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깨끗하게 처리해야 해. 필요하다면 차라리 돈으로 무마해. 괜히 질척거려서 문제를 만들면 안 된다. 만약 혹시라도 언론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알겠습니다.”
그 역시 윗선에서 하는 일 처리가 어떤지 모르지 않았다.
‘최악은 내가 토사구팽이 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그를 회사 자금 횡령이나 배임으로 처리해버린다.
자신이 그렇게 구속당하면 지금 생기는 모든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물론 그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데, 그것도 가족을 협박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어렵지 않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차라리 그 김정환 검사 입을 막으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어렵다니까. 사실 그 인간이 폐암 말기로 곧 검사 생활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완쾌되는 바람에 상황이 더 복잡해졌어.”
실로 황당한 이야기였다.
“그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나도 몰라. 그냥 검찰청 내의 지인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폐암 수술받고 곧 퇴원할 거란 소리가 있어. 어떻게 폐암 수술이 그렇게 잘 끝난 것인지 이상해.”
“증권가 찌라시도 그 정도는 아닙니다.”
“난들 알겠나.”
“하늘도 무심하지.”
“그러게.”
김승환 부장도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 일이 자칫 악화하면 회사에서 자기 입지는 박살 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첩의 자식이란 수모를 당하면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절대로 포기 못 해!’
***
조민호는 사실 두선 건설 내부에 무슨 일이 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고, 알기도 싫었다.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3학년 마지막 학기에 계속 집중했는데, 그 과정에서 특히 푸리에 함수에 흥미를 느꼈다.
주어진 함수를 삼각함수의 일차 결합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복잡한 신호를 정형화된 함수로 나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자연 상의 전자기 신호를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는 패턴으로 만들 수 있다.
얼핏 봐서는 조민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론이지만 혼원기가 가지는 여러 가지 특성값과 대칭 시킬 수 있다.
혼원기 역시 푸리에 함수처럼 균일화된 것이 패턴으로 나눌 수가 있다.
조민호는 특히 지금까지 환자 치료를 통해서 사람마다 이 패턴이 유니크하다는 것을 잘 알았고, 자신이 가진 기 패턴과 일치되는 값을 이용해서 치료했다.
푸리에 급수를 이해하기 전에는 그저 관념적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이제는 수학적으로 그 특성을 그럴듯하게 유도할 수 있었다.
‘신기하네.’
전생으로 넘어갈 때는 그도 이 고등 수학을 하기 전이어서 수학적인 관점과는 달리 그저 경험적으로 무학을 익혀 나갔다.
지금은 수학이라는 논리를 통해서 이 혼원기 특성을 깨달았다.
문득 혼원기 특성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의 손바닥 위에는 2cm 크기의 12가지 시침이 떠올랐다.
무려 120만 정신 스탯으로 무리하지 않고 나눌 수 있었다.
조민호는 그 시침 특성 하나하나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진정 놀랍구나.’
이전까지는 혼원기는 그저 하나의 혼원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무려 12가지 특성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 시침 덕분에 이제는 환자 치료도 상당히 쉬워지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침 최영준 차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두선 건설 자료를 잔뜩 준비한 그를 어쩔 수 없이 한국대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두선 건설이라......,제가 굳이 알아야 합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어. 최영민 팀장이 지금까지 김정환 검사 수사팀 행적을 조사하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이들 비자금 규모가 간과할 정도는 아냐.”
‘참 부지런하네.’
“아니 그 비자금 내역을 왜 제가 알아야 합니까?”
그도 힐끗 무심한 조민호 반응에 어쩔 수 없이 서류를 넘겨서 한 곳을 지적했다.
“이 로이스 펀드가 일종의 사모 펀드인데, 그 하부에 여러 가지 펀드가 있어. 그중에 하나인 알파 펀드가 이 두선 건설 비자금이야. 여기까지라면 알 필요가 없어. 그런데 이 알파 펀드 자금이 흘러들어 간 종착지 중에 하나가 앨리엇 한국 법인이야.”
