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당연한 일이지만 종영돈 부장검사는 처음부터 횡령이나 비자금 사건부터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직원 급여 횡령한 것부터 시작했다.
신현중 사장은 역시 바지사장답게 술술 다 불어버렸다.
그는 굳이 비자금에 대한 것을 묻지도 않았는데, 그것까지 알아서 자동으로 토해냈다.
결국 양용운 과장과 김승환 부장은 구속 영장이 나왔다.
도주와 증거인멸 혐의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양오남은 그 다음 날에 이 두 사람과 공범 혐의로 체포되었다.
수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외부에서 뭔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사건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다음은 생각보다 더 쉬웠다.
피엔 클럽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 수색은 곧바로 이어졌다.
이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었는지 피엔 클럽 직원조차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덕분에 피엔 클럽 내부에서 마약에 취해서 섹스 파티를 즐기던 이들까지 잡았다. 아니 서로 합의를 한 섹스 파티라면 그럴 수 있지만, 마약을 강제로 먹여서 강간한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피의자에 해당하는 이들 역시 뒤늦게 검찰이 급습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다급하게 어디론가 전화했다.
종영돈 부장검사는 이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수사관에게 클럽 밖에 대기하고 있는 한 사람을 호출했다.
“오랜만입니다.”
“한 5년 되었습니다.”
“요즘 잘 나간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하.”
최영준 차장은 그저 호탕하게 웃으면서 같이 간 기자에게 클럽 내부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수사관에게 잡힌 채 맹렬하게 항의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씨발 새끼들이 어디 카메라를 들이대고 지랄이야? 너희 내가 누군지 알아?!”
불행히도 수사관은 그의 정체를 몰라서인지 주먹으로 후려쳤다.
최영준 차장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두선 건설 사장 막내아들 이창학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내두르다가 곧 전화기를 들었다.
‘이 사건은 혼자 먹다가 탈 나겠다. 우선 동이 일보의 그 친구가 좋겠어.’
***
[.....이 클럽에 놀러 온 여대생 다섯 명이 모두 강제로 마약을 복용한 후에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마약을 사용해서 집단 성관계를 했는데, 클럽 마약이라고 알려진 엑시터스를 사용했습니다. 이 파티용 알약은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신경세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모두 사회 지도층의 자제로 알려졌습니다.]
양봉석 대리는 TV에서 나오는 뉴스와 힐끗 중아일보 메인타이틀로 걸려 있는 ‘피엔 클럽의 환각 파티!’라는 기사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최 차장님은 이런 특종을 또 어떻게 구한 거야?”
“양 대리도 충격받았구나.”
“후유, 말도 마. 조용히 진급해서 회사나 물려받으면 되잖아. 꼭 이런 기사 취재해서 나 같은 말단 기자를 기죽이는 것은 또 뭔지.”
“저기 나오는 TV 있지? 저것도 최 차장님이 흘렸다는 소리가 있어.”
“아니 그러면 이 특종은 단독이었다는 소리가 되는데, 말이 안 되잖아.”
“거기 마약 스캔들 주인공 중에 한 사람이 두선 건설 막내야. 그래도 감 안 와?”
“맙소사.”
그는 놀람을 금치 못했고, 곧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야, 이럴수록 유연진 부활의 비밀을 밝혀서 특종을 터트려야 해. 분명히 충격적인 치유에 대한 뭔가가 있어!’
***
양봉석의 생각처럼 조민호 치유 능력은 아직은 그 영향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김정환 검사의 부활만 해도 생각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말기 암 환자가 설사 수술해서 완치된 사건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잘 모르는 곳에서는 그저 헛소문이라는 소리로 알았다.
실제로 오성 의료원 내에서조차 이 사건을 겉으로는 그저 단순한 의료 사고로 넘어갔다.
오성 의료원 내에 핵심 권력층에서 정한 일이기도 하지만 오성 그룹 최상층에서 내려온 지시 때문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유연진 회복을 추적하는 김원준 과장과 양봉석 대리는 운 좋게 오성 의료원 내부 임직원의 제보를 듣고 이 사건을 계속 추적했다.
하지만 그들도 상대가 김정환 검사라서 쉽게 들이대지 못했다.
그들조차 김정환 검사가 얼마나 꼴통인지 이미 잘 알았다.
