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조민호도 처음에는 남의 집안일을 관심 없어서 별생각이 없었다.
“알아서 하세요.”
“이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자네를 노려서 준 거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가 있어. 자네는 김 회장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 줄 잘 몰라.”
“그 말씀은 저는 쉬운 인물이란 이야기입니까?”
“그런 의미가 아냐.”
조민호는 서류를 내밀면서 힐끗 최영준 차장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던 무서운 기세가 구름처럼 피어올라서 최영준 차장을 압박했다. 비록 육체 수련 한계는 있다고 해도 탄탄한 바탕 위에서 피어 오로는 120만 정신 스탯 힘이다.
최영준 차장이 비록 그 기운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해도 엄청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기세였다.
너무 아득해서 마치 끝없이 솟은 에베레스트 산을 보는 것 같았다.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도 만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고, 주면 주는 대로 받으세요. 대신에 지금처럼 저를 도와주시면 됩니다.”
최영준 차장은 이질적인 조민호 모습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자네는 누군가?”
“일단은 조용히 살고자 하는 지압사라고 해두죠.”
“끄응.”
그는 난감했다. 문제는 이 지분을 자신이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다른 누구에게도 줄 수는 없었다. 보통 사람은 이 지분 가져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조민호는 전생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처음에는 그냥 제3자처럼 행동하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김 회장이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된다고 했지만 그게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았죠?”
“그래.”
그는 불쑥 손을 내밀어서 지분을 받아서 품 안에 넣어버렸다.
“그러면 제가 받죠.”
최영준 차장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김 회장이 그것을 명분으로......”
“다시 말하지만 저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김 회장도 계획이 있겠지만 저도 나름 고민해둔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는 공돈 마다할 이유가 있습니까?”
“알았네.”
그도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어차피 아버지도 모르는 것이 나아. 아니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그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얼굴을 한 채 조민호를 한국대 입구 카페 입구까지만 안내해주고는 슬며시 몸을 돌렸다.
“카페 안에 들어가 보면 누가 있을 거야. 난 김건중 회장에게 그 지분을 자네에게 넘겼다고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아서 이만 가볼게.”
“수고하세요.”
***
조민호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안을 돌아보면서 도대체 누구를 만나라고 한 것인지 의아했지만, 곧 손을 흔들고 있는 수줍은 김지수를 발견하고는 정말 번거로운 환자라고 중얼거리다가 흠칫 놀랐다.
‘응?’
처음에는 잘못 봤는지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김지수였다.
문제는 그녀 모습이 마치 전신성형이라도 한 것처럼 변해 있었다.
‘......다행히 환골탈태는 아니군.’
조민호는 맞은 편에 앉아서 살짝 고개 숙인 김지수 모습을 힐끗 살피면서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전생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선천지기 변화로는.
‘일단 내 기운이 남아 있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해할 수가 없구나.’
가장 큰 의문은 역시 치료를 위해서 혼원기를 사용했는데, 그 양이 적었다. 더욱이 특성이 비슷하다고 해도 타인 신체에 흡수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겨우 그 정도 양으로는 지금과 같은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가능한 추론은 역시 잠재해 있던 선천지기가 스스로 몸을 변화시켰다.
‘심방세동이 치유되면서 경혈 흐름이 정상을 찾아서 제자리를 잡아가 건가. 성장 호르몬 분비가 가속되면서 남아 있는 선천지기가 그 변화를 도왔다고? 하, 이럴 수도 있나.’
혼원기는 단순히 치료만 한 것이 아니라, 족소음신경을 따라서 연결된 경혈 전체에 영향 줬다.
여기에는 김지수가 심방세동을 치료하기 위해서 먹은 막대한 약과 몸을 보하기 위해서 먹은 과학적인 식이요법이 한 손을 거들었다.
심방세동이 치료되면서 자연스럽게 호르몬과 이 다양한 요소가 결합하여 막아 놓은 몸의 변화를 촉진했다.
이것이 신체의 원기를 자극해서 마치 인간의 2차 성징을 뛰어넘은 효과를 발휘했다.
다른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가 사용했던 선천지기와 김지수 선천지수 특성 일치율이 생각보다는 더 높았다.
