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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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는 김정환 검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최영준 차장에게 알아보라고 했고, 불과 다음 날에 그 대답을 찾았다.
“민정수석이 외압을 넣었다고요?”
“그래.”
상황이 생각한 것보다는 더 복잡했다.
그도 청와대가 여기 엮여 있다는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일을 너무 키우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전생의 경험을 돌아보면 항상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면 반드시 칼날이 자신에게 날아온다는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심각한 표정을 한 최영준 차장은 뜻밖의 의견을 내놓았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두선 그룹 비자금 수사에 앨리엇이 연루된 것은 이상했어.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덮어버렸을 거야. 앨리엇 문제에 권력이 끼어들었을 확률도 있어. 민정수석실이 어떤 형태로든지 연루가 되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잖아.”
“......진심입니까?”
“어, 중국에 대한 앨리엇 투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들이 중국 권력자에게 로비했다면, 한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정확히는 ‘권력형 게이트’일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차마 그도 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조민호도 결국 권력 로비가 있다고 가정하고 김정환 검사 문제를 최영준 차장과 상의했다.
김정환 검사를 밀어줄 만한 사람으로 여러 후보를 골랐다.
그런 중에 그나마 가장 이상적으로 밀어줄 사람은 바로 현 검찰총장 양주민이었다.
양주민 검찰총장은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홀로 보내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해서 결국 고려대 법대에 들어갔다.
그는 고려대 시절에도 어렵게 공부했고, 결국 사법 고시에 합격했다.
검사 시절에도 전직 대통령 차남을 구속하면서 나름 이름을 알렸고, 이용호 게이트 수사를 통해서 칼날 검사로 알려졌다.
최영준 차장이 그를 굳이 후보로 올린 가장 큰 동기였다.
“너무 열심히 일해서 과로로 쓰러진 적도 많아.”
“괜찮네요. 혹시 질병은 있습니까?”
“아는 지인 통해서 알아보니, 신경섬유종증이 있어서 수술받았다는 기록은 있어. 이게 꽤 고질병이라서 마음고생 많이 했어. 검찰총장까지 올랐지만 최근 기가 많이 죽었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야.”
신경섬유종증은 주로 피부, 신경계에 임상증상을 나타내는 유전적 질환이다. 7가지 종류로 분류되는데, 유전적 결손에 의해서 일어난다.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시신경교종이 있다.
양주민 검찰총장은 이미 외과적 절제를 통해서 한 번 치료한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이 유전 질환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았다.
검찰청 내부에서는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검찰총장 자리에서 곧 물러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정부가 검찰총장은 잘 뽑았다는 평이 대부분이야. 아니 어쩌면 그의 병세를 감안해서 교묘하게 선택했다는 설도 있어.”
“정말 잘 아시네요.”
“검찰청 담당으로 그쪽을 자주 가면서 들었어. 그런 유전 질환이 있음에도 홀로 검찰총장까지 올랐으니, 대단한 분이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청렴해서 여론에도 좋아. 정치적인 색도 없는 편이라서 야당도 극단적으로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건강 때문에 그 칼날이 많이 죽어서 자신들을 상대로 칼을 들이밀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거야.”
아니 정확히는 최악의 상황에 문제가 되어도 질질 끌면 알아서 뻗어버릴 사람이었다.
레임덕이 왔다는 소리를 듣는 현 정부 처지에서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조민호 입장에서 살려줘도 무난한 선택지다. 이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더 기회를 줘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
‘물론 확인은 필요해. 사람 말만 믿고 그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 김정환 검사 반만 되어도 괜찮을 텐데......’
자세한 부분에 대해서 조민호도 꽤 호기심을 느꼈지만, 이번 일에 더 집중했다.
“가만 그러면 지금 당장은 실생활에 별 지장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아마 그럴 거야. 역시 다른 사람이 좋을까?”
손을 들어서 그의 입을 막았다.
“아뇨. 그분으로 합시다. 제가 잠깐 확인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최영민 팀장에게 문의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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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바로 접촉 사고를 가장한 것이다.
조민호는 이때 장혁과, 이지현을 처음으로 만났다.