양봉석 대리는 곧 한 가지 가정을 해보았다.
“대체 의학이 아닐까요?”
“설마 너 기 치료 따위로 폐암을 치료했다고 주장할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발 마법의 힐 스킬 같은 소리는 마라. 설사 그런 능력 갖춘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폐암을 치료할 수는 없다.”
그도 힐 마법으로 폐암 말기 환자를 치유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까요?”
“그래 가능하다고 하자. 유연진 팔꿈치는 어떻게 설명할 거야? 거기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사모님은 답 없다.”
“셋은 각각 다른 사람이 치료한 거라고 본다면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개연성 옆구리 터지는 소리 하네.”
“역시 아닐까요?”
“그건 아냐. 일단 두 사람의 치료에 관여한 이가 누구인지 밝히는 게 우선이야.”
“하지만 유연진 그 친구도 우리를 아예 상종조차 안 하고, 심지어 김정환 검사는 명예훼손으로 잡아넣으려고 할 겁니다. 거기에 차장님은 잘 알지 않습니까. 벌써 지분 승계를 받았다고 하던데, 괜히 귀찮게 했다고 회사에서 퇴출당할 겁니다.”
그도 최근 최영준 차장이 중아 홀딩스 10% 지분을 얻었다는 회사 공시를 들었다. 월급쟁이 직원이 아니라, 실세 오너 차장이었다.
“그게 문제지.”
“차라리 사모님 건만 빼고 김정환 검사는 최 차장님에게 부탁하는 게 어떨까요? 그분이라면 검찰 쪽에도 라인이 있을 겁니다.”
“오, 그거 괜찮네.”
두 사람은 결국 최영준 차장을 찾아가서 이 기사에 대해서 슬그머니 보고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최영준 차장은 두선 건설 비자금 때문에 괜히 오성 그룹에서 압력 들어오지 않을까 근심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접어.”
“네? 아, 아니 이 특종 기사를 왜 포기해야 합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한 채 두 사람이 보고한 자료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그들을 대놓고 압박했다.
“일단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저 막연한 추측성 사건에 두 사람을 투입할 수 없어. 지금까지 두 사람 실적이 전혀 없어.”
“이건 분명히 특종입니다!”
“만약 결과가 없어서 두 사람이 책임진다면 계속 취재해. 약속할 수 있겠어?”
“책임이라면......”
“감봉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저기 외딴 섬 취재도 할 수 있어. 아니 요즘 지구 온난화도 있으니, 아마존으로 간다고 약속해.”
“......너무 하십니다.”
“자네들이 받는 연봉을 생각해. 우리 언론사가 땅 파먹고 장사하는 것은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풀이 죽은 두 사람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최영준 차장은 두 사람이 가져온 내용을 한 번 흩어 보고는 서류 파쇄기에 집어넣다가 마침 기다렸던 전화를 받았다.
-오성 의료원 취재하던 김미애 기자 처리는 잘 끝났어?
-이번 일은 자네 부탁대로 처리하지만, 약속은 지켜야 할 거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만 이번 클럽 파티와 같은 특종 기사 공유는 동이 일보만 빠질 거다.
-......협박하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10% 지분 받았다고 아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데, 그 주식은 의결권도 없잖아. 너 그러다가 한 방에 간다.
-마음대로 해.
-좋아. 이번 일은 네 말대로 하겠다. 하나만 묻자. 정말 이 사건 내막을 모르는 거야?
-여기까지만 하자.
-술이나 한 잔 사라.
-그래.
최영준 차장은 전화를 끊고 나자마자 머리가 지끈하자 두통약부터 마셨다.
‘일단 두선 건설 비자금 문제는 잘 처리한 것 같은데, 그놈들이 그냥 있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결국 조민호 스토리도 대중에도 알려질지도 몰라. 미리 대안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다양한 대안이 떠올랐지만, 조민호가 수긍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 때문에 선뜻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그는 특히 최근 김정환 검사 치료 결과를 떠올리면서 안색을 굳혔다.
‘후유, 아무리 그래도 설마 지압으로 폐암 3기 환자까지 치료할 수 있다니.’
***
이창학 부장은 구치소 변호사 접견실에서 김주옥 변호사를 만났다.
“상황이 안 좋은가 봐요?”
