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조민호도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깊은 흥미를 느꼈는데, 전생에서 이런 식으로 큰 음모를 당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형태와 방식은 다르지만 큰 의미에서 본다면 다 똑같았다.
“미래 증권에 대한 작업도 그 연장선이군요.”
“아마 그럴 거다. 그 500억 투자를 시작으로 그 규모를 더 키워갔을 거다. 박상철 과장은 그 선봉이라고 봐야지.”
“그 퍽치기도 결국 이 사건 연장선에서 일어났던 일이군요.”
“그렇지.”
“으음.”
조민호는 고작 자신이 당한 단순한 퍽치기 속에 이런 내막이 있다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꼬리에 불붙어서 날뛰고 있는 앨리엇은 이미 과거부터 저에게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지금도 마찬가지군요.”
“그렇게 봐야 할 거다.”
“그렇다면 놈들에게 미끼를 좀 더 던져 봐야겠습니다.”
“혹시 그 지분을 이용할 생각인가? 하지만 그것은 오성 그룹 측에서 그냥 안 있을 거네.”
“그건 그것대로 괜찮습니다. 아마 김지수 치료 결과 때문에 당분간은 조용할 겁니다. 생각이 있다면 그 과정을 다시 검사할 테니까요.”
“아, 맞아. 참 지수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부작용(?)입니다.”
“뭐?”
조민호도 쓰게 웃었는데, 혼원기를 통해서 확인은 해보았지만, 과학적인 추론이라는 관점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스스로 알고 싶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치료 효과가 좋아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은 그런 식으로 안 됩니다. 솔직히 저도 그 원인을 조사하고 싶으니까요.”
“그런가?”
그도 고개를 갸웃하다가 잘하면 앨리엇과 오성 그룹 사이 불화를 부추겨서 전면전으로 이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지금 봐서는 둘 싸움이 불가피하니, 심지에 불만 붙이고, 기름만 살짝 끼얹는 거야.’
“그 지분을 이용해서 미끼를 한 번 던져 볼 생각입니다.”
“알겠네.”
***
조민호는 조수현 큰아버지를 만나서 중아 홀딩스 지분 5% 서류를 보여주었다.
조수현도 처음에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서류를 확인하고는 내심 크게 당황했다.
세상에 오성 그룹이라니.
이미 조민호가 얼마나 비범한 인물인지는 그도 대략적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 막대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로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차명 지분 다섯 명에 1%씩 할당이 된 이 서류는 모두 오성 그룹 소유로 되어 있었다.
“이, 이게 뭐냐?”
조민호는 굳이 어려운 설명보다는 김건중 회장 막내딸 치료비 명목으로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믿기지 않으시죠?”
“......잘 모르겠다.”
그가 난감한 얼굴을 한 것은 역시 아내 치료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조민호가 사전에 늑간동맥이라는 것을 찾아준 덕분에 쉽게 회복했기 때문이다.
‘그 쪽 집안 유전병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꿍꿍이도 있겠지. 그래도 너무 많은 계약금이야.’
조민호는 피식 웃었는데, 어차피 오성 그룹과 얽힐 바에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좀 더 적극 나서서 뜯어먹을 생각이었다.
“정 의문이 생기면 오성 그룹 쪽에 한 번 문의해보세요. 제가 원하는 것은 그 지분을 이용해서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돈으로 투자를 좀 진행해주세요.”
“당장 가능한 금액은 500억 정도는 충분할 거다. 다만 은행 쪽과 혐의를 요청하면 오성 그룹 측에서 알테고, 그러면 일이 커져서 좀 걱정이 된다.”
“불안하면 그쪽에 전화해서 확인하고 일을 진행하세요. 혹시라도 투자와 관련해서 필요한 도움이 있으면 저에게 요청하세요.”
“그것은......알겠다.”
그도 차마 조민호가 갖춘 놀라운 능력을 생각한 터라 거절하지는 못했다.
‘확인해보면 알겠지.’
