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33화 (33/176)

#033

박진민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계속 조민호 애마 이야기를 꺼냈다.

“수동변속기를 사용한 폐라리와는 달리 이 차는 패드 시프트 방식이라서 운전하기도 훨씬 수월해서 보통 사람도 최고의 스피드 감을 즐길 수 있어!”

조민호는 은근히 자기 애마에 대한 장황한 설명에 오히려 그 차가 이제 내 차라는 사실에 만족해서 듣기만 했다.

일테면 옆에서 내 차를 계속 광고하는데, 그게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박진민은 다른 속셈이 있어서 요령껏 조민호를 계속 띄우려고 노력했다.

“그 람보르기니의 매력은 역시 여자가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니 이번 미팅에 같이 나가서 괜찮은 파트너 하나 챙겨. 대신에 나도 좀......”

뒤늦게 구내식당을 찾아온 김영탁도 조민호가 그 유명한 람보르기니를 선물로 받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서 끼어들었다.

“헉, 저, 정말이야?!”

“야, 너 저리 가!”

이야기는 살짝 부산하게 흘러갔다.

조민호는 둘이 아무리 떠들어도 무시해버렸다.

다행이라면 마침 TV에 아시아야구선수권 시합이 녹화 방송되었다.

[......맙소사 퍼펙트 시합입니다. 유연진 선수! 일본을 상대로 탈삼진 17개로 퍼펙트 시합을 달성했습니다. 9회까지 던진 투구 수는 고작 95개로 이전 대만 시합 시합에서 6이닝을 던진 것과 비슷합니다. 믿을 수가 없는 피칭입니다.]

스포츠 앵커 역시 상대가 일본이라는 점 때문에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구내식당에서 뒤늦게 시합을 본 한국대 재학생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TV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유연진은 퍼펙트 시합 뿐만 아니라 7회 1점을 무사히 지켜내서 결국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번 시합에서는 별다른 변화구가 아니라, 직구를 다양하게 변화를 줘서 일본 대학 야구 패자를 가볍게 찍어 눌렀다.

보는 사람을 통쾌하게 하는 시합 운영이었다.

조민호도 혀를 내둘렀다.

“잘하네.”

박진민은 이제 람보르기니를 반쯤 포기한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조민호 눈치를 계속 봤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했어.”

“그 팔꿈치 부상이 문제였구나.”

“정말 맘고생 많이 했어. 그래도 포기 안 하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지. 설마 완치되어서 불사조처럼 부활할지는 상상도 못했어.”

김영탁도 이 부분은 이미 대학 내 소문 통해서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회복한 걸까?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더라.”

조민호는 두 사람 말을 뚝 잘랐다.

“저 정도면 메이저리그도 해볼 만한데, 아직 진로는 결정 안 한 거야?”

박진민도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미국 안 간대.”

옆에서 기회만 보던 김영탁이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아직 팔꿈치 회복한 후에 경험이 너무 적어서 지금 미국 가봐야 마이너리그에서 몇 년 구른다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한국에서 몇 년 정도 있을 생각인가 봐.”

“설마 한국대 야구부 때문은 아니겠지?”

“그런 것도 있어. 후배 애들 생각해서 졸업 때까지 계속 있겠다고 했으니까. 그놈이 뜻밖에 의리파야. 하지만 이보다는 몇 년 정도 프로 야구에서 기본기를 더 닦고 싶나 봐.”

“그 이유만으로 부족해.”

“나도 연진에게 계속 물어보니, 다른 꿍꿍이가 있더라. 고등학교 시절에 한국 프로팀에게 당한 복수는 꼭 하고 싶어 해.”

갑자기 구내식당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유연진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한국대 재학생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멍하니 쳐다보다가 결국 종이를 들고 사인까지 부탁했다.

유연진은 몇 사람에게 사인을 해주었지만, 나머지는 정중하게 거절한 채 조민호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구내식당의 모든 한국대 재학생의 시선은 조민호 테이블을 뜨겁게 바라봤다.

조민호는 그들 중에 몇 사람이 한국대 지압사라고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유연진은 그러거나 멀거나 테이블에 와서는 풀썩 앉았다.

“민호야, 많이 찾았다. 나 졸업하고, 한희에 갈 생각이다.”

조민호도 듣기는 했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어. 복수하고 싶은 인간들이 있걸랑. 날 물 먹일 새끼들 완전히 밟아버릴 거야.”

