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조정국은 귀를 후비면서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엄마 운전사만 따로 고용했겠어. 그것 때문에 집 안에 난리가 났잖아. 병원 가서 정밀 검진받아 보라고 했잖아. 그런데 사고가 없었다니, 정말 생각이 있는 거야?”
“이게 정말......”
그녀는 뒤늦게 새로운 가족 시선을 의식하자 얼굴을 붉혔다가 뒤늦게 조민호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한 채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얼굴을 굳혔다.
“그때 외상으로 늑간 동맥 일부가 손상된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백모님은 큰 병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 보세요.”
지금까지 멀쩡한 그녀다.
의사도 아닌 조카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
오히려 그녀는 수상한 시선으로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다른 가족 분위기도 살피면서 냉정하게 일축했다.
“조카님 걱정은 잘 알겠지만 그렇게 큰 병일 리가 없습니다.”
아예 믿지 않았다.
당연히 일반인이라면 합리적인 판단이다.
임서이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조민호가 사기꾼처럼 자기 집안 재산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실제로 외가 쪽에서 그런 일을 적지 않게 봐왔기 때문이다.
조민호도 어이가 없었는데, 가족만 아니라면 여기서 지지 쳤다.
그런데 그도 이미 다른 꿍꿍이가 있다. 동생도 아버지도 조수현 도움을 얻는다면 더 쉽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학업이던 사업이던 조수현 지원을 받으면 자신이 굳이 번거롭게 신경 쓸 이유도 없다.
따라서 그 정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은 수고도 아깝지 않았다.
다만 그 방법이다.
그녀도 이제 조민호에 대한 확신을 굳혔기에 고깝지 않은 말투로 차갑게 소리쳤다.
“병원 가는 것은 시간 되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니 그 일은 조카님도 신경 꺼 주세요.”
조민호는 결국 어설픈 방법보다는 오히려 극약 처방을 마음먹었다.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 백모님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우울증까지 있는 편이라서 내압이 더 심합니다. 여기에 늑간동맥에 압력이 심해지면 파열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복강 내에서 대출혈이 발생해서 최악에 즉사할 수도 있습니다.”
사망이라니.
즉사라니.
남남이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말이 좀 너무 심하네!”
그녀도 가슴을 탁탁 치면서 창백한 안색을 한 채 힐끗 다른 가족 표정을 살폈는데, 늘 느긋하게만 살아오던 조정국조차 조민호 폭언에 입을 딱 벌렸고, 조지연은 아연실색한 채 쳐다보았다.
조철영조차 아들이 처음 만난 백모보고 한 협박성 발언에 분노했다.
“이놈의 새끼가......”
조민호가 더 빨랐다.
“백모님이 설사 제 엉터리 진단 때문에 병원에 헛걸음할 수도 있지만 정말 제 말대로 된다면 오늘 당장에라도 죽습니다. 설마 자기 목숨을 걸고 도박하실 겁니까?”
임서이도 이제는 분노가 너무 극에 달해서 오히려 화도 나지 않았다.
“진담으로 하는 말이야?”
“네.”
그녀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만약 이게 단순한 장난이라면 내가 절대로 그냥 안 둘 거다!”
“대신에 제 말이 맞는다면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기가 막혀서.”
임서이는 폭언과 협박을 남발하는 조민호 때문에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쳐다보았는데, 아니 오히려 잘 되었다고 마음먹었다.
안 그래도 이들이 같이 동거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이번 일이 조민호의 악의적인 장난이라고 밝혀진다면 그걸 명분으로 남편과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만약 헛소리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백모님도 약속 꼭 지켜주세요.”
“......정말로.”
한 번도 지지 않는 조민호 행동에 그녀는 완전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
임서이 나름 그 아들에 그 아버지라는 부분에서 이 가족에게 크게 실망했고, 남편에게 이번 일을 통해서 확실히 다짐받으려 했다.
까짓 거 병원 한 번 가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나. 다만 그녀도 확신을 위해서 늘 자주 가는 오성 의료원을 찾았다.
