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23화 (23/176)

#023

그는 특히 NSC에 있을 때 CIA나, FBI 쪽에도 인맥을 많이 쌓아 두었고, 세 정보기관 지인을 통해서 다시 독촉했다.

-정말 중요한 일이네.

-그러면 제가 직접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톰슨, 이번 일만 도와준다면 이 빚은 절대 있지 않겠네.

-하하하, 잘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로버트 힐도 외지를 빙빙 돌았지만, NSC를 거쳐서, 미국 대사라면, 그다음은 미국 행정부 국무부행이나 마찬가지다.

쭉 라인을 타고 올라가면 CIA 국장도 마냥 꿈은 아니었고, 아니면 국무부 내에 핵심 권력 속으로 갈 수도 있었다.

로버트 힐 대사도 그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는 최영민 팀장 통해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서 다른 쪽에도 연락했다.

***

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 톰슨은 우선 이 일을 국장에게 사전에 이야기한 후에 밑에 팀에게는 마카오 금융계 북한 커넥션 조사 리소스 일부를 이쪽으로 돌렸다.

“스탠 호에 대한 작업이 막바지입니다. 저희도 가용 인력이......”

“북핵 밀수 네트워크는 이미 14개국 정보 기관이 공조해서 진행하는 일이라서 크게 문제가 안 돼.”

“위조 달러와 마약 밀매는 그렇게 간단히 덮어둘 문제가 아닙니다.”

“시끄럽고, 시키는 대로 해.”

데니스도 툴툴거리면서 톰슨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박상철 과장 추적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른 팀 동료 힘을 빌려서 찾아냈다.

문제는 그 박상철 과장이 있는 곳이다.

코링스 투자 회사란 곳을 습관적으로 확인하다 보니, 이상한 것이 나왔다. 거기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자 예상치 못한 정보가 팍팍 튀어나왔다.

“어, 이거 좀 이상합니다.”

“뭐가 또......”

톰슨은 그 정보 중에 이상한 것을 하나둘씩 확인한 후에 굳은 안색으로 곧바로 국장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NSC 지부는 이 문제로 시끄러워졌다.

톰슨은 굳은 목소리로 로버트 힐에게 연락했다.

-추론이지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결론은 자금 세탁하는 회사에서 있습니다.

-박상철 과장 그 친구가 말인가?

-그 친구 혼자 한 일은 아닐 겁니다. 자세한 것은 조사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예상대로 ‘제임스 김’이라는 가명을 사용했고, 신분증 역시 위조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박상철 과장 신분이 아니라, 다른 위장 신분을 사용했기 때문에 뒤늦게 밝혀졌다. 아마 박상철 과장에 대해서 몰랐다면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를 잡을 수 있겠나?

-이미 혐의점 몇 가지도 보인 터라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로버트 힐도 이상하리라 만치 굳은 톰슨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더 있나?

-그게 돈 흐름이 좀 이상합니다. 그 자금 흐름 최종 목적지 중에는 아무래도 중동을 포함해서 유럽 쪽도 관련됩니다.

-설마 테러 조직은 아니겠지?

-지금은 확실치 않습니다. 급한대로 국장님에게 보고했고, 대 테러 대응팀까지 포함해서 이번 작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로버트 힐도 테러 범죄에 대해서 얼마나 단호하게 대응하는지 잘 알았다.

-맙소사 내가 원하는 것은 박상철 과장인데, 혹시 생포할 수 있겠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하네.

NSC 요원 톰슨은 내부적인 사정까지는 로버트 힐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 담당 영역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오히려 왜 로버트 힐 대사가 굳이 박상철 과장을 조사하는지 겉으로 질문하지도 않았지만, 고개를 갸웃했다.

***

자금 세탁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헤지펀드 같은 경우에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고가 미술품, 자동차, 비행기, 요트와 같은 고가 물품을 사들인 후에 그 물품을 받지 않거나, 저가 물품을 받는 방법이다.

서류상 조작은 당연히 병행되는데, 사실 이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정상적인 투자 펀드가 병행되는 경우에는 더 어렵다.

