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44화 (44/176)

#044

“그렇게 대단하냐?”

“이건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전 처음에 외계인이 인두겁을 뒤집어쓴 채로 나타났는지 알았습니다. 제 팔을 보세요.”

피부에 나 있는 털이 빳빳하게 서 있었다. 아직도 긴장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북한 최정예 첩보 요원 15명에게 포위되었을 때도, 중동 지역에서 테러리스트 100명과 단 3명으로 싸울 때도 그저 웃기만 하던 이가 장혁이었다.

그런 장혁이 공포를 느끼다니.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저 놀라운 치유 능력을 갖춘 평범한 지압사로 안다.”

장혁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킥킥거렸다.

“개 소리 말고, 정말 다른 것은 더 없습니까? 나 참 평범한 치료사라니. 막말로 티라노사우루스를 강아지라고 한 것과 진배없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

“으음, 그 상식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제 능력이 타인의 힘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아시죠? 그 기준에서 보면 도저히 그 능력 자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이던데?”

“으음, 그건 능력치를 조절할 수 있어서 그럴 겁니다. 필요에 따라서 힘을 끌어내는 겁니다.”

“네놈이 늘 말하는 드래곤볼에 나오는 자기 능력을 조절하는 뭐 그런 거냐?”

“그것과 비슷하면서 좀 다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에 제약되어서 힘을 발휘 못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그 힘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애매하네.”

“저도 일부는 추론한 겁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믿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조민호란 친구는 절대로 건드리지 마세요. 정말 할 생각이 있다면 사단 병력을 동원하던지. 아, 그래도 힘들까? 도저히 잡을 방법이 엄두가 나지 않네요.”

“......그 정도야?”

“그 이상입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인간종과는 전혀 다른 괴물입니다. 아, 가만 설마 지금 만드는 조직도 그 조민호란 친구를 위한다고 했죠? 흠, 같은 편이라면, 나쁘지 않네요. 좋습니다. 저도 합류하죠.”

“너무 속 보이는 것 아냐?”

장혁은 소탈하게 웃었다.

“솔직히 막말로 팀장님을 어떻게 믿습니까? 하지만 조민호 그 친구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무슨 일을 할지는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아니 그는 혼자 눈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도대체 그런 능력을 갖췄으면서 고작 환자 치료하면서 푼돈 1억 챙기다니. 그 인간은 이상하네요.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미쳐버릴 겁니다.”

자기 어머니 치료비를 떠올린 최영민 팀장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래, 네 태도는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게 하자. 그런데 그 신동일이란 놈은 또 뭐야?”

“아, 오성 그룹 막내딸을 노리던 새끼죠. 무려 3년 동안 공을 들였는데, 이번에 저 때문에 제대로 박살 났죠. 제가 오성 비서실에 그놈 배후 조직 정보를 흘렸으니까요.”

“너 아직 오성 비서실 소속 아냐?”

“그냥 이중간첩으로 호구지책이죠.”

“간사한 놈. 국가에 대한 충성만 이야기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간 거야?”

“사람이 살다 보니, 변하네요. 그 위에 새끼들이 얼마나 더러운 짓을 많이 했는지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합니까?”

장혁은 국정원 시절에 정말 공무원 모델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바뀌었다. 그는 국정원을 그만두고 나서 역시 오성 비서실에 입사했고, 김지수를 보호하는 보이지 않은 경호원이 되었다. 미국에 있을 때 김지수를 철저히 보호하면서 신동일란 자를 조사해서 정체를 밝혀냈다.

김건중 회장도 뒤늦게 이 사실을 보고받고 두 사람의 결혼을 중간에 막아버렸다.

다만 이 사건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신동일의 배후 때문이었다.

장혁은 이를 위해서 오성 비서실의 도움을 받아서 신명 해운 경호팀에 입사한 것이었다.

그는 새삼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오히려 피식 웃었다.

“오성 비서실이 신명 해운보다 오히려 절 얼마나 감시하는지 압니까. 제가 또 배신할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건수만 잡히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토사구팽해서 매장한 직원이 한두 명입니까. 세상 일 다 그런 거죠.”

“설마 나도 뒤통수 칠 거냐?”

“팀장님은 제가 뒤통수 칠 레벨이 아니고, 조민호 그 친구가 무서워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뭐 제 느낌이지만 그자는 믿을만하죠.”

“.......”

그는 약간 넋을 놓은 채 조민호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뭔가 큰 것을 놓쳤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 인물은 다 파악했지만 정작 조민호 그 친구에 대해서는 나도 전혀 몰랐던 건가?’

***

신동일 사무실은 온통 박살이 나서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신동일은 아직도 분노를 참을 수가 없는지 고래고래 고함쳤다.

“장혁 그 새끼 잡아와?!”

경호팀장 신동일 5촌 조카 신경훈이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게.....어제 사직서를 냈습니다.”

“아직 우리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잖아. 그리니 빨리 가서 끌고 와. 숨만 붙어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신경 마.”

“이사님, 진정 좀 하십시오. 이러다가 아버님이 아시면 큰일 납니다.”

얼굴을 붉힌 채 아직도 조민호에게 당한 치욕을 잊지 못한 신동일도 아버지 이야기를 듣자 안색을 창백하게 굳혔다.

이번 김지수 일이 박살 나면서 몇 년에 걸쳐서 이제까지 들인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다.

지난 일을 생각할수록 피가 끓어 올랐다.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오성 그룹에 대한 정치적인 압박이었다.

신동일의 부친 신한중은 그 일 때문에 요즘 극도로 예민해졌다.

“빌어먹을.”

