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미래 상하이 빌딩이 있는 곳 근처에는 빈강대도(滨江大道)가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운치가 있다.
멋스러운 모습 때문에 이곳 카페나, 음식점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독특하고 화려한 건물은 세계의 건축 박물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명소다.
미래 증권 오프닝 행사는 이 광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층 건물에서 꽤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야릇한 복장을 한 모델이 한층 그 분위기를 더 달구었다.
류엔둥 당서기를 비롯한 후진타오 주석의 주요 인물 대리인이 자리에 참석했다.
상하이에 명성이 자자한 부동산 재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새롭게 등장한 권력자에게 기꺼이 허리를 굽혔다.
덕분에 진땀을 흘린 채 이 행사를 주도하는 조철영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이 건물 매입은 홍콩 미래 증권 현지 법인이 무려 2,500억을 들여서 사들였다.
하지만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초대형 빌딩과, 멋진 조망 덕분에 저 가격으로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건물 원주인 앨리엇조차 실상 건물 가격보다는 오히려 로비에 들어간 돈이 수천만 달러가 넘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기업이 이렇게 상하이 핵심 요지에 있는 빌딩을 매입한 것은 한국에서는 미래 증권이 최초였다.
덕분에 조철영 입지는 회사 내에서도 불과 며칠 사이로 전혀 달라졌다.
한국에서 오성 바이오 지분 매입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조수현 회장은 이리저리 접대하면서 뛰어다니다가 겨우 한숨을 내쉬면서 조철영 옆으로 다가가면서 황푸 강변을 내려다보았다.
유람선 한 척이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휘황찬 빛에 휩싸인 채 황푸 강변을 지나갔다.
“여기 정말 좋다.”
은은한 달빛과, 도심의 별빛, 거기에 현대식 건물이 황푸 강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미국 맨해튼 거리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중국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는지 잘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이 한창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조철영 역시 이곳에 와서 더욱 넓은 시야를 가진 터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난 이런 중국의 모습이 무섭다. 형은 도대체 이런 금싸라기 빌딩을 어떻게 사들인 거야?”
“말했잖아. 민호 때문이라고.”
“아니 그 녀석이 무슨 백이 있다고 이런 엄청난 일을 벌여?”
“나중에 알게 될 거다.”
‘리핑 치료 과정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조수현 회장은 새삼 입맛을 다셨다. 그도 리핑이 회복된 것을 봤지만, 정확히 어떤 식으로 치료된 것인지 잘 몰랐다.
“난 형이 의도적으로 회사 내부에 민호 영향력을 키우려고 하는 일 같은데, 굳이 민호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아니라니까.”
마침 늘씬하게 생긴 모델 한 명이 요염한 미소를 한 채 두 사람에게 포도주잔을 채워주었다.
조철영은 살짝 넋을 잃었지만, 조수현 회장이 무릎을 걷어차자 곧 정신을 차렸다.
여인은 아쉬운 얼굴로 슬쩍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었다.
조수현 회장이 냉큼 받아서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렸다.
조철영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다가 오히려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화제를 돌렸다.
“정국이도 있고, 미국에 유학 간 정연이도 곧 한국에 돌아오잖아. 난 괜히 집에 분란 만들고 싶지 않아. 정 내가 걱정되면, 작은 회사 인수해서 독립하게 해주라. 그 정도면 난 만족해. 민호도 마찬가지야.”
괜히 동생 여자 문제를 차마 걸고 넘어가지 못한 조수현 회장도 피식 웃었다.
“야, 저기 방문한 사람들 보고 말하는 거냐? 저 사람들을 내가 무슨 영향력으로 이곳에 오게 하냐. 나도 오늘 처음 봤다.”
“그게 좀 이상하지만......”
조철영 역시 손님 명단을 확인하면서 새삼 긴장했다.
주로 후진타오 계열의 유명한 사람 위주이기는 했지만, 상하이방 인물도 뜻밖에 대리인을 앞세워서 많이 참석했다.
그들은 최근 서로 심각한 대립 하는 문제에 대해서 타협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흥이 올라서 이곳 파티 직원을 데리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만큼 저들이 가지는 권력은 막강했다.
이곳에서는 저들 공산당이 왕이다.
그 대단한 투기 세력인 앨리엇도 막말로 단 며칠 사이에 토사구팽당했다. 자신이라고 해서 그러지 않는다고 하기 힘들었다.
“난 불안해.”
“걱정하지 마라. 민호가 있는 이상 저놈들도 우리에게 이를 드러내지 못할 거다. 너도 경험했다시피 저들이 완벽한 우리 아군인 이상 무서울 것은 없다.”
얼마 전의 흉험한 일을 떠올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설마 계속 민호 타령하려고?”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내가 말하자고 하는 것은 우리 안전이다.”
“아, 여기 계셨군요.”
류엔둥 당서기가 마침 그들에게 몇 사람 일행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분은 랴오닝성 서기 리커창입니다.”
“아, 전 미래 증권 홍콩 법인 조철영 부장입니다.”
“전 조수현입니다.”
두 사람 다 억지로 미소를 짓기는 했지만, 행사 전에 외운 리커창 프로필을 떠올리자 곧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만만한 인간이 하나도 없네.’
하지만 그들은 긴장한 필요가 없었다.
류엔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오히려 리커창이 더 저자세였다. 두 사람은 특히 조철영 부장 눈치를 더 크게 보았다.
이 정도면 거의 집안 어른을 상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기만 했다.
“랴오닝성에 혹시 관심이 있으면 언제라도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그런 경우가 생기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너무 지금처럼 격식 차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면서 가까이 지내고 싶습니다. 마침 괜찮은 별장이 하나 있는데, 그곳으로 초대도 하고 싶습니다.”
