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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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정도 갑자기 활동적으로 변한 남편 김정환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심 믿었지만 그렇다고 1억 현금이 갑자기 필요하다는 말에 마련해주기는 했지만 조금씩 의심했다.
그녀는 김정환의 최근 변화를 곰곰이 떠올리다가 문득 남편 옷에서 피가 묻은 손수건을 발견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본능적으로 남편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현정이 아무리 중견 기업 사업가로 대범한 성격이라고 해도 이 일을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갈등하다가 결국 김정환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당신 정말 할 말 없어?”
“나중에.”
“하지만 나 당신 와이프야.”
“휴우.”
김정환은 조민호 치료를 받고 나서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지금은 한 달 전과는 달라서 굳이 초조한 아내 모습에도 입 다물 이유는 없어서 병원 진단서를 내밀었다.
정현정 목소리는 마치 부모상을 당한 사람처럼 창백하게 변해서 소리쳤다.
“......이, 이게 도대체 뭐야?!”
“이전 진단서이니, 걱정하지 마.”
아무리 마음이 넓은 정현정이라고 해도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당신 미친 것 아냐? 어떻게 폐암 3기란 것을 이제까지 숨긴 거야. 더욱이 수술도 어려운 상태라니, 이제 와서 나보고......”
결국, 참지 못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그녀.
김정환은 아내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걱정되면 지금 병원 가보자. 그러면 당신도 알게 될 테니까. 지금은 이 진단서 받을 때와는 달라. 봐, 요즘은 기침도 안 하잖아. 내 안색을 봐. 피부색도 다르잖아.”
확실히 김정환 얼굴은 불과 얼마 전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히 날 정도로 변해갔다. 일단 혈색이 좋아진 것이 가장 컸다.
“정말이야? 당신 폐암 정말 치료가 되는 것 맞아? 아니 어떻게?!”
의혹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도 이 부분이 좀 골치 아팠지만, 그냥 우기기로 마음먹었다.
“그 1억이 치료비야.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해줄게. 중요한 것은 일단 병원 가서 확인해보자.”
“당장 가.”
***
폐암은 발생 위치가 다르고, 기침이나, 객혈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도 이 증상만으로 초반에 발견하기 어렵다. 폐암 초기 증상이 없다면 암이 많이 진행된 경우에 병원에서 발견된다.
정문호 박사는 김정환 검사 폐암을 가장 먼저 발견했고, 몇 년에 걸쳐서 치료해온 터라 누구보다 그의 폐암 전이 과정을 잘 알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혈액 검사를 비롯한 조직 검사에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도 설마 현직 검사를 오진 했나라고 스스로 의심하면서 번민했다.
결국 CT를 3차례나 다시 찍었는데.
‘CT가 고장 난 건가?’
몸 전체로 퍼져가던 폐암세포가 마치 그 자리에서 자살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이 정도라면......”
김정환 검사는 오면서 많은 눈물을 흘려서 퉁퉁 부은 아내 손을 콱 잡은 채 조민호 이야기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제는 수술로 완치할 수 있겠죠?”
“그게......정확한 검사를 더 해봐야 하겠지만, 이 상태가 지속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정문호 박사는 스스로 당황해서 안색을 굳혔다.
김정환 검사는 슬쩍 모른 척 자기 할 말만 했다.
“만약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제쯤 수술하면 되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2주 정도 후라면 수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꼭 예측대로 안 됩니다. 잠깐만요.”
‘역시.’
김정환 검사는 새삼 조민호 얼굴을 떠올리면서 경이마저 느꼈고, 힐끗 참지 못해서 폭포수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면서 안아주었다.
“흑흑흑.”
목 놓아서 우는 아내.
그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었고, 절망스러운 장면이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오히려 더 쉽게 안정을 찾았다.
“진정해. 당신에게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만 전하고 싶었어.”
하지만 오히려 정현정은 김정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따라온 딸은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엄마가 목 놓아서 울자 결국 같이 울어버렸다.
“아아앙.”
