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64화 (64/176)

#064

흠칫 놀란 최영준 차장은 메모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치료는 치료다.

그런데 막상 일어난 결과는 단순히 환자 회복으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치밀어오른 것은 두려움이었다.

조민호는 마치 그의 내심을 들여다본 것처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고민 마세요. 설마 제가 그 정도를 생각 못하겠습니까. 애초에 민정수석이 어떤 식으로 연관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 돌려서 김정환 검사를 도와주라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양주민 검찰총장이 자기 신념에 따라서 판단한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민정수석이 그 직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아.”

“그게 중요합니까?”

민정수석의 영향력을 전혀 모르는 듯한 조민호 말투에 최영준 가슴은 덜컥했다.

“주, 중요하지. 만약 그 민정수석이 연루된 부패가 터지기 시작하면 대한민국 곳곳에서 국지전이 발생하기 시작할 거야.”

“걱정도 많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딱 부패한 몇 놈만 처리하면 됩니다.”

그도 부패 관료를 일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혼란이 일어나는 상황을 염려했기 때문에 흥분해서 버럭 소리쳤다.

“그게 안 그렇다니까!”

조민호는 심드렁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뭐 좀 더 규모가 커지면 어떻습니까. 이번 기회에 썩은 놈들 몽땅 다 처리하죠. 그러다 보면 앨리엇 패거리도 우수수 튀어나올 겁니다. 그때 몽땅 일망타진할 겁니다!”

“하, 하지만......”

그는 설마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생각인가?’란 말까지는 하지는 못했다.

그 자신도 제보를 통해서 몇몇 사실은 알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모르는 민정수석과 연루된 복잡한 역학 관계를 말하지 않았다. 지금 그걸 말한다고 해도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이미 화약고에 불이 붙었어. 도대체 어쩔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조민호는 그를 다독거렸다.

“저만 믿으세요. 모두 다 괜찮을 겁니다.”

최영준 차장은 그제야 안도했지만 한 편으로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모두 다 괜찮습니다.”

***

조민호가 무림에서 절대자로 살았지만 그렇다고 현대 조직 구조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민정수석이 대단하다는 정도만 알았다.

현대 정부 조직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세세하게 잘 몰랐다.

물론 다른 사람 생각은 많이 달랐다.

특히 국정원 도청 테이프 때문에 홍역을 앓은 오성 그룹 역시 이 대상이다.

검찰도 초동 수사에서 자신감을 보였지만 최근 와서는 흐지부지되었다.

이들이 오성의 약한 고리를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오성의 막강한 법무팀과 싸움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데 양주민 검찰총장의 변화 이후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당장 애버랜드 헐값 증여 사건을 조사하는 중앙지검 금융조사부 역시 소극적인 태도를 바꾸어서 공격적으로 이 사건을 재조사했다.

그들은 추가로 오성 임원 두 사람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김건중 회장에게 이 안건을 보고했다.

“양주민 검찰총장이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뒤늦게 최근 양주민 검찰총장의 행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이학준 비서실장은 오성 의료원을 가서 검진을 받은 것과, 믿기 어려운 예후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더 집중했다.

“역시 조민호인가?”

“네. 치료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신경섬유종증까지 완치했습니다.”

“하필이면......”

김건중 회장도 조민호의 경이로운 치료 능력에 한 편으로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기가 막히는군.”

신경섬유종증 예후에 관한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양주민 검찰총장의 무지막지한 행보였다.

“양 총장에 대해서 따로 손을 써 둔 것은 없어?”

“죄송합니다.”

“이상하군. 자네가 그런 식으로 어설프게 손을 썼다고 믿기지 않아.”

“그게 지금 정권의 행보를 볼 때 검찰총장 임기는 길어야 6개월이었습니다. 현재 청와대 내부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실제로 양주민 검찰총장은 오래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땜질로 차지했다. 건강 문제도 있어서 그 점을 공격하면 알아서 물러날 것이라 봤다.

그런데 그 사람이 멀쩡할 정도가 아니라, 건강해지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젊은 시절의 활력까지 찾은 모양이었다.

“가만 그러면 우리가 타켓이 아니라는 건가?”

“네.”

“누구지?”

“그게 지금 확인 중입니다.”

“결국 우린 유탄(?)을 맞은 것에 불과하군.”

“그렇다고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조사받고 있는 임원 두 사람이 업무상 배임으로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회장님도......”

“그럴 일은 없잖아.”

“담당 판사는 이미 손을 써 놓았으니, 걱정할 바는 아닙니다. 문제는 양주민 검찰총장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고, 계속 수사를 이어간다면 상황이 다릅니다.”

“영장 판사에게도 이미 충분히 제동을 걸었잖아.”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영장 판사도 여론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만약 재판할 때 민심이 동요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으음.”

김건중 회장도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방법은?”

이학준 비서실장도 눈치를 보다가 결국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 사태의 가장 큰 근원은 역시 무영 그룹이고, 이들 수사에 압력을 넣어서 방해한 이가 민정수석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만 그러면 그 둘 사건을 언론을 통해서 더 키워서 부추기자는 건가?”

“네. 그렇게 된다면 저희 쪽으로 화력이 집중되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필요하다면 현 정권의 한 사람 정도를 희생시켜서 물타기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방법은 좋은데....., 그러다가 정말 이 정권이 통째로 흔들리면 어쩔 생각인가?”

“감수해야 합니다. 혼란이 극에 이르면, 저희 오성 쪽에 관심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도 박중구 회장과는 면식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박 회장에게 미안하지만......’

