은 무려 45에 가까운 김정욱 이사는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어렴풋하게나마 120만 정신 스탯 기운을 느꼈다.
그는 그 기운 여파 때문에 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을 느끼면서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
직위가 직위인 만큼 이제까지 국외를 이웃집처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조민호같이 강력한 인상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로서도 상당한 쇼크였다.
조민호 입가에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이미 자기 무학을 올리기 위해서 대홍실업 직원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 속으로 스며들어서 선천지기를 흡수해야 한다는 것을 짐작했다. 따지고 보면 굳이 번거롭게 오성 그룹 면접 자리에 나온 것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전생에서는 무학을 수련하기 위해서 폐관 수련해야 했지만, 현대에서는 오히려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야 한다니.’
“놀랍네요.”
“이게 무슨......”
그는 여전한 위압감에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기묘한 압력은 곧 사라졌다.
슬그머니 정신 스탯 테스트를 진행해서 살짝 압박을 넣은 조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 그룹이 대단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새삼 이번에 절감합니다.”
겨우 숨을 돌린 김정욱 이사는 조금 전에 그 기묘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안색을 굳혔다.
“......자, 자네는 누군가?”
“오늘 면접 1차 지원자 정도로 하죠.”
그는 힐끗 졸아 있는 김정욱 이사를 무시한 채 한 쪽에서 얼어붙어 있는 민경기 과장을 쳐다보았다.
“안내하세요.”
“아, 네? 네!”
민경기 과장은 뒤늦게 김정욱 이사에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한 후에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조민호를 안내했다.
“......”
덕분에 이 이상한 상황에 같이 휩쓸린 장연주는 혹시나 김정욱 이사가 자기 면접자가 아니기를 빌면서 울상을 한 채 종종걸음으로 조민호 뒤를 따라갔다.
김정욱 이사는 조금 전의 그 기묘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의문을 토하고 말았다.
‘도대체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올 하반기 채용이 다소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벽을 뚫기는 쉽지 않다. 기업도 철저하게 확인된 인재만을 원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진 탓이다.
한국 다른 대기업도 이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신입 공채 비율만 해도 그 경쟁률이 살벌했다.
오성 전자의 올해 이 신입 경쟁률만 무려 5.93대1이다.
따라서 특채 경쟁률은 워낙에 뽑는 숫자가 작아서 단순 수치로 따지기 어려웠다.
백종식 역시 면접 대기실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미국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이번 입사에 자신하지 못해서 미리 준비해둔 자기소개서를 죽으라고 외웠다.
다른 면접 지원자 역시 서로 눈치를 보면서도 어떤 식으로 면접에 답해야 할지 고심했다.
아닌 이도 있었는데, 영국식의 두꺼운 소재와, 캔버스를 사용한 정장을 입고 있는 이다. 그는 오히려 휘파람까지 불면서 핸드폰으로 여자 친구와 통화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 면접 끝나면 5시쯤 될 거야. 그 클럽으로 와라. 친구들도 좀 데려와. 내가 화끈하게 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난 무조건 합격하니까.”
백종식이 참지 못해서 한마디 했다.
“조용 좀 합시다.”
“당신이 뭔데 그래?”
“지금 면접 때문에 다들 예민합니다. 그러니 전화도 적당히 좀 하란 말입니다.”
“당신이 더 시끄럽지 않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젖으면서 아예 무시했다.
그런데 상대 이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왔다.
“야,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
“당신 정말 해보자는 겁니까?”
“말은 똑바로 해. 내가 전화한 것이 뭐가 이상하다고 그래? 무능한 새끼가 괜히 자격지심으로 난리 칠 것 아냐?”
결국 눈치만 보던 이들 중에 한 사람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면접 대기실 밖에서 마침 인사과 직원이 들어와서 소란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때마침 장연주와 헤어진 조민호가 면접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민경기 과장은 아예 따로 마실 고급 녹차와, 간식까지 준비해서 옆에 뒀다. 그는 심지어 이번 실무진 면접과 관련된 조언까지 해주었다.
