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46화 (46/176)

#046

맥관염은 아직 원인이 잘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면역 체계와 관련이 있는 병이다. 면역 체계 이상 때문에 염증을 유발한다.

루프스나 종양과 같은 여러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증상은 출혈성 반점이 생기고, 출혈반이 만져지기도 한다.

발열이나 관절통 증상을 동반하는데, 만성일 경우에는 사구체 신염과 같은 합병증으로 발전한다.

소아는 만성 맥관염일 경우에는 폐출혈이나 뇌출혈과 같은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딱 좋네요. 특히 손녀라면 지금 당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그쪽에 삼촌이 바로 연락을 해보세요.”

조수현은 아직 조민호가 직접 환자를 치료할 것을 보지 못했는데, 알고 있는 것은 최영준 차장 처의 혼수상태를 치료한 것뿐이다.

“......설마 지압으로 면역 체계 질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치료할 수도 있는 거냐?”

“아마 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합리적인 그도 아마 자기 아내에 대한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화를 냈을 테지만 직접 눈으로 봤다. 그럴 수가 없었다.

“......단순 지압으로 맥관염을 치료할 수 있다고? 그걸 지금 믿으라는 소리냐?”

“네.”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 기복을 보이지 않던 조수현도 화냈다.

“그런 말만으로는 곤란하다. 상대는 중국 공산당 권력 실세로 떠오르는 사람이다. 오히려 찍히면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해!”

“확실히 치료됩니다. 그리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냉정한 조수현도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민호야, 중국 투자 사업 접는 것은 우리 회사에도 큰 타격인데, 가볍게 생각하라고?”

천연덕스러운 조민호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어차피 이런저런 다양한 치료 받았지만, 현재까지 나아진 것이 없을 겁니다. 제가 더해진다고 해도 그쪽에서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정 의심 가면 최영준 차장에게 연락해서 치료 자료를 보내달라고 하세요.”

“......알았다.”

조수현 회장은 선뜻 조민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아직도 확실치 않은 조민호 능력인지 알고 싶었다.

문제는 역시 이것저것 벌여 놓은 것들이다.

당장 오성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지도 염려스러웠다.

‘일단은 류엔둥과 접촉하면서 오성 반응도 확인해야겠어.’

***

중국 정권은 후진타오와 장쩌민 전 주석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말들이 많았다.

대만조차 이들 권력 싸움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그들 중에 하나가 류엔둥이다.

다만 중국 당국은 현재로서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통해서 상하이 인사를 단행하는데, 신장위구르자치가 당 부서기가 임명되었다.

하지만 상하이 인사만 들어가지 않았다.

이 사건은 경제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터라 많은 기업이 주시했다.

오성 그룹을 비롯한 한국 그룹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런 외부 흐름과는 달리 류엔둥은 이미 상하이 당서기가 된 것을 들었다.

문제는 역시 여전히 남아 있는 장쩌민 전 주석의 지방 권력 라인이다.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물밑에서 계속 작업 중이었다.

류엔둥은 이렇게 정신없는 중국 움직임과는 별개로 손녀 리핑 때문에 정신이 나갔다.

귀여운 손녀 맥관염 때문이다.

그 어떤 치료를 사용해도 한때 호전은 되지만 완치가 되지 않았다.

중국 내의 유명한 의사를 다 찾아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미래 증권 직원이 리핑을 치료할 방법이 있다고? 개소리하지 말라고 해!”

“정말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녀도 그다지 믿지는 않았지만 이제 열 살 손녀가 친구조차 한 명이 없다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직접 만났는데, 정상적인 일이라면 이렇게 그녀를 만날 수도 없는 자가 하는 이야기는 황당 그 자체였다.

“지압으로 맥관염을 치료하겠다고? 당장 저 미친 새끼를 쫓아내!”

이번 일에 경험 쌓기 위해서 같이 합류한 조철영은 동행한 홍콩 지점장 이야기에 혀를 내둘렀지만, 굳이 나서지 않았다.

시퍼렇게 불길로 덮여 있는 류엔둥의 모습은 마치 악귀 같았다.

