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50화 (50/176)

#050

***

조민호는 리핑 치료를 끝낸 후에 나머지 일에는 간섭하지 않았고, 심지어 류엔둥이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에도 기말고사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한다면 조수현 큰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조수현 큰아버지에게는 따로 전화를 걸어서 가능한 앨리엇과 관련된 일에 훼방 놓으라는 식으로 사업하라고 충고했다.

그다음은 그의 관심사 밖이다.

그는 한국 부동산이나 건물도 제대로 모르는데, 중국 건물 따위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박진민 역시 시험 날이 다가오자 바짝 쪼이기 시작했고, 늘 여자를 쫓아다니는 김영탁 역시 억지로 시험 준비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김영탁은 선배에게서 시험 족보를 구해서 달달 그것만을 외웠다.

박진민 역시 눈치 빠르게 김영탁 방식에 나름 합류했다.

“이번 학기에 최소한 B+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

조민호는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그냥 포기했다.

정민현 이야기도 나왔는데, 결국 이번 학기에 휴학해버렸고, 이유미 역시 정민현과 사이가 틀어지자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버렸다.

거기에 한국대 횡령과 관련된 교수나 대학 직원 소송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유연진은 요즘 한국대 야구부 단련시킨다고 정신이 없었고, 그를 따라다니는 기자들 숫자가 줄었지만 몇 달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자들도 특히 유연진의 완치 냄새를 뒤늦게 알았고, 그 부분을 팠지만, 아직도 여전히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주변을 빙빙 돌았다.

교수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나름 평화로운 대학 생활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검은색 고급 정장을 한 조수현 회장이 다급한 일 때문인지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은 채 비서실장과 경호원을 데리고 한국대를 찾았다.

“?”

조민호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조수현 큰아버지 방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큰아버지가 여기 웬일이에요?”

“네놈이 연락을 안 받으니, 다급한 내가 찾아와야 할 것 아냐!”

“시험 준비 때문에 전화를 꺼 놓았습니다. 그냥 이메일이나 문자 보내면 되잖아요.”

“후유.”

조수현은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노화를 무조건 참았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알았어요.”

“?”

요즘 한창 취업 준비도 나름 정신없는 박진민은 갑자기 한국대 도서관에 나타난 조수현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입을 열었다.

“민호 큰아버지세요?”

“그래. 민호 친구구나. 반갑다.”

“안녕하세요. 민호 절친 박진민입니다.”

“난 조수현이다.”

박진민도 긴가민가하던 얼굴에서 곧 한 사람을 떠올렸다.

“서, 설마 미래 그룹의 조수현 회장님?”

“내 이름까지 알다니. 기분이 좋네.”

미래 증권은 무섭게 성장하면서 계열사를 조금씩 늘려서 요즘은 미래 그룹이라고 보통 칭한다. 자고 일어나면 빌딩을 사들인다는 입소문이 날 정도로 무섭게 성장 중이다.

도서관을 지나다니는 대학생 중에는 이들 대화와 조수현 얼굴을 보고는 뜻밖에 그를 알아본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은 눈치를 보다가 조수현 회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혹시나 대학 강의가 있나 싶어서 질문하는 이들도 있었다.

조수현도 분위기가 산만해지자 조민호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가만 큰아버지라고, 마, 맙소사 민호 큰아버지가 조수현 회장이란 말이야?!”

경악한 박진민.

옆에서 구경만 하던 김영탁 역시 화들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곧 고개를 갸웃했다.

“민호 큰아버지가 있었어?”

“나도 잘 몰라. 정말 이상하네. 민호 집이 그렇게 잘 사는 편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조수현 회장이 큰아버지라니.”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니고, 좀 황당하다.”

“아니 이놈의 민호 자식은 그러면 재벌가 집안이면서 이제까지 그렇게 구두쇠처럼 군 거야?!”

두 사람은 이제껏 조민호가 돈 문제에 한해서는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것을 떠올리면서 이를 으드득 갈아붙였다.