“장연주씨는 제가 특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굳이 길게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답은 짧고, 간단하게만 하면 됩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모른다고만 하시고요.”
“그 정도면 됐습니다.”
그리고 살짝 눈치 협박.
민경기 과장은 다른 면접 지원자 시선을 확인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조민호 역시 따가운 주변 시선을 의식했지만 모른 척했다.
그런데 면접 지원자 중에는 혹시 낙하산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뭔가 못마땅한 이현이 배알이 꼴리는지 결국 나섰다.
“쯧, 아직도 분위기 모르네. 이미 면접 당락은 결정 나 있어. 너희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소용없다. 결국, 얼굴마담이니까.”
백종식이 발끈했다.
“당신 그 말 근거가 있는 겁니까?”
그는 비웃는 얼굴로 툴툴거렸다.
“내가 그 근거잖아. 내 평균 학점이 2.1 정도밖에 안 된다.”
분위기가 곧 어수선해졌다.
오성 그룹에도 낙하산이 있다는 이야기는 항상 있었다. 다만 언론을 통해서 제대로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홀로 미국 유학을 어렵게 갔다 온 백종식은 이를 악물었다.
“꼭 학점이 증거가 될 수는 없어!”
“참 눈치가 이렇게 없다니까.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나 알아? 바로 법원행정처장이야. 그래도 모르겠다면 어쩔 수 없고.”
사법부의 인사와 같은 사무를 관장하는 법원행정처장은 고등 법원장이 맡는데, 장관급으로 법원장보다 더 높다.
실상 사법권 독립을 위해서는 재판만이 아니라, 인사와 같은 사무 역시 외부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꼭 거론되는 기관이다.
사법 농단 의혹 때문에 늘 말이 나오는 것이 이 법원행정처다.
“......”
백종식도 가슴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면서 최근 TV만 보면 말이 나오는 양주민 검찰총장 사단이 일으키는 일을 떠올렸다.
오성 그룹 역시 양주민 검찰총장의 칼날을 피해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현 법원행정처장 아들이 특채를 지원한 것은 단순히 우연으로 보기 힘들었다.
‘설마 오성 그룹도 검찰 때문에 의도적으로 특혜 채용 숫자를 늘리는 건가?’
옆에서 혹시나 김건중 회장 협박 건수를 찾던 조민호는 딱 채용 비리 현장을 발견하자 오히려 음흉하게 웃었다.
“어이, 당신, 그래, 멍청한 생긴 놈, 정말 이번 면접에 확실히 붙을 것 같아?”
“그래. 가만 너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 ......이것 봐라. 나보다 더 막 나가는 놈이잖아?”
면접 대기실에 있던 이들은 다들 조민호 복장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조민호는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집게손가락으로 목을 쭉 그었다.
“내가 뭘 입던 넌 상관 마. 그리고 넌 이번 면접에서 100% 떨어진다.”
“하, 웃기는 새끼네.”
“입이 꽤 걸다.”
“네 입보다는 깨끗하다.”
두 사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지간하면 다른 이들이 말렸을 테지만 둘 다 포스가 이상해서 다들 구경만 했다.
다행히 민경기 과장이 순찰(?) 중에 마침 두 사람을 발견하고 나서는 다급하게 말렸다.
그는 두 사람 대우하기는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조민호에게는 더 저자세였다.
아무리 막 나가는 이현이라고 해도 오성 그룹 본관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역시 완전히 바보는 아니라서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저놈이 무슨 대통령 아들이라도 되는 거야?’
***
이번 면접은 한 번에 네 사람씩 같이 면접실로 들어갔다.
백종식은 제발 저 폭탄 두 놈은 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런 제기랄.’
하필이면 이현과, 조민호 역시 같은 조였다.
이현 역시 조민호를 황당한 눈으로 계속 쳐다봤는데,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옷부터 시작해서 제발 떨어트려 주세요란 포스를 요란하게 남발했다.
‘나도 아버지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눈치 보여서 몸조심하잖아. 그런데 저놈은 도대체 무슨 백을 믿고 저러는 걸까?’
