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마 제가 최영준 차장님 쪽 집안을 풍비박산 내겠습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정리할 겁니다. 그게 최영준 차장님 입지에도 좋습니다.”
물론 이쪽에서 김건중 회장 목줄을 쥐고 있다면 최영준 차장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영향력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저 자기 가업을 물려받는 선에서 만족하는 그가 원한 바가 아니었다.
“이미 칼집에서 칼은 뽑았습니다. 이제 뭐라도 잘라야 합니다. 최 차장님은 앞으로 그 이후 일이나 걱정하십시오.”
“후유.”
최영민 팀장은 걱정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슬그머니 인터뷰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독점 인터뷰합니다. 다만 중간에 편집되는 부분은 사전에 허락받고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최영민 팀장 인터뷰다.
정작 이 인터뷰 내용은 정치 검사 김도영이 그 자신에게 했던 불법적인 심문이었다.
“저도 국정원에 있으면서 여러 국가 기관의 불법을 봐왔습니다만 설마 현직 검사가 사건 날조를 강요하면서 협박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안 그래도 법원에서 최근 오성 X파일에 대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판단을 내렸다. 이것 때문에 한국 방송은 이제 끝났다고 푸념하는 이들이 급증했다. 특히 정치 검사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최영민 팀장은 이런 분위기까지 슬쩍 포함해서 눈물까지 보였다.
“어머님에게 불효한 것은 알지만, 지금까지 국가에 충성한 노력이 김도영 검사에 의해서 난도질당할 때는 피눈물이 났습......, 죄송합니다. 제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서......”
“......”
최영준 차장조차 교묘한 인터뷰 내용에 감탄한 채 멍하니 지켜봤다.
카메라 담당 기자는 그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죽으라고 찍고, 또 찍었다.
기자 인터뷰를 지켜보던 김원준 과장과 양봉석 대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박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멀리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다른 기자들 역시 경이로운 시선으로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최영준 차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설마 검찰의 불법적인 심문과 같은 자극적인 특종을 독점 인터뷰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요즘 한창 뜨겁게 국회에서도 입만 열면 나오는 최영민 팀장을 통해서 말이다.
더욱이 최영민 팀장은 수사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은근슬쩍 이미 빼놓았던 구체적인 오성 X파일에 대한 것도 주절주절 살짝 흘렸다.
“녹취 테이프 중에는......”
이 인터뷰 내용 중에는 오성 후계 작업이나 비자금에 대한 것은 다 빠져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는 다 모자이크 처리와 변조된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굴뚝 연기 석탄 재료로는 안성맞춤이다.
최영준 차장도 어깨를 으쓱한 채 슬쩍 눈물을 닦다가 시선을 마주친 최영민 팀장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입니다!’라고 입 모양으로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저걸로 적당히 타협할 생각인가 보군.’
***
최영민 팀장 독점 기사가 나가자 반응은 정말 쇼킹했다.
유연진 열풍 때문에 달아오른 모든 언론이 이 기사를 다루면서 처음에는 검찰의 불법적인 수사와 만행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오성 X파일에 관한 기사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김도영 검사는 위의 부장 검사에게 정강이를 까였고, 관련 수사팀은 모두 해체되어서 저기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이 모든 사태를 만든 김도영 검사는 나름 위에 항의도 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야, 미친 새끼야, 누가 일을 이따위로 하라고 했냐? 하려면 최영민 그 새끼만을 건드려야 할 것 아냐. 왜 거기에 오성 X파일까지 같이 엮어! 위에서 네놈을 당장 직권 남용으로 구속하라고 난리다!”
김도영 검사는 결국 보직해임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앞으로 검찰에 계속 붙어있기는 힘
든 것처럼 보였다.
최영민 팀장은 이미 어딘가에서 소식을 듣고 나타나서 자기 개인 물품을 상자에 담아서 힘없이 중앙지검을 나서는 그를 만났다.
“여어, 김 검사, 오랜만이야.”
“......무슨 일입니까.”
그도 내심 오성 X파일을 같이 끼워 넣기만 했는데, 설마 오성 그룹에서 압력을 넣어서 아예 검사 옷을 벗겨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 아는 사이잖아. 안 좋은 일 있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어.”
“그만 하시죠.”
“세상 만만하게 봤지?”
“아닙니다.”
“이 친구야, 인생은 실전이야. 한 번 아차 하면 벼랑 끝이네. 잘 좀 했어야지. 왜 권력을 탐하려고 그런 짓을 했나.”
“......”
김도영 검사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지만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최영민 팀장은 어깨동무까지 하면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가 우리 김 검사에게 무슨 개인감정이 있어서 이러는 것 아냐. 그냥 인생 선배로서 충고하는 거야. 사람이 원래 쉽게 안 변해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니까.”
“네.”
그는 혼자 킥킥거리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멀어지는 김도영 검사 등을 음흉하게 쳐다보았다.
‘속이 다 후련하군. 물론 이게 다가 아니지. 자네가 좀 더 고생해야겠어.’
***
최영민 팀장은 일을 여기서 끝내지 않았는데, 김도영의 수사 자료에 오성 후계 작업 관련 일부 자료를 슬쩍 끼웠다.
이 자료는 김도영 검사의 직권 남용 조사 중에 공익 제보를 받은 담당 검사에게 넘어갔다.
