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38화 (38/176)

#038

마침 차 한 대가 그들 앞으로 다가왔는데, 내린 사람은 종영돈 부장검사와 이봉기 수사관이었다.

이봉기 수사관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수술이 잘 끝난 것을 축하해주었다.

종영돈 부장검사 역시 안부를 물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미안하다.”

이미 이봉기 수사관 편으로 대충 수사 진행 상황을 들은 김정환 검사는 피식 웃었다.

“괜찮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직으로 돌아다닌 시간만 해도 4년이 넘었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담담한 말.

실제로 김정환 검사는 오성 그룹 비자금을 비롯한 굵직한 대형 사건을 수사한 적이 많았고, 그때도 외압이 엄청났다.

그는 상급자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들이박으면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갔다.

그 와중에 뉴스를 탄 대형사건만 해도 다섯 건이 넘었다.

부랴부랴 검찰청 내부에서 가까스로 막기는 했지만, 그 일 때문에 검찰청 차관 라인이나, 법무부 고위층 역시 옷을 벗어야 했다.

그때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김정환 검사 적이었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다. 한직을 돌 때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 수사 기록을 계속해서 꼼꼼히 남겼지만, 불행히도 폐암이 문제였다.

김정환 검사는 자기 병마를 이길 수가 없었고, 결국 뜻을 꺾었다.

“선배, 저 이제 건강해졌습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한 번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그게 누가 되었던 죄를 지은 놈을 지위 여하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잡아넣겠습니다!”

아내 정현정은 연애 시절의 그 뜨거운 감정을 느끼면서 새삼 남편 팔을 꼭 잡았다.

“새끼.”

종영돈 부장검사는 김정환 검사 어깨를 다독거리면서 끄덕였다.

‘그래,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도우마. 우리 한 번 갈 데까지 가보자.’

***

두선 건설과 연계된 일은 당연히 많은 이들의 주의를 끌었다.

언론에서 그 난리를 쳤는데, 이 사건을 모르고 지나가면 그게 더하다.

특히 두선 건설은 아예 회사 내부에 팀을 꾸려서 원점에서 다시 검토를 시작해서 이 사건과 관련된 이들을 파악했다.

그들은 그놈들을 절대로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런 중에 가장 먼저 그들 레이더에 떠오른 인물이 바로 김정환 검사 라인이었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그들은 김정환 검사를 조사했고, 그의 병세가 폐암 4기에 접어들어서 이제 관 앞으로 한 걸음만 남겨뒀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 폐암 4기가 수술로 완치되었다.

“?”

두선 건설 내부에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도 막상 손을 썼다가 이 미친놈들이 들이박으면 과거 검찰에서 수사했던 자료를 이용할 테고, 자기들 역시 만신창이가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검찰청 내부 인력을 이용해서 압박하는 오히려 나았지만, 불행히 김정환 검사 위의 라인이 만만치 않았다.

김정환 검사도 이미 실패한 두선 건설에 대한 수사를 고민하다가 문득 조민호에 대한 것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보류 해둔 한국대와 무영 그룹 관련한 수사를 생각해냈다.

‘어떻게 시작할까?’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

조영돈 부장검사조차 그 진지한 모습에 감탄했다.

“보기 좋다.”

다만 조영돈 부장검사도 문득 뒤늦게 폐암 수술받아서 완치된 점을 떠올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과거에 왜 김정환 검사가 항상 중요한 시점에서 버터지 못한 것을 떠올렸다.

“요즘 현대 의학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알지만, 폐암을 수술해서 단번에 완치는 어렵잖아. 거기에 들어보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암 전이라고 해. 당분간 좀 더 쉬는 것이 맞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진심이다.”

“제 건강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 의심스러우면 오성 의료원에 가서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른 병은 몰라도 암은 그놈들 말을 믿기 어려워. 내가 살아도 너보다 더 많이 살았다. 수사는 언제라도 하면 된다. 하지만 네 생명은 그렇지 않아.”

의외로 완고하면서 단호했다.

김정환 검사도 그의 성격을 잘 아는 터라 잠깐 고민했다. 겉보기에는 얼음 같아 보이지만 자신을 위해서 이번 폐암 수술을 명분을 사용해서 강제로 휴직을 내릴 것이다.

‘고민인데, 으음, 아, 그게 있구나.’

“참 선배 광훈이 발달장애 때문에 애먹죠?”

“그 소리는 마.”

“아니 지금 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제 폐암이 어떻게 수술로 회복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야? 아니 그거랑 광훈이랑 관계가 없잖아. 나도 피곤하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마.”

“아뇨. 관계있습니다.”

“네 건강만이 아냐. 혹시 서두르다가 다른 사고 터질까 봐 걱정이다. 이번 비자금 처리할 때 그놈들 얼마나 일사불란한지 장난 아냐. 단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한 박자 쉬는 것도 좋아. 두선 건설이 독이 잔뜩 올라 있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두선은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중요한 것은 제 건강 아닙니까. 그걸 증명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는 결국 서랍에서 자기가 최종 선고를 받았던 진단서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맙소사, 너, 서, 설마 폐암 4기였던 거야?!”

“폐암 4기 전 단계였습니다. 몸으로 퍼지기 직전에 나온 결과이니까요.”

“가만 아니 여기 진단서대로라면 수술로도 해결이 안 되잖아!”

“그러게요.”

그도 씩 웃으면서 마침 조민호를 떠올렸고, 곧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 된다면, 제가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뇨. 처도 그렇고, 제 아는 지인도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이 분이 좀 고리타분한 면이 있어서 얼굴을 봐야 좀 신뢰합니다. 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명색이 검사인데, 제가 문제 될 일을 하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김정환 검사는 아내에게도 전화했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소개시켜 분이 있습니다.”

