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29화 (29/176)

#029

하지만 조민호 역시 물끄러미 그 광경을 보면서 김정환 검사 선천지기의 순수함과 강인함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네. 치료 효과가 이렇게 높다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다. 정신 능력치가 높아서 그런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이 정도로 쉽게 바뀌다니.’

그 역시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많은 이들을 봐 왔지만 김정환 검사처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니 선천지기 치료 효과가 더 극적이었다.

“.......”

불과 2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고통이 서서히 밀려오는 것을 느끼자 김정환 검사는 두려움과 의혹이 가득한 시선으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일단은 지압사라고 해두지.”

“네?”

“그 이상 알 거 없고.”

조민호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자 하고 싶던 이야기부터 했다.

“대흥실업 직원들이 과거에는 무슨 죄를 지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충분히 반성했고, 앞으로도 충분히 처벌받을 거다. 지금 그 돈은 정치 비자금하고는 전혀 관계없다. 당신이라면 스스로 몸으로 경험했으니, 이제 대충 짐작할 텐데?”

“아......”

“치료비를 현금으로 받는 방식이 편법이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러니 그 일을 가지고 쓸데없이 고민할 필요 없다.”

조민호는 이미 김정환 검사 치료 중에 주입한 선천지기 일부가 녹아들면서 경계하던 상대 눈에서 친밀감이 조금씩 일어나는 변화를 물끄러미 보면서 만족했다.

‘완전히 매혹 스킬이군.’

“내가 굳이 순순히 이곳에 따라온 것도 이제 추측할 텐데?”

그 어떤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던 김정환 검사였지만 자기 생명 앞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았다.

“내게......, 아니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다, 당신이 설마 악마입니까?”

조민호도 ‘악마’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자기 행동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을 수긍했다.

“당신도 치료 효과를 봤으니, 대충 감이 오지 않아. 앞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에게 엉뚱한 짓 하는 놈들이 늘어나. 그때 당신 같은 검사가 옆에서 거들어 준다면 나도 큰 도움이 돼.”

“그렇지만......”

“난 김 검사, 당신이 마음에 든다. 더 이유가 필요할까. 그래서 기회를 준 거다. 다시 살 기회를.”

김정환 검사는 대략 십여 분 동안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보여주면서 멍하니 조민호를 바라보다가 결국 한 마디 던졌다.

“정말 제 병을 완치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조사한 그 돈이 증거지.”

그는 다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에게 뭘 원하는 겁니까?”

조민호는 힐끗 여전히 갈등하는 김정환 검사 모습에 상대를 더 독촉하지 않았는데, 이후 변화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선 여기서 나가는 것부터 부탁하지. 아, 그리고 치료비는 현금 1억 선불이다. 흠, 이제 그 돈의 출처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겠지?”

“......네.”

***

“빨리 가서 일이나 해!”

대홍실업 박주명 사장을 비롯한 오인방은 중앙지검 정문 바로 앞에서 조민호의 일갈을 들었지만, 여전히 한 쪽에 서 있는 김정환 검사와 이봉기 수사관 눈치를 보면서 후다닥 사라졌다.

조민호는 냉커피를 후르르 마신 후에 종이컵을 이봉기 수사관에게 내밀었다.

“......”

이봉기 수사관을 이를 으드득 갈면서 김정환 검사 눈치를 봤다.

근데 김정환 검사가 말없이 그 종이컵을 받으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그가 휴지통에 버렸다.

조민호는 묻어 있는 먼지를 탁탁 틀면서 김정환 검사를 일변한 후에 이봉기 수사관과 악수까지 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공무에 고생이 많습니다.”

“......”

“범인 잡아야지, 심문해야지 참 힘든 일입니다.”

“......”

“하지만 앞으로 죄 없는 사람 잡아서 쓸데없이 힘 빼지 마세요.”

이봉기 수사관은 영문을 몰라서 다시 김정환 검사를 눈치를 봤지만, 울상을 한 그의 모습에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다물었다.

조민호는 힐끗 거대한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서울 중앙지검 건물을 불구경하듯이 둘러봤다.