***
조수현 회장은 조민호에 대한 많은 의혹을 느꼈지만 본능적으로 조민호에게 질문해도 대답 듣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는 많은 투자 고객을 상대해봤기에 경험적으로 그 사람 성격과 일의 속성을 잘 알았다.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조민호와 관련된 사람들인데, 오성 그룹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오성 그룹 측에 중아 홀딩스 지분 5%에 관한 것을 문의해봤다.
그 결과 오성 그룹 실세 중의 실세라는 이학준 비서실장이 직접 찾아왔다.
“이학준입니다.”
“......조수현입니다.”
황당한 일이다. 오성 그룹의 실세 중의 실세라는 이학준 비서실장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접 자기 앞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하면서 간단히 통성명하기는 했지만, 고작 얼굴을 몇 번 서로 마주친 적이 있을 뿐이었다.
조수현은 조심스럽게 지분 관련 이야기를 꺼내자 이학준 비서실장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간단하게 언급만 했다.
“이미 그 지분은 저희 손을 떠났습니다. 저희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5% 지분을 민호에게 준 겁니까?”
“정확히는 그에게 직접 넘긴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지분 받은 친구가 넘겼다면 저희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알아서 생각하십시오.”
“......”
조수현 회장도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상대 표정을 살피다가 곧 포기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이미 조민호 일가를 샅샅이 흩었기에 두 사람 관계를 잘 알았는데,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조수현 태도 때문이다.
‘조민호 능력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건가?’
하지만 조수현 회장 역시 중아 홀딩스 5% 지분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아는 그로서도 당황스럽기는 매 한 가지였다.
“죄송한 말이지만 그 말씀을 선뜻 믿기 어렵습니다. 오성 그룹에서 중아 홀딩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지분을 그냥 내놓다니. 다른 의도가 있는 겁니까?”
꼼꼼한 체크.
이어진 질문은 이학준 비서실장 마음속을 샅샅이 흩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그렇게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지분은 저희와는 무관합니다. 그리고 오늘 굳이 이렇게 찾아온 것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옆에서 대기한 비서실 직원 한 사람이 서류를 꺼내서 내밀었다.
“천억 투자 대행 내역서입니다. 가능하면 괜히 말 나올 여지가 많은 국내 기업보다는 미국 벤처를 비롯한 해외 쪽으로 투자했으면 합니다.”
“좋은 제안이지만 역시 오성 그룹 자본은......”
“괜히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개인 투자자 명목으로 진행했고, 저희 쪽에서는 비공식적으로 그 진행 상황을 알려주면 됩니다.”
황당한 제안이다. 인재가 넘쳐나는 오성 그룹에서 투자 대행을 맡기다니. 차라리 미래 증권을 향한 야욕을 드러냈다는 것이 더 개연성이 높았다.
“......진담입니까?”
“이상한 의도는 없습니다. 앞으로 미래 증권과 우리 오성 그룹이 좋은 관계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선의라는 것 정도는 서류를 보면 알 겁니다.”
“그 부분은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조수현은 이학준 비서실장과 가볍게 악수한 후에 헤어졌지만, 아직도 영문을 몰라서 얼떨떨하기만 했다.
‘민호 이 녀석이 도대체 뭘 했기에 이 자존심 높은 이학준 비서실장이 이러는 걸까?’
***
조수현 회장은 미래 증권 내부적으로 중요 인물을 모아서 이 안건을 다루었는데, 주로 이야기를 하는 쪽은 그였다.
듣는 경영진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오히려 안색을 굳힌 채 혹시라도 오성 그룹이 인수합병 목적이 아닐까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지금 미래 증권에서 홍콩 지점을 토대로 중국을 비롯한 일본, 미국 쪽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가기 위해서 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 빌딩이나 부동산은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1,000억이면 상하이 주변의 해안선을 따른 주택 투자로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현재 상하이 해안가를 따른 평당 가격은 대략 400만원 남짓. 한국 경제 발전에서 볼 수 있듯이 무조건 땅값은 성장하기 마련이다.
즉 1,000억을 5배만 이익을 봐도 무려 4,000억 이상 이익을 본다.
조수현 회장도 뻔히 눈에 보이는 이런 투자를 도저히 간과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번 오성 그룹 투자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역시 손을 든 임원도 있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오성 그룹이 어떤 회사인지 회장님은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포식자입니다!”
