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2주일 정도 후에 병원 가서 다시 검진받으면 수술로 완치할 수 있다고 할 겁니다.”
처음과는 약간 다른 조민호 이야기였지만 살 수 있다는 말에 수술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다.
“저, 정말입니까?!”
조민호도 완치까지 장담한 말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제가 지금 현직 검사에게 1억 받고 사기 치겠습니까?”
“아, 네.”
최영준 차장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그도 다급하게 이 사무실로 꾸렸지만, 설마 폐암 3기 환자도 치료가 가능할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김정환 검사가 맑은 얼굴로 안가를 떠난 후에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면 수술만 하면 이제 폐암 3기를 완치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물론 아니죠. 몸 전체로 알게 모르게 암이 퍼져 나가서 아마 수술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면 2주 후에는 그런 현상이 다 사라진다는 말입니까?”
조민호는 굳이 특성이 일부 다른 후천지기를 사용해서 암세포를 공격하고, 특성이 일치하는 선천지기 사용해서 면역력을 키워서 결국 남는 것은 외과적으로 수술하기 딱 좋은 암세포만 남는다는 이야기까지는 아예 하지 않았다.
“네.”
“아, 아니 그게 어떻게......”
그도 조민호의 놀라운 치유 능력을 봤고, 치료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편으로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다.
그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는 의문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가능했다.
옆에서 보면 조민호는 마치 입정한 스님처럼 눈을 반개한 채 환자 몸 몇 곳을 30분 가까이 지압한 것에 불과했다.
그 결과가 폐암치료다.
이 세상 누구라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가......’
조민호는 힐끗 그런 최영준 차장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안가를 벗어났는데,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해줄 생각은 없었다.
***
김정환 검사도 담당의 정문호 박사가 했던 말 중에 조기에 발견되었다면 외과적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지금은 원격전이가 생겨나서 종격동 림프절 전이도 일부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결국 방사선 치료를 받아 왔는데, 생존률이 고작 5%에 불과했다.
그나마 항암 화학요법이 좋아져서 이것을 믿으라는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몰모트에 가깝다는 것을 아는 터라 화만 속으로 삼켰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조민호는 완치할 수 있다고 했다가 슬쩍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말 바꾸었지만 애초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그로서는 따질 수가 없었다.
솔직히 여전히 조민호 실력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몸이 바뀌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쾌감보다는 오히려 컨디션 상태가 최고에 오른 것에 만족했다.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기존에 포기하거나, 내버려둔 수사 업무에도 더 집중했다.
마침 대흥실업 박주명 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넘겼다.
이봉기 수사관에게 이 사건에 필요한 수사를 진행하게 했다.
양용운에 대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혹시나 시간이 길어지면 어떨까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이전과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서울 중앙지검이 대흥실업 압수 수색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양오남이 결국 양용운 과장을 따로 서울 피엔 클럽에서 만났다.
아직 김정환 검사도 치료받는 것을 고려해서 진지하게 이 수사를 서두르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양용운 과장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종영돈 부장검사가 자신을 따로 호출했다.
“요즘 뭐하고 다녀?”
“네?”
대학교 법대 선배이기도 한 종영돈 부장검사는 김정환 검사와도 서로 대학 시절부터 성격이 비슷해서 잘 지내왔고, 검찰청 내에서도 그 관계가 돈독했다.
서로 등을 믿고 맡기는 전우 관계와 비슷했다.
“이쪽저쪽에서 자꾸 이야기가 나와.”
김정환 검사도 베테랑답게 인상을 찡그렸다.
“벌써입니까?”
“그래.”
“접을까요?”
“그럴 것 같았으면 내가 널 데리고 있겠냐?”
“고민입니다.”
“확실해?”
“200%입니다.”
“이상한 점은 오성 그룹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자꾸 외압이 들어와.”
“오성은 실패했습니다. 그 와중에 잡아낸 꼬리입니다. 그런데 벌써 말 나온다니, 확실히 괜찮은 꼬리를 문 것 같습니다.”
종영돈 부장검사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서류를 살피면서 잠깐 고심했다. 둘 다 서로 등을 믿고 맡길 정도인 터라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묻지도 않았지만 한 가지를 걱정했다.
“몸은 괜찮아?”
김정환 검사도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제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안 좋았습니다.”
“심각해?”
“심각했었습니다.”
그도 겨우 안도했다.
“지금은 괜찮고?”
“네.”
그가 조민호의 신비한 치유 능력에 대해서 종영돈 부장검사에게 설명해서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그냥 덮는 게 최선이었다.
“너만 괜찮다면 내가 굳이 네 수사를 반대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이번 일은 확실히 끝내야 해. 네 승진 문제도 있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야. 위에 우리 라인도 전부 다 힘들어진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직을 걸고 덤벼야 할 거다!”
“알겠습니다.”
김정환 검사는 새삼 고마운 눈빛으로 종영돈 부장검사를 쳐다보았다. 서울 중앙지검으로 이끌어준 이가 그였고, 조직 내에서 외톨이가 되었을 때조차 벽이 된 이가 그였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최소한 법과 원칙에 따르는 검사 한 놈쯤은 있어야 이 더러운 세상이 그나마 돌아가지 않겠냐? 난 네놈을 지옥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장본인이다.”
“선배, 고맙습니다.”
“개소리 마!”
종영돈 부장검사는 사무실을 나서는 김정환 검사 등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정말 괜찮을까. 들어보니, 상태가 심각한 것 같던데, 설마 암은 아니겠지?’
***
김정환 검사도 이미 외압은 세 자리 수가 넘을 정도로 받아온 터라 가슴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는데, 상대가 이렇게 빨리 반응해온 것에 놀랐다.