“?”

종영돈 부장검사는 영문을 몰랐지만, 김정환 폐암 진단서를 들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수술 불가라고 판정 내린 병원에서 다시 수술 받아서 완치가 되다니.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러게 말이죠.”

그는 가볍게 대답했지만, 이 고리타분한 선배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했다. 말로는 도저히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천천히 다가가는게 제일 좋을 것 같아. 형수님도 광훈이 때문에 우울증까지 걸렸으니, 결국 허락할 거야.’

***

최근 한국대는 정성근 이사장을 비롯해서 이사회 몇 사람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행정이 마비되었다는 소리가 나왔다.

한국대 실소유주가 무영 그룹이었으니, 다른 대학과는 수사 파급 효과가 컸다.

그 와중에 한국대 학생회에서도 기존에 늘 문제가 되던 무영 그룹의 불법적인 횡령 문제를 대놓고 걸고넘어졌다.

대학 내의 시위는 한결 더 과격해졌다.

그런 차에 터진 두선 건설 비자금 이슈는 기름을 뿌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국대 재학생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무영 그룹을 압박했고, 그들에게 한국대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식으로 강경하게 나갔다.

조민호조차 번번이 휴강 되는 사태에 혀를 찼다.

‘이게 아닌데......’

박진민 역시 불만이 많았다.

“담당 교수가 검찰에 참조인 조사를 받으러 가서 휴강이라니. 이게 말이냐, 개냐?”

김영탁은 오히려 희희낙락했다.

“차라리 잘 됐잖아. 가서 여자애들이나 보러 가자. 내가 이번에 미대 애들 건수 잡았다.”

박진민은 믿을 수가 없었다.

“됐다. 저번 미팅도 호박만 주르르 달고 왔는데, 그 정도면 네 능력 충분히 확인했다.”

조민호는 둘이 별것 아닌 일로 투닥거리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다가 문득 걸려온 전화를 반사적으로 받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도 김정환 검사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야? 여자? 너 설마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 거야?”

“아니 지인이다.”

“에이, 또 이런다. 그러지 말고, 애인 하나 만들었으면 새끼 쳐.”

두 사람은 애초에 조민호 말을 믿지 않았는데, 그들 감으로 병원에서 회복된 후에 이상하게 여자에게 무감각한 점을 의심했다.

“옛날 민호로 좀 돌아와라. 여자를 그렇게 밝히는 놈이 미팅에도 관심이 없다니. 나 정말 민호 네가 걱정된다.”

여자 문제라면 또 집요한 두 사람 태도에 조민호도 피식 웃었다.

“여자인지 같이 가서 봐.”

“콜.”

“징글징글한 놈들.”

***

한국대 입구도 시위 인파로 바글바글했는데, 정성근 이사장과 무영 그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글이 난무했다.

중형 세단 한 대가 마침 입구 근처 카페 주차장에 섰고, 안에서 네 사람이 나왔다.

조민호는 두 친구와 같이 시위 옆을 지나면서 김정환 검사 일행을 만났는데,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의 모습을 살폈다.

‘으음, 생각보다 변화가 빠르다.’

보통 선천지기 치료 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기운이 다 빠져나간다. 선천지기 잠재력 역시 반 가까이 소모되었다가 채워진다.

그런데 김정환 검사는 마치 심법을 익힌 사람처럼 오히려 더 빠르게 늘어났다.

그들이 먼저 말을 나누기 전에 끼어든 이는 바로 정현정이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는 그녀.

같이 데려온 딸도 배꼽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아직 영문을 잘 모르는 종영돈 부장검사만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는데, 눈치껏 김정환 검사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김정환 검사는 자세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가시죠.”

***

“헉?!”

박진민이나 김영탁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서 따라오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명함을 보자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저, 정말 중앙지검 검사세요?”

“야, 저분은 부장검사래.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둘 다 너무 당황해서 목소리가 높았다.

마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 중에는 발이 넓은 김영탁을 알아본 이가 있었고, 힐끗 명함을 확인하고는 도망쳤다.

최근 한국대를 덮친 서울 중앙지검의 수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검사가 자꾸 대학 본관을 오가니 부담스러웠다.

종영돈 부장검사는 이렇게 민간인을 만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라도 말을 올렸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지금 여기 온 것은 공적인 일이 아니라, 사적인 일입니다.”

“아, 네.”

위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행히도 불구속기소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피의자로 검찰에서 조사받는 정민현이 반쯤 좀비가 되어서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

그 와중에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다.

조민호는 왜 따라온 온 건지 어이가 없어서 두 친구를 무시하면서 종영돈 부장검사를 살폈다.

‘나쁘지 않네.’

약간 때가 타기는 했지만 보통 사람보다는 선천지기 잠재력이 높았다.

“꼭 이렇게 와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 때는 그 가치를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시 건강을 찾고 나서야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불의(不義) 앞이라면 검찰총장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는 김정환 검사가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기분이 좋네.’

전생에서도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정현정 역시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목 놓아서 흐느끼면서 감사를 전했는데, 뒤늦게 김정환이 폐암을 숨긴 채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을 알았다.

김정환 검사는 조민호가 아니었다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비참하게 죽어갔을 것이고, 그 옆을 지키는 정현정이 경험하게 될 단정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그 지옥 같은 삶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정현정은 가끔 악몽을 꾼다.

지금 이 행복이 꿈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녀도 자세한 내막까지 모르지만 조민호가 은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

종영돈 부장검사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면서 김정환 검사를 쳐다보았다.

‘이놈이 미쳤나? 제수씨는 또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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