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22화 (22/176)

#022

중아 홀딩스는 범 오성계 기업으로 중아그룹의 지주회사다. 대부분 지분은 최석준 회장이 다 가지고 있고, 중아일보와 같은 계열사에 무려 65%를 넘게 소유했는데, 그중에 9%를 내놓았다.

이제 겨우 30대인 최영준 차장 나이를 고려하면 꽤 빠른 승계다.

“가, 감사합니다.”

최영준 차장도 예상치 못한 선물에 흥분해서 말을 더듬었는데, 이게 후계 승계 작업의 시작이라는 것 느꼈다.

저 지분 가치는 단순한 돈 이상으로 중아일보에 대한 영향력 역시 많이 늘어난다.

최석준 회장도 그런 점을 지적했다.

“아직은 네 나이도 있어서 완급 조절이 좀 필요하다. 단 지금처럼 명확하게 회사에 영향을 끼친 경우는 예외다. 송필영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다 수긍한 일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아라.”

물론 이야기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오성 의료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별다른 잔병은 없지만, 이상하게 몸이 좋지 않구나. 그래서 말인데......”

최영준 차장은 절로 미소가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조민호군에게 시간 나면 봐달라고 한 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만 지난 일(?) 때문에 장담은 못합니다.”

최석준 회장은 잠깐 움찔했지만, 굳이 더 파지는 않았다.

“고맙다. 그리고 이번 일은 훌륭했다.”

“아닙니다.”

최영준 차장은 곧 서재를 나서면서 조민호에게 어떤 선물인 좋을까 고민했는데, 세 번의 연이은 빅히트 기사에 완전히 기가 팍 죽은 두 동생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어디 꼼수를 부리려고.’

***

조민호는 이번 중아일보 인터뷰 기사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는 애초에 자기 보호와 박상철 과장 추적을 위해서 수단으로 사용했고, 권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친구들은 좀 다른 것 같았는데, 평소 보지 않던 까칠이 박진민이 도서관에서 복사한 신문을 가져와서 툴툴거렸다.

“정말 현직 검사가 최영민 팀장을 공갈 협박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

별생각 없는 김영탁도 부정적이다.

“물타기 기사가 아닐까?”

“이 MBS 방송국 가처분 금지 법원 판결 봐. 교묘하잖아.”

김영탁도 약간 김빠진 맥주 거품처럼 툴툴거렸다.

“그래도 문제는 이번 오성 X파일 폭로한 최영민 팀장이 양심고백 했잖아. 이게 단순히 협박받아서 한 일이겠냐? 정말 그런지도 몰라.”

최영민 팀장의 오성 그룹과 연결된 정관계 부패 고리, 오성 X파일 폭로가 그 시작이었다. 그런데 정작 사건은 돌고 돌아서 정치 검사의 불법으로 결론이 났다.

기승전 부패 검사다.

어떻게 해야 이런 결과가 나올까.

박진민은 특히 김건중 회장이 미국으로 튀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는 정말 빨라.”

“대신에 나온 이 김용철 이사의 도청은 또 뭔지 모르겠어. 최소한 대통령 차남에 대한 수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거 분명히 김건중 회장이 중간에 손을 쓴 거야. 물타기로 용으로 딱이잖아.”

“아니 김건중 회장이 어떻게 저 정보를 얻어?”

“정부가 중간에 낀 거 아닐까. 서로 뭔가 딜을 주고받았겠지.”

“그거 그럴 듯하다.”

“뻔한 이야기지만 한 몇 개월 지나면 다시 조용히 한국에 돌아오겠지.”

“이러니 오성 공화국 소리 듣지.”

“뒤늦게 이번 사건을 할당받은 담당 검사는 황당할 거야.”

두 사람 푸념은 끝도 없었는데, 뜻밖에 맞는 부분이 많았다.

로버트 힐에게 김용철 이사 정보를 얻은 비서실장은 저 정보를 김건중 회장에게 넘겼다. 김건중 회장이 미국으로 쉽게 갈 수 있었던 이유도 오성 장학생의 협조가 있었다.

조민호는 곧 있을 시험 준비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시끄럽고, 딴 데 가서 이야기해라.”

“야, 여기 너 혼자 세 놨냐? 그리고 벽창호 소리 듣지 않으려면 이런 시사 상식에 관심 좀 둬.”

“흠.”

그는 힐끗 기사 복사물을 한 번 훅 살피면서 관자 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알고 보니 죄다 자기가 알게 모르게 관여한 기사들이었다.

두 가지 기사만 아니라, 다른 사건 파일 중에도 꽤 많았다.

유연진 기사 역시 스포츠와 경제란을 빼곡하게 삼켰는데, 심지어 요즘은 사설 칼럼까지 진출해서 그 위세를 떨쳤다.

그 중에는 유연진 친구 지압사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번 사건을 진흙탕으로 빠트린 사람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조민호 본인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렸다면 방향을 바꿀 수 있을 테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이미 전생에서 지긋지긋하게 해봤는데, 현대에 와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사건은 물론 박상철 과장처럼 조민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면 그도 아주 극단적으로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런 그도 로버트 힐 대사의 이상할 정도로 우호적인 한국에 대한 반응에는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까칠이 박진민이 걸고 넘어갔다.

“이 신임 미국 대사는 한국 대사인지, 미국 대사인지 분간을 못 하겠어. 이렇게 노골적이면 미국 행정부에서 찍히지 않나.”

한미 동맹을 옹호하면서 미국도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 전 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은 민망할 정도다.

심지어 한국 방위력 증가를 위해서도 과거에 문제가 되어온 한국 전투기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미국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조민호는 결국 그 기사가 한국인 조민호가 원할 것이라는 추론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느끼자 한숨을 내쉬고 말았는데, 한 것은 선천지기를 뒤틀어서 심령에 깊은 인상을 남긴 것뿐이다.

