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63화 (63/176)

#063

***

대검찰청에 출근한 양주민 검찰총장은 맑은 정신 때문에 이전과는 달리 꼼꼼하게 올라오는 중요 서류를 일일이 다 살폈다.

그는 심지어 정원상 법무부 장관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말에도 이전과는 다르게 대답했다.

“바쁘다고 그래.”

“하지만 정원상 장관님 전화입니다.”

“괜찮아.”

“진짜 긴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경찰 수사 중인 로비 의혹 사건 관련해서 특별히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앵무새처럼 떠드는 보좌관은 정원상 법무부 장관에게 따로 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제까지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 사이를 생각해서 설득했다.

하지만 양주민 검찰총장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반응했다.

“닥쳐!”

“네? 아, 넵.”

식은땀마저 흘리는 보좌관은 당최 영문을 몰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중요한 안건 때문에 검찰총장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감찰부장 역시 굳은 안색을 한 채 눈치를 보기만 했다.

양주민 검찰총장은 살기마저 가득한 얼굴로 냉정하게 소리쳤다.

“쓸데없는 일은 신경 쓰지 말고, 김정환 검사나 호출해!”

“아, 알겠습니다.”

보좌관도 영문을 몰라서 당황했지만, 지시를 따랐다.

대기한 이들은 그 얌전하던 양주민 검찰총장이 맹호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이자 갈등하다가 슬그머니 물러나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분위기 좋을 때 와야겠다.’

**

대검찰청으로 곧 나타난 김정환 검사 역시 뒤늦게 보좌관 이야기를 들은 터라 긴장한 채 검찰총장실에 홀로 기다리고 있는 양주민을 보면서 인사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양주민 검찰총장은 달랑 둘만 있게 되자 입가에 미소를 가득 한 채로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 이게 현실인지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아.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

‘괜히 놀랐잖아.’

“......아마 그럴 겁니다.”

“혹시 조민호군, 아니 그분이 나에게 따로 원하는 것이 있는 건가? 아니 다시 좀 뵙고 인사를 직접 드리고 싶어.”

말투와,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누가 봐도 좀 이상했다.

얼핏 봐서는 세뇌를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이보다는 오히려 강한 매혹 마법에 당한 것과 비슷하다.

김정환 검사도 조민호를 인정하지만, 예상을 벗어난 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이상할 정도로 조민호를 거역하고 싶지 않았다.

“치료비 받은 것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쪽지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메모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김정환 검사를 부장 검사로 승진시키고, 앞으로 수사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법과, 원칙에 지켜서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하도록 해주세요. 그 정도면 당신의 생명 가치로도 충분합니다.]

그는 마치 하늘에서 계시를 내려받은 추기경 같은 행동을 보였다.

“그분에게 알겠다고 전해주게.”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곧 떠올린 것은 검찰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임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그 이후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검찰총장이 독하게 마음먹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올 이유는 없다. 더욱이 필요하다면 그 누구라도 잡아넣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검찰총장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게 있다면 반대파의 역습이다. 그 자신에게 있는 약점을 하나씩 확인하다가 별다른 부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피식 웃었다.

‘내 임기가 2년 2개월 정도 남았던가.’

그의 눈빛은 다시 무섭게 바뀌었다.

“대검찰청 산하 차장 검사를 비롯한 기획조정부장, 중앙지검 차장 검사, 남부지방검찰청장을 비롯해서 다 불러.”

보좌관조차 화들짝 놀랐다.

“네?”

“뭘 그러고 있어. 명분은 적당히 붙여.”

“아, 알겠습니다.”

***

대검찰청 산하 중요 고위 관료가 자리를 같이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따라서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내려온 지시 자체는 앞으로 부패에 대한 처리 방안 때문이라고 하는데, 꼭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보좌관이 하는 이야기도 심상치 않았다.

변순기 1차장 역시 당혹스러운 얼굴을 한 채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회의 내용은 뜻밖에 뭔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있다고 한다면 바로 원칙 준수다.