조민호 입장에서는 늘 그렇게 해왔던 터라,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정말 배신행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고 일어나니 재벌가 막내아들이 되어버린 조민호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씨발, 정말 좋겠다.’

***

중국 내 부동산 구매는 원칙적으로 1년 이상 거주했을 때 구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 부동산 관리국에서 본인 명의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 와서는 이 작업 전체가 멈추었다.

외국인은 부동산 매매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신규 분양은 아예 접수되지 않았다.

미래 증권은 그나마 한국 법인 소득세를 비롯한 증명서가 확실해서 어느 정도 이 틈을 파고들 수는 있지만, 제한이 존재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존재하는데, 중국 전역에 걸쳐 있는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거품에 한 역할 한 이들 중에 하나가 모근스탠리를 비롯한 미국 자본이다.

조수현 회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면서 조민호에게 중국 부동산 사정을 설명했다.

조민호조차 내막을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진짜 대단한 놈들이네요. 설마 상하이 부동산이 급등해서 곧 거품이 터질 것이라고 가짜 뉴스 퍼트리면서 오히려 부동산 쇼핑을 하다니.”

“악명이 자자해. 중국 애들이 막장이기는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가 이제까지 잘한 것도 없어. 서로 의견 대립이 심해지니, 극단적으로 나가는 거다.”

“피해가 크겠습니다.”

“그 반대로 우리는 오히려 이득이지. 그 덕분에 제대로 된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괜찮은 매물이 꽤 나왔으니까.”

“중국 투자가 위험하다고 한 것은 그 중국 관료 성향과 관계가 있군요.”

“그래.”

“하면 큰아버지가 그 빌딩을 이제 사들일 수 있는 겁니까?”

“그런 정도가 아냐. 류엔둥 당서기가 먼저 괜찮은 매물 하나를 정했다.”

조민호도 흥미를 느꼈다.

“어떤 건물이죠?”

“33층 업무용 건물인데, 동방명주탑 근처에 있어서 전망도 아주 좋다.”

동방명주탑은 상하이에 있는 동방명주 TV탑으로 황푸 강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 높은 빌딩으로 상하이 내에서도 꽤 알려져서 세계 관광객이 많이 찾았다.

“가격은 어때요?”

“2,500억.”

조민호는 휘파람까지 불었다.

“비싸네요.”

“후후후.”

조수현 회장도 악동같이 웃으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보통 상하이 외곽에 있는 오피스 빌딩 가격이 대략 2,500억 정도다. 황푸 강변에, 그것도 상하이에서 유동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은 그 이상이다.

실제 현재 시세 기준이라면 무려 3,200억은 가볍게 넘었고, 이 돈을 준다고 해도 매입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조민호는 설명을 듣다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설마 앨리엇이 투자한 건물입니까?”

“어, 개들은 3,200억에 사들이려고 했다.”

“류엔둥이 제동을 걸었군요.”

“그래.”

그는 그제야 조수현 회장이 왜 이곳까지 나타났는지 눈치챘다. 그 비싼 건물을 사들이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저보고 중국에 같이 가자는 말입니까?”

그도 지금 상황이 아직도 황당한 듯 실소를 지으면서 툴툴거렸다.

“다음 주에 상하이 미래 빌딩 오프닝 행사를 한다.”

“아, 안 갑니다. 기말고사 문제도 있지만, 굳이 나서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왜? 너 그 건물 행사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 우리 회사에서 서로 가려고 난리였다. 결국, 임원 몇 사람만 간다. 그곳에서 널 그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됐습니다.”

“중요한 일이다.”

“관심 없습니다. 그보다 중아 홀딩스 지분 대출은 얼마까지 된답니까?”

“지금 봐서는 천억까지 가능할 것 같다. 오성 전자에서 받은 천억과 나머지는 펀드 금액으로 2,500억을 맞출 생각이다.”

“와아, 그 정도까지 됩니까?”

“오성 그룹 프리미엄이 붙으니까. 아마 오성 김건중 회장이 뒤에서 손을 썼다고 봐야 할 거다.”