아마 몸 상태가 조민호에게 치료 전이었다면 여기서 접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몸 상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그의 정신이 날이 시퍼렇게 선 칼처럼 빛날수록 오히려 회복은 더 가속된다고 느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금 수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기 전에 조민호에게 확인 차원에서 전화해보았다.
조민호는 심드렁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환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진행하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입니다.
-두기인가, 부기인가 그 이상한 회사 조사 때문입니까?
-......두선 건설이고, 그 자금 흐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까지......
-아, 됐습니다. 경고하는데, 저나 제 가족이랑 관련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도와준 것은 제 방패가 필요했을 뿐이지, 당신 일에 간섭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네.
김정환 검사는 조민호 이 무심한 반응에 오히려 안도했는데, 사실 알게 모르게 자기 일에 외압을 넣을 의도도 있지 않을까에 대해 의심했었던 것이다.
-직급이 평검사입니까?
-부부장검사입니다.
이제까지 너무 많은 징계나 감봉을 받아온 김정환 검사는 굳이 직급 따위에 구애받지 않았다. 정확히는 부장검사에 올랐어야 했지만 계속 승진 누락이 되었다.
검찰청 위선에서는 알아서 나가달라는 암묵적인 지시였다.
벼랑 끝에 몰린 김정환 검사로서 직급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군요.
조민호도 잠깐 말이 없었는데, 기존에 봤던 프로필 내용을 다시 떠올린 것이었다.
-그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김정환 검사도 화들짝 놀랐다.
-네?
-제가 원래 부탁하려고 했던 것은 한국에 들어와 있는 앨리엇에 대한 조사입니다. 지금 그 직급 가지고 달려들었다가 완전히 박살 날 것 같아서 손을 쓸 겁니다.
-앨리엇이라면, 요즘 미국 뉴스에서도 비자금 세탁이나 델파이 회사채를 헐값에 사들여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그 앨리엇 말씀입니까?
-미국 말고, 국내 쪽만 틈나면 알아보세요. 그 짝에서도 좋아할 만한 사냥감입니다. 특히 미국만이 아니라 국내 기업 쪽의 비자금 세탁 연루도 가능하죠. 그렇지 않고서야 미래 증권을 이용해서 자금 세탁 통로로 이용 못 합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 성급하게 달려들지 마세요. 그러니까. 건강에 대해서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고, 날짜 되면 병원 가서 수술하세요.
-알겠습니다.
김정환 검사는 조민호 전화를 끊고서도 심사가 복잡했다.
‘앨리엇이라......’
***
김정환 검사는 자기 건강을 재 확인하고, 위에서 허락까지 받자 양용운 과장 동선에 수사 인력을 좀 더 보강했다.
자연스럽게 양용운 과장 수사 정보는 좀 더 풍부해지면서 명확한 증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대홍실업 김주명 사장만이 아니라, 사채업자를 비롯한 20여 곳에 분산해서 현금 투자를 진행했다.
피엔 클럽 역시 그 투자 대상 중에 하나였다.
이 클럽은 이미 마약을 한다는 제보마저 들어온 곳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멀쩡한 이유는 누군가 뒤를 봐주기 때문이었다.
결국 몇 번에 걸쳐서 제보 받은 검찰까지 이 피엔 클럽을 덮쳤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몇몇 언론에서는 무리한 검찰의 횡포라고 비난만 받았다.
이 성매매, 마약, 비자금, 권력 유착 의혹으로 의심받는 피엔 클럽과 양용운 과장의 관계는 결코 단순해 보이지 않았다.
조민호 치료 덕분에 날이 갈수록 몸이 회복되면서 과거에 잃어버린 날카로운 수사 감각을 완전히, 아니 전성기 시절까지 회복한 김정환 검사도 생각지 못한 득템(?)에 혀를 차고 말았다.
“설마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니.”
이봉기 수사관 역시 의문이 가득하던 그 눈빛을 지웠다.
“설마 대홍실업 박 사장을 풀어준 것이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사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두죠.”
“검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면 그 조민호란 친구를 풀어준 것도 또 다른 미끼입니까? 그쪽도 제가 탐문 조사를......”
김정환 검사는 기겁해서 검사실이 쩌렁쩌렁 흔들릴 정도로 소리쳤다.
“절대로 안 됩니다!”
이봉기 수사관도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김정환 검사의 모습에 당황했다.
“아, 네?”
뒤늦게 자기 행동이 지나쳤다는 것을 느낀 김정환 검사는 헛기침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이쪽에만 집중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는 불과 며칠 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김정환 검사 모습에 참지 못했다.
“몸은 이제 괜찮은 겁니까?”
“의사 선생님 실력이 좋았습니다.”
차마 이봉기 수사관도 ‘폐암 증상’이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기침이나, 호흡 곤란, 심지어 가슴 통증 증상을 동반한 병은 제가 알기로 폐......”
김정환 검사도 원래 이봉기 수사관에게 가장 먼저 알리려고 했지만, 후일은 몰라도 이 시점에서는 조민호와 관련 있는 이야기를 덮었다.
“심각한 병 아닙니다.”
“그렇지만 두통도 심각해 보이던......”
“아뇨. 건강합니다. 그러니 그쪽은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이 사건은 제가 종 부장검사님에게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동안에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주세요. 분명히 꼬리를 자를 겁니다.”
“물론입니다.”
김정환 검사도 지금 자기 상태를 잘 알기에 굳이 더 무리하지는 않았다. 그저 수사관을 보강하고, 수사 진행 상태를 살피기만 했다.
‘수술 끝나면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조민호가 애초에 생각도 못 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물론 뒤늦게 안다고 해도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