김도영 검사는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증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 최영민 팀장의 인터뷰 기사가 공론화되면서 김건중 회장 국정 감사 이야기가 국회에서 서서히 나왔다.
김건중 회장은 정말 생뚱맞은 상황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최영민 팀장 인터뷰를 시작으로 누출된 후계 자료는 그저 참고용이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난다는 말처럼 반대 세력이 김건중 회장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이 실장, 자네가 뭘 미안한가.”
김건중 회장은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이 영문 모를 상황에 한숨을 내쉬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조민호 그 친구 조사는 어떻게 되었나?”
“그게 지금 회장님이......”
“내가 설사 이곳에 없다고 해도 일은 해야 할 거야. 괜히 밑에서 움직이는 이들까지 막지 마.”
“알겠습니다.”
그는 곧 좌석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고, 비행기는 곧 이륙했다.
***
김건중 회장은 시간이 갈수록 여론이 나빠지자 결국 지병 핑계로 미국 텍사스 휴스턴 엔더슨 병원으로 떠나버렸다.
꾀병이 아니라, 화병이다.
조민호도 뒤늦게 이 사실을 당황한 최영준 차장 통해서 들었는데, 전생에서도 이렇게 화끈한 일 처리를 본 적이 없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
“......”
그 침착한 최영준 차장은 오히려 오락가락하면서 크게 당황했다.
“도대체 최 팀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상황이 아니었는데, 영문을 알 수가 없네.”
“확실하게 일 처리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밟으려고 합니다만 반대로 이쪽에서 죽기 살기로 매달리면, 오히려 물러섭니다. 아마 앞으로는 김 회장도 이전처럼 무모하게 나오지 않을 겁니다.”
“휴우.”
그도 모르지 않지만 집안일이 엮여 있어서 혼란스럽기만 했다.
조민호는 쓰게 웃으면서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못 먹어도 고입니다. 그 로버트 힐 대사하고도 관계를 부각하게 시키세요. 최영준 차장님도 사내 영향력이 더 커질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김 회장과 이야기하기도 편하죠. 더욱이 무영 그룹과 같은 다른 세력도 쉽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도 순간 당황했다. 로버트 힐과 관계가 더 친밀해질수록 그 자신의 후계 위치는 완전히 고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쪽으로 영향력을 더 키울 수 있었다.
최영준 차장은 아내 일에 대한 감사 때문에 지금까지 조민호를 도왔고, 딱히 특별한 이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나?”
“지금까지 일도 있고, 앞으로 일도 있으니, 그 정도 이익을 보세요. 제가 로버트 힐에게 직접 당부를 할 테니, 마무리를 잘 해보세요. 나중에 필요할 때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면 됩니다.”
“알겠네.”
조민호도 이전에는 손발이 되어줄 사람이 없어서 보류해 둔 일 한 가지를 꺼냈다.
“참 박상철 과장 추적은 어떻습니까?”
“아직 결과가 없어.”
“그거 이상합니다. 고작 한국인 한 사람을 쫓았지 않습니까?”
“로버트 힐 대사 이야기로는 아예 이름을 바꿔서 잠적하는 경우라면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했어.”
“이름까지 바꾼다라.”
조민호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오히려 박상철 과장은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라는 확신했는데, 박상철이 조수현 큰아버지하고 관계가 없기만을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낼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20년 넘게 남남으로 살아온 조수현 쪽을 당분간은 천천히 지켜보기로 했다.
“계속 쪼아 보세요.”
“알았네.”
***
최영준 차장도 사람인지라 로버트 힐 인터뷰를 통해서 얻게 될 효과에 푹 빠졌다.
실제로 로버트 힐 인터뷰가 얼마 있지 않아서 기사로 나간 후의 반응은 최영민 인터뷰 그 이상의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권력 기관에서 최영준 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요즘 같이 밥이나 먹읍시다.
최영준 차장 인맥이 로버트 힐 미국 대사와 꽤 친하다는 입소문이 돈 것이다.
기사 내용 자체도 친정부적인 입장을 밝힌 터라, 오히려 야당에서 더 많이 전화하면서 견제했다.
여당은 이 반대로 우호적인 멘트를 계속 보냈다.
최석준 회장조차 가족 모임에서 칭찬했다.
“이번 로버트 힐 대사 인터뷰 기사 정말 좋았다.”
“아닙니다.”
“회사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어. 송필영 사장도 묵묵히 불평불만 없이 큰 그림을 그리면서 노력하는 내 모습에 박수를 보내더라.”
“감사합니다.”
“다른 경영진 역시 너를 보는 시선이 이전과는 아주 달라졌다.”
“부담스럽습니다.”
중아일보 전략팀 분위기만 해도 이미 최영준 차장 찬양가를 불렀다. 기존에 불평을 토로하던 임직원 역시 태도가 바뀐 지 오래다.
이 기세는 중아일보를 넘어서 중아 그룹 전체 계열사로 퍼져갔다.
특히 로버트 힐 인터뷰 내용보다는 미국 대사와 인터뷰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자들은 또 다른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정연희 회복 의문에 대한 기자들 이야기도 조용히 사라졌다.
나름 언론계에 자기 입지를 굳힌 최석준 회장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고, 따로 최영준 차장을 서재를 불러 비서에게서 받은 서류를 내밀었다.
“중아 홀딩스 지분 9%다. 네가 가진 지분 1%까지 합치면 모두 10%다. 세금을 포함한 정리는 이미 모두 끝냈다.”