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48화 (48/176)

#048

***

연락을 받고, 우선 가족부터 외가로 임시 대피시킨 조수현은 정장을 한 채 마치 회장 비서라도 된 것인 양 식은땀을 닦으면서 자기 저택 바로 앞에서 대기했다.

미래 증권이 잘 나간다고 해도 아직은 대기업 반열은 아니었고, 투자 고객 상대로 영업해야 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저택 입구를 따라서 쭉 늘어서 있는 경비원 숫자만 해도 20명이 넘었다.

물론 곧 도착한 세단 네 대에서 경호원이 줄줄이 내려서 대기했다.

그들 책임자를 향해서 다가간 김재상 비서실장이 익숙한 중국어로 소통하자 각자 지정된 위치를 향해서 움직였다.

수행원과 경호원 수십 명이 저택 요소요소를 물샐틈없이 막아섰다.

“류엔둥 당서기님의 한국 방문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류엔둥을 딱 한마디만 하고는 차가운 눈으로 조수현 회장을 쳐다보면서 초췌한 손녀 리핑을 데리고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

‘민호 이놈의 새끼.’

조수현도 설마 조민호가 이렇게 상대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 그는 김재상 비서실장을 다시 쳐다보면서 초조하게 질문했다.

“민호는?”

“곧 도착한다고......”

멋진 노란색 스포츠카 한 대가 저택 바로 앞에 나타났다.

조민호는 검은색 티, 청바지만 달랑 입고 있었는데, 검은색 선글라스까지 한 채 차를 열고 나타나서 차 키를 김재상 비서실장에게 던졌다.

“환자는 어디 있죠?”

그는 정말 할 말이 많았다. 지금은 기호지세다. 조민호 탓을 하고 어쩌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손녀 치료가 최선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 당당한 태도가 차라리 나았다.

“따라와라.”

조수현은 힐끗 조민호를 안내하면서도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도 오히려 태연한 조민호 행동에 감탄하고 말았다.

‘내 조카지만 정말 걸물(?)이다.’

***

조민호는 안내를 받으면서 류엔둥을 만났는데, 그녀가 먼저 쌓인 감정 때문에 반응을 보이기 전에 유창한 중국어를 사용했다.

“조민호입니다. 아, 이 소녀가 환자군요.”

류엔둥은 제멋대로인 조민호 행동에 분노한 것도 있었고, 아직도 불신했다. 하지만 조민호의 유창한 중국어에 흠칫 놀랐다.

아니 감탄했다.

강소성 출신인 그녀이지만 능숙한 조민호 말을 쉽게 알아들었다.

중국에서 살지 않는 이상은 저 정도로 발음할 수는 없었다.

“중국어를 정말 잘하네요.”

첫인상은 나빴지만, 부정적인 인식은 적지 않게 사라졌다.

조민호는 두려움에 가득한 리핑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말했다.

“네가 리핑이구나.”

“네.”

리핑 역시 한국 사람이 너무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말하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것도 감정이 많이 담긴 어조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민호는 전생을 중국에 살았다. 그 당시와 지금 중국어는 좀 달랐다. 중국어 어학 교재를 사용해서 현대 중국어를 다시 익혔다.

복잡한 어휘 사용은 어렵지만 간단한 일상 대화는 간단했다.

불안하게 지켜보던 조수현 회장조차 힐끗 크게 당황한 김재상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딱 봐도 저건 중국어 학원에서 익힐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모국어 수준의 중국인조차 감탄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조민호는 불쑥 손을 내밀어서 리핑 손목을 잡았다. 그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리핑 조차 깜짝 놀라서 손을 빼지도 못했다.

불과 5초 남짓.

그는 곧 손을 떼고는 자신을 둘러보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모두 나가 주세요. 아니 그냥 전부 다 나가시기 바랍니다.”

류엔둥은 물론 남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조수현 회장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민호는 류엔둥이 목표인 터라 그녀만 빼고 다 퇴출했다.

특히 간절히 부탁하는 조수현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냉정한 녀석.”

조민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리핑을 준비한 이동형 침상 위에 눕히고, 경혈을 따라서 가장 문제가 되는 환부를 찾았다.

왼발 무릎 아래 족삼혈이었다.