“초대장 주시면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훈훈하다 못해서 마치 이웃 같은 살가운 분위기였다.
이미 중국 공안의 무서운 권력을 맛만 살짝 경험한 조철영 부장은 시간이 갈수록 크게 당황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조수현 회장은 마침 몰려온 한국 기자들을 보자 그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그들에게 가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자, 그러면 오랜만에 자랑 좀 해볼까?’
***
[......미래 증권은 상하이 대형 업무용 빌딩을 2,500억에 사들였습니다. 최근 부동산 거래를 시작한 홍콩 법인을 통해서 상하이 황푸 건물 전경이 보이는 요충지의 현대식 건물입니다. 벌써 ‘상하이 미래증권’이란 광고판이 달린 이 건물은 지상 33층으로 이미 한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이 다 입주 계약이 끝난 상황입니다. 미래 증권은 이 빌딩 매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투자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빌딩 광고판은 어떻게 보면 미래 증권이란 인지도를 광고하는 용도였다. 이런 광고조차 상하이 산하 공기업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얼핏 봐서는 쉬워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다.
미래 증권이 가지는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특히 이 미래 건물에서 황푸 강을 따라서 서 있는 현대 마천루의 정경이 드러났다. 서울 테헤란 밸리와 비교해도 약간의 차이만 있었다.
아무리 부동산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황금알이 되리라는 것 정도는 모를 수가 없었다.
조민호도 어젯밤 아홉 시 뉴스 재방송이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감탄했다.
“멋지네.”
화면 상에는 조수현 회장이 이 기상천외한 투자 대박에 흥분한 기자와 앞으로 미래 증권이 어떤 식으로 투자를 풀어간다는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박진민은 가자미눈을 한 채 평소와는 달리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너희 큰아버지 정말 대단하구나.”
“큰아버지 투자 실력이 괜찮아.”
“으음, 정말 네 큰아버지야? 혹시 출생의 비밀이라든지 뭐 그런 것 아니고?”
조민호는 막장 드라마보다는 미드를 좋아한 터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뭔데?”
“체, 아니다.”
안 그래도 요즘 취업 때문에 힘든 그는 낙하산 취업은 하고 싶지 않지만, 푸념 삼아서 툴툴거렸다.
“그냥 투자 회사 들어가고 싶다.”
“거기랑 우리 전공이랑 안 맞아. 차라리 다른 곳은 어때?”
“어딘데?”
조민호는 안 그래도 김건중 회장에 쌓인 것이 많았다.
“오성 그룹.”
놀란 김영탁은 막 샌드위치를 먹다가 토해내면서 콜록콜록 거렸고, 그 잔여물을 그대로 덮어쓴 박진민은 벌떡 일어나서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조민호 말이 더 중요했다.
“정말 오성 그룹에도 아는 사람이 있어? 누군데?”
그도 김건중 회장을 말할까 하다가 안 믿을 것 같아서 말을 바꾸었다.
“이학준 비서실장 정도?”
“!!”
두 사람은 경악했다.
이학중 비서실장은 비록 조민호 덕분에 다소 격이 많이 추락했지만, 결코 그런 식으로 취급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재계의 청와대로 불리는 막강한 오성 구조 조정본부를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유통, 방위산업, 자동차와 같은 사업을 해외에 매각하면서 5만명 가까운 직원을 퇴직시켰다.
이 결과 덕분에 외환위기 이후에 오성은 다른 재벌 라이벌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섰다.
이 구조 본부의 위원장 직위에 있는 이학수 비서실장이 정확히 하는 일을 몰라도 오성 그룹을 아는 대학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진짜?”
“어.”
“말도 안 돼!”
“오늘 그 취업 설명회 가서 내가 직접 보여주마.”
그도 피식 웃고 말았지만, 딱히 두 사람 때문에 수긍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는 오성 바이오 사태 이후에 오성 그룹이 얼마나 적극 대처하는지 알고 싶었다.
‘잘 될까 모르겠네. 날 감시하고 있다면, 움직임을 보일 거야.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이것은 간접적인 이유고, 실제로는 한 가지 사실을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오성 직원은 어느 정도 선천지기를 가졌을까?’
***
대학가는 겨울 방학 시즌에 들어가면 서서히 취업 설명회로 시끄럽다.
설문 조사에서 가장 입사하고 싶은 1순위 회사는 역시 오성 그룹이다.
높은 연봉, 안정적인 근무환경이라는 장점이 있는 대기업 중에서도 0순위에 꼽히는 회사가 오성 그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졸업 예정자인 대학생으로서 이 설명회를 놓칠 수는 없다.
[.....올해 들어서 몇 가지 바뀐 사실이 있습니다. 자격 제한은 없어졌지만, 자기소개서와, 면접 비중이 높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취업 설명회에서 소개하는 오성 그룹에서 나온 민경기 과장은 어깨에 힘이 잔뜩 넣었다. 그는 3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강의실이 가득 차는 것에 뿌듯한 듯 목소리를 더 울렸다.
박진민 역시 세 사람 서류를 받아서 특히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그도 사실 이 일 자체를 장난 비슷하게 생각했다.
“자, 어떻게 증명할 거야? 아, 특채로 가능하면 내가 믿으마.”
그런데 조민호는 의외로 그냥 농담이라고 넘기지 않았다.
“특채라......”
참다못한 그가 나섰다.
“이제 그만하자. 너 때문에 열 받아서 취업 청탁했지만 그럴 생각 없다. 민호 네 장난은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괜히 이런 일로 문제 만들기 싫다.”
“난 농담 아냐.”
“그러지 좀 마. 오성 그룹 특채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 정도만 하자.”
대기업 특채는 보통 경력직이 일반적이고, 신입은 없다. 다만 역시 낙하산 형태의 경우가 좀 예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