손녀에 대한 사랑이 이제는 외부에 대한 증오로 변한 것이다.

조철영 역시 조민호가 퍽치기당해서 절망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은 물러나야지. 민호 이놈이 수현 형에게 뭐라고 한 거야. 지압으로 맥관염을 치료하겠다니. 제대로 미친 거야.’

***

조수현도 류엔둥 설득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 놀라지 않았는데, 솔직히 그 자신조차 조민호 말을 아직도 믿지 않았다.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한 마디는 남겼다.

“아직은 여유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사람이 극에 달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기 마련이니까요. 그때를 대비해서 류엔둥 주변에 계속 사람을 박아두세요.”

“......정말 치료가 가능......, 아니다. 네 말대로 하마. 그런데 네 녀석도 제법이다. 쉽게 포기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관시로 유명한 중국 인맥 쌓기가 쉬웠다면 다들 고생하겠습니까. 물론 나중에 처지가 바뀌면 그때는 갑질도 해야 합니다.”

“갑질이라, 허허, 그 참.”

“그보다는 오성 그룹도 잘 지켜보세요.”

“그래.”

조수현 회장도 계속 이질적인 조민호 대답에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도대체 퍽치기 당해서 얼마나 변했기에 이렇게나 보고서와 다를까.’

***

김건중 회장은 애초에 최영준을 협박할 생각은 없었는데, 굳이 그럴 거면 5% 지분을 넘길 이유가 없었다.

이번 일은 적당한 선에서 당근과 채찍을 같이 휘두른 것뿐이다.

이젠 괜찮은 미끼까지 던져 놓았다.

조민호 그놈이 이 떡밥과 엮이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뜻밖에도 최영준이 조민호에게 몽땅 그 혜택을 넘겨버렸다.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1,000억 투자 제안까지 던졌다. 미래 증권 현재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는 이 일이 잘되던, 못 되든 상관이 없었다.

‘후후후, 투자가 실패하기를 바라야 한다니.’

미래 증권은 예상대로 다른 어떤 때보다 더 바빠졌는데, 작년부터 준비해온 중국 투자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홍콩 파견 인력도 늘리고, 중국 인력 역시 대폭 확충했다.

특히 류엔둥을 향한 로비는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김건중 회장은 다소 예상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가 큰 틀에서 자기 범주 안에서 움직이는 미래 증권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순조롭군.’

그런데 이학준 비서실장이 바위처럼 굳은 얼굴을 한 채 정주호 경호실장과 같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급히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보여준 것이 바로 동영상 파일이었다.

“저건 조민호잖......”

화면에 나타난 것은 바로 조민호가 활극을 보이는 장면 위주였다. 얼마나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는지 그냥 휙 하고 지났을 때는 이미 네 사람이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이게 뭔가?”

다시 느린 속도로 화면이 재생되었다.

조민호는 그저 상대를 향해서 가볍게 손을 뻗는 동작뿐이다. 그 손에 닿은 상대는 마치 시체처럼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회복하기는 했지만, 공포에 질린 표정을 봐서는 결코 연극 따위는 아니었다.

압권은 역시 오성 비서실 내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바 있는 장혁. 그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인양 줄행랑을 놓았다.

“설명을 좀 해봐.”

정주호 경호실장이 그제야 굳은 얼굴을 한 채 입을 열었다.

“흔히 고수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는 내가 중수법이라고 해서 기를 사용해서 상대 몸속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수법조차 소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고, 실전에서 사용하기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 수법조차도 저와 같은 위력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일테면 소설에서도 개연성 상실이란 말이군. 그러면 저건 뭐야?”

“모르겠습니다. 설사 내가 중수법이 가능하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흠.”

김건중 회장도 다른 사람이라면 욕설을 퍼붓겠지만, 정주호 비서실장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정주호 비서실장은 특수 부대, 미해병 파견, 심지어 CIA도 경험한 적이 있을 정도로 실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전 지난 주에 사직서를 낸 정혁 저 친구가 저렇게 겁먹고 도망간 것을 처음 봤습니다. 저놈은 절대로 저럴 사람이 아닙니다.”