‘저러다가 대사 자리에서 잘리면 곤란한데, 내가 세뇌를 한 것은 아닌데, 시간 내서 한 번 더 검진을 해봐야 하나.’

“민호야, 왜 그래? 너 정말 이상하다. 또 기억 상실 드립치면 한 대 맞는다.”

그는 귀찮게 자기 옆자리에 와서 분탕질 치는 친구에게 두 손을 든 채 옆 건너편으로 옮겨갔지만 두 사람은 계속 따라왔다.

“도대체 왜 그래?”

“심심하다.”

“학점 관리 안 해? 너희도 내년에 졸업이잖아.”

두 사람도 눈살을 찌푸렸고, 곧 주섬주섬 책을 꺼냈지만, 곧 꾸벅꾸벅 졸더니, 잠들어버렸다.

그도 이 평화로운 독서실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는데, 솔직히 마음에 안 든 점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현대로 돌아와서 적응했다고 확신했다.

‘이것도 좋지.’

그때 마침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박진민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가 다시 후다닥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미, 민호야, 빠, 빨리 와!”

“?”

그는 박진민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

람보르기니는 상당수 모델이 투우 황소와 비슷한데, 작명 자체가 좀 과격한 이미지를 담는다. 악마라는 디아블로 이름을 딴 것만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디자인 자체가 직선 위주이고, 내려오는 시저 도어가 그 특징이다.

페라리와는 달리 대부분 차량이 후륜 구동으로 미드쉽 엔진 구조라서 트렁크가 앞에 있다.

570마력, 4륜 구동 가야르도 역시 이런 전형적인 람보르기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노란색으로 쫙 빠진 멋진 몸매는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차량 가격은 대략 3억 5천만원 정도 한다.

그 차량이 물리학과 건물 바로 앞에 새색시처럼 대기해 있었다.

그나마 시간이 어중간해서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소수 재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구경했다.

최영준 차장은 평소 정장이 아니라 청바지에, 검은 선글라스를 한 채 모델처럼 가야르도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선배님, 불러왔습니다!”

최영준 차장은 조민호를 보기가 무섭게 들고 있는 차 열쇠를 던졌다.

“?”

조민호는 영문을 몰라서 멍하니 최영준 차장을 쳐다보았다.

최영준 차장도 한창 젊은 시절 흉내를 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채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옛날에 샀던 차인데, 거의 타지 않아. 그래서 그냥 집에 놔두는 것보다는 탈 사람이 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가져왔어.”

조민호는 ‘이게 웬일이래?’라고 차 주변을 빙빙 돌면서 구경하는 박진민과는 달리 이게 단순히 그냥 키를 준 것이 아니라, 차를 그냥 선물로 준 것이라는 금방 눈치챘다.

“부담스럽습니다.”

최영준 차장도 힐끗 몰리는 시선을 의식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네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회사 지분을 받았어. 그 일에 대한 감사 선물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해. 안 그러면 오히려 내가 더 불편해.”

“차라리 거래를 한 걸로 생각하자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나도 마음 편해. 이번 선물로 지난 일까지 깔끔하게 정리하자. 그리고 앞으로는 미래 일만 생각하면 되잖아.”

“흐음.”

그도 처음에는 최영준 차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처럼 자신이 최영준 차장 개인 사정을 모른다고 해도 만약 그만 일방적인 이익을 보는 관계가 지속한다면 그 친분은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사람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계산을 깔끔하게 하는 것이 좋았다.

최영준 차장은 앞으로도 조민호와 지금처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조민호도 문득 한 가지를 알고 싶었다.

“그 지분이 돈 좀 되나 보죠?”

“최소한 천억 이상을 준다고 해도 구할 수 없어.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지난 일에 대한 사과도 있어. 잠깐 시간 나면 우리 회장님 한 번 봐주면 더 좋고. 미우나 고우나 내 아버지이니까.”

“받죠.”

그는 결국 차 키를 받아서 차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박진민은 멍하니 그 광경을 보면서 최영준 차장을 쳐다봤다.

조민호는 그런 두 사람을 삭 무시한 채 차량을 출발시켰다.

부아앙.

무려 570마력 엔진 람보르기니는 확실히 제값을 톡톡히 했다. 엔진 스타트와 거의 동시에 대학가 도로를 따라서 사라졌다.

“야아, 조민호!!”

그 뒤에서는 박진민의 의혹에 가득한 분노 소리만이 계속 울릴 뿐이었다.

***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한 최영준 차장은 내심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가야르도를 조민호에게 선물했는데, 이게 일시적인 변덕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인터뷰했던 로버트 힐 대사는 사뭇 최영준 차장에게 친근하게 접근했는데, 이미 인터뷰를 하면서도 최영준 차장 눈치를 꽤 봤다.

심지어 기사 후폭풍에 대해서는 귀찮을 정도로 전화해서 질문했다.

대사와 친구처럼 자주 통화하는 그 모습에 중아일보 전략팀 직원조차 경악한 일이었다.

최영준 차장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마음만 불편했다.

-대사님, 굳이 이렇게 전화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아, 네.

-정 여유 되면 지난 주에 부탁한 박상철 과장 그 친구 행적이나 좀 더 빨리 확인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로버트 힐 대사는 의외로 자기 노력이 먹혔다고 판단했는데, 이전까지 조민호와 관련된 그 어떤 일도 관련이 없어서 한 편으로 오히려 실망했었다.

이번 인터뷰 통해서 그 자신이 조민호와 한 조직 일원처럼 느꼈고, 최영준 차장 지시에 따라서 박상철 과장 추적에 대해서 문의했던 이들에게 독촉하기 위해서 다시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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