“호오, 당신은 그 유명한 조민호라는 분(?)이군요.”
김지수와는 달리 원판 자체가 화려한 이지현은 어느 곳에 가도 눈에 뜨이는 미인이다. 서양 미인 체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녀는 얼굴에 칼 한 번 되지 않았다.
조민호는 놀라운 미모보다는 악수할 때 그녀의 선천지기 잠재력이 무력 28이 넘는 것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데.’
얼핏 봐서는 톱 연예인 같은 미인이었지만 내적으로는 꽤 오랫동안 단련을 했다.
줄행랑을 놓았던 장혁은 뜻밖에 뻔뻔하게 지난 일 따위는 기억나지도 않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미 조민호와 만남에 큰 기대를 했던 이지현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였다.
“명성이 자자한 조민호씨를 이렇게 뵙게 되어서 아주 기뻐요.”
“네.”
조민호도 두 사람의 독특한 선천지기에 꽤 호기심을 느꼈지만, 그 일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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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아주 간단했다.
양주민 검찰총장이 탄 차량과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는 것이다.
최영민 팀장은 검찰 내부 아는 지인을 통해서 양주민 검찰총장의 관용차량 동선 일정을 알아냈고, 그다음은 딱 그 타이밍에 사고를 내는 것이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사고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다만 양주민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보좌관과, 경호원은 좀 달랐다. 그들은 아예 대놓고 관용차량을 들이박은 최영민 팀장을 상대로 면박을 질렀다.
이지현은 그 와중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비명을 내질렀다.
오가는 행인은 이 독특한 사고에 구경꾼처럼 쳐다보았다.
상황이 아주 이상하게 흘러갔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이들이 미인을 납치하려는 모양이었다.
장혁 역시 행인 행세를 하면서 사고를 더 키웠다.
“당신들 뭐야?!”
조민호 역시 그들을 말리는 행인 행세를 하면서도 뒤늦게 사태를 확인하려고 차에서 내리는 양주민 검찰총장을 막아섰다. 그는 반사적으로 양주민 검찰총장 손을 잡으면서 상태를 확인했다.
거의 순도 면에서 완전에 가까운 혼원기가 경맥을 따라서 치달으면서 신경 말단까지 단숨에 쭉 확인하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갈라지고, 뒤틀린 신경조직.
17번 염색체 NF1 유전자 결함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혼원기 반응을 통해서 기존 정상적인 환자와 차이가 있는 점을 발견했다.
‘이게 소위 말하는 유전 질환인가 보군. 안 좋기는 하지만......’
딱히 당장 신경섬유종증이 더 악화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혼원기가 가다가 뚝 끊긴 부분. 수술 예후가 좋아서 상태가 더 나빠지려면 몇 년은 지나야 했다. 최근에 홍채 표면에 황갈색으로 변한 현상이 일어났지만 시력 장애는 일어나지 않았다.
거기에 선천지기 잠재력 역시 나쁘지 않았고, 그 순도가 김정환 검사보다 손색이 있지만 보통 사람보다 월등했다.
‘합격이다.’
마음을 굳힌 조민호는 그의 오른쪽 팔에 위치한 천부, 협백, 척택 부위를 지그시 누르면서 조작된 혼원기를 밀어 넣었다.
양주민 검찰총장 특성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설정된 이 기운은 수태음폐경을 따라서 빠르게 폐 조직으로 파고들었다.
그 기운은 신경섬유종증를 자극하면서 조금씩 덩치를 키워갔다.
‘방법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차피 완치시켜주면 상관없겠어.’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은 역시 우연히 도로를 지나가는 척하던 최영준 차장이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똘마니 기자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나서 취재했다.
“안녕하세요. 중아일보 최영준 기자입니다. 혹시 지금 무슨 일이......”
기자라는 말이 즉효였다.
당장 잡아넣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보좌관도 화들짝 놀랐다.
양주민 검찰총장도 괜히 일을 더 키워서 언론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 이 기묘한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거기에 이 사태를 일으킨 최영민 팀장이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정적으로 너무 흥분해서 지나쳤습니다. 여기 명함을 드릴 테니, 이쪽으로 전화해 주시면 치료비, 차량 수리비를 저희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당신 정말 운 좋을 줄 알아. 이분이 누구인지 알아. 바로 검......”