“자 그러면 한국에서 그 유명한 중앙지검 구경 잘하고 갑니다. 중앙지검장 얼굴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기회가 있겠지요. 다들 힘내십시오.”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서울 중앙지검에 마치 놀러 온 외국 관광객처럼 휘파람까지 불면서 천천히 멀어졌다.

이봉기 수사관은 이를 악물면서 김정환 검사를 쳐다봤다.

“대통령 앞이라도 해도 불의 앞에서는 눈 하나 깜찍하지 않은 그 김정환 검사님 맞습니까. 제가 김 검사님 부탁 때문에 참습니다만 정말 이래도 됩니까?!”

김정환 검사는 곧 착잡한 표정을 한 채 한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직접적인 혐의는 없습니다. 그 돈이 정치 비자금이거나, 아니면 다른 청탁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돈을 주고받았습니다. 탈세 정황이 있지만, 그것도 국세청에 신고하면 그만이고, 아니라고 해도 몇 년 지나면 고작 나오는 것은 가산세일 뿐입니다.”

“그거야 조사를 더 하면......”

“그분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비자금 연루범으로 의심하던 냉철한 김정환 검사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네? ‘그 분’이라뇨?”

당황한 김정환 검사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 그게 아니라 조민호 군은 단지 이제 한국대 3학년 재학생입니다. 전과도 없고, 다른 범죄 기록도 없습니다. 우리가 실수한 겁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 김정환 검사 때문에 그도 한 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김정환 검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결국 머리를 숙였다.

“저에게 조금 시간을 주십시오. 이 수사관님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정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아실 날이 있을 겁니다.”

이봉기 수사관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강골 검사 김정환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결국 한 가지 질문하고 싶었다.

“도대체 조민호 그 친구 정체가 뭡니까?”

“저도 모릅니다.”

죽기 직전의 주마등을 떠올린 사람처럼 김정환 검사는 조민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기만 했다.

‘정말 사람이기는 할까, 아니면 악마라도 되는 건가?’

***

김정환 검사는 일단 조민호 제안을 반쯤 받기는 했지만 한동안 계속 고민했다.

그가 특히 열 받은 것은 오성 X파일 사건 몸통은 오성 그룹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사실인데, 언론에서 눈 가리고 아웅 했다.

[.....국정원이 작년만 해도 230건, 올해 6월까지 무려 80건이나 미림식 도청방식을 사용해서 대화 내용을 감청했습니다. 이런 정황만 봐도 광범위한 불법 도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아니 논점은 이제 국정원 도청 내용이 아니라, 권력을 이용해서 불법적으로 도청한다는 그 부분으로 초점이 흘러갔다.

그 당사자는 국정원이 아니라 뜬금없는 사람이 튀어나왔다.

결국 이제까지 수사는 흐지부지 오성 그룹 연루자는 다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뉴스만 계속 해서 나올 뿐이었다.

그도 다소 허탈했다.

“아빠!”

“어이쿠, 우리 딸 무겁다.”

그나마 그에게 활력소가 되는 것은 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간 딸이다. 37살에 결혼해서 늦게 본 딸이라서 더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아내는 망설이다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 돈 많아. 혹시 지금 하는 일 힘들면 차라리 변호사 개업하는 게 어때. 남 눈치 안 보고 편히 살면 좋잖아.”

“알아.”

“여보.......”

김정환 검사는 이를 악문 채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언제가 자기 상태를 이야기한다면서 계속 미루었다.

그런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갑자기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내는 그런 김정환 검사를 뒤에서 포옹하면서 속삭였다.

“제발 혼자 힘들지 마.”

“거, 걱정하지 마.”

그는 딸을 안은 채 TV를 보면서도 결국 그나마 남아 있는 갈등을 접었다.

‘그래, 일단 살자. 살아야지 부패한 재벌을 처벌하던, 아니면 변호사를 하든지 하잖아. 이대로 그냥 포기할 수는 없어!’

김정환 검사는 결국 아내를 힐끗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돈 좀 필요해.”

그녀는 청렴한 남편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는데, 스스로 알아야 할 일이라면 남편은 이미 말했을 것을 잘 알기에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얼마?”

“현금 1억.”

그녀도 내심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했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묘한 남편 눈을 보자 도저히 질문할 수가 없었다.