다만 이런 작업을 하려면 해당 국가에 정상적인 법인이 있어야 하고, 자금 이체 역시 정상적인 무역 루트를 따라야 한다.

박상철 과장은 조민호 작업 실패에 대한 문책 때문에 한국에서 다급히 돌아온 후에 미국 뉴욕 근거에서 이 작업을 맡았다.

그는 조직 내의 전담 부서이기는 하지만 별개의 건물에서 감시관으로 이 일을 진행한 터라 마음 편하게 진행하면서 한국에 있는 조민호 행적을 따로 조사했다.

지금까지 조민호가 감각이 뛰어난 덕분인지 과거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까지 고용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는 그럼에도 인내를 가진 채 묵묵히 조민호를 계속 주시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오늘만큼은 박상철 과장도 조민호 욕을 하면서 터벅터벅 직장으로 향하다가 문득 회사 주변에서 이상한 이들을 발견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자 자기 직속 상급자 토마스에게 다급하게 전화했는데, 계속 통화 중이라서 여섯 번 연결 끝에 겨우 통화했다.

-FBI다. 당장 그 자리에서 피해!!

-아니 여기에 왜 FBI가 나옵니까?

-자세한 것은 지금 조사 중이다. 자네는 절대로 잡히면 안 돼. 그 자리에서 최대한 빨리 피해서 근처 안가로 가!

-알겠습니다.

박상철 과장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당황했지만, 오히려 다른 뉴욕커처럼 느긋하게 돌아다니면서 오히려 구경했다.

무려 80명의 뉴욕 경찰과 50명 가까운 FBI가 완전 무장한 대테러 대응팀 뒤를 따라서 코링스 건물을 덮쳤고, 그들 뒤를 미국 국세청 요원이 따랐다.

‘도대체가......’

탕탕탕.

코링스 건물 내에서 이어진 총격, 미국 정부 요원의 반격이 이어지면서 총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뒤늦게 피하던 시민은 비명을 내질렀다.

누군가에게 연락 받아서 곧 낌새를 눈치챈 뉴욕에 있는 모든 방송국과,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왔고,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뉴욕 사상 최대의 불법 자금 세탁 조직을 FBI가 급습했습니다. 이들은 마약 판매 대금이나, 고가의 수출품 거래를 조작한 뒤에 차액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수천만 달러 세금을 포탈했습니다.]

덕분에 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 틈을 통해서 코링스 건물 안에 있는 이들이 빠져나갔고, 총소리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박상철 과장은 분위기가 점점 흉흉해지자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지만, 그의 안색은 썩 좋지가 않았다.

‘빌어먹을 조민호 새끼.’

그의 처지에서는 정말 재앙 같은 인간이었다.

조민호가 설사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고 해도 정신병원에 보내서 깔끔하게 세상과 격리시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마지막 한 걸음을 가지 못했다.

박상철 과장도 너무 느긋하게 움직인 탓에 건물 주변을 감시하던 뉴욕 경찰 중에 한 명이 그의 얼굴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멈춰!!!”

박상철 과장은 만약 자신이 엮여 들어가면 앨리엇과의 연결 고리가 드러나서 불법 자금 세탁 문제가 폭로된다는 것을 알았다.

빠른 걸음으로 뛰면서 윗선에 메시지를 보내려고 안주머니 핸드폰을 꺼내려고 했다.

탕탕탕!

때마침 건물에서 총격 소리가 더 커지자 뉴욕 경찰도 상대가 권총을 꺼내는지 착각하자 반사적으로 박상철 다리를 향해서 총을 쐈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그 총알은 박상철 등을 맞추었다.

“어.”

박상철 과장은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에 와이셔츠를 붉게 물들인 피를 보면서 멍한 눈빛을 한 채 벽면에 몸을 기댄 채 쓰러졌다.

그는 다급하게 다가온 뉴욕 경찰이 무전기로 119를 부르는 것을 보면서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죽다니.’

***

FBI는 박상철 과장 조사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 세탁 조직을 발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마무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박상철 과장은 어디까지나 외부 감시관으로 인접한 다른 건물에서 일했는데, 그 자리에서 사망하면서 결과적으로 앨리엇과 이 불법 자금 세탁 조직과 연결 고리는 드러나지 않았다.

