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 사이는 단순히 친밀한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영준 차장은 중아일보, 아니 중아 그룹 0순위 계승자, 소위 말하면 잘 나가는 언론 재벌가 후계자였다.
“......어떻게 된 거야?”
“죄송합니다.”
그도 뒤늦게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조민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일단 민호 이 녀석이 오면 이야기해봐야겠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까?’
조수현 회장도 조민호 상황 때문에 아내 일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다시 꼼꼼하게 조민호 서류를 살폈다.
김재상 비서실장은 눈치만 보면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조수현 회장이 조민호를 위해서 신경 쓴다는 것 정도는 잘 알았기에 조사를 진행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조민호 능력을 알아야 필요한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겨울 방학은 곧 조민호가 졸업에 앞서서 사회 경험 쌓기에도 시기상 좋았다.
그런데 뒤늦게 비서실 통해서 조민호는 정말 가야르도를 떡하니 몰고 나타나서 주차장에 세웠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회사 차창을 통해서 주차장에 떡 하니 주차된 노란색의 화려한 스포츠카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회사 임직원은은 그 화려한 차체에 감탄과 질시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정말이었구나.”
***
조민호는 마침 비서 안내를 받아서 곧 모습을 보였다.
어지간한 대기업 회장실에 왔지만 크게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조수현 회장은 맞은 편에 앉아 비서가 내온 커피를 홀짝이는 조민호를 감탄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이미 놀라운 지압 실력을 갖춘 것부터 시작해서, 굳이 자신은 여전히 독립해서 살겠다고 할 때도 의아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이상이었다.
조민호는 그런 조수현 큰아버지 모습에 무던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조수현 회장은 조카 미래를 위해서 이 자리를 잡았지만 바빴다.
“겨울 방학에는 뭘 할 생각이냐?”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회사에 좀 나와라.”
“아버지도 있는데, 저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낙하산 인턴이라고 남들 욕합니다.”
“상관없다.”
“가짜 허위 인턴서는 필요 없습니다.”
“네가 그 정도로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저까지 이 회사 직원들 입에 오르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그럴 이유 없다. 넌 누가 뭐래도 내 친조카다. 싫든 좋든 우린 가족이다. 당연히 같이 행동하는 것이 맞다.”
“큰아버지도 대기업 족벌 경영을 하실 겁니까?”
“그게 뭐 어때서. 능력이 있다면 내 조카가 무슨 의미가 있어. 실력도 없는 놈이 회사에 깽판 부리는 것과는 달라.”
“전 이쪽은 전혀 경험 없습니다.”
“배우면 된다. 내가 처음부터 제대로 기초를 잡아주마. 세계 최고 투자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마.”
“흠.”
조민호도 복잡한 심사를 한 채 힐끗 그를 쳐다보았는데, 상상한 일과는 전혀 다른 제안에 오히려 한 편으로 당황했다.
“요즘 불경기라는 것은 너도 잘 알잖아. 지금 네 시기는 중요하다. 그러니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도 경험을 쌓아.”
큰아버지 조수현이라면 조카 조민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조민호 생각은 좀 달랐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단아한 입매. 고집스럽게 굳어 있는 얼굴.
마치 만년 풍상을 경험한 바위처럼 그 태도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옆에 있던 김재상 비서실장조차 입을 살짝 벌린 채 넋을 잃어버렸다.
“너도 참 철영이 닮아서 고집 세구나. 그런데 내 능력을 활용하려면 다양한 인맥도 중요하다. 내 이야기는 회사에서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라는 뜻도 있다.”
“압니다.”
조민호도 새삼 자신을 겉으로 차갑게 대하지만, 잔정이 가득한 조수현 태도에 내심 감탄했다. 유산 때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선천지기 흐름만 봐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와 자신은 가는 길이 애초부터 달랐다.
정확히는 굳이 노예처럼 샐러리맨 생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이야기보다는 다른 일 때문입니다. 이거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네 인생보다 중요한 것은......”
