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눈치 빠른 이학준 비서실장은 의혹이 가득한 조수현 회장 눈빛을 보자 두 손을 들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저희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면 이런 일까지 솔직하게 말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우리끼리 잘 지내자는 의도입니다.”
보통 다른 기업이 말했다면 그럭저럭 들어줄 이야기다.
하지만 악명이 자자한 오성 그룹이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말하는 것을 그 누구도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어쨌거나 고객인 사자 얼굴 바로 앞에서 괜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민호 때문에 그 신약을 개발했기에 특허료 명목으로 이 지분을 준다는 뜻, 잘 알겠습니다. 다만 본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합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당연합니다.”
“......네.”
조수현 회장도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가슴으로는 여전히 이 새로운 신약이 어떻게 나왔는지 수긍이 잘되지 않았다.
‘민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참 궁금하군.’
***
조민호는 마지막 종강 한 과목을 앞에 둔 시점에서 다른 친구들과 잘 지냈다.
아니 재벌 3세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들이 옆에서 잘 맞추어 줬다.
“진민아, 너 왜 그래?”
“내가 뭘? 내 말투가 부정적이라서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너무 눈치 보지 마. 난 지금이나 예나 바뀐 것은 없으니까. 큰아버지가 재벌일 뿐이다.”
“흠.”
김영탁 역시 비슷하게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한마디 했다.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혹시 대박이 날 비상장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없냐? 친구 찬스를 누리는 것 같지만, 혹시나 해서.”
“없어.”
박진민이 슬쩍 끼어들었다.
“많이도 안 바란다. 한 천 만 원 정도만 매입하면 나도 오케이다.”
조민호도 피식 웃고 말았다.
“기회 생기면 권해주마.”
“약속한 거다.”
“그래.”
그도 웃으면서 약속했는데, 나중에 가능하겠지만 당장은 실현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수현 회장이 이번에도 한국대를 직접 찾아왔다.
“아, 안녕하세요.”
갓 입대한 신병처럼 각 잡힌 두 사람은 그저 조수현 회장에게 아부하기 바빴다. 첫 만남에서는 미처 조수현 회장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달랐다.
그들은 조수현 회장을 경의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심지어 사인까지 받았다.
“하하하, 그래. 다시 보니 반갑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민호 녀석이랑 급히 할 이야기가 있구나.”
“바로 내 드리겠습니다.”
***
조민호도 요즘 중국 투자 때문에 한국과, 중국을 자주 오간다고 매우 바쁜 조수현 큰아버지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의아했다.
조수현 회장은 굳이 말보다는 이학준 비서실장에게 받은 오성 바이오 자료와, 지분 매입 매각 파일을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내놓았다.
주식 매입 권유와 관련해서 별다른 설명 없이 조민호 반응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끔쩍하지 않던 조민호 반응이 평소와는 달랐다.
조민호가 본 것은 바로 신약 바스클린에 대한 연구 자료다.
신약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지만 차트와 같은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 차트상에 나와 있던 변화 과정.
‘이것은 혼원기 흐름이잖아?’
비록 자신의 손을 떠난 혼원기라고 해도 그 형질 자체는 남아 있다. 특히 리핑에 사용한 혼원기 특성값을 모를 리가 없다.
조민호는 뒤늦게 이 차트 근간이 리핑 회복 과정을 토대로 한 것을 발견하고는 매우 놀라서 넋을 잃고 살펴보았다.
그 자신이 혼원기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리핑 치료 과정 말단부에서 일어나는 일 전체를 다 알지 못했다.
오성 의료원에서는 놀랍게도 그것 하나하나를 모두 추적해서 의료 데이터를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놀라운 것은 혈관염 치료 과정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이다.
세포 단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명료하게 잘 설명해놓았다.
조민호도 의학 전문 지식이 없어서 그 논문 자체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혼원기 변화를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그것은 생명 치료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청사진 중에 일부였다.
‘설마 이런 식으로 변화가 일어나다니.’
조민호는 특히 혈관염 관련된 다른 환자에게서 일어난 부작용을 살피면서 이 신약 바스클린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경, 뇌 세포, 육아종, 뇌신경에도 악영향을 주겠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뇌경색인데, 자칫하면 치매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리핑 치료 혼원기를 토대로 만든 신약이 모든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다른 특질 환자에게는 오히려 독이다.
그는 그 큰 흐름을 보면서 이 환자 부작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 지점을 찾았고, 피식 실없이 웃고 말았다.
신약 만드는 과정에서 변화를 줘야 할 포인트다. 이 신약을 개발한 연구진이라면 딱 그 지점만 정해준다면 답은 금방 찾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찾기가 어렵고, 따라서 몇 년에 걸친 무수히 많은 삽질이 필요하다.
‘어차피 오성에서 감시할 것은 예상했어. 다만 리핑같은 환자의 상태 변화를 이렇게 정밀하게 다 검사할 줄은 몰랐어.’
“참 집요합니다.”
조수현 회장은 솔직히 연구 결과는 봐도 잘 이해를 못 했지만 미래 증권에 있는 의사 자격증 가진 친구 통해서 확인까지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니?”
조민호도 리핑용 혼원기 덕분에 일어나는 신진대사 변화 흐름도 설명할 수 없었고, 이 전문 연구 결과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즉 감으로 아는 거라서 차라리 부인했다.