정문호 박사도 뒤늦게 김정환 검사가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동자만 도르르 굴리면서 진료기록부를 계속해서 확인했다.
하필이면 그 대상이 서울 중앙지검에서 악명이 자자한 그 김정환 검사였다.
‘설마 이거 쇠고랑 차는 건 아니겠지?’
김정환 검사 반응은 좀 달랐다.
“감사합니다.”
딱 한마디 말만 하고 그에게 작별을 고하려고 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진은 오진이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이 현상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허겁지겁 김정환 검사 손을 잡았다.
“자, 잠깐만요. 검사님, 할 말이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검사님 상태가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아십니까!”
“괜찮습니다. 어차피 선생님은 8개월 남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서 박사님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거야......”
“설마 제가 정문호 박사님을 의료 사고로 기소하고, 위자료를 청구해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일은 절대로......”
“그만 하세요!”
정문호 박사도 힐끗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김정환 부부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이거 정말 중요한 임상 자료인데......’
***
김정환 검사는 조민호가 지시한 대로 2주 후에 수술을 위해서 다시 오성 의료원을 찾았다.
정문호 박사는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김정환 검사의 폐암 회복에 대해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정밀검사했다.
그 결과는 소름 끼쳤다.
‘맙소사 정말 몸 전체로 퍼져 나가던 암 세포가 다 사라졌잖아!’
폐암 전문가 정문호 교수는 수술 전에 정식 루트를 통해서 제대로 보고했지만 아직 연구팀에 합류하지는 않아서 병원 내부 분위기를 잘 몰랐다.
“수술은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만 굳이 제가 이렇게 다급하게 브리핑을 한 것은 이 환자는 불과 1달 전만 해도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한 폐암 3기, 아니 4기로 넘어가는 환자였습니다.”
“......그렇군요.”
오재호 박사를 포함해서 뜻밖에 놀라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이승구 박사는 그저 또 한 가지 임상 사례가 추가 되냐고 혼자 중얼거렸다.
정문호 교수는 영문을 잘 몰랐지만 일단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말했다.
“지금까지 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습니다만 이 환자 경우에는 오히려 더 나빠졌고, 설사 방사성 용량을 높여서 6,000cGy까지 해봤지만, 오히려 폐암 전이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지난 진료 결과를 말하면서 발표를 이어갔다.
“백혈구 감소증을 동반한 경우가 52회, 중성구 감소증은 60회가 넘었으며, 혈소판 감소증이나 빈혈 역시 추가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증상 역시 폐암이 전신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더 손대기 어려웠다.
“제가 오죽했으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미리 이야기했겠습니까? 한 달 전의 이 차트를 보십시오. 이건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사실 이 부분을 발표하는 정문호 교수도 슬그머니 넘어갔는데, 결과론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한 모든 치료는 오진이었다.
그가 의료 사고를 낸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가 그렇게 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휴우, 이 부분은 저도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할 말이 많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딱 수술하기 좋도록 암 조직이 소떼 몰이를 당한 것처럼 폐 한쪽으로 몰려갔다. 이 위치는 다른 조직으로 전이될 확률도 희박했다.
의사가 딱 칼 잡고, 쉽게 자를 수 있도록 멋지게 요리가 된 밥상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걸까요?”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마냥 다른 선생들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그와 시선을 마주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오재호 박사가 묵묵히 진료 차트를 보다가 결국 인상을 찡그렸다.
“바로 수술하면 문제는 없겠습니다.”
“네? 아니 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정문호 교수는 나름 자기 실책에 대한 잔소리를 각오했는데, 의외로 다른 이들이 별다른 말이 없자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승구 박사였다.
“제가 이번 수술 보조로 들어가겠습니다.”
“네? 바, 박사님이 말입니까?”
“개인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설마 제 자격이 부족합니까?”
“아닙니다.”
이승구 박사 정도 되면 차고도 넘친다.
그는 그제야 이 괴상한 분위기에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오재호 박사가 결국 한 마디 하면서 브리핑은 간단히 끝났다.