“알겠네. 그 작업을 바로 시작해. 하지만 조심해야 할 거야. 괜히 다른 쪽에 이 사실이 흘러들어 가면 큰일 날 거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조민호 그 친구 이야기를 해보자고. 면접을 보기로 했다면서?”

“민경기 과장이란 친구가 나서서 조민호를 설득해서 어떻게 해결한 것 같습니다만 1차 면접에만 나타날 겁니다.”

“인사팀에 이야기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리 회사에 나올 수 있도록 손을 써 봐. 만약 실패하면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경고해.”

“......알겠습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이미 조민호가 형식상 면접에 나올 것이라는 사전에 들었다. 그런 조민호를 설득하려면 어지간한 방법 가지고는 힘들다는 것도 알았다. 결국, 관련 임직원을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

무영 그룹 박중구 회장의 첩 정미정은 한때는 연예계에서도 꽤 잘 나가던 배우였는데, 박중구 회장 제안을 받아서 그의 비공식적인 첩이 되었다.

박중구 회장은 자기 아내보다 소탈한 정미정을 꽤 사랑했다. 그는 그만큼 정미정을 믿었기에 그녀를 이용해서 교육부문을 맡겼다.

이 영역은 초등학교, 고등학교, 전문대, 심지어 대학교를 다 포함한다.

앞으로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그녀 아들은 그녀의 성을 따랐다.

두 사람은 법률적으로 봤을 때도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고, 남남이다.

따라서 비자금을 만들 때 용도로 안성맞춤이었다.

정민현의 아버지 정양현 회장은 이 정미정과, 박중구 사이에 난 아들이었다.

어찌 보면 고작 무영 그룹 교육 부분을 관리하는 일이었으니,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검찰이 정성근 이사장을 구속한 후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입시 비리와, 비자금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박중구 회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다.

실제로 효과는 있었다.

이제 그 불길을 끄나 싶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가 브로커로 활용한 강기창 경감 한 사람이 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제가 커지기 전에 경찰 라인을 통해서 덮으려고 했는데, 그것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양주민 검찰총장이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부랴부랴 그가 아는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서 압력을 넣었다.

법무부 라인도 그 하나였다.

불행히도 그 힘이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은 확전을 거듭해서 자신에게 돈을 받았던 이들은 양주민 검찰총장을 향해서 입체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겨우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박중구 회장은 물론 이 미친 광대놀음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고, 지금 그 울화를 골프채를 이용해서 풀고 있었다.

풀 스윙의 골프채는 자기 앞에 무릎 끊고 있는 정양현 이마를 향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정양현 아들 정민현은 이미 몇 대를 맞아서 한쪽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 역시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터라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이 새끼야, 내가 너에게 대단한 것을 기대한 거야. 고작 학교 관리잖아. 개도 그 정도 일은 알아서 한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사태를 이 모양으로 만든 거야?!”

“죄송합니다.”

정양현은 퉁퉁 부은 눈을 한 채 바닥에 엎드려서 계속 사과만 했다.

정민현도 자기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맞는 것을 보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그가 상황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이 사태를 일으킨 조민호는 겉으로 봐서는 김정환 검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원칙에 충실한 김정환 검사가 움직였으니, 그 누구도 배후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김정환 검사를 팠을 때는 이미 손 쓸 단계는 지났다.

“입시 비리 좋다. 그 정도는 너만 하는 게 아냐. 내 말은 왜 검찰에 그 사실을 적발당한 거야. 아니 이 멍청한 새끼야.”

울분을 참지 못한 박중구 회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결국 정양현은 너무 맞아서 기절해버렸다.

박중구 회장은 정민현을 힐끗 쳐다보면서 비서실장에게 소리쳤다.

“이 새끼들 다 내다 버려.”

뒤늦게 경호원이 허겁지겁 그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원독에 가득한 박중구 회장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고, 어두운 업무까지 처리하는 김영천 비서실장만 남기고 다 밖으로 내보냈다.

“그 작업은 어떻게 되가?”

“그런데 현직 검사를 노리는 건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범인이 현장에서 잡히면 문제 될 것은 없잖아. 문제는 딱 거기서 끝내야 해!”

“이미 세팅은 끝냈습니다만 검찰청이 난리입니다. 왠지 내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어. 그 김정환 새끼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어. 차라리 확실히 보내는 것이 오히려 그 미친놈들에게 대한 경고도 될 거야. 그리고 나머지 일은 다른 놈들이 알아서 할 거야. 권력은 우리 편이니까.”

“알겠습니다.”

***

양주민 검찰총장의 성역 없는 수사 선포는 생각보다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경찰 수사 역시 그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시민 제보가 이어졌다.

경찰에게서 수사를 인계받은 중앙지검 형사 3부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강기창 경감이 물 위로 드러났다.

강기창 경감이 다른 이들과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3년 동안 파견 근무를 나가 있었다.

통상 파견 기간이 2년이었지만 연장된 점이 특이한 경우였다.

강기창 경감이 이번 로비 의혹 사건 연루가 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자 혼란이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언론에서는 온통 이 강기창 경감 뉴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강기창 게이트라는 말이 서서히 터져 나왔다. 강기창과 민정수석실을 연결하면서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금품 로비 의혹은 단순한 로비가 아니라, 권력형 로비 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때 갑자기 여자 연예인 세 명이 연루된 그룹 섹스 기사가 나왔다.

여자 연예인은 이름만 되는 알 사람이라서 포털 기사는 모두 이 종류로 도배되었다.

결국 포털 기사는 이 복잡한 기사가 뒤섞이면서 온통 뒤죽박죽되어버렸다.

조민호도 뒤늦게 온통 이 강기창 경감 의혹과, 섹스 스캔들 뉴스 쓰나미에 놀랐다.

‘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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