“자신 있죠?”

“허, 너 지금까지 내 말을 뭐로 들었냐. 그러니 같이 가서 이 부동산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한번 느껴 보란 거다. 그 건물 매입은 다 너 때문에 가능한 거야. 앨리엇에서 강제로 뺏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보다는 큰아버지가 더 신기합니다. 저같이 모르는 조카라면 중간에 알아서 삥땅해 먹으려고 할 텐데?”

조수현은 의외로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넌 조카이기 이전에 내 고객이다. 가장 가까운 고객에게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이 일을 빨리 접어야 할 거다.”

“그렇군요.”

조민호도 새삼스러운 눈길로 조수현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조수현 역시 조민호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젊은이의 객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녀석은 돈에 초연한 걸까? 아니면 재산에 정말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릇이 너무 커서 이 정도에는 만족하지 못한 걸까?’

***

장청리 부장은 요즘 한국에서 있었던 일 처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특히 두칭리 보좌관을 심문해서 천량위와 무슨 관계인지 파악했다.

천량위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설마 류엔둥 턱밑에 첩자를 박아 놓을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그도 갑자기 분노한 앤디가 사무실 문이 박살날 정도로 열면서 자신 앞에 나타나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장청리 부장,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계약을 해지하다니, 다 다음 주면 준공 오프닝 행사하는 빌딩입니다. 아무리 중국 공산당이라고 해도 이게 말이나 됩니까? 당장 소송을 걸 겁니까?!”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위의 지침이 그렇습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무리 당신들 중국 공산당이 막 나가도 사람 간에 기본적인 신뢰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책상 한쪽에 놓아둔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서 앞에 던졌다.

“그거나 보고 말하십시오.”

“?”

앤디는 영문을 몰라서 서류를 살피다가 화들짝 놀랐다가 곧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서류를 넘겼다.

“푸시 부동산 개발 기업이 미국 설계 회사 쪽에 용역을 맡기면서 과다 계상에, 이익까지 전부 다 빼돌려서 탈세했더군요.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 3,000만 달러가 넘습니다. 거기에 그쪽을 통해서 불법으로 경쟁 업체를 상대로 청부 폭력을 저지르고, 심지어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 주고 압력까지 넣었더군요.”

“......이, 이걸 어떻게......”

“제가 옛정을 생각해서 일단 공안 애들을 막았습니다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곳 상하이에 당신네 앨리엇이 투자한 건물에 대한 내사가 곧 진행될 테니까.”

“저, 정말입니까?”

“저도 모근스탠리 같이 비열한 쓰레기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지켜야 할 선은 지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것도 아니더군요. 이번 한 번만 경고하겠습니다.”

“......그, 그러면 나머지 빌딩이나 부동산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장청리 부장도 이들과 그동안 쌓은 상당한 관계를 생각해서 배려해주었다.

“두 달 주겠습니다. 그 이후는 저도 장담 못 합니다. 그쪽을 포함해서 대대적인 비리 조사가 진행될 테니까요.”

“제, 제발 좀 더 시간을 주십시오. 그 안에는 절대 처리 못 합니다.”

“당서기님이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연기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당당했던 앤디는 오히려 비 맞은 쥐새끼 꼴이 되어서 돌아서고 말았다.

하지만 태연한 얼굴을 한 장청리 부장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미국과 분쟁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서 자칫하면 크게 비화할 수도 있다.

‘청부 폭력 과정에 두 명이 죽었어. 그 때문에 그 빌딩 매입자가 누군지 더 따지지는 않는군. 이 자들 때문에 이번 사정도 좋은 명분을 가지겠어.’

그는 물론 이 일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미래 증권이나 앨리엇이나 오십보백보다. 이왕이면 자기 쪽 라인에 혜택을 주는 게 이쪽 관행이기 때문이다.

‘역시 다른 분들을 배려하기 위함일까? 하긴 그래서 이 일이 더 쉽게 풀렸어.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이 당서기님을 견제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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