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물론 이십 대 중반에 자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김지수 신체 변화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으음.”
“민호씨 만나서 제가 이렇게 변한 이유를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그래.”
그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김지수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설마 와이프도 저렇게 변하는 걸까? 가만 변화가 없었던 것 같던데.....’
오늘 아침에 아내 모습을 떠올린 최영준 차장은 입맛을 다셨다.
‘사람 차별하는 건가.’
***
조민호는 요즘 들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다 보니, 학업에 충실할 수 없었다.
그는 더욱이 정성근 이사장 관련 교수 소환 숫자가 대폭 늘어나는 것 때문에 휴강 과목이 늘어나자 강의도 듣지 못했다.
이게 또 알고 보니, 며칠 전에 만난 김정환 검사 이야기로는, 자기 몸이 회복된 후에 워밍업으로 대폭 그 수사를 강화한 것 때문이다.
‘적당히 좀 하지.’
박진민을 비롯한 친구들 역시 다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슷했다.
“우리 대학 교수 전부 다 구속해서 폭망시키려는 걸까?”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아야지.”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연루가 된 사람을 모두 소환하거나, 압수 수색하는 것은 그렇잖아.”
“뭔가 이유가 있겠지.”
조민호는 힐끗 대학 복도를 통해서 파란색 상자에 압수한 물품을 들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수사관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성근 이사장 사건 조사 중에 김정환 검사가 관련 교수를 협박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뇌물죄 명목으로 괴롭히자 술술 다 분 결과였다.
물리학과 건물 앞에는 몰려온 기자들도 온통 난리였다.
이봉기 수사관은 수사팀을 이끌면서 나가다가 조민호를 보자 마치 상급자를 대하듯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
조민호는 따가운 박진민을 비롯한 친구들 시선이 더 무서웠다.
‘쓸데없을 짓을.’
박진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 힌트라도 주라.”
“아는 지인이야.”
“넌 서울 중앙지검 인맥도 있어서 좋겠다. 잘하면 조민호 게이트도 나오겠어.”
옆에서 이 소리를 들은 이들은 다들 부산을 떨면서 속삭였다.
그는 아예 무시한 채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진민아, 정말 저기 수사관과 민호가 잘 아는 사이야?
-어.
-맙소사 그러면 현민이 그놈이 수사받는 것도 민호 압력이었어?
-그렇지 않을까?
-정성근 이사장 구속도 민호가 뒤에서 손을 썬 거야?
-그렇게 봐야지.
-도대체 민호가 중앙지검 누구랑 아는 사이야?
-부장검사 레벨은 확실하고, 아마 차장 검사 이상이 아닐까?
-맙소사.
-앞으로 민호에게 조심해. 너희 괜히 헛수작 부리면 감옥행이니까.
-아.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이들은 다들 안절부절못한 채 서로 다급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지어 교수조차 다르지 않았다.
***
[.....지난 시간에는 변분법을 사용해서 근사이론을 소개했다. 오늘 강의할 내용은 비선형방정식의 특성과 카오스에 대해서 강의한다. 이 부분은 특히 다른 직선형방정식과는 다른......]
교수 한상수는 강의하는 중에도 한쪽에서 강의에 열중하는 조민호를 힐끗 쳐다보았다.
강의생 대부분 역시 가자미눈을 한 채 그를 비슷하게 바라봤다.
조민호도 따가운 눈총에도 당당한 얼굴로 삭 무시했다.
박진민이 보다 못해서 팔꿈치로 계속 조민호를 툭툭 쳤다.
-야아, 한마디 해!
조민호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박진민을 째려봤다.
참다못한 한상수 교수가 질문했다.
-민호군은 정말 중앙지검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냥 아는 지인일 뿐입니다. 이번 사태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내가 듣기로는 이야기가 달라. 많은 교수가 이 상황을 우려하고 있어. 아니 이사장에게 돈 천 원이라도 받은 교수는 모조리 수사 중이라는 소리마저 들려.
-정말입니까?
-그래. 나도 죄 짓은 사람 잡아넣는 것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냐. 닥치는 대로 교수를 다 잡아가면 그건 좀 그렇지 않냐?
그 역시 공감했다. 지금 수사는 먼지털기식으로 한국대를 완전히 융단폭격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몸이 좀 좋아졌다고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조민호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정환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고, 대답을 듣고 나서는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작년 면접 관련해서 광범위한 조작이 있었고, 그 관련 증거 역시 사라져서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사라진 증거 일부는 정성근 이사장 자택에서 발견된 터라, 수사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합니다.
-맙소사. 아니 그러면 그게 사실이었다는 말이야?
-이 입시 비리가 단순히 정성근 이사가 주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윗선이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중이라네요. 필요하다면 수사를 무영 그룹까지 확대할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 압수 수색 시작했다고 합니다.
-으음, 아,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만 하자.
한상구 교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강의 자료를 챙겨서 결국 나가버렸다.
갑작스러운 휴강에 강의생은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기만 했다. 달랑 전화 한 통으로 수사 진행 상황을 저렇게 알 수 있다니.
차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조민호는 물론 선을 그었다.
“아는 지인일 뿐이야.”
박진민이 목을 비틀었다.
“이 새끼야, 분위기 좀 봐가면서 말해!”
“흐음.”
그는 그런 시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마음 편한 것은 아니었다.
‘김정환 검사 악명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다니.’
***
조민호는 결국 휴강 과목이 너무 많이 늘어나자 결국 독학 비슷하게 공부를 했는데, 주로 고등수학과 이에 바탕이 되는 현대 물리를 비롯한 다양한 과목이다.