[.....헌법에서 정해진 규칙을 최대한 준수해서 앞으로 수사에 임해주기 바랍니다. 그 어떤 불법이나 편법 따위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불법이 적발된 경우에는 원칙에 따라서 해당 검사를 엄정히 처벌하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말하는 양주민 검찰총장 모습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차가운 아우라가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면서 검찰청 산하 고위 검찰을 찍어 눌렀다.

다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양주민 검찰총장 기세에 얼어붙은 채 그 누구도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저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중요한 것은 단순히 원칙 준수로만 끝나지 않았다.

[......무영 그룹에 대한 수사 역시 법과, 원칙에 따라서 철저히 수사하기 바랍니다. 특히 최근 로비 의혹으로 구속된 피의자가 검찰, 경찰, 언론사를 상대로 광범위한 금품 로비까지 한 사건은 경찰 조사 내용을 받아서 철저하게 확인하기 바랍니다.]

이 로비 의혹 사건은 피의자 수첩에서 검찰, 경찰, 언론사 기자를 상대로 금품 로비한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 대상에는 검찰 수사관, 전직 검사, 총경급 이상의 경찰 간부, 방송사 고위 간부를 비롯한 세무 공무원까지 다 포함되었다.

‘진심일까?’

제 식구 감싸기는 검찰이나, 경찰 역시 꽤 유명했다.

그런 사건이 제대로 수사될 리가 없다.

심지어 검찰이 다시 경찰에서 사건을 받는다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듣기로 외부 압력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검찰청 고위 간부 역시 안색을 굳힌 채 서로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대검찰청 산하 핵심 간부 대다수는 양주민 검찰총장 사단이다. 그들 눈빛이 차갑게 바뀌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라인이 아닌 변순기 1차장은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을 눌렀다.

‘난리 나겠군.’

***

검찰 인사 권한은 법무부가 가지고 있는데, 몇몇을 제외하고 다 적용된다. 물론 몇 몇 자리는 검찰총장 입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이들은 정상적인 순서를 밟아서 올라간다.

변순기 1차장 역시 양주민 검찰총장 라인은 아니었지만 지금 자리에 올랐다.

그는 결국 자정 무렵에 검찰청 산하 회의 내용 때문에 잔뜩 열 받은 강원상 법무부 차관에게서 한 시간 가까이 시달림을 받았다.

그 자신은 정말 영문을 잘 모른다고 변명을 거듭했다.

“진짜입니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총장님이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총장이 어떤 성격인지 제가 더 잘 압니다. 그 조용한 사람이 그렇게 난리 친 것은 당신들이 부추긴 것 아닙니까?!”

“답답합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당신을 그 자리에 밀어준 게 누구인지 잊은 겁니까?!”

평소라면 네하고 끝냈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 역시 검찰총장 변화 때문에 이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말이 좀 심하십니다.”

상대 역시 자신이 너무 나갔다는 것을 인정했다.

“미안합니다만 지금 법무부는 난리가 났습니다. 당신들 정말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최소한 총장이 자기 멋대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야 할 것 아닙니까?!”

“저도 이해는 합니다만 부패 수사 관련한 회의입니다. 안건 역시 특별히 문제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힘없는 절 그렇게 괴롭힌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변 차장님이 검찰총장과 친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거고, 우리는 당신이 알아서 그분에게 합리적인 조언을 할 거로 생각한 겁니다. 설마 그것도 몰랐다고 할 겁니까?!!”

전화 스피커가 폭발할 정도로 격렬했다.

“후유,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따로 총장님 만나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잘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검찰총장 자리는 고사하고, 그 자리도 지키지 못할 테니까.”

“......”

‘더러운 새끼.’

그라고 해도 중앙지검 내에서는 영향력이 있지만, 그 한계는 명확했다.

더욱이 회의 끝난 후에 양주민 검찰총장 사단 행동도 이상했다. 그들은 마치 쿠데타 음모를 꾸미는 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금 괜히 나대다가 내가 먼저 등에 칼 맞을 것 같은데, 지금은 납작 엎드리자.’

***

대검찰청 회의 후에 당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검찰청 산하 조직이지만 이 못지않게 경찰청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서 성역 없는 수사를 선포했기 때문에 그들 수사 역시 기존 관행처럼 적당히 했다가는 그 유탄을 맞을 확률이 높았다.