“......오전 11시쯤에 준비해둘게.”

김정환 검사도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조민호 이야기를 아내에게 할 수 없었다. 설득은 둘째치고라도 주변 이야기가 퍼져나가서는 곤란했다.

“나중에 다 말해줄게.”

“기다릴게.”

그는 곧 바로 조민호를 만나서 자기 의사를 전했다.

“......”

조민호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기묘한 눈으로 김정환 검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호기심을 드러냈는데, 어쩌면 인간의 병은 이 세상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지만 마기가 생겨났군. 하지만 계속 줄어드는 것을 봐서는 욕망 때문은 아니야. 어쩌면 마기 역시 혼원기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겠어. 아니 어쩌면 인간의 생로병사도 같은 연장선이 아닐까. 실로 흥미롭구나.’

***

조민호는 그 누구보다 마기에 민감했는데, 이게 커지면 어떤 식으로 사람이 변해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가 굳이 무리하게 수련하지 않으면서 선천지기 단련에 집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그도 이런 마기 증가가 일반인에도 일어나는 것은 현생에서 알았다.

그 오염된 기운은 선천지기를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인체에도 영향을 주어서 면역 기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혼원기가 이런 오염된 기운을 바로 잡으면 치료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큰 흐름을 보자 더 이 놀라운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뒤늦게 최영준 차장이 이번 환자가 김정환 검사라는 것을 알자 화들짝 놀랐다.

혹시나 김정환이 현직 검사라서 다른 환자와는 달리 괜히 사람 눈에 뜨이면 미묘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봤다.

“괜찮겠나?”

조민호는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서 김정환 검사의 심리 변화와 선천지기 흐름을 발견했기에 즐거웠다.

“상관없습니다.”

최영준 차장도 평소와는 달리 꽤 놀란 얼굴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늘 주변에 소극적이기만 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적극적이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중앙 지검에서 악명이 자자한 현직 검사여서 더 놀랐다.

“......자네가 그렇다면 알겠네.”

“아 혹시 모르니 시간 나면 김정환 검사를 만나서 미리 작업해놓으세요.”

“그러지.”

***

대홍실업 박주명 사장은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제기랄, 중앙지검이라니.”

폭력 전과가 좀 있는 그가 태어나서 처음 가본 것이 그 악명이 자자한 서울 중앙지검이었다. 애초에 흥신소 사장이 그쪽에 갈 일은 정말 없었다.

망치 전경인 역시 불편하기는 매 한 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라고 알겠냐.”

“그 김정환 검사를 알아보니, 검사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꼴통이랍니다.”

“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그분이 무슨 말로 설득했기에 그냥 무혐의 처분이 난 걸까요?”

“몰라.”

“혹시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지난 일을 한 번 쭉 떠올린 박주명 사장은 도저히 자기가 했던 다른 일이 문제가 될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머리를 쥐어짜다가 문득 한 가지를 가까스로 떠올리면서 손뼉 쳤다.

“가만 그때 양오남 그 새끼 사촌 형이 두선 그룹에 다닌다고 하지 않았냐?”

“글쎄요.”

“야아, 가서 그 새끼 인척 관계 조사한 것 전부 가져와 봐!”

양오남에 대한 추적은 혹시 생길지 모르는 또 다른 후환을 대비하기 위함이었고, 박주명 사장은 꽤 능력이 좋아서 자료를 모아왔다.

양오남 사촌 양용운은 두선 건설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아, 좇됐네.”

어이가 없었지만, 드디어 그 비자금 출처 실마리를 찾았다.

문제는 이 두선 그룹이 결코 만만한 쪽이 아니었는데, 특히 건설 쪽이라면 다른 폭력 조직과의 연계도 있다는 점이다.

양오남은 늘 혼자 돌아다녔고, 두 달에 딱 한 번 만난 이가 양용운이었다. 사촌끼리 잠깐 만나서 곧 헤어졌으니, 당시는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김정환 검사 심문을 받은 것 때문에 생각난 것이었다.

“어쩌죠?”

‘설마 이 두선 건설이 김정환 검사가 쫓는 놈들은 아니겠지?’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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