김주옥 변호사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심각했다.
“지금 그룹 사정 잘 알지 않습니까. 소비재 산업에서 철수한 후에 중공업에 매진해왔고, 이제 겨우 날개를 펴는 마당에 이런 사고가 터졌으니.”
“어차피 저랑 관계없지 않습니까?”
“회장님에게 직접 불려 가서 얼굴 앞에서 갖은 욕설을 다 들은 아버님도 평소와는 달리 정말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아마 구치소만 아니었다면 골프채를 마구잡이로 휘둘렀을 겁니다.”
“빌어먹을.”
그도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 마약 파티는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터라 쉽게 덮기 어려웠다.
김주옥 변호사는 이번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그 일만이 아닙니다. 지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경개발 비자금이 더 큽니다.”
“설마 그것을 덮기 위해서 저보고 감옥 가라는 말 아니겠죠? 저도 억울해요. 전 마약을 한 적도 없고, 그냥 여자랑 같이 잔 것뿐이잖아요. 그 정도는 평소처럼 해줄 수 있잖아요?!”
“그게 좀 어렵습니다. 회장님도 이번 일은 조용해질 때까지 버티라고 하십니다.”
“난 절대로 못해요!”
“하지만 마약, 강간, 횡령, 배임까지 다 합치면 10년 형 이상입니다.”
솔직히 마약 해서 여자와 섹스한 것은 인정하지만, 비자금이나 횡령 쪽은 전혀 모르는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이 부장님, 침착하세요. 이번 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검찰이 노리는 것은 이 부장님이 아니라, 비자금입니다.”
“네? 그게 또 무슨 개소리입니까? 아니 그러면 그 검찰 쓰레기들이 지금 날 협박해서 비자금 이력을 판다는 말입니까?”
“네. 그러니 가능하면 검찰 조사받을 때도 최대한 묵비권을 행사하고, 쓸데없이 나서면 안 됩니다. 최대한 참으세요. 그게 아버님께서 원하는 일입니다.”
“씨발.”
“이경개발 신현중 사장과 지금 협상 중인데, 그쪽에서 자신이 횡령했다고 말을 바꿀 겁니다. 우리 쪽에서 최대한 변호사를 선임해줘서 형량을 3년 형 이하로 낮출 예정입니다.”
“횡령으로 고작 3년 형이 나와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러니 이 부장님은 무조건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괜히 검찰 애들에게 휘둘려서 쓸데없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알았어요.”
하지만 그도 한 가지 만큼은 정말 따졌다.
“도대체 왜 갑자기 중앙지검에서 클럽을 압수 수색한 겁니까. 어떤 새끼가 중간에 불지 않고야 이런 일이 생길 수 없지 않습니까?”
“범인을 찾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
처음에는 신현중 사장도 검찰 쪽에 적극 협조했지만 두 번째 소환조사 때부터는 말을 바꾸었다. 그 돈을 자신이 먹었다고 실토했고, 심지어 그 돈을 몰래 묻어둔 장소까지 자백했다.
실제로 수사관이 가서 신현중 사장 별장에 가서 돈다발을 발견했다.
종영돈 부장검사는 협박도 하면서 길길이 날뛰었지만 신현중 사장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신 사장님, 위증이나 횡령이 그렇게 가벼운 범죄 같습니까?”
“......”
신현중 사장은 눈을 감은 채 묵묵부답이었고, 때마침 이 자리에 나타난 김주옥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나섰다.
“우리 종 부장검사님이 왜 이러시나. 이 장사 처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혐의가 판결 나지 않은 분입니다. 선량한 시민을 상대로 지금 겁박하시는 겁니까?”
“씨발.”
그는 뱀 같은 눈을 번쩍이는 김주옥 변호사 때문에 욕설을 퍼부었다.
“후배님, 우리 너무 그러지 마라. 자네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 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거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어.”
“전 당신 같은 선배 둔 적이 없습니다!”
“그 친구도 참. 자네도 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잖아? 그렇게 고집부린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냐.”
그도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취조실을 나가버렸다.
김주옥 변호사는 히죽 웃으면서 CCTV를 확인한 후에 신현중 사장을 쳐다보다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50억 출자입니다. 아마 아버님이 운영하는 건설사도 숨통이 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