문제는 역시 박진민을 비롯한 몇 녀석이 옆에서 계속 귀찮게 군다는 점이다.
“공부 좀 하자.”
“이번 미팅에 한 명 모자란다. 그러니 너도 학과를 위해서 희생 좀 해라. 그냥 가서 빈자리만 채워주면 좋다.”
“일없다.”
“너 어디 아파?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던 놈이 도대체 왜 그래? 그때는 미팅 끼워 달라고 온 동네방네 난리를 쳤잖아!”
그는 이마를 툭툭쳤다.
“기억 안 나.”
박진민은 가소로운 듯 코웃음 쳤다.
“내 말이 그거야. 이제 미팅 나가서 여자들 만나면 옛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번 사태 때문에 너 우리 학과만이 아니라 다른 학과 내에서 인기 최고야.”
“흠.”
‘미팅이라......한 번 나가 볼까?’
조민호도 계속되는 세뇌에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했다. 이제 2학기 남았는데, 대학생이라면 미팅 한 번쯤은 나가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기막히게 한 사람이 슬쩍 끼어들었다.
“어? 최 차장님 아닙니까?”
박진민이 벌떡 일어나 최영준 차장을 열렬히 환호하기 시작했고, 다른 친구들 역시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인지 줄까지 섰다.
요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최영준 차장은 멋쩍은 표정으로 그들과 악수를 하면서도 조민호에게 다가갔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그러죠.”
조민호는 박진민에게 따로 할 이야기 있다고 부탁하면서 나서는 최영준을 따라서 밖으로 나섰다.
“......”
박진민은 곧 두 사람의 묘한 관계에 의문을 토하는 따가운 친구들 질문에 시달리면서도 별다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아니 하기는 했다.
“나도 몰라.”
“야!”
“정말 모른다니까.”
“이 새끼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지금 너 혼자 몰라 연줄 타고 취업하려는 거잖아!”
“진짜 몰라.”
“야!!”
그도 불과 며칠 전에 조민호에게 했던 불만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새끼들 정말 의심은 많아......,빌어먹을 이것도 조로남불인가.’
***
온통 무영 그룹을 성토하는 시위로 시끄러운 한국대 내의 도로를 따라가면서 최영준 차장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어지간한 일에는 흥분하지 않은 편인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조민호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최근 한국대 일을 말했다.
“앞으로 어찌 될 것 같아요?”
“아마 단순하게 끝나지 않을 거야.”
그도 예상치 못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영 그룹이 배후에 있는데도 그럴까요?”
최영준 차장도 그제야 좀 정신을 차리면서 오늘 나간 중아일보 기사를 떠올렸다.
“굳이 무영그룹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로지 한국대만 파는 것이 그 시작이야. 입시 비리는 한국인 부모라면 다들 민감한 것이니까.”
시작은 입시 비리다. 이것이 민심을 뒤흔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이 확대되면 그다음 수사에 대한 외압은 떨어진다.
그다음은 더 쉬웠다. 이 수레바퀴를 계속 굴리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의혹이 증가한다. 무영 그룹 의혹은 오히려 증폭된다.
“아마 그 때 가서는 이번 두선 비자금처럼 손을 쓸 수 없을 거야.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무영 그룹은 한국대에서 손 뗄 수밖에 없을 거다.”
조민호는 전생에서도 그런 흉악한 일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설마요?”
“두고 보면 알 거다.”
“따로 김 검사에게 이야기를 들은 겁니까?”
“아니. 김정환 검사는 늘 그렇게 살아왔어. 차장 검사와 들이박을 때 역시 직계상으로 안 되니, 수사를 통한 갖은 압력을 다 넣었지. 그 과정에서 비리가 다 들통 나서 옷을 벗었으니까. 법무부 라인도 마찬가지고.”
“평검사 시절에 말입니까?”
“대단하지. 오성 그룹이 다양한 채널 통해서 압력을 넣어도 버텼지만 결국 패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많이 달라졌을 거다.”
“전 그런 이야기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짧게 언급되고 사라졌어. 어, 지난 이야기지만 외부에서 압력이 좀 있었어. 우리 언론사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김정환 검사를 노리는 가짜 뉴스가 더 많았지. 그게 징계의 명분이었고, 결국 한직으로 내몰렸어.”
“그랬군요.”
조민호도 김정환 검사의 선천지기 변화를 떠올리면서 그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보통 사람과 너무 달라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그는 슬그머니 서류를 내놓았다.
“?”
조민호는 영문을 몰라서 서류 내용을 확인했는데, 무슨 서류인지는 잘 몰랐지만 중아일보 지분 표시가 된 것을 확인했다.
“김 회장을 만났네.”
“오성 그 김 회장 말입니까?”
“어. 그 의결권이 있는 지분 5%를 그냥 떡 하니 선물로 내놨어.”
“이거 꽤 비싸겠군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가 없어.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돌려받기를 원한 거네. 우리 중아 홀딩스도 알고 보면 오성 그룹 위장 계열사에 지나지 않아.”
“걱정 많이 되겠습니다.”
“뭐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니까.”
실제로 최석준 회장은 오성 그룹과는 혈연으로도 묶여 있어서 그 영향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노력했다.
오성 X파일도 따지고 보면 그런 점을 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다른 언론사를 통해서 교묘하게 오성 그룹을 압박했다.
그 덕분에 겉으로나마 계열 분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오성 계열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회사 내부 임원진부터가 오성 그룹에서 내려온 낙하산이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은근히 최영준 가문을 무시했다.
최근 일어난 회사 내부의 변화는 그래서 최영준 차장조차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