양국, 독비, 족삼혈을 중심으로 해서 이상 상태가 퍼져갔다.

흥미로운 것은 그 부분에 여러 번 침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치료 흔적이군.’

나름 정확한 치료였지만 한 가지 문제가 된 것은 기의 특성이다.

면역 체계에 손상을 입힌 속성 자체가 음기에 가까웠는데, 오히려 그 음기 특성을 강화하는 처방을 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염증을 약화 목적으로 사용한 여러 가지 약이 더 상태를 악화시켰다.

그 약 자체는 증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쓴 것은 분명하지만 리핑 체질과는 맞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부작용 체질이다.

정확히는 일부 속성은 맞지만 나머지 일부는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했다. 즉 오히려 면역 기능을 더 악화시켰다.

조민호조차 이 독특한 특성에 감탄한 채 족삼리 경혈을 살폈다.

‘오염된 기가 생각보다 더 많이 생겼구나.’

얼핏 봐서는 맥관염이 문제인 것 같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염증 질환이다. 관리만 잘했다면 더 심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환경이 문제인가?’

그는 이 독특한 환자 증상을 들여다보다가 옆에서 숨조차 쉬지 않고 있는 류엔둥을 쳐다보면서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리핑이 사는 곳이 한기가 많고, 건조한 지역입니까?”

“어, 맞, 맞네, 아니,.....맞습니다.”

류엔둥도 신기한 듯 조민호가 손녀가 사는 지역을 알아맞히자 말을 높였다. 그녀도 설마 미래 증권이 이 일을 가지고 장난하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직접 와서 만난 조민호 기풍에 감탄했다.

그녀가 비록 공산당이지만 중국 정치계에 있으면서 수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을 만나 봤지만, 조민호처럼 탈속한 이는 손으로 꼽았다.

그들 중에는 유명한 중의학 대가도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 이들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조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면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몸조리하세요.”

그는 슬그머니 붉은 반점으로 덥혀 있는 리핑의 족삼리 혈 주변을 혼원기를 사용해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혈을 강제로 열었다.

처음은 혼원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족삼리 주변을 통해서 퍼져 나간 오염된 기를 흡수했다.

약물 때문에 체내에 쌓여 있는 그 기운은 천천히 조민호 손으로 흡수되었다.

조민호는 그 흡수한 기운을 얻기가 무섭게 밖으로 배출했다.

“아.”

리핑은 이제까지 무릎 주변을 생겨난 발진이 사라지는 감각에 쾌감마저 느꼈다.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리, 리핑아, 괜찮아?”

“아, 할머니, 저 괜찮아요. 너무 시원해서 그래요.”

그는 류엔핑에게 먼저 경고했다.

“쓸데없이 끼어들 거면 당장 나가세요!”

“아, 알겠습니다.”

류엔핑도 이제는 조민호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조민호는 리핑에게도 따끔하게 경고했다.

“치료 중에 말하지 마.”

“알겠어요.”

리핑도 단순한 지압 효능이 너무 신기한 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 놀라운 것은 족삼리 주변에 모여 있는 발진이 조금씩 흐려졌다. 실시간으로 사라지기는 했지만 완치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푸른 자줏빛 반점이 흐려지는 것을 보면서 리핑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조민호는 그런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염된 기 흡수에 집중했다.

‘이거 생각보다 질기네.’

오염된 기는 경혈뿐만 아니라, 신체 장기 곳곳에 영향을 주었다.

그 상태가 한 번에 회복하지는 않았다.

계속 반복을 거듭하면서 환부 전체를 부드럽게 지압했다.

겉으로 봐서는 단순히 터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혈을 따라서 계속해서 오염된 기운을 뽑아냈다.

‘흡기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리핑 상태는 호전되었다.

애초에 목적한 것은 경혈에 마치 잡초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운을 제거한 것이다.

어느 정도 녹을 털어냈다고 판단하자 리핑의 신체 특성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12가지 기운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딱히 어떤 특정한 기운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조민호조차 이런 특성은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 있기는 있어. 그 누구더라. 제갈세가 장녀 신기제갈 제갈지라고 했던가? 이걸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미세혈관이 망가져서 면역 기능이 제대로 동작을 못하는 경우다.