지금 조민호가 가진 선천지기에서 필요한 특성을 골라내도 차이는 존재하는데, 그 간격이 좁다면 그녀 선천지기와 합쳐져서 두 배 이상의 선천지기를 사용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민호씨, 제 몸이 정말 이상해요.”
그녀는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가슴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팽팽한 가슴의 융기는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조민호는 카페에 들어와 있던 남자들이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와 옆에 동행한 여자 친구가 구박하는 음성을 들으면서 혀를 찼다.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갑자기 변했어요. 특히 가슴도 더 커지고, 피부로 달라졌어요. 기미나 잡티는 완벽하게 사라졌어요.”
조민호는 대충 변화를 이해하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러게요.”
“아이, 전 심각해요!”
투정부리는 모습이 마치 요정이 애교부리는 것만 같았다.
조민호도 자기 눈앞에 출렁이는 팽팽한 가슴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막 나온 냉커피나 홀짝였다.
김지수는 마치 악동 같은 얼굴로 백옥 같은 손을 내밀었다.
“진맥 좀 확인해주세요.”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보통 한의사는 진맥을 통해서 진단하지 않나요?”
“일단 전 한의사가 아니고, 이단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압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마세요. 몸은 강철같이 건강하니, 그렇게 아세요.”
“부탁해요.”
“흠.”
조민호는 애절한 김지수의 눈빛에 어쩔 수 없이 진맥했다.
단순히 맥을 짚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혼원기와 동기시키는 행위다.
혼원기는 타인의 선천지기 기운을 접하자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 몸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조민호는 주변에서 부러운 시선을 느꼈지만 이보다는 가상의 3D 화면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하나하나 확인했다.
마치 소우주를 방불케 하는 그녀 몸속의 선천지기 변화는 경이 그 자체였다.
‘인간의 몸이 이렇게 대단했던가?’
전생에서도 가능한 행위였지만 그 격이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강제로 스캐닝하는 것과 저절로 그 신경 말단을 읽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최근 자신의 무공 발전이 마치 벽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멈추어서 약간 초조했었다.
그런데 김지수 몸을 통해서 이 새로운 변화를 접하자 그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마치 새로운 우주를 발견한 모험가처럼 오히려 가슴이 뛰었다.
물론 자신의 추론은 정확히 일치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혼원기에 자극을 받은 성장 호르몬이 전신에 걸쳐서 그 변화를 지속해서 주면서 서서히 안정화되었다.
환골탈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 아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조민호는 더욱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허, 이것이 환골탈태의 본질이구나.’
이제까지 관념적으로 알아왔던 신체 근골의 변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민호는 그 과정에서 치료 덕분에 늘어난 김지수 선천지기 일부를 흡수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선천지기 스탯이 +4 올랐습니다.]
[상태창]
[이름] 조민호(25살), 무인(Lv.5)
[경험치] 6/320
[스탯]
[체력] 22, [근력] 23, [민첩] 22, [마기] 0
[후천지기] 21, [선천지기] 25, [정신] 1,283,234
‘좋네.’
다른 스탯은 그냥 그렇다고 해도 선천지기 스탯이 무려 +4나 올랐다. 대흥실업 5인방 선천지기를 쥐어짜도 요즘은 꿈쩍도 하지 않은 결과에 비하면 믿을 수 없는 성장이었다.
사실 그도 최근 후천지기를 키우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오히려 마기가 +5 스탯씩 급증하는 것을 보고 깔끔하게 접었다.
욕망이 폭증하면서 피와 힘에 대한 갈증이 폭증하면서 자신의 심성이 변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선천지기 스탯을 키우다니.
“아아.”
오르가즘에 오르면 보통 여인이 내는 앓는 소리에 조민호는 곧 정신을 차렸다.
선천지기 20 스탯 중에 일부만을 빼내서 별다른 이상이 없어야 하지만 김지수는 마치 섹스로 절정에 오른 여인처럼 얼굴을 홍시처럼 붉히면서 붉은 혀로 살짝 내밀고 있었다.
실로 고혹적인 모습이다.
카페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은 숨조차 쉬지 않은 채 멍하니 쳐다보았다.
