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조용 좀 해봐.”
“흠.”
그도 조금 전에 미팅해볼까 하는 말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양다리를 걸쳤다고 착각하는 두 사람 모습에 혀를 찼다.
“오해인데......”
“민호야, 나중에 우리끼리 따로 얘기하자.”
박진민은 슬그머니 김지수 미모와, 몸매를 살피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김지수는 여러 면에서 변화했는데, 특히 원래 미인 체형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해서 이상적으로 바뀌면서 과거와는 환골탈태한 것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단순히 외적인 면만 있지 않았다. 사람을 바라보는 느낌 자체가 저 정도 미모 여자가 가지는 그런 부정적인 면이 보이지 않았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지만 정말 너무하잖아.’
취업 청탁한 일은 확실히 잘한 게 아니다. 꼭 조민호가 특채 1차에 붙어서 시기하는 것은 아니다.
화가 더 나는 것은 대수롭지 않다고 툴툴거리는 저 음흉한 조민호 행동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애인 있다고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차라리 이해한다.
그런데 입만 열면 거짓말만 늘어놓았다.
‘아니 지금까지 민호가 한 말은 다 사실이었나?’
조민호도 굳이 두 사람 오해를 더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정색했다.
“제가 친구랑 약속이 좀 있어서 그런데, 무슨 일 때문입니까?”
“아, 참, 여기 중아홀딩스 지분 매각과 관련된 서류입니다. 조수현 회장님이 확인 차원에서 저희 쪽에 넘겼는데, 그 처리 내용입니다. 본인도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는 굳이 서류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가방 안에 넣었다.
“가만 그건 오성 그룹 문제인데......”
“넵, 저 앞으로 오성 비서실에서 정식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민호씨 쪽과 관련된 일을 처리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꾸벅 고개 숙이는 그녀.
조민호는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몰라서 범죄자를 보듯이 김지수를 째려봤다.
“?”
박진민은 옆에서 뜬금없는 오성 비서실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조민호 옆구리를 강하게 쥐어박았다.
“야, 너 숙녀분에게 뭐하는 거야?!”
“흠.”
“아, 이번에 특채 지원하셨더군요. 그 일 처리도 제 쪽에 전화해 주면 됩니다. 이건 명함입니다. 저도 회사 일 때문에 먼저 가볼게요. 혹시 우리 회사 쪽에 관련된 일이 있으면, 저에게 전화해 주세요.”
김지수는 괜히 일이 자꾸 꼬였음에도 밝게 웃으면서 작별을 고했다. 그녀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
다급하게 내민 명함을 받은 조민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박진민도 특채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황당했지만, 그보다는 정말 곰탱이같은 조민호 행동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야아, 넌 눈치가 그렇게 없냐? 저거 딱 보면 몰라. 여자가 작업 거는 거잖아!”
그도 잠깐 연애 문제를 고민하다가 괜히 쓸데없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진실을 털어놓았다.
“오성 그룹 막내딸이야.”
“엉? 누가?”
“김지수 개. 오성 그룹 김건중 회장 딸이야.”
“하, 씨발,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황당한 농담이다. 야아, 그걸 지금 날 보고 믿으라는 소리야?”
“너도 최영준 차장님과 같이 오가는 것을 봤을 텐데, 기억 안 나냐?”
김지수는 그때와는 외모가 많이 달라졌다. 물론 그때도 잠깐 스쳐 가면서 보는 수준이었으니, 더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전혀 안 닮았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오성 그룹 막내딸이 있다는 것도 너에게 처음 들......”
그런데 경악한 김영탁이 노트북을 꺼내서 인터넷에서 찾은 김지수 기사를 보여주었다.
“......?”
처음에는 의문.
그리고 박진민은 조금 전에 김지수 얼굴을 떠올린 후에 다시 인터넷 사진을 반복해서 비교하다가 경악해서 소리쳤다.
“맙소사 진짜잖아.”
김지수 역시 오성 일가 막대 딸 답게 인터넷에 여러 기사가 올라왔다. 그중에 한 가지는 오성 비서실에서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에 관한 것이다. 이전만 해도 기업 경영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바뀐 행보 때문에 언론도 주목했다.
그 기사 중에는 최근 바뀐 김지수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
실제로 이 기사를 본 각종 커뮤니티에는 바뀐 김지수 모습에 재벌가 여신이라고 열광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미스코리아 뺨칠 정도에, 다른 재벌가와는 달리 소탈한 성격, 가끔 일을 진행할 때 화끈한 면을 보였다.
자유 게시판 곳곳에 김지수가 학창 시절 일화가 가득했다.
물론 오성 그룹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호응은 크지 않았다.
특히 대학교 시절에 사회봉사 활동하면서도 보여준 그녀의 순순한 면모를 잘 드러내는 사진도 올라왔던 것이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라.”
두 사람은 입을 딱 벌린 채 기사를 빠르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이럴 리가 없어. 세상에 오성 그룹 막내딸이라니. 완전히 재벌가 딸이잖아. 이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하지만 그도 조금 전에 김지수가 한 말을 쭉 다시 떠올리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조민호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그러면 민호 너 지금 오성 그룹 막내 딸 구애를 걷어찬 거야? 이 인간아, 이건 아니잖아. 아무리 잘난 척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조민호도 버릇없는 박진민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감정적인 오해 때문에 쌓인 것도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올라가지 못한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잖아.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 거야. 나라고 해서 그런 미인을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
“......그게 그렇구나.”