그 원인은 독특한 신체 특성, 환경 요인, 거기에 현대 약의 부작용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다.

현대 의학 관점에서는 맥관염, 즉 혈관염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칭하기 어려웠다.

‘이걸 치료하는 게 이상하지.’

조민호조차 12가지 혼원기 특성 분리와 그 각 특성에 변화를 줄 수 없었다면, 아마 선천지기 한계 때문에 꽤 오랫동안 치료를 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좀 달랐다.

그는 덕분에 리핑 특성용 혼원기를 만들어서 족삼리에 밀어 넣었다.

그 기운이 밀려들어 가면서 경혈은 온통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바뀌었다.

“악!”

리핑조차 통증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조민호는 오히려 그런 그녀 몸을 꽉 눌렀고, 류엔둥에게 도움을 청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어깨를 잡으세요!”

“아, 알겠습니다.”

류엔둥 역시 정신없이 리핑 상체를 꽉 눌러 버렸다.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족삼리 중심으로 해서 혼원기기 경혈을 타고 흐르면서 막혀 있는 불순물을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맞춤형 혼원기는 신비할 정도로 염증을 일으킨 환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리핑은 허벅지 전체가 용광로에 들어 간 것 처럼 후끈 달아오르자 당황해서 요동쳤다. 그저 조민호 손만 잡고 있을 뿐인데, 그 부위를 중심으로 수증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

류엔둥조차 눈을 크게 치켜뜨면서 그 신비한 광경을 넋을 잃어버렸다.

조민호는 치료 중에도 힐끗 그녀 반응을 살피면서 만족했다.

‘수증기 효과가 짱이군.’

굳이 수증기까지 일으키지 않아도 치료할 수는 있었지만,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좀 시각적인 효과를 줘야 상대가 더 실감한다.

제일 먼저 사라진 것은 자주빛 반점이었고, 자반 역시 눈 녹듯이 놓아 내렸다.

허벅지 전체를 넘어서서 복부까지 올라온 그 증상이 빠르게 사라졌다.

“!”

류엔둥는 60평생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이 기괴한 광경에 눈을 크게 치켜뜨고는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의 광경이었다.

조민호 역시 자신이 처방한 혼원기 효능에 크게 감탄했다.

‘제법이네.’

뭐랄까. 지금 방식은 전공 수업 중에 배운 고등 수학 원리를 일부 이용한 것이다. 마치 고도의 고등 수학 문제를 푼 수학자 같은 기분이었다.

그 어려운 문제를 풀고 나면 따라오는 커다란 성취감을 느꼈다.

리핑도 경혈을 따라서 간간이 고통을 느꼈지만 자기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본 터라 이제는 이를 악문 채 참았다.

그녀 이마는 온통 식은땀 투성이었다.

조민호가 손을 뗀 것은 대략 한 시간 반 남짓 지났을 무렵이었다.

“됐습니다.”

그녀는 아무리 사람이라도 몇 년에 걸쳐서 고통받은 소녀가 불과 두 시간 만에 치료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서, 설마 완치된 겁니까?”

얼핏 봐서는 당연한 질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환경적인 요인과 약의 부작용이다. 이것들이 리핑 몸을 갈아먹기는 했지만 치료한 것 또한 사실이다.

조민호가 한 것은 이 요인을 제거해서 맞춤형 혼원기를 이용해서 그 치료를 가속했다. 얼핏 봐서는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 오직 조민호 만이 할 수 있는 치료 방식이다.

“네. 다만 앞으로 관리를 잘해야 할 겁니다. 특히 온도가 낮은 지역과 습기가 마른 지역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지역에 가면 반드시 재발할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류엔둥에게 그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손녀가 다시 건강을 회복한 것이면 그런 사소한 일이었다.

류엔둥는 그제야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손녀 리핑을 안았다.

그녀의 아들 부부는 권력 투쟁 시기에 죽고 말았다.

이제 남은 혈육은 리핑 하나.

그녀의 삶은 리핑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민호는 류엔둥의 그런 모습에 꽤 만족했다.

‘이 정도 분위기면 앨리엇 상하이 투자에 제동을 걸 수 있겠어.’

곧 이어서 조수현 회장을 비롯한 이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류엔둥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 한 일을 다 끝낸다고 생각한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곧 바로 거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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