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51화 (51/176)

#051

***

조철영은 미래 증권 홍콩 지점에서 일하면서도 나름 만족했지만 최근 중국에서 진행되는 투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중국 놈들을 믿다니.’

그가 아는 상식으로는 중국은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

그렇다고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할 수 없었다.

다른 직원과 같이 중국 푸등 공항에서 내리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공안이 나타나더니, 막 내리는 이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 중의 한 명은 검사를 핑계로 미래 증권 여직원 몸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참다못한 남자 직원 한 명이 공안에 대들었고, 결국 싸움이 났다.

옆에서 마침 여권 위조 혐의를 받는 몇 사람을 체포한 공안이 결국 끼어들었다.

조철영 역시 그들과 맞섰지만, 소극적인 대응을 하던 경호원 보호에도 결국 두들겨 맞고 그 자리에서 공안에 체포되었다.

‘뭐, 뭐야?’

한국에서 살던 그로서는 중국 공안이 뭔지 잘 몰랐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중국 공안은 과거 장쩌민이 자신이 물러난 뒤에 안전을 보장할 목적으로 여러 조직을 합쳐서 만들어진 괴물이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경찰로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경찰을 포함해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행정기관이 바로 공안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찰청과, 계엄사령부, 안기부, 교정본부 권력을 모두 합친 기관으로 그 범위가 실로 광범위했다.

조철영은 끌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형 조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역 담당 공안에 끌려가기가 무섭게 최고 책임자가 나타나서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는 심지어 무릎까지 꿇은 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주먹을 휘두른 공안은 얼마나 맞았는지, 피에 절어서 넙죽 엎드렸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뭐야? 수현 형의 중국 권력이 이렇게 막강했어?’

조철영은 중국 공안 경찰의 호위(?)를 받은 채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심지어 보상의 대가로 최고급 룸에 투숙했다.

비용은 모두 공짜다.

그는 결국 조수현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냥 연줄이 좀 있다는 정도만 알아. 앞으로 중국 투자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고, 상처 입은 직원 잘 다독여서 이번 오프닝 행사만 문제없도록 해.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다시 전화해라.”

“형, 진짜 대단하다. 나도 중국 공안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놈들인 줄 몰랐는데, 그런 놈들에게 압력까지 넣다니.”

“그놈들은 조심해라. 초법적인 기관으로 한국 행정안전부와 비슷한 권력을 가진 독립 기관이니까. 비상시에는 사법까지 무시해서 즉결심판한다. 이 경우는 나도 손 못 써.”

“직접 경험해보니, 소름 돋네.”

“겉으로는 고위 공직자 부패를 조사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정적을 제거하는 놈들이야. 놈들을 보면 그저 잘못했다고 해. 때리면 차라리 그냥 맞아. 회사 다른 직원에게 주지시키고.”

“그래.”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독일 게슈타포나 마찬가지인 공안이지만 현재는 우리 편이잖아. 우리도 놈들을 이용해서 정적을 제거할 수 있어.”

“그건 그러네. 가만 설마 그렇게까지 이용하려고?”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난 중국 공안 쪽하고는 긴밀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이번 투자도 5년 정도 보고 있을 뿐이다.”

“알았어.”

***

장청리 부장는 조수현 회장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지만, 여권 조직 적발에 안색을 굳혔다. 알고 보니 체포된 장창이 과거 모종의 일 때문에 안면이 있는 이였다.

그는 몇 년 전에 일이라서 류엔둥 당서기에는 보고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 골치가 아파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퇴근하는 시간에 정장을 입은 몇 사람이 그의 앞을 막았다.

장청리 부장은 손을 들어서 경호원을 막은 후에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공안?”

“장 부장님,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앨리엇 관련된 부분은 이미 다른 채널 통해서 다 보고 했다.”

“여권 위조 일당 때문입니다.”

“그건......”

“제 이름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딱히 위협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좋다.”

장청리 부장은 밑에 수행원이 반대하는 것을 무릎 쓰고 그의 차량에 올랐다. 그는 누구보다 중국 공안의 막강한 힘을 잘 안다.