“늑간동맥입니다.”
그리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운 좋게도 딱 적시에 오셨습니다.”
심장 질환과 내혈관 질환에도 명의로 소문이 자잘한 이승구 박사는 최근 오성 의료원 내의 원인 불명 질환 연구 때문에 피곤했다.
물론 뒤늦게 흥분해서 한 자기 말실수를 인정했다.
“......아, 죄송합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요즘 제가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이런 이상한 경우가 너무 자주 생겨서입니다.”
“......”
임서이는 물론 담당의의 참된 사과 따위는 아예 무시한 채 창백한 안색에 입을 딱 벌렸고, 완전히 넋을 잃어버렸다.
“서, 선생님, 지, 진짜 늑간동맥입니까?”
“그러면 가짜 늑간동맥도 있습니까. 이게 늑간동맥 출혈로 이어졌을 때 대량 출혈에 쇼크까지 와서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승구 박사는 정말 신기하다는 눈으로 CT와 정밀 검사 결과를 보면서 툴툴거렸다.
“혈색소 감소와 저혈압 봐서는 2-3개월 전부터 구토나 설사 징후가 있었을 겁니다.”
그녀도 항변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복부 팽만은 과거에도 늘 있어서 무시했습니다.”
“그럴 겁니다. 이게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발견하기 힘든 소인입니다. 솔직히 저도 사모님이 직접 딱 찍어서 말씀하셨고, 이 진료 결과가 있어서 아는 겁니다.”
“하면 진료해도 모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 병원 정도면 조기 진단이 가능합니다만 다른 병원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 혈액 검사만으로는 확인하기가 좀 어렵다.
임서이는 진정하기 위해서 가슴을 꽉 잡았다.
“그러면 치료는......”
“가능한 한 빨리 수술 날짜를 잡겠습니다. 간단한 경동맥 색전술이라 큰 부작용도 없습니다. 그래서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간단한 수술입니다. 하지만 아마 복강내 대출혈이 있었다면......”
“네.”
임서이도 평소에 비해서 까칠한 이승구 박사에게 눈총을 주고는 병원 휴게실로 향했다. 그녀는 냉수를 벌컥벌컥 들인 후에 그제야 한숨을 내쉬면서 아찔한 상상에 가스를 탁탁 치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뒤늦게 연락받고 허겁지겁 찾아온 조수현이 소리쳤다.
“당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그녀는 두려움에 결국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조수현 품에 일단 안겼다가 조민호가 했던 이야기를 하나둘씩 털어놓았다.
“그게 정말이야?”
“네. 조카가, 아니 조카님이......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이승구 박사님에게 이야기할까 하다가 정신병자 취급받을까 싶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너무 이상해요.”
“그건 내가 민호에게 따로 알아볼게. 내가 김 기사 통해서 필요한 짐은 보낼 테니까. 당신은 일단 입원부터 해서 빨리 수술받아.”
“알았어요.”
임서이는 정말 조민호가 고마웠다. 조민호가 막장 조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올 일도 없었고, 정말 재수 없었다면 즉사했을 수도 있다.
이미 조민호 가족에 대한 불만 따위는 다 잊었다.
‘민호가 뭘 좋아하나. 나중에 도련님에게 물어봐야겠어.’
***
임서이 입원과 수술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이 수술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늑간동맥 파열을 사전에 알고 병원에 찾아 왔는지가 오성 의료원 심장내과 내에서 논란이 되었다.
-이런 일이 또 생기다니.
-다른 조사도 아직 미궁인데, 왜 최근 와서 이런 일만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느낌이지만 유독 우리 병원으로 이상한 환자가 몰리는 것 같습니다.
-국내 최고 병원이지 않습니까.
-설마 이 환자도 의문의 환자에 포함될까요?
-단순히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늑간동맥이라고 가정하고 정밀 검사를 했기에보다 쉽게 발견했지,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놓쳤을 수도 있었다.