나머지 두 사람 다 조건은 달랐지만, 면접실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조민호를 유심히 살폈다.
신기한 일은 또 일어났다.
다섯 명의 실무 면접관이 엄한 눈으로 한 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조민호 복장에 대해서 별다른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조민호는 면접관 앞에 있는 의자 중에 가장 구석에 가서 풀썩 앉은 채 다리를 꼰 채 면접관을 오히려 살폈다.
면접관은 조민호 시선을 받자 화들짝 놀라서 다들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채 식은땀마저 흘리기 시작했다.
그냥 보면 도대체 누가 누구를 면접 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
백종식은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교대로 쳐다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현 역시 다소 황당한 눈으로 분위기를 살폈다.
나머지 한 사람은 그저 눈동자를 돌리기 바빴다.
[크흠, 그러면 김재연씨부터 자기소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본격적인 면접.
알아서 각자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오성 그룹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다음 이현은 아예 숨김없이 그대로 자기 아버지가 법원행정처장이라는 것을 피력했다.
그 효과는 확실히 대단했다.
면접관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들은 마치 ‘ 아 이 친구였구나!’ 하는 그런 시선이었다.
조민호는 물론 자기 차례가 되기도 전에 슬쩍 끼어들었다.
[굳이 자기 아버지가 법원행정처장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군요. 저 친구 이야기로는 자기 대학 평균 학점이 2.1이라는데, 이거 특채 지원 결격 사유에 걸리는 것 아닙니까?]
[아, 그게......]
당황한 실무 면접관. 경영팀 팀장이기도 한 그 역시 이미 민경기 과장 통해서 사전에 보고를 받은 터라 끙끙 앓았다.
특채 최하 평균 학점이 3.3였다.
그런데 이 일은 무려 임원도 아니라, 이학준 비서실장이 직접 체크하는 일이다. 아차 실수했다가는 내일 당장 짐 싸서 나갈 수도 있었다.
[......원래 면접은 계열사별로 보는데, 이번 특채는 본관을 비롯해서......]
조민호는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이에게 소리쳤다.
[당신 소속이 어디입니까?]
[......경영팀 1팀 팀장입니다.]
[이름은?]
[최창수입니다.]
[그 아실만한 분이 왜 그러세요. 딱 봐도 법원 쪽에 손쓰기 위해서 저 이현이란 친구 특혜 채용하려는 것 아닙니까. 이 일이 언론을 통해서 폭로되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당신들 채용 비리로 모두 다 은팔찌 차는 겁니다!]
수갑이라니.
면접 실무 담당자는 처음 들어보는 압박에 마른 침을 삼켰다.
최창수 팀장을 비롯한 이번 실무 면접을 나온 이들 안색이 다들 창백하게 변했다.
조민호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만약 이번 특혜 의혹에 관한 검찰 조사가 이어진다면 다른 때와는 달리 양주민 검찰총장 하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 생긴다.
[.....확인해보겠습니다.]
[이런 부정한 면접 따위는 못 보겠네요. 그러면 오늘 면접은 여기까지 하죠. 난 저 친구 결과를 보고 나서 당신들을 판단하겠습니다.]
폭탄을 던진 조민호는 벌떡 일어나더니 면접실을 그냥 나가버렸다.
뒤늦게 최창수 팀장이 정신을 차리자 벌떡 일어나서 조민호를 잡으려고 나섰다.
“자, 잠깐만요. 조민호씨......”
나머지 면접관은 다들 눈치만 보면서 헛기침만 했다.
“......”
백종식은 입을 딱 벌린 채 이 놀라운 사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 진짜 대단하다.’
면접 지원자가 면접관을 상대로 이렇게 갑질 하는 장면은 보통 기업에서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하물며 한국 최고 기업이라는 오성 그룹이 그 대상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편으로 정말 조민호가 부러웠다.
‘세상을 저렇게 살 수 있다니.’
재미있는 사실은 이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국 면접관 눈치를 보다가 아버지에게 전화하면서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