FBI가 뒤늦게 발견한 결과는 몇 명을 잡기는 했지만 다 사망했고, 이미 그들이 중요한 자료가 다 폐기 처리되고 사라진 다음이었다.

로버트 힐 미국 대사는 이번 일을 통해서 꽤 큰 공적을 챙겼지만, 막상 조민호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 탓에 당혹한 얼굴로 최영민 전 국정원 팀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이 결론은 다시 돌고 돌아서 최종적으로 조민호가 확인했다.

“사살이라니.”

조민호는 자신이 로버트 힐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전혀 그런 적은 없었다.

막상 박상철 과장이 사살되었다는 소식에 후환을 제거해서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그 윗선까지 밝히지 못해서 실망해야 할지 난감했다.

최영준 차장도 최영민 팀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리둥절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FBI 측에서는 중동 테러 조직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서 과격하게 대응했나 봐.”

“박상철 그놈은 왜 하필이면 자금 세탁 조직에서 발견된 겁니까. 그리고 테러 조직 자금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 부분은 FBI가 조사 중이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최영민 팀장 말로는 FBI도 내부적으로 크게 당황했다고 해. 설마 사전에 자기들 급습을 알고 증거를 다 지울지는 몰랐으니까.”

“설마 FBI 내부에도 그놈들 패거리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결론이 그래.”

“으음.”

조민호도 이 일이 생각보다는 더 규모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차라리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야. 나중에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면 자칫 또 다른 사고가 생길 수도 있어. 역시 아버지 경호 문제도 신경 써야겠어.’

“일단 박상철 관련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주세요.”

“알겠어.”

조민호도 일단 후환이 될 박상철 과장에 대한 추적에 꽤 만족한 터라 로버트 힐 가치를 상향 조정했고, 이번 기회에 국내 쪽 적임자를 염두에 뒀다.

‘검경에도 로버트 힐 대리인 같은 몇 사람을 박아 두면 좋겠는데, 김정환 검사가 적임자 같기는 한데, 어떻게 할까.’

그가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렸다.

‘가만 박상철이 사망했으니, 분명히 누군가 움직일 거야.’

***

때 마침 조민호는 시골에 있던 아버지 조철영이 급히 중요한 말이 있다고 주말에 잠깐 내려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안 그래도 수련에, 전공에, 심지어 환자 치료 등으로 바쁜 조민호는 내키지 않았지만 앞으로 경호원 고용 문제도 있고 해서 시골에 다시 내려갔다.

그런데 시골집에서는 뜻밖의 사람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민호구나.”

그는 이미 외할아버지 조사 중에 봤던 사진을 떠올리면서 깜짝 놀랐다.

“아, 설마 현수 큰아버지?!”

“응? 처음인데 날 바로 알아보네.”

“옛날 가족사진 봤습니다.”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이미 조수현 역시 퍽치기 배후로 어느 정도 염두에 뒀지만 딱 지금 이 순간에 그 의혹을 지웠다.

대충 봐도 선천지기 잠재력 스탯이 무려 19를 넘어갔는데, 그 순수함은 평범한 사람과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늦게 만났구나.”

금융계 샐러리맨 신화를 쓰고 있는 조수현은 중후한 멋을 풍기는 정장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채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가 다급하게 시골까지 내려온 것은 물론 박상철 과장이 총에 사망했고, 투자자 중에 하나인 앨리엇이 이 사건과 연관되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다.

결국 박상철 과장이 한 일에 관해 조사했다.

그 결과가 바로 조민호였다.

조수현도 다급하게 조철영에게 직접 연락해서 뒤늦게 조민호 퍽치기 배후가 박상철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었다.

조철영은 만감이 교차한 얼굴로 그저 말없이 지켜만 볼 뿐이었다.

조민호는 뒤늦게 마루 한쪽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여동생 조지현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에 준비해둔 다과를 먹으면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역시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딱히 조수현 삼촌에게 원하는 것은 없었다.

조수현은 생각이 많이 달랐다.

“철영이와 통화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퍽치기를 당해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회복된 거로 안다. 걱정 많이 했다.”

그는 잠깐 머뭇거렸다.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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