“우리 아버지랑 큰아버지가 사이가 안 좋아서 20년 넘게 타인으로 살아오다가 최근 화해했다. 난 큰아버지 재산이나, 회사 따위에는 관심 없어.”
주야장천 하던 이야기.
박진민도 이제는 이전처럼 조민호를 삐딱하게 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다 감정적인 오해였다. 조민호는 과거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그런가. 알았다. 썩을 인간아. 정말 난 놈은 난 놈이다. 에이, 당구나 치러 가자.”
조민호도 피식 웃으면서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날 좋아하는 건가?’
***
조민호는 김지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뜻밖에 그녀는 자주 조민호를 찾아와서 이것저것 미래 증권 중국 투자와 관련된 부분을 질문했다.
그는 조수현 큰아버지에게 다 돌렸지만, 문제는 조수현 회장이 두 회사 간의 투자 부분에 대해서 조민호에게 짐을 떠넘겼다.
조수현 회장조차 김건중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김지수를 부담스러워 했다.
이 와중에 김지수에게 뒤늦게 중국 상하이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최영준 차장이 조민호를 찾아왔다.
“상하이 빌딩 인수한 것 축하해.”
“벌써 그쪽에도 소식 들어갔습니까?”
“명색이 언론사잖아.”
“그렇군요.”
“아, 그리고 오성 그룹에 입사 신청서를 냈다고 하던데, 설마 회사에 입사하려는 건가?”
“아뇨. 1차는 그냥 어쩌다 냈는데, 아닌 것 같아서 2차는 포기했습니다.”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 거야. 차라리 잘했어.”
조민호도 쓰게 웃었다.
“요즘은 좀 바쁜 것 같은데, 회사 일은 어쩌고 그러세요?”
“회사 일 때문에 찾아온 거네.”
알고 보니 중국에서 진행된 미래 증권 투자 초대박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 심장을 폭격한 미래 증권 이야기는 이미 언론을 통해서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조수현 회장과 인터뷰하려고 했다.
조수현 회장은 요즘 너무 뜨겁게 타오르는 국내 언론 관심 때문에 요즘은 그들을 피했다. 굳이 더 나서서 광고할 필요가 없었다.
이 열기 때문에 미래 증권의 사모 펀드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조민호도 피식 웃고 말았다.
“전 잘 모릅니다.”
“얼마 전에 류엔둥이 한국을 찾았어. 비록 김건중 회장이 엠바고를 걸어서 보도하지는 못했지만, 자네가 관련된 것은 추측만으로 알 수 있어.”
“이제 기자답습니다.”
최영준 차장도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일도 옆에서 잘 지켜봤어야 했는데, 내가 지분을 얻으면서 여러 가지 일이 좀 있어서 몸을 빼기가 쉽지 않았어.”
지분 일부를 승계받았지만 그 덕분에 이전과는 최영준 차장 위치도 많이 달라졌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견제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최영준 차장도 이전처럼 마음 편하게 조민호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실제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눈빛으로 조민호를 살폈다.
이미 조민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벌써 중국 공안에 벌써 영향력을 떨칠지는 상상도 못했다.
더욱이 상하이 빌딩 매입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미래 그룹 평가만 해도 벌써 한 단계 이상 올라갔기 때문이다.
조민호는 뜨거운 최영준 차장 눈빛에 쓰게 웃고 말았다.
“전 이대로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관심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이번 장학금만 해도 조용히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것은 큰아버지가 마음대로 한 것뿐입니다.”
“그러면 중국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그것은 앨리엇 중국 투자를 막기 위한 것뿐입니다.”
“정말 그 이유뿐일까?”
“그 퍽치기 의뢰를 맡긴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최 차장님이 추론하신 겁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 그냥 내버려두면 나중에는 오히려 등에 칼을 맞게 됩니다.”
“나도 그 부분은 공감이네. 평소에는 그냥 가볍게 여기는 것 같은데, 내가 착각한 것 같아.”
“전 조용히 살고 싶지만 그렇다고 호구처럼 살 생각은 없습니다. 누릴 것은 누리면서 평범하게 살 겁니다. 그리고 등에 칼 맞고 싶지 않습니다. 더욱이 일을 내버려둬서 키웠다가 의혹 대상이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압을 빙자한 치료 자체도 문제지만 그 치료 결과는 더 심각하다. 설사 한의사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런 힘도 없이 조용히 살겠다고 고집하다가는 정말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자네가 만든 그 엄청난 사건 스케일을 보면서 조용히 산다고 할 수는 없잖아.’ 란 말까지 차마 할 수는 없었다.
조민호도 중국 공안 일을 떠올리자 피식 웃었다.
“그 이야기 하러 오신 것은 아니고, 무슨 다른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아, 김정환 검사 일 때문이야. 최근 그가 낸 압수 수색 영장을 법원에서 다 기각시켰어. 그 일 때문에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어.”
“설마 그놈들이 법원을 통해서 수사를 방해하는 겁니까?”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안 좋은 소문도 계속 들려. 찌라시이기는 하지만 김정환 검사 때문에 크게 손실을 보아서 보복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설마 청부 살인이라도 한답니까?”
“그런 이야기도 있어.”
“흠.”
보통 사람이라면 의심만 하겠지만, 전생에서 암살이란 암살은 다 경험해본 조민호로서는 약간 심각하게 고심했다.
딱히 원한 것은 아니지만, 김정환 검사는 앞으로 국내 앨리엇 세력 박멸을 위해서 꼭 필요했다. 거기에 자기 편의도 좀 봐주면 좋고 말이다.
‘번거롭게 폐암까지 치료해주었는데, 여기서 사고사를 당하면 곤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