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조민호도 수긍했지만, 조수현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편한 관계가 되자 미래 증권과 연관이 있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박상철 과장 이야기입니다만.”
“아 그 퍽치기 배후 박상철 과장 말이구나.”
그도 조철영 통해서 박상철이 조민호 퍽치기 의뢰인이라는 것을 이미 듣고 큰 충격을 받은 터라 잠깐 망설였지만, 당사자 조민호를 무시하지 못했다.
“내가 듣기로 FBI가 압수 수색 중에 박상철 과장이 죽었지만, 그 자금 세탁 조직 코링스와 연결고리가 드러나서 앨리엇도 수사 중이다.”
단순히 그냥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FBI를 비롯한 여러 조직이 달라붙어서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었다.
앨리엇은 그 수사 때문에 심지어 최근 진행하는 델파이 회사채를 싼값에 매집하는 일도 다 멈추었다. 시간이 갈수록 액면가를 목표한 20% 가격에 사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앨리엇은 그런 중에도 미국 국세청에 대응해서 박상철 과장과 코링스의 일탈일 뿐이라는 대규모 소송을 벌이는 중 일어났던 모든 일을 중단했다.
“지금 앨리엇은 이쪽 한국 쪽은 아예 완전히 손 놓고 있어.”
조민호는 미국 일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혹시 그 앨리엇에서 투자를 받았습니까?”
그도 최근 회사 내에서도 그들의 투자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 중이었다. 대외적인 영업을 위해서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사실 내부적으로 많은 이들이 반대했다.
이 내용도 조민호와 무관하지 않아서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그래. 앨리엇 측에서 투자한 금액이 500억이다. 지금 미국 IRS에서는 그 투자금액을 자금 세탁 금액으로 의심하는 것 같다.”
“심각하겠습니다.”
“아니 아직은 괜찮다. 국세청에서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 그리고 그쪽에서 요청하면 관련 투자 자료를 깨끗하게 보낼 예정이다.”
“네.”
하지만 조민호 생각은 좀 달랐는데, 박상철이 한 짓을 고려하면 그 배후가 또 무슨 엉뚱한 사고를 칠지, 아니면 괜히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튈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로버트 힐 대사를 통해서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
조민호는 자기 정체를 아는 최영준 차장과 최영민 팀장을 제외하고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 로버트 힐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
그는 최영민 팀장을 대리인으로 시키고, 대신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지시는 최영민 팀장을 통하지만, 이전에 염두에 둔 한 가지 확인은 본인이 직접 했다.
일전에 지시를 내린 것과는 달리 박상철 과장 사살이라는 너무 과도한 결과 때문에 로버트 힐 선천지기를 확인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다는 확신이 들자 최영민 팀장에게 눈짓으로 좀 더 주의를 끌도록 지시했다.
‘이상하네.’
조민호는 뒤늦게 로버트 힐 선천지기 일부에 자신의 선천지기 특성이 녹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양이 너무 적어서 주의 깊게 지켜보지 않고는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아니 로버트 힐만이 아니라, 최영민 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양은 마치 한국대 야구부가 시너지를 모을 때 서로 선천지기를 소통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 선천지기는 몸속에 녹아서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다.
조민호는 로버트 힐이 아니라, 최영민 팀장에게 손짓할 때마다 그 선천지기가 미묘하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거였구나.’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만약 조민호 선천지기가 지금보다 월등히 높다면 상대적인 차이가 너무 커서 오히려 그 차이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서로 보는 시야 자체가 아주 달라서 전생같이 절대자 수준에 올랐다면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오히려 지금은 조민호 선천지기 양이 적고, 순도가 높아서 그 차이를 안 것이다. 절대자로써 군림할 때는 일방적인 관계였고, 지금 현대에서는 서로 소통하는 점이 달랐다.
[......알겠습니다. 미래 증권은 앨리엇에게서 단순히 투자를 받았다는 점은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그 부분은 문제가 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조민호는 힐끗 로버트 힐이 말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몸을 돌렸다.
‘저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이 누설 선천지기에 대한 것도 확인해봐야겠어. 세뇌는 아니지만, 친밀감을 주는 방식과 비슷한 것 같아. 신기하구나.’