그는 풀썩 소파에 앉은 채 어금니를 으드득 갈았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장혁 그놈 실력이 보통 아닙니다. 작정하고 달려들면 저희 경호팀 전원이 달려들어도 못 잡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신경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 장혁이란 놈 실력이 보통 아닙니다. 대련할 때 약간 그 능력을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 경호팀에서 대적할 자가 없었습니다.”

신동일도 아직 김지수에 빠져 있었지만, 누구보다 무력 필요성 때문에 조직을 키워 온 신명 해운 경호팀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최근 그 친구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이 일이 생겨서 저도 답답합니다. 김지수에 대한 작업을 내부에서 흘러나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놈을 가장 의심 갔으니까요.”

“그런데 왜 내버려둔 거야?”

“그게 워낙에 돈을 밝혀서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을까 얕잡아 봤습니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옷부터 시작해서 온갖 사치품으로 도배하니까요.”

“쯧.”

경박한 장혁 행동을 떠올리면서 잠깐 고민을 하던 신동일은 이를 악물었다.

“우리 비서실이 힘들면 아는 지인 통해서 그 새끼를 묻어버려. 아, 그놈은 조민호라고 했지. 그놈 역시 없애 버려. 정 그게 어려우면 사지 하나를 잘라 병신으로 만들어!”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신경훈에게 이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도 뒤늦게 조민호에게 당했다가 회복한 경호원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들이 병원에 입원한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는 달려갔다.

담당 주치의 말로는 장기 요양을 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고, 부랴부랴 오성 의료원으로 그들을 보냈다.

황당한 것은 오성 의료원 역시 당황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신경훈은 결국 그들의 이상 징후를 분석한다고 정신이 없었고, 조민호의 소름 끼칠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확인했다.

‘장혁이 적을 둔 채로 도주할 놈이 아닌데, 좀 이상하다고 했어. 그렇게 악독한 놈을 상대하라니. 차라리 사장님에게 이 일을 보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

신명 해운이 시끄러운 동안에도 최영준 차장은 이학준 비서실장을 만나서 지분을 조민호에게 넘겼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최영준 차장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 와중에 조민호에게 신동일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역시 대수롭지 않게 최영민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봤는데, 필요한 자료는 그 즉시 팩스로 받았다.

그도 신동일 이름 정도는 김지수를 만나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 자료를 보고 나서는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신명 해운이라면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생각보다는 회사가 제법 크네. 그런데 왜 이런 식으로 조각조각 쪼개 놓을 걸까?’

회사 이름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있지만, 지분 관계도 지저분했다. 심지어 주기적으로 법인을 부도내서 자금 확인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신동일이 의도적으로 김지수에게 접근했다는 항목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곧 최근 김건중 회장이 왜 김지수 결혼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인가에 대한 답변을 이 보고서 통해서 최영준 차장은 하나둘씩 알아챘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이 갑자기 중단된 것에 대해서는 오성 일가 내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지켜보는 많은 이들이 김건중 회장도 역시 재벌가끼리 결혼을 선호하나 그렇게 생각했다.

최영준 차장은 결국 최석준 회장을 만나서 최근 있었던 일을 다 털어놓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차라리 잘했다. 그 지분 가지고 있어 봐야 김 회장이 오히려 그것을 명분으로 사사건건 더 간섭하려 할 거다.”

“하지만 민호 그 친구에게 준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니 내 생각은 그 반대다. 어쩌면 그 친구가 더 잘 처리할 거다. 솔직히 네 안 사람도 그렇지만 김건중 회장 치료비가 고작 1억이라면 정말 싼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민호도 뜻밖에 돈에 별 다른 간섭이 없어서 갑갑해 보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차별 두지 않으려는 거겠지. 만약 막대한 액수를 받는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지금보다 더 빨리 외부에 입소문이 날 거다.”

“설마 외부에 소문 퍼지는 것을 우려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까?”

최석준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택 정원을 거닐었다.

“입소문을 다 막을 수는 없어. 하지만 설사 외부에 알려진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안 될 거다. 어차피 믿고 싶은 사람만 믿을 테니까. 문제는 치료비가 수천억씩 된다고 생각해봐라. 그걸 감출 수 있겠냐? 당장 국세청에서 내사할 텐데, 한 두 번은 막아도 지속한다면 역시 탈이 날 거다.”

“......확실히 그건 불가능하겠군요.”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지금처럼 딱 1억만 받는다면 딱히 조민호에게 태클 걸 사람은 없을 거야. 설사 있다고 해도 지금처럼 외부 압력받아서 침묵할 거야. 이미 권력 가진 사람도 제법 아는 사람이 꽤 있어. 더욱이 네 경우도 그렇지만 돈이 아니더라도 그 비용을 다른 형태로 낼 사람은 많아.”

“그렇군요.”

‘하긴 1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사람 생명에 비하면 푼돈이 아니지. 하물며 돈이 많은 재벌가나 권력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어. 다만 돈이 없는 사람 치료가 문제라면 문제이니, 지금 당장은 인맥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자중하는 것이 정답이네.’

***

조민호는 최영준 차장을 다시 만나서 최근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을 다 들었다. 주변 움직임부터 시작해서 신동일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도 신동일 관련된 내용 중에 그 배후가 앨리엇과 관계가 있다는 말에 절로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에 앨리엇이 왜 나옵니까?”

“몇 년 전부터 앨리엇이 오성 그룹 지분을 광범위하게 모았어. 아마 그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게 오성 그룹 막내딸을 노리는 이유가 됩니까?”

“그 관계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앨리엇이 오래전부터 오성 그룹을 위시해서 한국 기업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는 거다. 로이스 펀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두선 그룹도 연결되어 있어. 그 연결 고리인 무영 그룹도 이미 한 다리를 걸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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