하지만 그도 조민호가 내놓은 앞부분 서류만 확인하고는 입을 다문 채 다급하게 굳은 안
색을 한 채 서류를 넘겼다.
두선 건설이라면 그가 모를 수 없는 기업이고, 로이스 펀드에 대한 것은 비서실에서 따로 요주의로 관리했었다.
이유는 이 로이스 펀드에 대해서 문의하는 다른 VIP 고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선 건설이 출자한 이경개발이 로이스 펀드를 통해서 서로 엮여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분식회계군.”
“?”
조민호도 딱 서류를 대충 흩는 것만으로 내막을 알아보자 감탄했다.
‘대단하잖아.’
분식 회계는 고의로 서류를 조작해서 자기 입맛에 맞는 회계 장부를 만드는 것인데, 회사 이익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거나, 낮추어서 회계 장부를 조작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자료가 단순히 분식회계를 뛰어넘어서 그 빼돌린 자금을 비자금으로 따로 관리했다.
김재상 비서실장도 서류를 받아 내용을 확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전형적인 내부 거래를 통한 자금세탁입니다.”
조민호는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두 사람은 단지 서류를 본 것만으로도 대충 어느 정도 비자금을 빼돌리고, 그것을 어디로 보냈는지까지 유추했다.
“자본 합작 방법으로 중소기업에 출자해서 그 회사를 성장시키면서 비자금으로 야금야금 빼돌리는 방법이다. 아마 이 이경개발을 앞으로 파산시켜서 그 증거도 없애려 할 거다.”
“그것만 보고도 아십니까?”
“난 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이 정도 수작 정도를 모를 수가 없어.”
하지만 조수현 회장도 뒤늦게 이 서류를 조민호가 어떻게 가져 왔는지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너 회계 쪽은 관심 없다면서?”
“아 최영준 차장이라고 아는 지인 통해서 얻은 겁니다. 그쪽도 이 분야는 잘 모른다고 해서요.”
그도 자기가 조사한 조민호 내용을 말할 수는 없어서 계속 질문했다.
조민호도 처음에는 그냥 덮을까 하다가 힐끗 옆에 동행한 김재상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김 실장.”
“네.”
김재상 비서실장은 의아한 눈으로 일어났지만, 곧 사무실을 나섰다. 조카와 큰아버지 사이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봤다.
“최영준 차장 사모님을 치유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알고 지냅니다.”
“그 지압으로?”
“네.”
두 사람 사이에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조수현 회장은 사실 정말 궁금할 것이 많았지만 역시 사회 경험이 많은 탓인지 더 캐묻지 않았다.
“뭘 알고 싶은 거야?”
“그 자료를 보면 앨리엇도 연루되어 있으니, 비밀리에 조사해주세요.”
그도 앨리엇이란 말에 눈빛을 반짝였지만, 그보다 다른 일을 더 고민했다.
“그건 알았다. 그런데 정말 계속 독립할 생각이냐. 어쩔 수 없다면 내가 집이나 하나 마련해주마. 너도 알다시피 안 사람이 처음에 널 부정적으로......”
“아뇨. 그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지금 당장은 혼자 있고 싶습니다. 아버지나 지현이만 잘 챙겨주세요.”
“휴우.”
그도 한 편으로 이 고집불통 조카 녀석에게 혀를 내두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피식 웃으면서 색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듬직한 큰아버지가 도와준다고 해도 매정하게 뿌리치는 모습이 한 편으로 든든했다.
‘내 아들 녀석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꼭 그의 아들만 해당하지 않았다. 그 주변에는 늘 벌꿀을 놀리는 아귀가 늘 판을 친다. 아닌 이들이 오히려 드물다.
조민호는 그런 이들과는 달리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는 선비 같았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잘 알겠다. 하지만 내가 큰아버지라는 것을 잊지 마라. 언제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
“그 자료 조사만 해주세요.”
“그래.”
그도 조민호에게 의문이 많았지만, 자세한 것은 더 묻지 않았다.