그의 입가에는 어느덧 이 깨달음에 대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현경의 벽을 뚫어서 초인간의 단계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던 것이다.
***
미국 국세청 수사는 그 활동 무대에 상관없이 미국인에 대해서 탈루 소득에 대해서 벌금을 물렸다.
그들은 심지어 FBI에서 권총을 소지한 채 교육을 받고, 의도적으로 탈루 범죄자 굴레를 씌워서 처리할 정도로 엄격하게 수사한다.
조수현 회장은 박상철 과장 때문에 미국 IRS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단순히 범죄 행위 문제가 아니라 최근 진행하는 미국 펀드 투자 때문이다.
자칫 미국 국세청에 이번 일로 찍히면 이 미국 관련 투자 프로젝트는 박살 난다.
그는 결국 앨리엇 투자 관련해서 먼저 나서서 적극 미국 국세청과 협상해서 필요한 자료를 보냈다.
다행이라면 그 깐깐한 미국 국세청에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이번 앨리엇 의혹 관련해서 귀사에서 충실하게 업무 협조를 해주신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귀사의 무궁한 번영을 바랍니다.
로버트 힐 대사가 조민호 부탁을 받고 미국 국세청에 적당한 압력을 넣은 결과 때문이었다.
“......이상하네.”
조수현 회장은 기획팀 전체와 같이 몇 주에 걸쳐서 이상한 미국 국세청 반응에 대해서 혐의해봤지만,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자금 세탁에 대한 미국 정부 대응이 이렇게 간단할 수는 없었다.
국제적으로 이용하는 자금 세탁 방법은 많다. 소액 분할이나, 제3자의 이름, 심지어 합법적인 사업체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번에 FBI가 잡은 이들은 위장 기업을 이용한 방식이다.
즉 미국 국세청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족쇄를 채워서 여러 가지 압력을 넣을 수 있는데, 심지어 최근 투자를 시작한 미국 펀딩도 해당한다.
그럼에도 결과가 그냥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끝나버렸다.
관련 담당 직원 역시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우리 회장님이 미국에도 인맥이 있는 거야?
-회장님이 늘 애쓰잖아.
-열 일하는 것도 있지만, 그분 명성이 대단한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그래도 설마 미국 국세청에 압박을 넣을 정도는 아니잖아.
조수현 역시 결국 이 수상쩍은 결과에 가족끼리같이 먹는 아침 식사 중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정말 모르겠군.”
조지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수술도 잘 끝났잖아. 그런데 또 따른 무슨 일 있어?”
조수현 회장도 차마 딸에게 미국 국세청 관련된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은 아빠 회사 일이라서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기 좀 그렇다.”
“요즘 맘 고생하는 거 다 아는데, 왜 힘든 일은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하잖아. 여기 오빠들이랑 들어줄 테니, 말해 봐요.”
부정적인 이야기였다면 그도 그냥 넘겼을 테지만 미국 국세청 관련된 이야기다. 둘째 조정국 경우에 향후 자기 투자 사업 일부를 맡아야 하는 점을 감안해서 교수가 강의하듯이 털어놓았다.
“그게 사실은......”
조민호는 그저 입가에 미소를 한 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조지연은 자금 세탁과 관련해서 다양한 예를 듣자 골치가 아픈지 툴툴거렸다.
“그게 그렇게 이상해요?”
“코링스라는 위장 사업체에서 적발된 자금 규모만 해도 무려 2억 달러가 넘는다. 앨리엇에서 보낸 박상철 과장이 그 업체랑 연결고리니, 우리 회사 역시 의심의 눈길을 피하기 어렵다.”
“열심히 소명했잖아요.”
“내가 아무리 충분한 자료를 보냈다고 해도 미국 정부에서 우리 회사 버닝 펀드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는 게 당연해.”
그녀도 숟가락을 입에 물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쪽도 사정이 있겠죠. 그렇게 보면 우리 학교에서 요즘 매일 시위하는 그 오성 X파일이나 비슷하네요. 미국은 그래도 투명한지 알았는데, 한국이랑 다를 바 없어요.”