조민호는 한국에서 괜히 시간 낭비하기 보다는 유연진이 가능하면 빨리 미국 가서 성공하기를 바랐기에 약점을 찔렀다.

“빚은?”

“그쪽에서 계약금으로 20억을 준대. 대신에 미국 메이저리그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포함해서 계약 기간을 2년으로 잡았다. 거기에 내가 아는 선배도 많고 해서 경험도 더 쌓을 수 있을 거야. 아직 사인을 안 했지만 받아들일 거다.”

“흠.”

그도 억이라는 단위를 푼돈처럼 은근히 자랑하면서 씩 웃는 유연진 얼굴에 혀를 내둘렀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박진민은 입을 딱 벌렸다.

“씨발 20억이라니.”

김영탁이 혀를 내둘렀다.

“우리하고 사는 세계가 다르구나. 가만 한희라면 메이저리그 간 김찬호 투수도 있으니, 그쪽 통해서도 많이 배우겠다.”

“그것도 있지만, 과거 힘들 때 도와준 분도 거기 있는데, 코치진도 나쁘지 않아. 배우기에는 오히려 그만한 팀도 없어.”

그는 박진민에게 간식으로 나온 빵을 중간에 가로채서 한입에 털어 넣으면서 조민호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조민호는 혀를 차면서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바쁜 검사님이 또 무슨 일입니까? 아, 수술, 축하합니다. 저야 늘 시간이 있으니, 몸이 회복되면 한 번 보죠.

-제 아내가 꼭 감사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뭐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결국 전화를 끊었다.

박진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사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조민호 역시 간식으로 나온 빵 맛을 즐기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알고 지내는 검사 있어.”

“야아, 검사랑 어떻게 그냥 단순히 친하게 지내냐. 가만 그 검사는 어디 근무하는데?”

“서울 중앙지검.”

“우와!”

박진민도 놀랐지만 다른 두 사람 역시 조민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별거 아냐.”

“인마, 그게 어떻게 아무 일도 아냐. 서울 중앙지검 검사라면 살인범도 간단히 전화 한 통만 해도 다 해결해주잖아!”

많이 과장한 말이었다.

“지랄한다.”

“민호야, 우리 친구지?”

“엉뚱한 수작 부리지 마.”

“나쁜 새끼.”

“그냥 단순히 아는 사람일 뿐이다. 자꾸 네 멋대로 확대 해석하......”

하지만 조민호는 다시 걸려온 김정환 검사 전화를 받았다.

-휴우, 제가 그쪽하고는 다른 일로 엮이기 싫으니, 자꾸 전화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만.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혹시 아픈 지인 소개해도 될지 자꾸 알고 싶어 합니다.

그도 비 허가 지압 치료인 터라 굳이 검사 주변의 소소한 환자를 불편한 마음으로 치료하고 싶지 않았다.

-설마 제 이야기를 한 겁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자 감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조민......아니 선생님도 환자가 많으면 좋지 않습니까?

김정환 검사가 알아서 커트해준다면 나쁘지 않았는데, 아니 그 위쪽 차장 검사 윗선 가족하고 연결된다면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흠. 뭐 환자라면 괜찮지만 알아서 잘 선별하셔야 할 겁니다. 무슨 말 하는지 아시죠?

-물론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일이 아니면 앞으로 다시 연락하지 마세요.

그는 현직 검사에게 소위 말하는 갑질 전화를 끊었지만 멍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세 친구 시선에 혀를 찼다.

“아무것도 아냐.”

“저, 정말 검사랑 전화한 거 맞아?”

“아니.”

그는 그냥 말을 돌려버렸다. 물론 집요한 박진민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유연진은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빵 좀 먹자!’

***

조민호는 김정환 검사 치료가 고작 번거로운 일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은 생각이 많이 다르다. 그들 중의 하나가 양오남 사촌 양용운 과장인데, 뒤늦게 김정환 검사가 압수 수색한 것을 만약을 위해서 대흥실업에 붙여 놓은 이를 통해서 확인했다.

그는 발 빠르게 윗선에 보고한 후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위선의 생각은 다른지 평소와는 달리 김승환 부장이 직접 나타났다.

“어떻게 처리했냐?”