“저도 압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저 때문이 아니라, 제 조카 녀석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굳이 다른 사업적인 관점에서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
질문한 이도, 회의에 참석한 이들도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수현 회장은 조민호 비밀까지 말할 수는 없어서 말을 돌렸다.
“제 조카 녀석 인맥이 제법인 모양입니다. 그것 때문에 오성 그룹 상층부와도 쉽게 채널을 열어서 투자 요청을 받은 것뿐입니다.”
조카 이야기는 이미 회사 내에서 공공연히 나온 마당이지만 천억 투자를 끌어왔다는 이야기는 차원이 전혀 달랐다.
“저, 정말입니까?!”
경악한 임원진.
회의장은 순식간에 시장바닥처럼 어수선해졌다.
“말도 안 돼.”
“회장님이 설마 농담하는 것은 아닐 테고.”
“저걸 지금 우리보고 믿으라는 소리야?”
“우리도 이학준 비서실장 얼굴을 보기 어렵잖아.”
조수현 회장은 손을 들어서 일단 회의실 분위기부터 가라앉혔다.
“흠,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거로 합시다.”
하지만 역시 끝까지 태클 거는 이는 또 있었다.
“제가 알기로 중국 투자는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할 겁니다. 그런데 상하이가 그 대상이라면 그 쪽 고위층 라인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 그냥 투자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그건 제가 한 번 고민해보겠습니다.”
“으음, 회장님이 대안이 있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조수현 회장도 마지막 지적을 간과하지 않았는데, 최근 중국 투자와 더불어서 늘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고위층이라면, 가장 가능성이 큰 류옌둥일까. 으음, 간단한 문제가 아냐. 거기에 김건중 회장도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상대잖아. 영업력을 키우기 위해서 투자받는 쪽으로 정했지만 불안해. 후유, 이거 머리 터지겠네. 어차피 민호 녀석 때문에 생긴 돈이니, 상황을 알려줘야겠어.’
***
조민호는 딱히 중아 홀딩스 지분 투자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투자 분야에 대해서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굳이 투자라면 대한민국에서 최고 실력자로 꼽히는 큰아버지가 있는데, 굳이 미주알고주알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도 조수현이 자신을 보기가 무섭게 중국 투자와 그 리스크를 듣다 대충 무엇을 걱정하는지 금방 깨달았다.
“일테면 중국 쪽의 인맥을 터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는 말이군요.”
“아니 우리도 1년 넘게 그쪽을 뚫어서 기본적인 인맥을 구축했다. 문제는 중국 공산당 권력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휘청휘청해.”
“그 류엔둥이 이번 상하이 당서기로 임명되는 것은 확실합니까?”
“후진타오 주석이 상하이방의 핵심 인물인 천량위를 싫어하니, 교체는 분명해. 물론 쉽지는 않을 거다. 정치국 상무의원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장 전 주석의 측근인 천량위가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권력의 큰 흐름을 막지는 못할 거다.”
“류엔둥에 대해서 조사해놓은 것이 있습니까?”
“그래.”
천량위는 상하이의 빠른 경제 개발을 이룩했지만 최근 분배를 내세우면서 경제 발전 속도 조정하려는 중앙 정부와는 맞지 않았다.
이런 정책적인 갈등이 그 시작이었지만 역시 권력 투쟁 역시 빼놓기 어렵다.
조민호는 류엔둥의 복잡한 프로필을 확인하면서도 원래 목표한 표적을 떠올렸다.
“그 앨리엇 말인데요. 혹시 중국 쪽에도 투자를 진행합니까?”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상하이와 베이징 쪽에 막대한 부동산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는 남의 일인 양 쳐다보던 조민호는 곧 오성 자본으로 앨리엇 중국 투자를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주 흥미롭네요. 가만 류엔둥의 손녀가 병이 있다는데, 이건 뭡니까?”
류엔둥 손녀의 병에 대한 것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았다.
조수현 회장은 곧바로 비서실 직원을 호출해서 확인해봤는데, 역시 이미 조사해 놓은 내용이 있었다.
“맥관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