이승구 박사는 무료 수술까지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해서 임서이에게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달라붙어서 알아보았다.
“어차피 저희 병원 VIP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앞으로 사모님 가족분에 한해서는 최고 VIP와 동급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임서이는 차마 조카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자기 조카이기 이전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특히 민호가 한 이야기 중에 은거 기인에게 배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조수현은 성공적인 임서이 수술 결과에 매우 고마워서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1인당 300만원이 넘는 초호화 풀코스 일식집을 찾아갔다.
조민호 일가는 음식을 즐기면서도 다들 조민호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아직도 폭언을 일삼던 돈키호테 조민호 모습이 떠올랐지만 그렇게 단호하지 않았다면 임서이가 병원에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결국 임서이 생명을 구한 셈이다.
그때는 조민호가 미친 놈 같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임서이 가족은 그 순간을 생각하면 새삼 아찔하기만 했다.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비용을 아끼지 않은 조수현은 조민호 손을 꼭 잡은 채 눈시울까지 붉히면서 계속 감사를 전했다.
“민호야,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우리 안사람이 살았다.”
조민호는 이미 자기가 노린 바를 완료했기에 겸양의 미덕을 발휘했다.
“제 백모님인데, 그런 감사를 받으면 오히려 마음만 불편합니다.”
“그래. 암, 우린 가족이지. 안 사람도 너에게 그 때 좀 험하게 말했다고 하던데, 다시 정식으로 사과할 거다. 물론 친족끼리 굳이 불필요한 말은 필요 없지만 그래도 이번 일은 내 절대로 잊지 않으마.”
“앞으로 편하게 대해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조수현은 나이답지 않게 담백하면서도 소탈한 조민호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하나 둘씩 살피면서 힐끗 조철영을 바라보았다.
조철영도 정신이 없기는 매 한 가지였는데, 생뚱맞은 지압사 이야기를 아직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과거 시골 마을 생활을 하나하나 떠올려봤지만 짚이는 바가 전혀 없었다.
‘김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도 있기는 하던데, 아냐 이장 어른이 그랬던가. 몇 년 전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일까?’
“저기 민호야, 신동리 마을 어디쯤 네 스승님이 살았어?”
“그분은 이미 그 마을을 떠났습니다. 정처 없이 세상을 유람하는 분이라서 아마 앞으로는 볼 일이 없을 겁니다.”
“널 의심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그 마을에 20년이나 살았지만 그런 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렇게 비범하다면 입소문이 났을 것 아니냐?”
조민호는 이제 거짓말 부담 따위는 없는 터라 주절주절 내키는 대로 떠들었다.
“세상사를 피해서 산속에서 조용히 은거한 터라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러냐?”
“네.”
조수현이 다시 조철영 등을 소리가 나도록 찰지게 때렸다.
“철영아, 됐다. 세속을 이미 떠난 어르신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잖아. 넌 왜 조용히 있는 민호를 심문하고 그래. 다만 민호야, 좀 아쉽다. 차라리 한의대에 들어갔다면 정식으로 자격증 따서 성공할 거다. 가만 혹시 지금이라도 한의대 편입할 생각은 없냐. 등록금이나 학비는 내가 다 대주마.”
“괜찮습니다.”
“네 재주가 너무 아깝다.”
“전 한의사나 의사가 되어서 평생 환자를 치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적당히 환자만 치료해서 돈 벌고, 남은 시간은 세상을 돌아보면서 유유자적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건 좀......”
조수현은 차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말하자 그의 신념대로라면 잔소리를 해야겠지만 아내 일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그 이야기는 조용히 나랑 따로 하고, 지금 밥이나 먹자.”
그는 힐끗 시선을 마주한 조철영조차 놀라서 할 말을 잃고 있는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고, 조민호 능력을 조사한 기획팀 직원을 떠올리면서 이를 갈았다.
‘절대 평범한 녀석은 아니야. 그리고 이놈의 자식들은 도대체 뭘 조사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