“급한 대로 피엔 클럽을 비롯해서 박주명 사장과 연결되는 고리를 다 정리했습니다.”

“혹시 빠진 것은 없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주명 사장은 제 사촌 통해서 처리한 일이라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돈은 더욱이 현금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래도 몰라.”

그도 평소와는 달리 긴장한 김승환 부장 얼굴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자금과 관련된 분기 손익계산서부터 시작해서 영업이익까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작년과 비교해도 단순한 반복에 불과합니다.”

“알아.”

“부장님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저 나름 손익에 미칠 부분을 다 살폈고, 환율 문제는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되었습니다. 오히려 회계팀에서......”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김승환 부장도 한숨을 내쉬면서 잠깐 머뭇거렸는데, 다급하게 신정대 상무에게 보고 해서 땜질을 했지만 뒤늦게 들은 정보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 수사 담당자가 김정환 검사란 자인데, 중앙지검 내에서도 아주 미치광이로 유명해. 그 새끼라면 차장 검사가 아니라, 검찰 총장도 들이박아.”

“네? 뭐 그런 새끼가 다 있습니까?”

“느낌이 안 좋아.”

“어쩔 생각입니까?”

“그 이경개발 말인데, 아무래도 정리해야겠어.”

“네? 하, 하지만 아직 일을 잔뜩 벌여 놓아서 들어간 돈만 얼마인데, 지금은 안 됩니다.”

“기다려 봐.”

김승환 부장은 곧장 신정대 상무에게 전화해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상대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20분 정도 지나서 자기 계획을 수긍했다.

“지시가 떨어졌다.”

“안 됩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1주일은 있어야 합니다.”

“손해를 봐도 어쩔 수 없다.”

***

양용운 과장은 도대체 왜 이렇게 다급하게 일을 처리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이경개발 쪽에 사용한 방식은 내부 제보가 있지 않고서는 설사 회계 전문가라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도 곧 회사 내부인이 공익 제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을 떨었다. 이번 일이 들통 나면 책임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감옥행이잖아.’

양용운 과장은 이제까지 벌금 몇 번 낸 것을 제외하고는 직장인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감옥행이 떠오르자 안색을 굳혔다.

식은땀마저 흘리는 김승환 부장은 그저 딱딱한 얼굴을 한 채 별 다른 이야기도 없이 그냥 운전대만 잡았다.

그들이 탄 차량은 덕분에 침묵에 잠긴 채 잠실역 근처에 있는 이경개발 본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 못 한 일이 있었다.

회사 입구에서 직원들이 나서서 회사를 막고 있었다.

그들이 박아놓은 바지사장 신현중 사장이 식은땀을 그들을 흘리면서 설득하는 중이었다.

-채 부장, 내가 다시 말하지만, 월급은 다음 주까지 분다니까.

-서교동 상가건물 준공 나머지 계약금만 벌써 30억을 받은 걸로 압니다. 그런데 직원에게 줄 월급이 없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그 돈 당신이 빼돌린 것 아닙니까.

-아니 정말 아니라니까!

신현중 사장은 억울한 듯 울상을 한 채 가슴을 두들겼다.

그 역시 말 못한 사정이 있어서 그들에게 입을 열지 못했다.

채영식 부장도 이미 회사 내에 뭔가 더러운 짓을 한다는 것을 느낀 탓에 쉽게 물러나지 않았는데, 다른 삼십 명의 직원 역시 동참했다.

김승환 부장은 차창으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쳐다보면서 이 일이 자칫하면 언론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따지고 보면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한 것이 손실 처리가 되었고, 그 돈 일부는 다시 양용운 과장에게 흘러갔다.

직원 월급이 얼핏 봐서는 회사가 어려워서 밀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사 손실 처리 명목으로 사라진 것이다.

“저기 어떻게 하죠?”

“뭘 어떻게 해. 지금 저놈들 눈에 뜨이면 곤란해. 저 문제를 빨리 정리해야 해.”

“제가 신 사장에게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다행히 신현중 사장이 전화를 받고 나서는 일단 채영식 부장과 시간을 달라고 타협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양용운 과장 안색은 시간이 갈수록 좋지 않았다.

“저거 그냥 둘 생각입니까?”

“두선 건설 하청 업체 중에 자네 사촌이 아는 애들 좀 있다고 했지?”

“네. 그러면 일단 그놈들을 동원해서라도 감시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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