‘하긴 그 지압 치유 능력이 보통은 아니었어. 그 능력을 통해서 아는 지인이 생겼다면 굳이 내 도움은 필요 없어. 아니 어쩌면 나도 민호 녀석에게 도움을 청할 지도 몰라.’
***
조민호는 생각보다는 빨리 조수현 큰아버지에게서 비자금 세탁 자료 분석을 받았는데, 이 자료는 전형적인 횡령을 은폐하기 위해서 타법인에 출자한 것이다.
이경개발이 파산 처리가 되어버리면 모든 증거는 다 사라진다.
그는 이 자료를 최영준 차장 통해서 김정환 검사에게 전했다.
“이왕이면 거하게 터트려주세요. 앨리엇이 이 펀드와 상관이 있다면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알았어.”
김정환 검사는 아직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종영돈 부장검사에게 부탁했다.
종영돈 부장검사는 이봉기 수사관과 같이 채영식 부장을 만나서 그쪽에서 횡령하고 있다는 공익 제보를 준다면 이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채영식 부장도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난 종영돈 부장검사에 부담스러워 했지만 뒤늦게 이 사건이 횡령, 분식회계 범죄라는 것을 알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의 제보는 공익 제보 요건에 들어맞은 터라 압수 수색 영장은 곧바로 나왔다.
채영식 부장은 이봉기 수사관을 비롯한 십여 명을 동원하기 전에 양용운 과장과 김승환 부장이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주변을 얼쩡거릴 때 이경개발을 덮쳤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이경개발 본사 근처에서 앞으로 인원을 어떤 식으로 배치해야 할지 구상하면서 지켜보다가 걸린 두 사람은 발끈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영장 있습니까?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는 겁니까?”
두 사람으로서 당연한 항의다.
하지만 종영돈 부장검사는 오히려 피식 웃으면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신현중 사장이 두 사람 승용차에 사과 박스를 싣는 장면이었다. 길 가던 행인 한 사람이 툭 부딪치면서 사과박스 겉면이 벗겨지면서 그 안에 있는 돈도 그대로 드러났다.
두 사람이 그놈을 잡아서 박살 내려고 했지만, 행인은 오히려 히죽 웃으면서 도망갔다.
“이, 이건 불법 사진입니다!”
“그거 역시 공익 제보입니다. 아, 뭐 그걸 증거로 삼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임의동행을 요청할 테니, 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 문제없으면 제 직권으로 바로 풀어 드리겠습니다.”
“제기랄.”
두 사람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이런 사진을 찍어서 검찰에 제보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자, 그럼 가볼까요? 우리 아직 할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까?”
씩 웃는 종영돈 부장검사 얼굴은 음침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는 다른 수사관이 그들을 연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당혹스러운 얼굴로 다가온 이봉기 수사관에게 말을 걸었다.
“김정환 검사는 이 정보를 도대체 어떻게 얻은 겁니까?”
“저도 병원 가서 주는 자료를 보고 알았습니다.”
“이 제보는 운이 좋아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묘한 표정으로 이봉기 수사관과 압수 수색을 진행하는 다른 일행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병원에만 있던 녀석이 어떻게 이런 고급 정보를 얻은 것일까?’
***
최영민 팀장은 물끄러미 압수 수색하는 장면을 망원경으로 살폈다.
“지현아, 어때?”
사진기를 확인하는 이지현은 피식 웃었다.
“행인 연기하신 팀장님이 더 재미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좀 싱거워요.”
“앞으로 그런 일이 많이 생길 거다.”
“그 조민호란 사람은 언제 소개해주는 거에요?”
“다른 녀석들 다 모이면.”
“어떤 사람이에요? 저도 김 회장이 뜬금없이 지시를 내려서 프로필만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다들 왜 그 사람에게 매달리는 거죠?”
“즐거움으로 남겨두자고.”
“치이.”
“하하하, 너무 걱정 마 알기 싫어도 결국 자주 보게 될 테니까.”
최영민 팀장은 수사관에서 굴비처럼 엮여서 끌려가는 이들을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두선 비자금 정도라면 시작으로 나쁘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