결국 검찰 로비 의혹 사건은 느슨하게 진행되는 초동수사 때와는 달리 조금씩 빡빡하게 바뀌어서 진행되었다.

수사 초기에는 로비를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별로 없었는데, 이 상황도 바뀌었다.

[......네팔, 베트남, 필리핀 근로자에게 돈을 받고 우리 업체와 연결해 주었습니다. 홍진호씨는 이 사건을 경찰이 제보를 받아서 수사를 진행하자 우선 기자에게 로비해서 다른 연예 기사로 대중 시선을 돌렸습니다. 수사 담당자에게도 로비했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경감급, 총경급만 무려 7명이나 됩니다.]

문제는 이 총경급에 대한 수사다. 경찰이 자기 식구 감싸기 때문에 제대로 수사할 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실제로 수사가 이상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이 되었고, 심지어 로비 받은 기사들이 이 사건을 그저 홍진호씨 개인의 문제로 좁혀버렸다.

뉴스에서도 이 사건을 오히려 홍진호씨 범행에만 집중시키고, 나머지 관련 고위 공무원에 대한 것을 축소 은폐해버렸다.

[......결국 인터넷을 통해서 음모론이 나왔고, 누군가 이 사건을 덮어버린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양주민 검찰총장이 앞으로 이런 부류의 사건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서 철저하게 파헤치라는 지시를 대검찰청 산하 조직에 내렸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붉은색 뉴스 속보는 온통 이 사건에 관한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 와중에 결국 일이 터졌다.

홍진호씨가 로비한 실제 경감 중에 한 사람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조민호 역시 최근 의학에 심취한 나머지 도서관에서 책을 살피다가 이 사실을 뉴스 속보를 통해서 알고는 혀를 찼다.

‘왜 엉뚱한 쪽부터 건드리는 걸까?’

조금 아쉬웠다.

김정환 검사 사건에 집중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가만 두 개의 사건 역시 무슨 연관이 있으니, 저럴 수도 있어. 제보가 들어왔든지 할 거야. 가만 그러면 두 사건은 어떻게 연결된 걸까. 경찰 경감이 무영 그룹과 관련이 있는 건가? 로비라......, 흥미롭네. 역시 능력이 있구나.’

뒤늦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최영준 차장이 당황한 듯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설마 저 사건 말하는 거라면 저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 조용하던 양주민 검찰총장이 왜 싸움닭처럼 저러냐 말이네. 저건 막말로 경찰 쪽에도 압력을 넣을 거잖아.”

“저게 문제가 됩니까?”

“일전에 내가 한 말을 뭐로 들었나. 대통령이 굳이 양주민 검찰총장을 저 자리에 앉힌 것을 자기들 안위를 위한 것이 가장 컸어. 저런 식으로 막 쑤시고 다니라는 것이 아니었어. 건강이 나쁜......, 아, 설마 몸을 회복해서 저렇게 되었다는 말인가?”

풀썩 자리에 앉은 최영준 차장은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잔뜩 긴장한 그는 지금 상황이 자신의 손을 완전히 벗어난 것 때문에 당황했다.

조민호조차 처음 보는 최영준 차장 모습에 피식 웃은 채로 신경섬유종증에 관한 전공 서적을 덮으면서 툴툴거렸다.

“제가 한 거라고는 메모만 보낸 것이 다입니다.”

“메모라니?”

최영준 차장도 뒤늦게 조민호가 쓴 메모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법과 원칙.

좋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특히 정치 쪽은 온통 자기 비리를 감싸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한다.

그 부분을 원칙대로 처리 한다면 현 정권과 갈등을 부추긴 것이다. 안 그래도 레임덕 소리가 나오는 정부 비리를 공격한다는 현 정권과 정면에서 싸우자는 소리와 진배없었다.

그도 조민호를 압박하거나, 질책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이거 다 생각하고 보낸 건가?”

“물론이죠.”

하지만 그는 이런저런 심사로 복잡했지만, 곧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양주민 검찰총장이 고작 이 메모만 받고 그 소동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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