“흠.”
조민호도 펀드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애초에 자기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다.
그런데 앨리엇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그냥 제 3자처럼 넘길 수 없었지만 차마 앨리엇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두선 쪽에서 앨리엇에 투자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몰라. 워낙에 자금 흐름이 복잡해서.”
“탈세나 뭐 그런 겁니까?”
“그걸 지금 알 수는 없어. 나도 이쪽은 전문가가 아니니까.”
그는 그제야 최영준 차장이 무슨 의도로 이 자료를 들고 왔는지 금방 깨달았다.
“이 펀드를 파는 게 어렵나 보군요.”
최영준 차장도 괜히 문제가 커지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중아일보 역시도 휩쓸릴 수가 있어서 깊은 고심에 빠졌다.
“이쪽저쪽이 많이 걸려 있는데, 내 힘으로도 무리인 것도 있지만, 괜히 파다가 다른 쪽의 시선을 끌 수도 있어. 특히 김정환 검사는 오성 그룹 비자금 내역도 조사를 해왔어. 문제는 우리 중아일보가 오성 그룹 지배 구조에 영향을 받아서 괜한 소리가 나와. 그러면 정말 문제가 복잡해져.”
조민호는 여기에 또 오성 그룹 이야기가 나오자 정말 더럽게 얽혀 있다는 사실에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국내 앨리엇이 이쪽 비자금에도 빨대를 꼽았다고 생각합니까?”
“만약 미래 증권에는 정상적으로 투자했다면, 두선 건설에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했을 수도 있어. 두선 비자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특히 해외 유령회사 통해서 자금 세탁하기 좋잖아. 김정환 검사가 찾은 게 이 통로니까.”
그도 더 소극적으로 나갈 수는 없었고, 아는 지인 중에 입이 무거운 투자 전문가 한 사람을 바로 떠올렸다.
“혹시 제 큰아버지라면 이쪽을 잘 알까요?”
“그분은 이쪽 전문가네.”
“일단 두고 보죠.”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해야 할 거네. 이놈들이 벌써 증거 인멸 중이니까.”
“참 동작도 빠릅니다.”
그도 이번 일만큼은 골치가 아팠다.
‘어떤 식으로 큰아버지에게 이 자료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
미래 증권 본사는 여의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하 2층-지상 11층으로 총면적만 1만 7천㎡ 규모로 다른 대기업 본사에 비하면 작다.
요즘 대규모 펀드 자금 유치에 성공해서 한창 들떠 있는 미래 직원은 이런 아담한 본사 건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정말 너무 불편하다.
출퇴근 시간이거나 식사 시간이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르르 몰려서 대기한 그들 처지에서는 자연스럽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조수현 회장 이력을 잘 아는 직원은 따끔하게 질책했다.
-회장님이 본사 건물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는지 알면 그딴 소리 못해.
-회장님 성공 신화 시작이 이 본사 건물이라는 거 알아. 아니 그러면 더 큰 건물 사들이고, 이 건물은 다른 회사에 임대하면 되잖아?
-힘든 시기를 잊고 싶지 않은가 봐.
조민호는 주차장을 몰라서 헤매다가 본사 도로 앞에 차를 잠깐 주차하면서 직원들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들은 물론 가야르도의 빼어난 자태에 놀라서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침 건물 경비원 역시 그 차를 발견하자 후다닥 뛰어왔다.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요?”
청바지에 면티만 달랑 걸쳐서 별로 특색이 없는 조민호였지만 애마를 보고 혹시 회사 VIP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보고 일어난 일이다.
조민호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전생에서 당연한 대우, 아니 그에 비하면 평범한 대우인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회장님하고 약속이 있습니다.”
“네?”
경비원도 살짝 놀라서 머뭇거렸다. 아마 가야르도만 아니었다면 당장 잡상인 취급해서 쫓아냈을 것이다.