이미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이 조직은 중국 권력자의 칼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전 권력자의 라인이겠지.’

차량이 도착한 곳은 황푸 강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공원 근처다.

상대가 담배를 내밀었지만 거절한 채 입을 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이것부터 먼저 보시죠.”

사진은 수십 명의 사람이 뭔가를 배에 몰래 실어서 떠나는 장면이었다. 단단하게 방수포장된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달러 지폐가 가득 들어가 있었다.

“목적지는 한국 제주도더군요. 금액만 해도 대략 1억 달러를 넘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몇 년에 걸친 자금을 다 합치면 최소 3억 달러 이상입니다.”

중국은 최근 돈세탁과 관련된 조항을 강화했는데, 여기에는 마약, 조직폭력배, 테러를 포함해서 투기성 자본 유출도 포함한다.

이미 유엔 반부패협정에도 가입해서 부패한 관리를 포함한 이 돈세탁 사범에 대해서 강력한 처벌을 취했다.

장청리 부장 이마에도 어느덧 식은땀을 줄줄 흘렸지만, 그는 이런 일을 염려해서 안 주머니에 넣어둔 몇 가지 서류를 내놓았다.

“천량위 쪽도 만만치 않아.”

사진은 뜻밖에도 압록강에 인접한 린장시 근처에서 수백 kg이 넘는 마약을 옮기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북한 관료도 있었지만, 중국 공안, 심지어 천량위 라인과 관계된 몇 사람도 있었다.

얼마나 정교하게 잘 찍었는지 그 사람의 얼굴이 잘 나왔다.

“흠.”

중국에서 마약 거래는 무조건 사형이다. 돈 세탁 범죄 따위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마약 거래였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날 이렇게 불러 협박하자는 것은 아니잖아. 설마 중국 공안 전부가 천량위 쪽을 민다고만 생각하지 않아.”

“후유, 좋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두칭리 보좌관 신병입니다.”

“이상하군. 왜 그놈을 원하는 거지?”

그도 잠깐 망설였지만, 마약 거래 사진이 휘날리는 것을 보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서문 어르신의 막내 제자가 두칭리 보좌관입니다.”

“서문 어르신이라면......,혹시 공안 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그 어르신 중에 서문 노사를 말하는 건가?”

“네.”

“으음.”

그도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서문 노사의 실력이 대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중국 공안 설립부터 관여한 이후로 그가 키운 인맥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그 금력도 만만치 않았다.

“죽었......”

“이미 살아 있는 거 확인했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보내주십시오. 저희도 굳이 장청리 부장님과 대립하고 싶지 않습니다.”

장청리 부장도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폰을 꺼내서 류엔둥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았다.

“한 시간 후에 석방될 거다. 그러면 된 건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앨리엇 청소는 지시하신 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대부분 직원은 미국으로 떠날 수 있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다만 합법적인 돈 외에 불법적인 나머지 비자금은 중국에 두고 떠나야 할 겁니다.”

“정말 고맙군.”

그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면서 떠나려고 하다가 문득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혹시 조민호 선생님(?)이란 분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장청리 부장도 다른 첩자에게서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고 짐작했고, 그 사실을 잡아떼려고 하다가 두칭리 보좌관이 풀려나면 어차피 알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칭리에게 물어봐.”

“그렇군요.”

그는 물론 그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조수현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경고해주었다.

조수현 회장 역시 안색을 굳힌 채 조민호에게 곧바로 이 상황을 알려주었다.

조민호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앞으로 잘 될 겁니다. 쓸데없는 걱정은 마시고, 앨리엇 조지는 일에 전력을 다해주세요. 전 왜 앨리엇 같은 세계적인 헤지펀드가 고작 한국 홍신소를 이용해서 퍽치기 의뢰를 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하겠습니다.”

***

막강한 중국 공안에서 자기 이름을 조사하고 있다는 전화에도 조민호는 그저 약간 귀찮다는 감정을 느꼈을 뿐이다.

그가 조용히 살고 싶은 소망과 벗어난 길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싫든 좋든 어떤 형태로든지 권력자 귀에 자기 이름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자기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었으니, 그들도 함부로 조민호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할 확률은 낮았다.