하지만 그는 잽싸게 막아서는 보좌관 때문에 정체까지 말하지 못했다.
이런 가벼운 사고가 언론 통해서 알려져 봐야 피해를 보는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관용 차량이 떠나자 그들은 물끄러미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최영준 차장도 조민호 계획대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따가운 눈으로 쳐다보는 똘마니 기자 때문에 모른 척 떠나버렸다.
나머지 세 사람은 도대체 왜 이 일을 계획한 것인지 의아한 눈으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최영준 차장님에게 전화해서 김정환 검사 통해서 이야기하라고 한 것을 다시 확인해주세요. 오늘 일은 수고했습니다.”
조민호는 딱 이 말만 남기고 떠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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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만 달랑하고 그냥 조민호가 떠나버리자 장혁은 최영민 팀장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작전입니까?”
최영민 팀장 역시 궁금하기는 매 한 가지였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도 워낙에 조민호가 신비한 인물이라서 그냥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조민호군이 가진 지압 치료에 대한 것을 검찰총장이 혹시 물으면 김정환 검사에게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한 거야.”
“그거 위험한 것 아닙니까?”
“이미 중앙지검 내에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알아. 다만 어떻게 치료되었는지 믿지 않을 뿐이야. 그런 점을 활용해서 찌라시를 더 뿌리라는 거야. 검찰총장 상태가 더 나빠질 거라는 의미겠지.”
“아니 그러면 지금 오늘 할 일은 뭡니까? 그냥 차량 접촉사고 내고, 끝 아닙니까?”
“그게 조민호군이 원한 작전 계획이야.”
나름 한 무술하는 장혁도 조민호가 정말 무서운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이 일은 그것과는 또 달랐다.
“제 말은 왜 이런 작전을 한 겁니까. 도대체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민호가 떠난 방향을 여전히 쳐다보던 이지현이 툴툴거렸다.
“난 재미있었어.”
“지현아, 넌 창피하지도 않아?”
“전혀. 나름 소소한 재미가 있어서 좋았어. 총 쏘는 것보다는 훨씬 났다.”
최영민 팀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우리가 다 알 필요는 없잖아.”
장혁이 발끈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야죠.”
대충 넘기는 것 같았던 최영민 팀장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정 알고 싶으면 양주민 검찰총장을 지켜보면 답 나오겠지.”
“아, 확실히 그렇군요.”
그 말에 두 사람 역시 눈빛을 반짝였다.
이번 작전은 조민호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다.
어찌 보면 그들 조직이 처음으로 한 공작이었다.
‘과연 뭘 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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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섬유종증는 유전 질환으로 외과적 절제술 외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 조기 진단을 통해서 꾸준하게 추적 관찰하는 것이 다였다.
양주민 검찰총장은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이 병 때문에 평생을 고통받았다.
다행히 최근 오성 의료원의 수술 경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때문에 굳이 검찰총장이라는 직위 자체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최근 김정환 검사가 진행하는 수사 역시 외부에서 외압이 끊이지 않았지만 아프다는 핑계를 댄 채 검찰청에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모른 척했다.
그런데 이번 외압은 좀 달랐다.
‘민정수석이 왜 김 검사 수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까?’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고, 결국 변순기 1차장 검사와, 중앙지검장을 따로 불러 상의해보았다.
그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 정권의 비리도 장난 아닙니다. 최근 여론도 보면 행정부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터질 것이 터진 것뿐입니다.”
한평생 검사 일만 했던 양주민 검찰총장도 뒤늦게 가슴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골치 아프군.”
이유야 어쨌든 자신을 뽑아준 사람은 지금 대통령이었다.
그 대통령 등에 칼을 꽂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서서히 다가왔다.
문제는 그 일이 하루아침에 끝나는 일도 아니고, 장기 전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계속 터져 나올 외부 제보조차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 자기 건강을 생각하면 앞이 깜깜했다.
‘차라리 지금 물러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