“큰아버지가 너무 바빠서 나갈 수 없다고 회사로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한 번 연락해보세요.”
“설마 그 큰아버지가 저희 회장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혹시 착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저희 회장님에게 조카는 없는 걸로......”
“생겼습니다. 그러니 지금 비서실에 전화해서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이 차 좀 주차해주시고요.”
조민호도 번거로워서 차 키만 던지고 회사 입구 쪽에서 기다렸다.
경비원은 곧바로 비서실에 전화하더니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요!”
본사 안에는 이미 연락을 받은 데스크 여직원이 다가와서 허리를 수직으로 굽히면서 인사했다. 다른 경비원 역시 부동자세를 취했다.
본사 1층에서 잠깐 쉬던 직원들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민호를 구경했다.
조민호는 그들이 가끔 회장님 조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다양한 시선에 혀를 내두르다가 결국 비서실 직원이 나타나자 그의 안내를 받았다.
-회장님 조카가 갑자기 나타났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몰라.
-회장님은 자기 아들에게도 얼마나 단호한 분인데, 여기 조카가 왜 나타나?
-아니 그것보다 회장님 조카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와아, 그러면 저 조카님도 우리 회사 경영 승계 싸움에 끼어드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설마 공정과 정의를 늘 입에 달고 사는 분이 우리 회장님이 그렇게까지 할까?
지금 봐서는 ‘재벌 망나니 조카’ 이야기가 나올 순서였다.
조민호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회사 분위기를 보면서 과거 소심하던 시절에는 재벌 조카라는 신분 상승 꿈을 꿔 봤기에 공감했다.
‘진민이가 알면 진짜 난리 나겠다.’
그리고 그는 비서실 직원 안내를 따라서 건물 내부를 구경하면서 내심 감탄했다.
‘큰아버지가 생각보다 더 성공했구나.’
***
미래 증권은 작년부터 자산운용업법이 개정되면서 시작된 사모 펀드를 최대한 활용했다.
특히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성공적인 미래 증권의 사모 펀드 결과에 투자를 늘려갔다.
펀드 규모는 점점 규모를 키워가면서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조수현 회장은 미래 증권 파트너스 펀드 성공을 최대한 이용해서 영업을 키워서, 기관투자자만이 아니라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영업망을 키워갔다.
그는 회사 투자 자금 규모가 커지자 해외 시장을 바라봤고, 중국,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투자에 관한 관심을 기울였다.
“철영은?”
김재상 비서실장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다행히 홍콩 사무소에서 잘 적응하고 계십니다.”
“김 실장 마음은 잘 알아. 하지만 철영이는 내 친동생이다. 본인이 다시 출발하겠다고 하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홍콩 사무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회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거긴 아시아 금융 시장의 첨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도 많이 가 있잖아. 철영이가 그들 일에 끼어들 소지는 없어.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조치하겠다.”
“알겠습니다.”
그가 마침 비서 통해서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 조민호가 본사 1층에 도착했다는 말에 바로 회장실로 올려보내라고 말했다.
“민호 그 녀석 조사 결과가 다른 것도 다 확인한 거야?”
“그게......죄송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냐. 어째서 그 녀석이 평범한 대학생으로 확인한 거야?”
“병원에서 깨어난 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것은 병원 이전입니다. 그 이후로는 회장님이 별다른 지시도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때?”
“최근 다시 확인했는데......”
뒤늦게 꺼내 놓은 보고서. 조민호의 최근 흥미로운 사생활이 잘 나와 있었다.
“가야르도? 이거 설마 람보르기니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그게 실은 중아일보의 최영준 차장에게서 선물 받았다고는 하는데......”
“지금 나랑 장난해? 3억짜리 스포츠카를 선물로 주고받는다고? 두 사람 사이가 설사 친족이라도 그렇게는 안 해. 아니 가만 이번에 중아홀딩스 지분 10%를 받았다는 그 최영준 차장 말하는 거야?”
“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