“이승구 박사님이 정 교수에게 지금 사정을 잘 좀 이야기해주시고,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부탁합니다.”
“네.”
“?”
정문호 교수는 영문을 몰라서 다른 교수들을 쳐다보았다.
이승구 박사가 결국 정문호 교수만을 데리고 조용히 사라졌다.
오재호 박사는 폐암 3기 환자가 완치될 예정인 사건에 딱딱하게 굳은 안색을 한 채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한 번도 아니고, 도대체 요즘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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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도 출처에 대해서 말하기 싫어서 집이 아니라, 오피스텔에 주차해 놓은 가야르도는 100km 가속까지 고작 4.3초 고작일 정도다.
보통 사람은 전문 라이더가 아니면 이 스피드 맛을 즐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순수한 혼원기 덕분에 감각이 탁월한 조민호는 동체 시력 자체가 워낙에 좋아서 도로 상황에 따라서 고속으로 몰았다.
차가 마치 애검처럼 손에 착착 달라붙는 그 스피드감은 조민호조차 전생에서 느껴보지 못했다.
아쉬운 점은 역시 한국대 안으로 들어가면 그 쾌감을 즐기지 못했다.
조민호는 결국 애마를 주차장에 주차하면서 이 좁은 한국 땅덩어리에 불만을 토로했다.
“미, 민호?”
“어.”
초췌한 표정의 조민호 전 여자 친구 이유미였다. 옆에 서 있던 다른 그녀 친구들은 입을 딱 벌린 채 스포츠카 구경에 여념 없었다.
“이, 이게 뭐야?”
“선물(?) 받았어.”
“말도 안 돼!”
조민호도 전생 전에 꿈에나 그리던 스포츠 카였던 터라 쿨하게 인정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유미는 패닉에 빠졌고, 계속해서 조민호를 귀찮게 했다.
그녀가 조민호를 떠난 이유 중의 하나는 역시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실제로 전생의 조민호는 소심했고, 극빈층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운 오리 새끼같았던 조민호는 어느 사이엔가 화려한 백조로 변해 있었다.
더욱이 그나마 괜찮다고 찍은 정민현은 정성근 이사장 구속에 엮여서 계속 검찰에 불려 다녀서 반쯤 폐인이 되어버렸다.
정성근 이사장이 차명으로 빼돌린 재산 중에 일부 명의가 정민현이기 때문에 횡령 혐의를 받고 있었다.
차마 그런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 소동을 본 박진민이 때마침 나타났고, 후다닥 총알같이 조민호에게 뛰어 와서 달라붙으면서 그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내면서 이죽거렸다.
“유미야, 민현이 요즘 장난 아니더라. 개 혹시 횡령으로 구속되는 것 아냐?”
“헛소리 마!”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은근히 이유미를 싫어하는 박진민이 이유미 남자친구 개인사를 대놓고 다 떠벌렸다.
“나도 아는 소식통 있어서 다 알아보고 하는 소리야.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거다.”
이유미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조민호도 설마 정민현이 수사받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혀를 차다가 돌아섰다.
박진민은 목표가 조민호였던 터라 이유미에게 향해서 히죽 비웃으면서 후다닥 쫓았다.
“야아, 조민호, 너 정말 이따위로 할 거야?!”
“뭐가?”
“아니 새끼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좋은 물건 생기면 같이 나눠야지!”
“차와, 여자는 원래 나누는 거 아니다.”
조민호는 박진민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구내식당으로 향하다가 따가운 친구들 시선에 몸을 떨다가 결국 약속을 핑계로 그 자리를 떠난 이유미를 힐끗 쳐다보았다.
유연진이 몸을 회복한 후에 그 난리를 치면서 의도치 않게 전 여자 친구에게 복수했지만, 딱히 별다른 감정보다는 이 일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운명이 너무 많을 것을 바꿔.’
문득 김정환 검사를 떠올렸지만,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아서라 내가 굳이 관여할 바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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