“아뇨.”
“아니 그러면 왜 알아본 것처럼 그렇게 집중해서 들여다봐?”
“그냥입니다.”
조수현 회장도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갔다.
“흠,.....좋다. 내가 널 심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성 그룹에서 필요 이상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거의 감시 수준 이상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악의가 있었다면 설마 이렇게 자백하겠습니까?”
“자백이라고? 아니 오성 그룹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를 무서워......아, 네가 있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 설상 그렇다고 해도 넌 아직 혈관염 환자만 치료했잖아.”
“해보기 전까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설마 폐암같은 환자도 치료 가능한 거냐? 단순한 그 지압으로?”
조민호는 굳이 대답보다는 다른 질문으로 맞받아쳤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봐서는 이 신약 바스클린에 대한 권리를 저에게 준 것 같은데, 이건 받기로 하죠.”
“괜찮을까?”
“네. 대신에 이 주식은 큰아버지나, 아버지 이름으로 해주세요.”
“차명으로 하자고? 의결권도 있는 주식인데, 그럴 수는 없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너희 아버지도 자격 미달이다.”
“아버지가 딴짓이라도 할까 그러세요?”
“그놈은 작은 일은 잘하는데, 일이 커지면 자제를 못 해. 오죽하면 너희 외할아버지가 유산을 네 명의로 다 넘겼겠냐?”
“그렇다고 해도 제 명의로는 곤란합니다. 전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조수현 회장도 처음에는 지켜보자는 의도에서 그냥 소극적으로 질문했지만, 예상을 벗어난 조민호 반응에 기가 찼다.
“이 주식 가치가 얼마인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오성 바이오 상장 후에 지분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결국 조민호도 언론의 관심을 피하기 어려웠다.
“압니다. 그래서 더 싫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넌 미래 그룹 조수현 회장의 친조카다.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결국 어떤 형태로든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될 거다.”
“그 이야기는 그만 하죠. 중요한 것은 이 오성 바이오인데, 지금 당장은 신약 나온 것도 아니고, 이 회사 매출도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 약이 성공한다고 장담 못합니다.”
“잠깐 네 말은 이 신약이 실패할 거라는 말이야?”
조민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저도 신약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임상 2상 까지는 어떻게 가도, 임상 3상에서 대부분 실패하는 거로 압니다. 이 바스클린도 예외는 아닙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실패를 예언하는 조민호.
그도 조민호가 왜 저런 식으로 말하는지 의아했지만, 장단을 맞추어줬다.
“아쉽네. 상장 6개월 정도는 큰 이익을 볼 것이라 봤는데......”
“제가 꼭 실패할 거라고 말 안 했습니다만?”
“설마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거냐?”
“오성 그룹이 그 정도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이런 식의 호의를 베풀 리가 있을까요? 김건중 회장이 허술하게 선의를 내세우지 않을 겁니다.”
“허어.”
조수현 회장도 조민호를 떠보려는 생각을 완전히 집어 던져버렸다. 조민호 반응은 그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이 주식을 사들이란 말이구나.”
“네. 그리고 큰아버지 차명으로 처리해주세요.”
“내 뜻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 세금 문제도 있으니, 차라리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홍콩 법인을 거쳐서 처리하자.”
“제 이름이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겠죠?”
“그래. 가만 그런데 그 부작용 해결은 어떻게 할 거냐?”
“오성 그룹 하는 것 보고 판단하죠. 딴짓하면 그 때 가서 부작용 이용해서 주가 폭락시키고, 적대적 인수 합병하면 됩니다. 그리고 신약을 살짝 수정해서 다시 임상 실험하면 됩니다.”
“흠.”
그도 선뜻 조민호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학준 비서실장이 그렇게 조민호에게 저 자세인데,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일단 잘 지켜봐야겠어.’
***
조수현 회장도 바스클린 신약에 대해서는 긴가민가했다.
일단 이 신약 개발을 진행하는 곳이 오성 그룹이고, 조민호조차 수긍한 일이라서 일단 밀어붙였다.
오성 바이오 발행 주식 수는 총 5,000만주인데, 이 중에 20%는 1,000만주다. 주당 5,000원 기준으로 보면 대략 500억이다.
상하이 미래 증권 빌딩을 담보로 만든 500억을 주고 이학준 비서실장과 만나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페이퍼 컴퍼니 통한 차명 구입은 자금 세탁 전문가인 이학준 비서실장이 쿨하게 잘 처리해주었다.
조수현 회장도 조민호에게 경고를 들었지만 설사 그 부작용이 있던, 없던 상장 초반에는 오성 그룹 프리미엄 때문에 적어도 5만원이상을 간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따라서 양쪽의 이해관계가 일치된 터라 지분 매입 과정에서 별다른 특별한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이 지분 자체가 의결권을 가진 주식이라서 그도 솔직히 오성 그룹이 진심일까 싶었다.
하지만 계약 과정에서 단 하나의 잡음도 없었다.
‘정말 모를 일이군.’
솔직히 불안한 면도 있었다. 그런데도 쉽게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이 계약 때문에 손해 볼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 불안하면 상장 한 달 후에 전량 매각해버리면 되니까.’
***
조수현 회장이 한국에서도 오성 바이오 지분 매입 때문에 정신없이 움직일 때도 중국 투자 사업은 잘 굴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