‘엉뚱한 짓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처분 하면 될 것이고, 그보다는 환자를 보내겠지.’

이 부분 역시 당분간은 조수현 큰아버지 사업을 돕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자기 투자 재산(?)도 늘려야 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그도 원하는 바였다.

알아서 환자 보내주고, 치료비를 빙자한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조민호는 시간이 나면 중국을 방문할 계획까지 염두에 뒀다.

‘녀석의 흔적은 남아 있을까? 그녀는 아직도 날 원망할까?’

자신의 제자와, 연인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이미 현실에 적응하면서 잊으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떠올랐다.

당시 자신이 사라질 때 그가 일구어놓은 세력은 막강 그 자체다.

그런 힘을 가진 세력이 그냥 사라질 리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그 유산이 현대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지난 기억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도 옆에서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교수조차 2학기 마지막 강의를 하면서도 조민호 눈치를 봤다.

중앙지검 검사와도 깊은 인맥이 있지만, 최근 물리학과 내에서 돌고 있는 조수현 회장 조카라는 설(?) 때문이었다.

소위 말하는 재벌 3세 프레임이다.

“비록 이번 학기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홍역이라고 생각합시다. 덕분에 우리 대학도 한결 더 깨끗해졌습니다. 2학기 강의는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다들 고생했고, 겨울 방학 잘 보내기 바랍니다.”

박진민은 손뼉을 치면서도 조민호 눈치를 계속 봤다.

조민호는 피식 웃었다.

“왜 그래?”

“너 정말 조수현 회장 친조카 맞아? 혹시 조수현 회장님의 또 다른 숨겨진 아들은 아니고?”

“비꼬는 거냐?”

“어.”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20년 동안 남남으로 살아왔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쪽과 따로 살아. 단돈 1원도 도움받지 않고 있다. 그러니 말하고 말고가 없었다.”

“그렇구나.”

“그래. 달라진 것은 없어.”

“하지만 넌 요즘 아르바이트도 안 하잖아. 월세나, 학비, 생활비는 어떻게 구해?”

“아르바이트한다.”

“단순히 아르바이트해서 그 비용을 다 감당한다고?”

“고액 알바다.”

삐딱한 조민호 말투에 박진민도 자기 말이 날카롭다고는 것을 인정했다.

“미안하다. 말이 좀 심했다.”

“괜찮아. 나도 사전에 이야기해줘야 했다.”

다시 화해하고 나자 침묵이 감돌았다.

박진민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마침 국제 전화(?)가 와서 조민호는 전화부터 받았는데, 아버지 조철영이었다. 그는 중국에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놀랍습니다.

-야, 네 아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장담하지만, 중국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너도 형이랑 똑같은 소리하냐. 너희 둘이 뭘 숨기는 것이라도 있어?

-아닙니다.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 너에게 전화까지 하냐.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정말 한국에 있는 거 맞아?

-전화번호 보면 알잖아요. 그리고 저 강의 듣는 중인데, 아버지 일을 어떻게 알아요?

-그렇지? 요즘 내가 갑자기 일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다.

-너무 걱정 말고요. 정 불안하면 큰아버지에게 이야기해서 경호원 숫자나 더 늘려달라고 하세요.

-지금도 충분해.

곧 전화를 끊었는데, 박진민은 옆에서 귀를 쫑긋하고 듣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 아버님이셔?”

“어, 지금 중국에 사업차 갔다.”

“설마 그것도 조수현 회장님이 손을 쓴 거야?”

“아버지는 젊은 나랑은 다르잖아. 형 도움받는 게 오히려 당연하지.”

“좋겠다.”

박진민은 차마 내년 미래 그룹 특별 채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조민호는 그저 웃다가 활기에 넘치는 아버지 목소리에 꽤 만족했다.

조철영은 농촌에서 은거한 이후로 반쯤 폐인이 되어서 살다가 이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력이 넘쳤다.

아무리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런 세심한 일 처리까지는 어려웠다.

‘역시 큰아버지가 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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