“이게 다는 아니겠지?”

이학준 비서실장은 쓰러진 경호원의 의료 차트를 가져와서 직접 보여주었다.

“오재호 박사 주장에 따르면, 조민호에게 당한 이들은 각각 심장, 폐, 기관지 조직 일부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상처가 아직도 치료되지 않은 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행이라면 지난주부터 그 속도가 느려졌는데, 적어도 1년 이상의 요양을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냈습니다.”

“무섭네.”

그도 창백한 안색을 한 채 멍하니 반복되는 동영상을 쳐다보았다. 화면 자체는 그저 가볍게 손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민호 표정만 보면 필요에 따라서 상대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 저렇게 빠른 장면을 너무 깔끔하게 찍었잖아.”

“그게 마침 신동일이 있는 자리였고, 아가씨 경호원이 늘 착용한 몰카에 운 좋게 촬영된 것입니다.”

김건중 회장은 잠깐 입을 다물고는 물끄러미 화면을 쳐다보기만 했다.

‘생각보다는 더 무서운 친구군.’

***

김건중 회장도 조민호의 놀라운 무술 솜씨를 간과할 수 없었다. 그도 최악에 무력을 사용할 생각까지 했었지만 이제 깔끔하게 접었다.

성공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괜히 반격을 당하면 자기 생명도 안심하기 쉽지 않았다. 더욱 큰 이유는 굳이 조민호와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그나마 유럽으로 출장 나갔던 아들 김재호와 얼굴을 마주했다.

“최혁 그 친구는 어때?”

“괜찮습니다. 성격도 좋지만, 입이 무거워서 부담이 없습니다.”

“너랑 네 살 차이라서 잘 맞을 거고, 믿을만한 친구다. 매사에 신경을 잘 써주도록 해. 직급이 상무보 대우라고 하지만 사람 마음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네, 아버지.”

“이번 승진 인사에서 특히 등기 이사 평균보수가 90억을 넘는 점을 잘 부각해. 필요하다면 최 회장에게도 따로 부탁하고.”

“꼭 그쪽을 고집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게 뒤탈이 없어. 다른 쓰레기 언론사는 너무 믿지 마라.”

“그래도.”

“원래 뒤에서 선동하는 놈들이 더 죄질이 나빠. 그놈들이 겉으로 인권 타령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밥 그릇 챙기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놈들이 권력 잡으면 이 나라는 부패로 몰락할 거다. 그 과실을 위해서라도 틈이 보이면 언제라도 지배구조 명분을 내세워서 널 물어뜯기 시작할 거다.”

“후유, 잘 알겠습니다.”

김재호 상무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근 오성 X파일 사건이 무사히 끝났지만, 회사 본사에 몰려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 단체 때문이다.

전국에서 무려 108개 시민단체가 모여서 뇌물 공여나 불법 도청에 대한 진상규명을 지속해서 요구하는 중이다.

경찰을 동원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죄송합니다.”

김건중 회장도 미래 증권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괜찮아. 그런 자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달콤한 꿀에는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니까. 그 보다는 중국 쪽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장기 플랜을 한번 고민해봐라.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중국 공산당 내부의 텃세가 심해서 파고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이 권력 교체 시기야. 그러니 조심해서 그들에게 접근해봐.”

“알겠습니다.”

김건중 회장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또 사실이었는데, 다만 뒤늦게 한 사람이 식탁 테이블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자 방긋 미소 짓다가 흠칫했다.

“?”

처음에는 그 자신이 처음 보는 사람인 줄 착각했는데, 다시 확인하고서야 막내딸 김지수라는 것을 알아챘다.

잡티 하나 없이 백옥 같은 피부에, 브이 라인이 확연히 살았다. 턱 라인은 전형적인 동양미인 곡선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체형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김재호 상무조차 막내 동생을 보면서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헉, 너 지수 맞아?”

김지수는 시치미를 잡아뗐다.

“오빠도 참 이상한 소리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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