접시를 닦던 아르바이트는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아주 건강합니다. 전 이만.”
무안한 조민호는 자신이 선천지기 흡수한 것이 마치 피를 빨아먹은 뱀파이어 코스프레를 한 것인 양 혀를 차면서 카페를 나섰다.
겨우 정신을 차린 김지수는 깜짝 놀라서 계산하고는 후다닥 조민호 뒤를 따랐다.
지켜보는 이들은 다들 입맛을 다셨다.
-부럽다.
-자기 저거 봤어? 남자는 저런 맛이 있어야 하는 거야. 이젠 좀 지겹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막 카페 밖으로 나가던 김지수는 자기 이름을 누군가 부르자 깜짝 놀랐다.
-지수야!
-?
조민호 역시 영문을 몰라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행을 힐끗 쳐다보다가 한 놈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절로 찌푸렸다.
***
장혁은 최근 최영민 팀장에게서 전화를 받았지만 긍정 투로 말하기는 했지만 지금 하는 일에 더 만족했다.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오성 비서실에서도 돈 받고, 신동일에게도 급여를 받았다.
‘한 달에 이 천이면 꿀이지.’
뭐 이중 스파이면 어떤가.
오성 그룹이나 이놈의 신씨 가문이나 둘 다 거기서 거기다.
아니 국정원에 있을 때도 지금보다 더 더럽고 구역질 났다.
썩은 권력자 똥구멍이나 빨다가 결국 토사구팽당했으니, 이제 그쪽은 미련 따위는 없다.
그는 휘파람까지 불면서 로로피아나 원단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진 옷을 입었고, 광을 번쩍 낸 정장 구두를 신었다.
그런데 오늘 신명 해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최근 미국에 있다가 돌아온 장남 신동일이 아침부터 호들갑을 떠들었다.
경호팀 비서실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신동일 눈에 들려고 아부했다.
신동일 집안은 부동산으로 큰돈을 번 후에, IMF를 절묘하게 비켜간 후에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해서 자산을 더 불렸다.
대다수 자산은 부동산이나, 현금, 금 위주였는데, 자본금 100억 계열 회사 몇 개를 거느리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들 회사가 뜻밖에 미국을 비롯한 해외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잘 나가는 중견 기업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 계열사가 계속해서 인수합병 형태로 사들이다가 매각했다가를 반복했다.
더 이해하기 힘든 점은 한결같이 정치적인 영향을 받아서 타격을 입은 회사들이었다.
장혁조차 오성 비서실에서 지시를 받아서 이 회사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치밀한 행동에는 솔직히 감탄을 거듭했다.
‘국정원에 있을 때도 이 신명 해운에 관한 조사는 금지였어. 도대체 뭐가 그리 구린 것이 많아서 이렇게까지는 하는 걸까?’
오늘은 내일 주말을 낀 비번이 겹쳐서 월차를 내고 좀 쉬려고 했다.
그런데 위에서 내려온 지시 사안을 보다가 ‘조민호’ 란 말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 조민호가, 그 조민호는 아니겠지?’
역시 전 국정원 요원답게 혹시나 싶어서 최영민 팀장에게 확인해봤는데, 그 사람이 맞았다.
‘어떻게 된 거지?’
장혁은 오늘 정말 월차 내고, 일본으로 놀러 갈 생각이었지만 입맛을 다신 채 오히려 팀장을 찾아가서 이번 일에 끼고 싶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환영.
“하지만 주의하는 게 좋아. 괜히 끼어들어서 일을 망치지 마. 네가 하는 일은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거야.”
“네.”
그는 꽤 흥미를 느꼈다. 조민호 때문인 것도 있지만, 도대체 신동일이 무슨 꿍꿍인지 알고 싶었다.
‘어째 미국에 있다가 갑자기 한국에 왔나 싶었는데, 결국 지수 양을 포기하지 않았나. 비서실에서 그놈들 정체를 파악했나 모르겠군. 오성 비서실 정보력도 이런 거 보면 제법이라니까. 뭐 내 능력이 탁월해서 여기까지 파고든 것이지만 이번에 성과보수 2억은 받아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