조수현 회장은 뜬금없는 화제가 미국 국세청 부패 이야기로 바뀐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들이치나, 매치나 그게 그거 아닌가요. 미국 국세청도 구린 구석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나요? 민호 오빠 생각은 어때요?”
임서이 완치 때문에 한결 부드러운 시선에 조민호는 물끄러미 대화를 듣기만 하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딜 가나 비슷할 것 같아.”
“오, 역시 우리 통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던 조지연은 자기 어머니 일 때문인지 마치 자기 오빠처럼 편하게 말했다.
조수현 회장도 그냥 웃고 말았다.
조민호는 물론 아직도 여전히 떠돌고 있는 X파일 이야기에 그 자신도 알게 모르게 많이 연루된 터라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박상철 과장 배후인 앨리엇이야. 덩치가 너무 커서 합법적으로 손쓰기도 쉽지 않아. 차라리 오성 그룹의 힘을 빌려야 하나. 아니면 둘을 싸움 붙이는 것도 괜찮아. 결국 김건중 회장을 이용해야 하나?’
***
오성 X파일 사건은 최영민 미림 팀장이 불구속 다음에는 결국 묵시적 무혐의로 끝이 나자 완전히 산으로 가버렸다.
특히 담당 검사 역시 위의 압력 때문에 두 손을 놓아버렸다.
그 압력 출처가 윗선이 아니라, 최영민 팀장 무혐의 자체가 생뚱맞은 미국에서 왔다는 루머도 나면서 수사 담당 검사도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검사가 국정원 조직을 뒤흔들 비밀 유출 혐의를 기소하면 유죄가 나올 것이 분명했지만, 이 기회를 포기했다.
이 와중에 최영민 팀장이 후계 문제까지 작업하자 김건중 회장은 도망치듯 외국으로 내뺐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오성 장학생 검사가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점과 제공한 돈 역시 김건중 개인 돈이라는 진술인 점을 고려해서 횡령 혐의 자체를 적용하지 못했다.
김건중 회장을 비롯한 관련자는 모두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검찰이 한 조사 역시 김건중 회장이 유일했는데, 소환이 아니라, 고작 서면 조사로 끝나버렸다.
떡값을 주고받은 것 역시 오래된 일이라서 기억나지 않는다는 간단한 결론만 났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딱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자 김석환 광주고검장을 앞으로 내세웠다.
-오성 떡값을 제가 아는 지인에게 돌렸다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제 평생 검사 생활을 하면서 그 어떤 청탁도 해본 적이 없고,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고작 의혹 때문에 그만둔다면 제 유죄를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요식 행위였지만 그런대로 모양새는 갖춘 셈이다.
여론 역시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쾌재를 부르면서 특별 채용 인원을 20% 늘리고, 이 이벤트를 최대한 부풀려서 대학가 시위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이학준 비서실장은 그런 중에 다행히 조민호의 지시를 받아서 계속 중간에 태클을 걸어서 짜증스럽게 하던 최영민 팀장은 중간에 만나서 다시 합의도 봤다.
“다시 말하지만, 그쪽에서 시비를 걸지 않으면 제가 굳이 이 실장님과 대립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친구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쪽에서 나간 직원들 입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들 입이 무거운 친구들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들 마음이 이미 그쪽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깔끔하게 정리하시죠.”
“이것은 합의금입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소위 말하는 50억 가치의 무기명 채권이다.
최영민 팀장은 이게 일종의 공갈 미수라는 족쇄라는 것을 아는 터라 거절하지 않았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최영민 팀장은 인재도 챙기고, 돈도 먹은 터라 히죽 웃었다.
“이 일은 결국 그쪽에서 먼저 시비를 건 것 아닙니까. 그쪽에 하고 싶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도 평소라면 어떻게 다른 수단을 쓰겠지만 지금처럼 김건중 회장이 미국에 가 있는 애매한 시기에는 후계 작업이나 비자금 문제가 터져 나와서는 곤란했다.
일단 봉합이 우선이었다.
‘후유, 정신없군.’
***
그렇게 급한 불을 끄는 시점에서 이학준 비서실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비서팀 직원 한 사람은 그 자신은 내버려둔 일을 여전히 끈기를 가지고 묵묵히 조사해서 보고했다.
바로 김지수 사건 관련한 보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